그녀가 울던 날. 2탄
집에 오자마자 펑펑 울어제낀 소미. 지난 봄, 반장선거에서 떨어져서 현관문 열리자마자 서럽게 울던 소은이가 1탄이라면 오늘은 그녀의 언니 이야기로 2탄 되시겠다.
사건의 요지는 이렇다.
소미네 반은 모두 여섯 모둠(조)으로 나눠서 여러 가지 학습활동을 한다. 소미는 애초에 3모둠이었다. 일명 리더팀. 모둠 이름이며 힘나게 하는 모둠구호 등을 소미가 만들어서 애착이 많았다. 남자친구, 여자친구 할 것 없이 비교적 맘이 척척 잘 맞아 모둠별로 과제를 해결하거나 발표하는 과정을 참 재미있고 신나게 준비하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모둠별로 동요를 개사한 4학년 1반가(歌)를 준비했을 때도 리더팀이 <네잎클로버>의 가사를 바꿔서 만든 노래가 채택되어 그대로 학부모공개수업 때 부르기도 했다. 암튼 좋은 결과가 많았는지 늘 스티커가 가장 많은 모둠이라고 자랑이 대단했다.
그런데 이 공개수업이 있기 얼마 전, 그러니까 5월 초순쯤 담임선생님은 갑자기 소미를 뚝 떼어서 6모둠 모둠장으로 데려다 놓으셨다. 그때부터 소미의 6모둠 분투기가 시작된 것으로 안다. 좀 산만한 개구쟁이 남자친구들이 많고 여섯 모둠 중에서 가장 활동이 저조한 모둠이라는 것까지. 그래도 소미가 6모둠으로 간 이후 그 모둠의 학습활동이 뚜렷하게 활발하고 좋아졌다고 선생님이 크게 칭찬하셨다는 소리, 소미 덕분에 갑자기 칭찬스티커가 쑥쑥 늘어나 6모둠 친구들이 기뻐했다는 소리도 간간이 전해들었다.
문제는 선생님이 소미를 6모둠에 데려다 놓으실 때 약속을 하나 하신 게 발단이다. 선생님은 소미에게 네가 6모둠 친구들을 잘 도와 활발하고 적극적인 모둠이 되도록 해서 스티커를 한판 꽉 채우면 다시 3모둠으로 복귀시켜주겠다 뭐 그런 내용의 약속을 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오늘 이제 2개의 스티커만 모으면 한 판이 되게 되어 소미가 그때의 약속을 상기시켜 드렸더니, 선생님은 일언지하에 6모둠에 계속 있으라고 하셨단다.
펑펑 울면서 하는 말. 3모둠이 너무 좋아 6모둠으로 가기 싫었지만, 선생님 약속만 믿고 정말 열심히 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 약속 잊으신 건지 그냥 안 지키시려는 건지 내 생각은 조금도 안 해주시고 계속 있으라 하니 난 너무 속상하다, 내가 얼마나 힘든 줄 아느냐, 3모둠에서 친했던 다혜와 재은이는(다들 한 군인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이다) 이제 둘이서만 더 친해져서 나는 외톨이가 된 기분이고, 6모둠 애들이 전보다는 잘한다 하지만 너무너무 협조를 안 하고 장난만 하고 뺀질대고 정말 울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솔아(6모둠에서 가장 친한 친구)가 많이 힘이 돼주어서 그거 하나 때문에 견뎌왔는데 3모둠에 안 보내주시니 너무 속상하다… 뭐 그런.
하도 서럽게 울고 속상해하고 완강하게 6모둠은 더 이상 싫다 하는 통에 나는 일단 내일 모레 도서관 봉사하러 갈 때 선생님을 만나보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선생님의 약속과 선생님의 기대를 충족시키고 있는 소미에 대한 선생님의 신뢰 사이에서 어떻게든 균형을 잡아주고, 조금 힘들더라도 소미를 이해시키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약속은 덜컥 했지만 이런 문제 가지고 엄마가 뽀로로 학교로 달려갈 일은 아니다 싶으니 순간 고민이 많았다. 소미는 계속 옆에서 담임선생님 말씀 듣고 엄마는 또 네, 네, 알겠습니다 이러면서 그냥 선생님 말씀만 받아들고 오지 말라고 성화를 했다.
그런데 마침, 남편이 모처럼 일찍 들어와서 저녁을 함께 먹게 되었다. 나는 식사시간에 이 문제를 공론화(?)하기로 맘먹었다. 왜냐면 의외로 남편이 이런 문제를 명쾌하게 잘 해결하기 때문이다. 내가 따라갈 수 없는 문제의 핵심을 찌르는 날카로움에 문제해결능력과 이해시키는 능력까지 겸비했는데(으와~ 오늘 무지 띄워준다. ㅎㅎ), 종종 난감한 아이들 문제에서 요긴하게 도움을 받는다. 오랜 시간 선생님과 같은 위치에서 조카 같은 병사들과 이런저런 문제에 부딪치고 개인적인 문제를 상담하고 해결하고 일해 온 덕분이라 생각하는데, 오늘 저녁에도 그랬다.
남편은 소미에게 일단 아빠와 아빠가 아주 이뻐하는 병사아저씨의 관계를 이야기하며 선생님의 입장이라면 당장 엄마가 달려가는 것은 좋지 않다고 전제하고, 소미가 금방 다시 선생님께 재차 약속을 상기시키며 졸라대는 것도 선생님의 소미에 대한 신뢰에 살짝 금가게 하는 부분이 있다고 했다. 왜냐면 한 학급을 책임지는 선생님 입장으론 크게 처지는 아이 없이 모든 친구들이 되도록 고르게 따라와 주었으면 하는 기대가 있기 때문에, 그런 기대에 도움을 주는 소미에 대한 신뢰가 돈독할 텐데 조금 더 생각해봐야 하지 않겠느냐 했다.
그러니까 여름방학 때까지는 묵묵히 6모둠에서 애써봐라, 그리고 2학기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6모둠에 두신다면 그땐 엄마가 아니라 소미 네가 선생님께 그동안 6모둠에서 힘들었던 일, 힘들었지만 선생님과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열심히 최선을 다했던 일, 약속을 기억하지 못하시는 선생님 때문에 속이 상했던 일 등을 공손하고 예의 바르게 말씀드리는 게 좋겠다고 했다.
방학 때까지 아직도 너무 멀었다고 소미가 난리를 하니까 남편은 그게 ‘희생’이라고 했다. 이어 3모둠 이름을 상기시키며 ‘리더’는 편하게 남들에게 지시하고 군림하는 사람이 아니라 남을 섬기는 사람이다, 싫어도 때로는 솔선수범해야 한다, 마음에 안 들어도 여러 사람의 의견을 존중해서 따라야 할 때도 있다, 네가 리더가 되고 싶어 모둠 이름도 그렇게 지었으면서 한 달 남짓한 시간 동안 그 정도 희생도 못하느냐, 했다(아, 남편, 여기서 아주 멋졌다. ㅎㅎ). 소미는 잠자코 있었다.
남편은 끝으로 2학기 때 선생님이 3모둠으로 복귀시켜 주셔도 선생님께 꼭 그동안 네 마음을 한번쯤은 표현하라고 했다. 선생님께 편지를 쓰는 게 어떻겠냐고 하니까 소미는 그동안 아빠의 말에 완전 동감을 했는지 세뇌를 당했는지, 편지 말고 그럼 그때 가서 일기에 그간의 마음을 풀어 놓겠노라고 순순히 대답했다.(소미네는 일기 검사를 주 1회 한다. 선생님 멘트가 성의 있으셔서 참 좋아한다.)
그래서 ‘게임 끝’이었다. 아무리 약속의 중요성과 속이 상한 소미의 심정에 문제의 초점을 맞추려 해도, 이런 일로 선생님까지 찾아가는 일은 ‘잘난 제 자식 저 좋을 대로 편하게 해주십시오’ 하러가는 품새밖에 안 되는 것 같아서 아주 난감했던 차였는데 정말 잘 됐다. 나는 손 안 대고 코 풀고, 남편은 아빠의 멋진 권위를 만방에 펼쳐보였으니 일석이조에 도랑 치고 가재 잡은 날이었다.^^ ***
과자는 소미를 좋아해~~
2005년 7월에도 ~~
2007년 6월에도,
과자는~~ 소미를 좋아해!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