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충전소

성탄절 이야기

M.미카엘라 2004. 12. 25. 22:13

근래 몇 년간 성탄이 다가오는 속도가 빨라지는 기분이 든다. 이게 나이드는 조짐 같은데 무슨 일이든 연례행사 때마다 '아니 벌써?'하는 일이 잦아진다. 올해는 더구나 군인성당 활동을 거의 하지 않고 주일미사도 빼먹은 날이 많아서 성탄절이라고 성당을 찾는 일이 한참 민망해서 어쩔줄 모르겠다. 그래도 아이들 데리고 미사도 하지 않고 보내는 성탄절도 영 생각할 수 없어서 한 수도원 성당을 찾았다.

 

정동에 있는 프란치스꼬수도회 성당에서 우리 네 식구는 수녀언니와 만났다. 결혼 전에도 남편과 나는 종종 이곳 미사에 참례하기도 했는데, 고동색 수도복 위로 허리춤에 굵은 면실로 된 끈을 늘어뜨린 수사님들의 굵은 성가소리는 예나 지금이나 신심과 별도로 마음을 다 맑게 씻어주는 느낌이다. 

 

소미 소은이는 여느 성당 미사보다 더 조용하고 노래로 하는 기도가 조금 길게 이어지는 게 지루한지 뒷문으로 들락달락 하다가, 미사 끝나고 이어지는 조졸한 잔치에 얼굴이 밝아졌다. 사골 우린 국물에 끓인 떡국, 꽈리고추 멸치볶음, 김치, 과일, 떡, 음료수에 신이 난 눈치였다. 

 

아이들 뿐이 아니다. 남편은 성당오는 길에 차 안에서 노골적으로 고백했을 정도다. 이 성당은 미사도 좋지만 미사 이후의 행사가 기대되는 게 사실이라고..... 이럴 땐 딸들이나 남편이나 수준이 똑같다. 그런데 나 역시 "수사님들이 요리도 잘하시네! 결혼 10년 차에 난 이거(꽈리고추 멸치볶음) 아직도 잘 안되던데..." 이러면서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우리는 세종로에 꾸며진 루미나리에(색색의 조명으로 꾸며진 환상적인 조형물)까지 쭈욱 보고 집에 돌아오니 12시였다. 그런데 그밤에 소은이가 일을 치고 말았다. 소은이는 강아지처럼 침대 위에 조금, 침대 내려와서 바닥에 조금 음식을 토하고 말았다. 몇 신지는 모르겠는데 이쪽방에서 혼자 자고 있던 내 이불속으로 들어와서는 "엄마 나 토했어요"한다.

 "근데 내가 머리카락도 물로 씻고 비누로 씻고 입에 물양치도 했어요."

 

그 밤에 혼자 일어나서 토하고 씻고 닦고 나서 그 이야기를 한 아이가 갸륵하고 미안해서 괜찮아, 떡국이 안 좋았나부다, 어차피 이 이불 빨려고 했는데... 잘 됐다 뭐! 하고 다독여 재웠다. 소미도 여섯 살 때 오줌을 싸고는 한밤중에 혼자 일어나 어설프게 애벌빨래까지 해놓고 찬 손을 해가지고 내 품으로 파고 든 적이 있었는데, 잠결에도 그 일이 생각났다.

 

우리 딸들 이렇게 '무쟈게' 착해서 올해도 어김없이(?) 산타할아버지가 선물 가져다 주셨다. 맨날 강아지 한 마리 기르게 해달라고 졸랐는데, 진짜 강아지는 아니지만 짖고, 부르르 떨고, 코까지 골며 자는 장난감 강아지를 안기셨다. 그런데 오늘 딱 하루 데리고 놀더니 이런다.

 "엄마, 근데 이 강아지 보니까 진짜 강아지가 더 기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