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충전소
탄생신화
M.미카엘라
2000. 6. 26. 02:09
언니가 조카를 데리고 우리 집을 다녀갔다. 남편은 주말에 근무였고 언니도 크게
볼 일이 없는 것 같아서 내가 힘껏 우리집으로 끌어내렸다. 초등학교 3학년 오빠를
맞은 소미는 너무 신이 나고 즐거워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조카가
소미에게 책을 읽어주니 나는 너무 한갓졌다. 더군다나 둘은 배가 쌀쌀 아프고,
식욕이 없고, 잘 먹지도 않는 등 거의 같은 배탈 증세를 보이면서도 서로
만나서는 힘이 넘쳐 보였다.
조카는 많이 컸고 살도 몰라보게 많이 쪘다. 어릴 때 잘 안 먹고 편식이 심해서
애태우더니 이젠 잘 먹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몸만 통통했지 팔다리는 여전히
가는 빛이더니, 이번에 와서 드러낸 팔과 다리는 아주 제법 통통해져서 귀여웠다.
"언니, 그림이 살 많이 쪘다. 정말 놀랍다. 뚱떼부 되겠어, 저러다가."
"그래, 그래서 아침에 깨울 때마다 하는 말이 이젠 좀 달라졌어. 자는 그림이를 쓰
다듬으면서 '우리 이쁜 아들 어디서 왔니?' 그러면 잠에 취한 목소리로 '하늘에서요'
그러거든. 그럼 내가 '하늘에서 천사였었구나. 그런데 이렇게 잠꾸러기라서
하느님이 쫓아낸 거지? 그렇지? 어디 옆구리에 날개 있던 자국 좀 보여줘' 그러면,
요즘은 '살에 파묻혀서 안 보여요' 그런다니까."
참, 초등학교 3학년 아들과 그 엄마의 대화치곤 다소 닭살일 수 있겠으나 나 같은
경우는 늘상 이 '닭살모자'를 대하니까 그럭저럭 괜찮다. 그림이를 당장 불러서
재연해 보이니 아무튼 못 말리는 모자지간이다.
아빠 엄마가 하느님께 예쁜 아기 천사를 보내달라고 간절히 기도를 했더니 그림이를
보내주시며 "이 아기 천사가 하늘나라에서 제일 이쁘고 착하니 잘 기르거라"
하셨다는, 언니의 자기 아들 '탄생신화(?)'는 다섯 살 때부터 조카에게 주입(?)
되었다. 지금이야 이 능청꾸러기에 뒷동산 여우 같은 우리 조카가 그 신화를
액면 그대로 믿을 리 없지만 서로 즐거워하면서 주거니받거니 하니 보는 사람도
그냥 즐겁다
이런 이야기를 언니와 침대에 길게 늘어지듯 누워서 하고 있는데, 그림이가 언니에게
불려와서 보이지 않으니 소미가 냉큼 들어와서 침대로 기어올랐다. 언니가
소미를 안고 뽀뽀를 하면서 대화의 연장선상에서 이렇게 물었다.
"에구, 이쁜 소미, 이렇게 이쁜 소미는 어디서 왔나요?"
그랬더니 거침없는 소미의 대답.
"PX에서요."
우리는 침대에 엎어져서 박장대소했다. 그 자지러지게 우스운 와중에도 템포를 놓치지
않고 되받아치는 언니의 임기응변 대답이 또한 걸작이었다.
"그럼 군납이구나."
아, PX! PX! 이것은 군인아파트 안에 있는 생필품을 파는 슈퍼마켓 같은 면세품
매장이다(좀더 자세한 것은 칼럼 제15호 <군인 딸의 과자가게>를 한 번 보아주세요).
언니는 "소미도 원래는 하늘나라 아기 천사였어. 그러니까 '하늘에서요' 그래야지"
하면서 예의 그 신화를 또 써먹는데, 소미는 이모 말을 따라는 하면서도 영 감을
못 잡은 눈치가 역력했다. 언니가 나를 타박했다.
"에휴, PX가 뭐냐? 누가 군인 딸아니래까봐. 좀 가르쳐라."
나는 피식 웃었고, 소미는 이모가 "우리 이쁜 소미 어디서 왔니?"할 때마다 처음
한두 번만 "하늘에서요" 했지 때마다 대답이 달랐다. "밖에서요"라고 할 때는 자기가
밖에 나갔다가 들어왔을 때이고, "화장실에서요"할 때는 자기가 막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고 나왔을 때 받은 질문의 대답이었다. 대답할 때 표정 또한
진지했으니 정말 어디서 왔냐는 말이 태어나서 처음 받은 선문답 같은 모양이었다.
어디서 왔나? 또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딱히 불자가 아니라도 인간이 평생 품을 화두가 될 법한 향냄새 가득한 질문이다.
단순히 엄마 뱃속이나 하늘, 땅, 밖, 화장실이라고 대답할 수 있는 시절이 행복하다.
오히려 그것이 백 번을 돌고 천 번을 돌아 급기야 해답에 다다른 대답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복잡하게 엉킨 일을 단순하게 가지쳐서 생각할 때
실마리가 보이는 것처럼.
아름다운 탄생신화를 만들어주려고 애썼던 이모와 그림이 오빠기 돌아갈 때 소미는
너무 많이 울었다. 따라가겠다고 우는 아이를 달래면서 올려다본 하늘이 회색
빛으로 낮게 내려앉았다.
"우리 소미는 정말 저 하늘 어디쯤에서 살던 천사였을지 몰라."
나 혼자 취한 듯 중얼거렸다.
볼 일이 없는 것 같아서 내가 힘껏 우리집으로 끌어내렸다. 초등학교 3학년 오빠를
맞은 소미는 너무 신이 나고 즐거워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조카가
소미에게 책을 읽어주니 나는 너무 한갓졌다. 더군다나 둘은 배가 쌀쌀 아프고,
식욕이 없고, 잘 먹지도 않는 등 거의 같은 배탈 증세를 보이면서도 서로
만나서는 힘이 넘쳐 보였다.
조카는 많이 컸고 살도 몰라보게 많이 쪘다. 어릴 때 잘 안 먹고 편식이 심해서
애태우더니 이젠 잘 먹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몸만 통통했지 팔다리는 여전히
가는 빛이더니, 이번에 와서 드러낸 팔과 다리는 아주 제법 통통해져서 귀여웠다.
"언니, 그림이 살 많이 쪘다. 정말 놀랍다. 뚱떼부 되겠어, 저러다가."
"그래, 그래서 아침에 깨울 때마다 하는 말이 이젠 좀 달라졌어. 자는 그림이를 쓰
다듬으면서 '우리 이쁜 아들 어디서 왔니?' 그러면 잠에 취한 목소리로 '하늘에서요'
그러거든. 그럼 내가 '하늘에서 천사였었구나. 그런데 이렇게 잠꾸러기라서
하느님이 쫓아낸 거지? 그렇지? 어디 옆구리에 날개 있던 자국 좀 보여줘' 그러면,
요즘은 '살에 파묻혀서 안 보여요' 그런다니까."
참, 초등학교 3학년 아들과 그 엄마의 대화치곤 다소 닭살일 수 있겠으나 나 같은
경우는 늘상 이 '닭살모자'를 대하니까 그럭저럭 괜찮다. 그림이를 당장 불러서
재연해 보이니 아무튼 못 말리는 모자지간이다.
아빠 엄마가 하느님께 예쁜 아기 천사를 보내달라고 간절히 기도를 했더니 그림이를
보내주시며 "이 아기 천사가 하늘나라에서 제일 이쁘고 착하니 잘 기르거라"
하셨다는, 언니의 자기 아들 '탄생신화(?)'는 다섯 살 때부터 조카에게 주입(?)
되었다. 지금이야 이 능청꾸러기에 뒷동산 여우 같은 우리 조카가 그 신화를
액면 그대로 믿을 리 없지만 서로 즐거워하면서 주거니받거니 하니 보는 사람도
그냥 즐겁다
이런 이야기를 언니와 침대에 길게 늘어지듯 누워서 하고 있는데, 그림이가 언니에게
불려와서 보이지 않으니 소미가 냉큼 들어와서 침대로 기어올랐다. 언니가
소미를 안고 뽀뽀를 하면서 대화의 연장선상에서 이렇게 물었다.
"에구, 이쁜 소미, 이렇게 이쁜 소미는 어디서 왔나요?"
그랬더니 거침없는 소미의 대답.
"PX에서요."
우리는 침대에 엎어져서 박장대소했다. 그 자지러지게 우스운 와중에도 템포를 놓치지
않고 되받아치는 언니의 임기응변 대답이 또한 걸작이었다.
"그럼 군납이구나."
아, PX! PX! 이것은 군인아파트 안에 있는 생필품을 파는 슈퍼마켓 같은 면세품
매장이다(좀더 자세한 것은 칼럼 제15호 <군인 딸의 과자가게>를 한 번 보아주세요).
언니는 "소미도 원래는 하늘나라 아기 천사였어. 그러니까 '하늘에서요' 그래야지"
하면서 예의 그 신화를 또 써먹는데, 소미는 이모 말을 따라는 하면서도 영 감을
못 잡은 눈치가 역력했다. 언니가 나를 타박했다.
"에휴, PX가 뭐냐? 누가 군인 딸아니래까봐. 좀 가르쳐라."
나는 피식 웃었고, 소미는 이모가 "우리 이쁜 소미 어디서 왔니?"할 때마다 처음
한두 번만 "하늘에서요" 했지 때마다 대답이 달랐다. "밖에서요"라고 할 때는 자기가
밖에 나갔다가 들어왔을 때이고, "화장실에서요"할 때는 자기가 막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고 나왔을 때 받은 질문의 대답이었다. 대답할 때 표정 또한
진지했으니 정말 어디서 왔냐는 말이 태어나서 처음 받은 선문답 같은 모양이었다.
어디서 왔나? 또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딱히 불자가 아니라도 인간이 평생 품을 화두가 될 법한 향냄새 가득한 질문이다.
단순히 엄마 뱃속이나 하늘, 땅, 밖, 화장실이라고 대답할 수 있는 시절이 행복하다.
오히려 그것이 백 번을 돌고 천 번을 돌아 급기야 해답에 다다른 대답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복잡하게 엉킨 일을 단순하게 가지쳐서 생각할 때
실마리가 보이는 것처럼.
아름다운 탄생신화를 만들어주려고 애썼던 이모와 그림이 오빠기 돌아갈 때 소미는
너무 많이 울었다. 따라가겠다고 우는 아이를 달래면서 올려다본 하늘이 회색
빛으로 낮게 내려앉았다.
"우리 소미는 정말 저 하늘 어디쯤에서 살던 천사였을지 몰라."
나 혼자 취한 듯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