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학교

내복패션으로 여는 철원시대

M.미카엘라 2002. 1. 15. 01:39

"저기 전화모뎀 쓰신다고 해서 코넷 설치해드리려고 왔는데 마침 빈 회선이 생겨서 그냥 전용선 깔아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아무한테도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이건 순서대로 해드려야 하는 거거든요. 코넷 때문에 너무 여기저기 전화하시게 해서 미안해서…"
난 너무 좋아서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했다. 웃으면서 "그렇게 인터넷이 절박했느냐"는 한국통신 직원의 말을 생각하면 좀 부끄럽지만 그때 내 심정은 그 정도로 기뻤다.

"그런데 그 전에는 어떻게 사셨어요?"
"ADSL 설치했었지요."
"네에? 그럼 신규가입자가 아니세요? 그런데 왜 해지를 하셨어요?"
"해지해야 되는 거 아니예요? 이사하니깐…"
"아니예요. 그냥 이전신고를 하셔야죠. 여기가 시설이 부족해도 기존가입자들은 어떻게든 먼저 설치를 해드리거든요. 이렇게 오래 기다리시지 않아도 되는데."
"그으래요? 전 정말 몰랐어요. 그럼 전화처럼 이전신고만 하면 된단 말씀이시죠? 세상에! 난 그것도 몰랐네. 그럼 제가 새치기하는 건 아니네요. 그렇죠?"
"그런 셈이네요. 근데 전용선 쓰시던 분이 어떻게 전화모뎀을 쓰실려구 그랬어요?"

그렇게 해서 풀이 죽은 채 무작정 기다리던 인터넷 전용선이 여기 철원 땅 군인아파트 우리 집에 깔렸다. 눈이 푹푹 내리는 이 땅의 겨울, 세상을 향해 난 창은 성에가 잔뜩 끼어 뿌옇게만 보이는 것 같았는데 이제 반짝반짝 닦은 맑은 창을 바라보는 느낌이다. 순도 100%의 컴맹이 컴퓨터를 산 지 만 2년 3개월이 되니 이렇게 달라진 것이다.

이사하는 날부터 날씨가 포근한 봉투를 내밀며 우리 집에 부조하더니 그간 내내 따뜻했다. 우리 네 식구 '춥다 춥다'하는 철원에 순조롭게 적응하라고 이렇게 자연의 기운마저 협조해주는가 싶은 게 요 며칠 절로 용기가 난다.

정답게 지내왔던 이웃들과 헤어지고 누더기였지만 3년 8개월 동안 익숙하고 편안했던 15평 아파트를 떠나자니 만감이 교차했다. 이사할 날이 꽤 남았을 때는 이제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는 일을 서너 번 해봤으니 익숙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었는데, 아직 어림없이 서운한 감정만 가득했다. 이런 일을 얼마나 되풀이해야 하나 생각하니 괜하게 고된 감정이 꾸역꾸역 밀려 올라왔다. 다른 데 가서는 사람들한테 너무 많이 정주지 않고 적당하게 살겠다 했더니 옆집 새댁 왈, "그렇게 되나. 특히 언니 같은 사람은 더 어렵지"한 말이 생각났다.

어쨌든 성당의 교우들, 한 아파트의 이웃들의 환송을 받으며 눈물을 삼키고 떠나 새롭게 둥지를 튼 집이 그래도 19평이다. 거기다 도배도 하고 장판도 새로 했다. 아이들 방과 우리 부부 방을 구분해서 정리를 하고 나니 남편은 신혼방 같다고 좋아했다. 언니가 첫 손님으로 우리 집을 방문하며 사다준 노란 프리지어 한 다발이 침대 옆 스탠드 불빛 아래서 배시시 웃고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게 아니라도 제일 좋을 수밖에 없는 사람은 남편이다. 지난 해 7월부터 온갖 공부와 숙제 스트레스 속에 둘러싸여 가족과는 만났다 헤어졌다를 반복했는데, 이제 떡 하니 자기 옆에 데려다 놓았으니 만석꾼이 부러울 까닭이 없었다. 퇴근을 빨리 하지도 못하고, 했다손 치더라도 저녁을 먹고는 다시 부대로 들어가야 하는 날이 계속 이어지는데도 마음이 꽤 편안해 보이는 눈치였다. "한 3월쯤이면 일에 탄력이 생겨 잘할 수 있을 것 같애. 난 그래도 야전이 좋아"라며 여유까지 보이는데 그게 유목민 신세의 군인들의 작은 행복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좋으면서도 아직도 낯설어 크게 좋은 줄도 모르고 이렇게 열흘을 훌쩍 넘겼다. 내내 땅에 붙은 관사와 1층만 살다보니 3층까지 오르는 계단이 아직 불편하고, 따라서 시원찮은 수도꼭지 물줄기가 답답하고, 15평 아파트보다 좁은 부엌 조리대의 불편함이 아직 적응이 덜 되었다. 또 아무도 오고가지 않는 현관문이 심심하다.

소미와 소은이는 나흘씩이나 나랑 문밖 출입을 하지 않고 지내기도 했다. 자기 전에 이 닦고 씻고 자면 그 다음날은 아침 늦게 일어나 그 얼굴 그 내복차림 그대로 하루를 보낸다. 오늘은 뭘 입지? 고민할 것도 없었다. 곰돌이 그림의 내복이냐, 눈사람 그림의 내복이냐 그것만 정하면 되었다. 소미, 소은이 추운 데 간다고 이웃집에서 넉넉한 사이즈에 도톰한 보온메리를 서너 벌이나 사주셔서 아주 잘 입고 있다. 나는 꼬질꼬질한 내복만 빨아대고 먹을 것 열심히 챙겨주니 저희들 방이 생겼다고 처음엔 방안에서 나올 줄 몰랐다.

그러나 조금 지나자 '깨끗한 집'에 '우리들 방' 타령을 그리도 하던 소미가 "이 집은 안 좋다"라고 딱 잘라 말했다.
"난 우리 방이 있는 게 안 좋아요(이건 내가 되도록 장난감을 방안에서만 가지고 놀도록 제한한 탓이다). 그리고 친구들도 못 만나고 우리 집에 놀러오는 사람도 없어서 안 좋아요. 선재도 보고 싶고 채구도 보고 싶고 종민이랑 초이도 보고 싶은데. 그리고 우리들은 아빠, 엄마 침대에서도 자고 싶어요."

나름의 논리는 분명하고 저희들도 적응이 덜 된 고충이 있겠으나 이제 어쩔 것인가. 그러면서도 보온메리 자매는 벽에 낙서를 안 하기로 한 약속을 아직까지는 잘 지키고, 첫날밤만 빼고는 자다가 몽유병 환자처럼 아빠 엄마 침대 찾아 불쑥 들어오는 일도 없었다. 단지 낮에 눈 쌓인 미끄럼틀을 '딱 한 번만' 타고 얼른 돌아오겠다고 졸라서 문제다. 그런 가운데 자매의 철원시대는 연일 사건사고로 활짝 열렸다.

소은이는 이사온 지 사흘만에 이틀간 두 번이나 팔이 빠지는 사고가 있었다. 어디에 병원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가깝게 응급실을 찾을 병원도 없는 곳이다. 한밤에 부대 안 의무대 정형외과 군의관을 수배해 치료를 했으니 그런 난리도 없었다. 그나마 얼마나 다행인가 싶은 게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두 번째 때는 '암슬링'이라고 해서 압박붕대에 팔을 구부려 걸치게 하고 두 자락을 엇갈리게 해서 목에 걸어 매듭을 지어주었다. 이렇게 2주 동안 하고 있으라고 하니 난 참 한심한 기분이 들었다. 아프면 제가 더 조심할 테지만 일단 아픈 팔이 제자리를 찾아 통증이 없어진 상태에서 가만히 있을 리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간단하고 헐거운 조치로 2주 동안 소은이의 펄펄한 에너지를 어떻게 감당할까.

아니다 다를까 옷과 붕대를 문구용 집게로 여러 군데 집어 고정했는데도 막무가내로 제 할 일을 다 했다. 우습게 팔만 붕대 사이에 끼고 있을 뿐 하나마나한 형국이었다. 결국 2주는 고사하고 만 이틀도 못 되어 풀어버렸다. 그러면서 조금 놀다가 소미가 좀 어떻게 자기에게 불리하게 물리적인 힘을 쓰려고 하면 "언니, 그러다가 나 또 팔 빠져. 그르면 아빠 부대 병원에 가서 의사 성생님이 나 또 꽉 아프게 해"하면서 방어했다.

친정언니는 "넌 아들 가진 사람 하나도 안 부럽겠다. 왜냐면 아들보다 더하게 노는 딸이 두 명이나 있으니까. 안 그러니?"한다. 참 요즘은 정말이지 그 말에 안 그렇다고 토달지 못하겠다. 놀아도 그냥 놀지 않고 집안의 온갖 지형지물(난 몰랐는데 내가 이 말을 쓰니 이것도 군사용어라고 누가 지적했다. 티를 낸다나? 큭큭!)을 동원해 놀고, 어떤 땐 위험할 정도로 온몸을 던져서 논다.

며칠 전부터는 '모녀상봉 놀이'를 시작했다. 내 화장대와 침대 사이에 딱 맞게 들어가는 화장대 의자를 놓고 소은이는 침대에서 "엄마!"하고 부르면, 그보다 좀더 높은 화장대에 있는 소미가 "얘야!"한다. 그러면서 의자를 놓은 '다리'에서 두 모녀가 만나 서로 부둥켜안고 기뻐한다.
"얘야, 엄마가 얼마나 찾았는데 어디갔다 왔어 엉?"
그게 뭐 그리 재미있나 싶은데, 실제 둘이 노는 모습을 보면 어이없어서 더 웃긴다.

그리고 끝으로 또 하나!(밀린 이야기를 다 하자고 욕심 내니 좀 바쁘다)

어젠 소은이가 무스티집 안으로 커피병을 몰래 반입했다. 소미가 알려줘서 들여다보니 커피를 반병이나 쏟고 뽕잎차 티백까지 여러 봉지를 다 찢어서 난장판을 만들었다. 커피가 마른 상태였으면 그나마 내가 화가 덜 났을 텐데 물이 조금씩 나오는 소꼽놀이 싱크대 탓에 그 많은 커피가 찐득하게 엉겨있고 두 손과 옷에도 커피 범벅이었다. 소은이에게는 함부로 부엌 살림에 손을 된 죄, 소미에겐 조용히 함께 놀아놓고(소미 손 역시 까마귀발이었고 커피 냄새 진동이었다) 뒤늦게 엄마에게 소은이 혼자 저지른 것처럼 일러바친 죄를 물어 호되게 야단을 쳐놓고 나니 힘이 쫘악 빠졌다. 커피냄새가 코를 찌르는데 이건 향기 수준을 이미 넘어서고 있었다.

오전엔 햇살이 쫙 들어와서 따뜻하고 환해서 너무 좋지만 산밑에 있는 아파트는 정확히 오후 3시 반에서 4시 사이에 해가 넘어간다. 겨울저녁 나절의 쓸쓸한 기운이 빨리 찾아온다. 그런데도 낮잠도 없는 두 아이와 보내는 하루가 참 길다. 소미가 유치원에 다닐 3월까지는 아직도 두 달 가까이 이렇게 보내야 하니 내게 봄은 더욱 더디 올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