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스 이야기
“이제 저렇게 노는 것도 얼마 안 남았어.”
큰 딸은 이제 떡국 먹고 열두 살이 되었다. 5학년이 되려면 딱 3주 남았다. 5학년 되면 여자애들은 눈빛부터 달라진다고 하고(반항기 서린 채 모든 게 유치하다는 듯한), 반면 공부는 확 어려워진다고 먼저 겪은 엄마들이 적잖이 겁을 주는데, 우리 소미는 아직도 순정만화 주인공 수준에 머물러있다.
소은이가 이번 주 토요일에 성당에서 첫영성체를 하는데 내가 언니에게 그 날 입을 하얀색 원피스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소미가 그 김에 ‘수수한 이브닝 드레스’를 만들어달라고 이모에게 졸라대면서 언니는 한꺼번에 스타일이 완전히 다른 얌전한 하얀 원피스 한 벌, 파티용 드레스 한 벌을 만들게 됐다.
언니는 동대문에서 천을 끊어다가 소미 것이 더 재밌겠다고 설날 오후에 먼저 만들어서 그 다음날 소은이 원피스용 천와 재봉틀을 가지고 우리 집에 왔다. 내가 ‘시다’해주겠다고 했다. 언니 집엔 조카가 공부하고 있으니 내가 이 ‘대부대’를 이끌고 갈 수 없고 집도 이만큼 서로 가까워졌으니 재봉틀이랑 언니가 오는 게 나았다.
소미의 여러 가지 요구사항을 받아들인 이브닝드레스는 사이즈가 어린이 것이다 보니 참 간지럽고 미치겠다. 소미 몸은 아직 작고 마른 데다 납작 가슴인데 그야말로 ‘에스라인’ 몸매에 걸맞는 디자인이었기 때문이다. 놀이할 때 입을 옷으론 너무 과분하다. 이런 고급 수제드레스를 놀이옷으로 가진 아이들이 얼마나 될까. 완전히 이모 잘 만나서 우리 소미 놀이 한번 럭셔리하게 한다.
거기다 제 아빠 졸라서 장난감용 ‘뾰딱구두’까지 갖추어서 사들고 와서는 차마 몇 사람만 보기엔 아까운 모습을 연출해서 나와 언니, 우리 집에 놀러온 내 친구의 배꼽을 빠지게 했다. 이 담에 다 처녀들 된 후에 이거 꼭 보여주리라 생각하며 열심히 사진을 찍어댔다. 이제 노는 수준 좀 높이라고 했더니만 언니하고 친구가 하는 말이 맨 앞에 쓴 저 말이다.
“냅 둬~ 이제 저렇게 노는 것도 얼마 안 남았어. 길어야 1,2년이야. 좀 있으면 유치하고 간지럽다고 이런 옷 입을 줄 알아? 나중에 커서 ‘이제는 이모 옷 촌스럽다’고 하지나 않을지 몰라.”
그런데 더 요절복통하게 만든 건 우리 소은이다. 소은이는 절대 드레스 같은 건 안 입겠다고 했다. 전에 언니가 만들어준 너무 예쁜 하얀 드레스가 있는데 작아지기도 해서 못 입지만, 맞는다고 해도 절대 그 드레스는 안 입겠단다. 이번에 하얀 원피스도 최대한 단순하게 만들어주고 치렁거리는 레이스나 반짝이는 장식 없이 해달라고 몇 번을 부탁했다. 앞으로 치마는 되도록 안 입겠다고 하니(힙합 드레스 없냐고 하는 데선 완전 손발 들었다), 내가 차라리 요즘은 헤어스타일도 짧은 커트로 바꾸면 힙합 스타일로 옷을 완전히 바꿔주겠다고 하는데, 이상하게 긴 머리는 계속 고집한다.
그날도 소은이는 소미의 시녀로 대단히 만족했다. 소미가 백작부인처럼 차리고 방에서 나타나는데 그 뒤를 내복차림으로 양산을 바쳐 들고 졸졸 따라다니며 행복한 시녀노릇에 열중인 소은이 모습에 우리 세 어른은 완전히 뒤집어졌다. 중요한 건 전혀 안 어울리는 뾰딱구두를 세뱃돈으로 자기도 사서 내복에다 딱 고것만 신었다는 사실이다. 내가 사진을 찍는데 열심히 백작부인 예쁘게 연출해주고는 얼른 카메라에 안 잡히게 뒤로 물러서주는 센스까지. 딱 100점짜리 시녀였다. 그러면서 진정이 담긴 찬탄의 목소리로 이렇게까지 말하는 데선 내가 가슴이 다 아프다.
“와~ 우리 언니 정말 이쁘다.”
내가 “우리 소은이 계속 저런 컨셉으로 살면 어쩌냐 가슴 아프게시리.” 했더니만, 내 친구가 나를 보며 기막히다는 표정으로 “아이구야, 쟤가 저렇게 살 애냐?” 한다. “맞다, 맞다”하며 그 말에 다시 세 여자는 깔깔댔다.
즐거웠다. 많은 여자들은 어린 시절 저런 옷에 대한 로망이 있지 않던가. 우리는 소미를 통해 대리만족을 실컷 했다. 얼마나 그 옷을 입고 영화 속에나 나올 여자들의 모습을 과장된 동작으로 쑥스러움도 없이 재미있게 연출하던지 정말 너무나 웃겼다. 소미가 워낙 짧은 연극 같은 걸 평소에 잘도 보여주지만 내가 볼 때 그날은 연기에 완전 물이 올랐다.
며칠 전엔 어떻게 알았는지 장롱 속에 색 바랄까봐 뒤집어서 비닐을 씌워둔 내 웨딩드레스를 어떻게 알고 끄집어내서 저희들끼리 본 모양이다. 한번만 펴서 보여 달라고 해서 보여줬는데, 다시 한번만 입게 해달라고 조르는 통에 화장대 의자위에 세워두고 입혔는데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다. 엄마는 이런 드레스 있어서 좋겠다는 둥, 나중에 크면 자기 달라는 둥, 두 아이의 입은 쉬지 않고 재잘댔다. 화관과 베일, 장갑, 귀걸이까지 모두 보여주니 애들이 넋이 나갔다.
오랜만에 아이들 덕에 웨딩드레스를 꺼내고 보니 그냥 남모르게 코끝이 시큰해졌다. 13년의 결혼생활이 빠른 슬라이드처럼 지나가기도 하고, 요즘은 ‘리와인드 웨딩’도 한다는데 이제는 등에 달린 단추가 제대로 다 채워지지 않을 정도로 살이 올랐다는 걸 인정하니 서운하기도 하고, 나와 내 딸들에게로 이어지는 추억의 갈피 속에 언니의 솜씨가 늘 빠지지 않는다는 점이 새삼 고마워서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이만큼 크도록 그대로 갖고 있게 된 웨딩드레스는 언니 작품이다. 언니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 좋은 솜씨로 돈 버는데 머리 쓰라는 조언과 권유를 듣지만 지금도 고사한다. 소미는 놀이옷으로 드레스를 부탁했지만 언니에겐 이런 옷 만드는 일이 놀이기 때문이다. 자기가 즐거워서 하는 일로 밥벌이를 하고 싶지 않다는. 밥벌이로 하다보면 이 즐거운 일이 지겨워질 것이라는 논리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열정이 생기고 그래야 성공한다’는 요즘 논리에 대면 너무나 뭘 모르는 사람이기 쉽지만, 난 언니 마음을 좀 안다. 이즈음 작가 김훈의 산문집 <밥벌이의 지겨움>이 제목만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은 같은 맥락이 아닐까. 정식으로 음악회 연주복을 부탁받아 그 비용을 받고 만들어준 적도 많지만, 밥벌이라고 하긴 뭣한 언니의 이런 ‘놀이’가 진정한 밥벌이가 될 때는 얼마나 피곤하고 지겨울까.
만들면서 즐겁고 주변이 행복해하는 것으로 다시 자기가 즐거워지는 언니의 바느질이 언제까지나 그대로 ‘놀이’로 남았으면 한다. 언니의 ‘하늘이 내린 감각적인 솜씨’의 최대수혜자는 나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수많은 종이인형 옷, 크면서 여러 가지 스타일의 뜨개옷, 그리고 웨딩드레스, 내 딸들의 드레스며 원피스, 바지…. 우리 소은이가 언니의 시녀노릇이 즐거운 것처럼, 나도 이런 저런 수다를 떨며 하는 우리 언니의 시다노릇이 즐겁기 때문이다.
소은이의 첫영성체를 위한 아이보리색 원피스를 선보이는 일은 첫영성체 이야기와 함께 다음으로 미룬다. 심플하지만 아주 얌전하고 참하고 곱다는 힌트만 일단 드리며. ***
*소미의 일기
* 소은이의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