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충전소

한복이 좋아

M.미카엘라 2005. 2. 14. 01:11

"만고에 어디 한복 입을 일이 있어야지. 한복 입을 일 있으면 정말 잘 갖춰서 좋은 걸로 폼 나게 해 입고 싶어.”

언니가 천천히 둘러보며 말했다. 몇 년 만인지도 모르게 찾아간 동대문시장은 정말 눈이 휘둥그레지게 재미있었다. 특히 한복매장은 한복 좋아하는 우리 자매를 연신 감탄하게 만들었다.

 

촘촘히 누빈 두루마기, 얌전하게 앞여밈에 리본 달린 토끼털 배자, 섶이 좀 길게 내려와 치마를 얌전히 덮게 생긴 감색 저고리, 신라시대 화랑을 연상케 하는 멋진 남자아기 돌복, 올해 아얌이나 조바위 대신 여자머리 치장으로 유행하는 가지각색의 뱃시 등이 아직도 눈에 삼삼하다. 전날 저녁엔 언니가 한복 패션쇼를 극중에서 보여주었던 한 드라마를 좀 보라고 다급하게 전화하여 함께 한복구경을 할 정도이니, 우리가 침만 안 흘렸다 뿐 감탄하고 찬탄한 것은 당연하다.

 

어릴 때 나는 내 한복을 가지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중학생 때 집에서 아버지 환갑을 치른 사진을 보면 단발머리에 무슨 한복을 입긴 했는데 그게 정확히 내 것이었는지 빌려 입은 건지 모르겠다. 어쨌든 명절 때 엄마가 치마나 바지, 블라우스 같은 것은 설빔이나 추석빔 같은 것을 사주신 것은 조금 기억나는데 한복을 입고 절하거나 했던 기억은 없다.

 

그래서 결혼할 때 내 한복을 내 몸에 맞추어 갖게 되는 일은 너무나 꿈같이 기쁜 일이었다. 그 당시 유행했던 짧은 두루마기를 한복집 아주머니는 권했지만 나는 너무 발랄해 보이는 짧은 두루마기가 별로였다. 지금도 크게 변형하지 않은 본래 한복을 좋아한다. 요즘은 한복이나 장신구가 유행이 많이 타서 거의 옛 모습이 어떤 것인지도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지만, 옷도 문화라 사람 사는데 맞춰 편리하게 혹은 그 시대 눈높이에 맞게 아름답게 바뀌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된다.

 

내가 결혼할 때 했던 한복은 충분히 값을 뺐다. 치마 끝이 닳아서 얇게 한번 베어내고 다시 마무리해서 입었는데 그 끝도 조금 헐었다. 새색시라고 사람들이 봐줄 신혼 때부터 둘째 소은이 낳기 전까지 어른들께 인사갈 때, 명절 때 친정 갈 때, 성탄절, 부활절 같은 성당행사에, 국립묘지 계신 아버님 뵈러 갈 때 참 많이도 입었다. 그리고 지금은 입을 수는 있지만 좀 끼기도 하고 지금으로선 꽤 새색시 색이라 어색하다.

 

이렇게 한복을 좋아하다보니 이제 내가 딸들에게 늘 과분하다 싶게 한복을 해 입힌다. 소미 다섯 살 때는 두루마기까지 맞춰서 해 입히고 지난해까지 소은이가 입었다. 도무지 애어른 할 것 없이 갖춰 입지 않은 한복 꼴을 잘 못 보는 게 내 병이다. 그래서 언니가 동대문시장 간다길래 설날도 막 지났건만 따라가서 결국 소미한복을 다시 일습 갖추어 사게 되었다. 일단 두루마기 욕심은 버리고 한복, 속치마, 버선, 조바위, 꽃신을 샀다. 나는 그냥 저고리가 이쁜데 궁중에서 입는 당의를 사달라고 신신당부했다. 소은이는 작아진 소미 한복을 입게 되니까 댕기 하나와 머리장식인 뱃시만 샀다.

 

“그래도 보통 아이들 옷값 생각하면 한복이 참 싼 거야.”

언니의 말이 아니라도 나는 한복값 안 아깝다 생각한다. 내가 확확 자라는 아이들에게 과분하게 이러는 배경엔 소미와 소은이가 한복 입는 걸 참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두 아이는 충분히 한복 값을 빼준다. 명절은 물론이고 사시사철 아무 때나 꺼내 입고 논다. <여인천하> 방영할 때는 ‘난정이 놀이’ <대장금> 방영한 이후는 그 인기 사그라들 줄 모르고 지금까지 ‘대장금 놀이’다. 말도 사극에서 나오는 것처럼 예스럽게 하는데 그 모습이 너무 예쁘다. “어허, 무엄한지고” 이런 말도 근사하게 해서 나를 놀래켰다. 요즘은 한복이 어울리는 놀이를 이리저리 가지각색 만들어낸다.

 

“엄마, 너무 이뻐요. 엄마 감사합니다. 이게 내 한복이라니. 너무 이쁘다. 너무 이뻐.”

한복을 보고 감격한 소미는 입에 침을 튀겨가며 말했다. 소은이가 부러워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댕기와 뱃시에 홀딱 반해서 아무래도 좋다는 식이었다.

“한복에 이런 것도 하는 줄 몰랐네에~ 엄마 이거 이름이 뭐라구요? 댕기?”

두 아이는 한복을 차려입고는 대번에 저금통에서 지난 설에 받은 새배돈을 꺼내놓고 서로 절하고 덕담하고 세배 돈 주고 하는 놀이를 당장 시작했다. 어제는 아예 한복을 싸들고 친구 집에 가서 그 집 아이와 셋이서 한복입고 잘 놀다왔다.

 

한복 입은 두 아이만 바라봐도 내가 입은 것처럼 흐뭇하고 기쁨이 가슴 가득하게 찬다. 그 어떤 새옷을 입혀서 예쁠 때보다 더 예쁘고 곱다. 한창 다람쥐같이 까불대는 소미, 터프한 말괄량이 소은이도 참한 규수의 모습이다. 따뜻한 봄이 오면 언니네 집에서 가까운 <대장금 테마파크>에 데려가주겠다고 했다. 아이들은 와~하고 환호하면서 “당연히 한복입고 가는 거죠?”한다. 두 아이가 한복의 불편함만 생각하지 않고 한복의 단아한 아름다움과 의외의 화려함과 편안함에 눈떠서 오래오래 좋아하고 되도록 즐겨 입었으면 좋겠다. ***

 

 




 

 

소미 다섯 살, 소은이 세 살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