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학교

예술의 전당에서 보낸 한 나절

M.미카엘라 2007. 7. 26. 02:47

옛말에 ‘애 하나 기르는데 온 동네 사람이 필요하다’라는 의미의 말이 있는데 나는 참 여러모로 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협찬을 통해 아이들을 잘 기르고 있다.

 

커리어우먼인 내 친구는 착하게도 콘서트나 연극티켓 같은 것이 생기면 나와 아이들을 잘 챙겨준다. 얼마 전에도 <월드비전 2007 세계어린이합창제>를 이 친구의 배려로 좋은 좌석에서 볼 수 있었다. '월드비전'하면 바람의 딸 한비야씨 때문에 알게 된 세계적인 구호단체인데 어린이합창제를 열면서 홍보활동도 한다. 선명회합창단이 월드비전 소속이라는 것도 이번에 알았다.

 

우리는 전시회도 하나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일찌감치 만나서 이른 저녁을 먹고 한가람미술관에서 <오르세 미술관전>을 보았다. 아이들은 <스누피 디자인전>을 보고 싶어했지만 입장료가 모두 같을 바에야 <오르세 미술관전>이 더 끌렸다.

 

아이들은 오리지널 그림에 대한 설명을 듣고 아주 신기해한다. 밀레의 <만종>과 고흐의 <반 고흐의 방> 이런 그림들이 복사본이 아닌 원본, 밀레와 고흐의 손길이 닿아 붓자국이 살아있는 원판으로 본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겠다고 한다.

 

<만종>은 그리 크지 않은 그림이었지만 <반 고흐의 방>은 생각보다 아주 큰 그림이었다. 소은이는 <반 고흐의 방>보면서 자꾸 “엄마, 이 그림 고흐가 한 세 장은 그렸죠?”한다. 진본을 본다는 것이 믿기지 않고, 진본과 복사본에 대한 것이 아직 이해가 되지 않아서 그런가보다 하고 실실 속으로 웃었는데, 집에 와서 도록(圖錄)을 보니 정말 이 그림은 고흐가 똑같은 구도로 조금씩 색이나 질감 표현만 다르게 석 장을 그렸다는 게 아닌가.

 

‘아니, 우리 손손이가 고흐 팬에다가 책을 그리도 보더니만 이런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던 거구나. 그런 줄도 모르고 의심했네.’

이러면서 소은이에게 확인 차 물었더니 정색을 한다.

“어, 그래요? 난 모르고 한 말인데…”

피유~ 내 기대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

 

그래도 우리는 새로운 사실을 알면서 즐거워했다. 난 역시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이 좋다. 그냥 눈이 그대로 즐거워진다. 마네, 모네, 르느와르, 피사로, 시슬레, 시냐크, 고흐... 우리들이 미술책에서 익히 보아왔던 이름들이고 아름다운 풍경이나 인물이 많아서 편안하고 참 좋았다. 돈 있으면 마네 그림 하나 사서 걸고 싶단 생각을 하는 찰나에 밀레의 <만종> 천억 대라 어떤 전문가가 그러길래 포기했다.(ㅎㅎ)

 

아이들은 아름다운 여인이나 소녀가 많이 나오는 르느와르 그림을 좋아했다. <고양이를 안고 있는 아이>가 가장 인기 좋았다.

 

<월드비전 2007 세계어린이합창제>는  1부에서 미국, 대만, 홍콩, 호주, 헝가리에서 온 어린이합창단이 민속의상을 입고 공연했고, 2부에서 선명회합창단 전 단원이 오케스트라와 꾸민 합창극을 공연했다. 어린이들의 목소리는 천상의 목소리라는 말을 실감하게 했다.

 

목소리가 어찌나 맑고 청아한지 마음속의 근심과 걱정, 더러움이 한꺼번에 씻겨나가는 것 같았다. 딸들도 전혀 지루한지 모르고 잘 보았다. 서로서로 어떤 합창단이 좋았냐고 묻고 내에게도 묻는데 나는 다 좋아서 딱 한 팀만 꼬집어 말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좀더 인상적이었던 팀을 꼽자면 맨 먼저 공연한 미국 아리조나 어린이합창단으로 소년들로만 구성이 된 팀이다. 카우보이모자에 밧줄돌리기를 하면서 부른 신나는 노래가 너무 재밌었지요. 홍콩의 사이쿵 어린이합창단은 동작이 큰 율동을 같이 선보이면서도 어찌 그리 한목소리가 흐트러짐이 없던지 참 놀라웠다.

 

다 좋았다. 2부에서 선명회어린이합창단은 시니어, 주니어팀이 모두 모여 300여 명 정도가 공연했는데 굉장했다. 다른 나라 어린이들은 꽤나 자유롭고 편안하게 노래를 부르는데

 

우리나라 어린이들은 율동도 어찌 그리 딱딱 맞고 일사불란한지 딴짓하는 아이가 한 명도 없었다. 이게 좋은 건지 불필요한 건지 모르겠지만 암튼 보기는 좋았다. 하얀색 폴로셔츠와 하얀색 바지를 입은 어린이들이 무대 2층에 빽빽하게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객석을 압도했다.  

 

내 돈을 다 주고 봤다고 해도 별로 아깝지 않을 그런 공연이었다. 좋은 친구 둔 탓이다. 그런데 이런 데 가면 기념품에 목숨 거는 타입인 손손이는 그날도 전시회 잘 구경하고 기념품 파는 데를 지나서 엄청 울었다. 친구가 미술관에서는 도록을, 합창제에서는 CD를 사주었건만, 그보다 더 좋은 기념품이 어디 있다고 필요도 없는 브로치를 사겠다고 끈질지게 찔찔 짜서 부아가 좀 났었다. 아이스크림도 안 먹고 어른들 커피 맛도 떨어지게 퉁퉁 불어 울고 있었다.

 

방학 때 파주 헤이리 '딸기 스페이스'에 가서 꼭 좋아하는 기념품을 사주마고 약속했는데, 처음엔 귓등으로도 안 듣더니 결국 한참 있다가 퉁퉁 부은 눈으로 이런 타협안을 내놓는다.

"그럼 두 개 사 주세요."

내 친구를 포함한 나머지 세 여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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