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딸 시험 이야기
이제 완연한 겨울인가 싶다. 11월도 다 가고 점점 쓸쓸한 바깥풍경 뿐이다. 할 일은 많고 마음도 바쁘다. 아이들도 곧 기말시험을 앞두고 있다. 우리 애들은 특별히 내가 따로 시험준비 시키는 건 없고 그야말로 평소 실력으로 본다. 자랑도 아니고 믿는 구석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내가 게을러서 그런지 늘 나는 내가 할 일만 가지고도 허덕허덕, 코가 석 자하고도 ‘곱하기 2’쯤 빠져있다. 집에 있으니 시험이 다가올 땐 애들하고 같이 과목별로 한 번씩 훑어보는 일도 해야 하는데 엄두도 못 내고, 애들이 그나마 게으른 엄마 때문에 저희들이 걱정하면서 문제집 ‘쬐~끔’ 풀면 채점해주고 틀린 문제나 물어오는 것만 겨우 해결해준다.
그런데 기말시험이 다가오니 지난 10월에 있었던 중간시험 공부가 생각난다. 시험일을 하루 앞두고 소은이(초등 2학년)가 국어 문제집을 풀었다며 채점 해달라고 책상에 두고 학교에 갔다. 객관식 20문항은 95점, 서술형 문항 채점에 들어갔다. 그런데 깔끔한 문제에 이상한 답변. 지문 속에 있는 ‘여름에 피는 꽃’을 묻는 질문에서 나는 완전 뒤집어졌다.
그날 오후, 학교에 갔다가 먼저 돌아온 소미(4학년)에게 이 문제지를 보여주었더니 완전 깔깔 넘어갔다. 20분 후쯤 들어온 소은이에게 이 문제 답이 좀 이상한데 다시 보라고 모른 척 웃음 나오는 걸 억지로 참으며 문제지를 내밀었다.
“왜요? 맞는데… 엄마가 채점 잘못하신 거 아니예요?”
소미가 웃음을 꾹꾹 참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소은아, 다시 봐봐. 모르겠어?”하고 물었다.
“아하~ 나팔꽃! 히힛~”
자신의 실수를 금방 알아차린 똑똑한 소은이. 그런데 다음 질문이 또 끝내준다.
“근데 엄마. ‘오므라드’가 뭐예요?”
나와 소미는 더 참지 못하고 방바닥에 쓰러져서 더 이상 일어나지 못했다.
다시 그날 밤.
잠자리에 누운 아이들에게 잘 자라고 인사하러 들어갔더니 소은이가 뭘 보면서 기도한다. 소은이는 2층 침대 아래층에서 자는데 누우면 보기 좋은 위층 침대 매트리스에 이렇게 써서 붙여놓았다.
내가 애들 시험 앞두고 잘 하는 소리가 이거다.
“아는 문제 어이 없이 틀리는 실수만 하지 않으면 돼. 그거 생각하면 얼마나 억울해? 실수 줄이는 것도 실력이야. 이건 엄마 말이 아니고 미루 선생님 말씀이셔. 몰라서 틀리는 건 공부를 더 해야 하는 거니까 할 수 없는 거고, 아는 문제는 실수하지 말아야지. 표시도 잘하고.”
그렇게 공부하고 기도하고 학교에 가서 중간시험을 치른 소은이. 시험점수 재미있다.
국어 100점 / 수학 75점 / 슬기로운 생활 95점
그런데 누가 뭐라나? 이 점수 들고 와서 내게 목에 핏대 세우며 호소하는 우리 작은 딸. 수학이 영 켕긴 거다. 그 논리가 이렇다.
“엄마, 나 이번 수학시험 실수는 안 했어요. 실수 한 건 하나도 없어요. 이거 다섯 문제 다 모르는 거였어요.”
아이고 머리야~ 내 미치겠다. 그래, 실수 안 했으니 실력 차~암 출중하다. ㅠㅠ
우리 작은 딸이 어떤 앤고 하니… 이 시점에서 또 잊히지 않는 시험 일화 하나를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여름방학 끝나고 2학기 막 들어서자마자 1학기 학습내용을 범위로 국어, 수학 두 과목만 기초진단평가를 했던 날이다. 그날 나는 학교 도서실 사서봉사를 하고 있었는데 수업을 다 마친 소은이가 1학년 때부터 같은 반 친구인 수빈이를 데리고 도서실에 왔다.
그러면서 그날 본 시험이야기를 하는데 자기 시험결과는 어찌 되었는지 알려주지도 않고, 수빈이 시험결과에 대해 엄청 흥분하면서 보고하기 시작했다.
“엄마, 있잖아요. 오늘 시험 수빈이 올백 맞을 수 있었는데 진짜 아까웠어요. 글쎄, 국어시험에서 추석이 며칠이냐는 질문이 있었거든요. ‘음력 8월 15일’이라고 해야 하잖아요? 근데 글쎄 수빈이는 그냥 8월 15일이라고 썼대요. 추석이 아니라 광복절이 된 거예요. 와하하하~~ 근데 진짜 아깝죠? 아휴 참, 올백 맞을 수 있었는데… 수빈아 너 정말 아깝다. 다음에 그런 실수 하지 말고 올백 맞아.”
이렇게 말할 동안 수빈이는 한 마디도 안 했다. 안타깝고 아깝고, 남이 들으면 딱 자기 시험 얘기하는 줄 알게 생겼다. 내가 너는 그래서 그거 맞았냐고 하니까 맞았단다. 다시 그래서 넌 얼마나 점수 맞았냐 했더니 ‘아깝게’ 3개 틀렸단다. 국어 95점, 수학 90점.
우리 소은이는 학교에서 공부든 뭐든 잘하는 친구들 이야기 엄청 많이 이야기한다. 공부도 잘하고 매너도 좋고 성격까지 좋은 태욱이, 마음씨가 너무 고운 정화, 자기한테 물건도 잘 빌려주는 수빈이… 그런데 문제는 늘 자기는 스스로 그 애들보다는 좀 부족하다고 생각하면서 늘 친구들 띄워주기에 바쁘다. 자기도 그 정도면 잘하고 있고 자신감이 없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이상하게 살짝 그런 면이 있다. ‘나는 그 친구들보다 한 수 접힌다’는.
그런데 또 이상한 건 그래도 우리 소은이 늘 즐겁다. 완전 낙천쟁이다. 성당 신부님은 소은이 보고 ‘앉자마자 놀이가 시작되는 건강한 아이’라고 하신 적이 있다. 미사 때 신부님 시선이 제일 많이 가는 2층 가운데 맨 앞좌석에 지정으로 앉으면서, 잠시도 가만히 안 있는 바람에 내가 가자미눈이 되도록 흘기고 눈치 주느라 바쁜데 신부님 생각은 한참 다르시다. 신부님이 표현은 잘 못하셔도 애들 참 예뻐하시는 분이라 좋게 봐주시는 거려니 한다. 하지만 성당에 나오는 아이들 중에 ‘제일 특이한 애’로 보시는데 그건 쪼끔 맞는 거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