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충전소
낯가림여왕의 첫 생일
M.미카엘라
2000. 7. 5. 12:20
오늘은 소은이 돌이다. 작년 오늘도 이렇게 더웠고, 나는 미련하게 두 딸을 모두
7월에 낳는 기록을 세웠다. 병원이 있었던 의정부에서 출산 후 첫밤을 보냈는데,
그날은 미국의 독립기념일이라 미군부대 안에서 쏘아올리는 폭죽을 입원실 창밖으로
바라보며 톰 크루즈가 나왔던 영화 <7월 4일생>을 떠올렸던 기억이 난다. 언니는
소은이 탄생을 축하하는 폭죽인가보다 하며 웃었다.
미미한 진통 시작 후 불과 3시간 반만에 2.7kg을 낳았지만, 출산 직전까지 도와주던
나이 지긋한 조산사가 너무 고생을 많이 한 산모라고 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렇게
작은 애기를 '퐁 빠뜨려도 될 것' 같은데 도무지 아이를 하나도 낳아보지 않은
사람처럼 골반이 작더라는 것이다.
소은이를 낳고 나는 처음 거울을 보곤 깜짝 놀랐다. 눈의 흰자위나 얼굴 전체가
온통 핏줄이 터져 뻘겋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기를 낳은 어떤 사람에게
서도 그런 모습을 못 보아서 걱정이 됐지만 한 일주일이 지나니 없어졌다.
남편은 둘째 딸을 얻은 소감으로 소미 때보다 오히려 더 감동적이고 가슴이 뭉클
하다며, 내 손을 잡고 "이제 출산 고생은 끝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두 가지 모두
아주 고맙게 들었다. 우리 소은이는 그런 분위기 속에서 태어났다. 너무 잠투정이
심해 내가 울기도 하면서 키웠는데 벌써 첫 생일을 맞았다. 참 감회가 새롭다.
첫애와 달리 보통 둘째 아이는 생략하는 것이 많다. 그래도 돌잔치를 생략하는 것은
좀 서운해서 지난 토요일 저녁에 의정부 한 뷔페 식당에서 조촐하게 시댁 어른들과
친정 어른들, 그리고 남편과 나의 가까운 친구 몇을 초대해 저녁을 먹었다.
처음엔 친구들도 그만 둘까 하다가 남편의 직업 탓에 이때가 아니면 친구들
보기 힘드니 초대하자고 결정했다.
소은이는 아무도 못 말리는 '낯가림의 여왕'임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출산이후 처음
으로 예쁜 옷을 차려입고 미장원에서 머리까지 올린 이 어미의 처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도대체 아빠한테 가서도 울기만 하니 손님 초대를 제법 많이 했던 소미
때보다 배로 더 힘들었다.
누가 저를 안으려고 겨드랑이에 손을 넣기만 해도 질색팔색을 하며 울었다. 업다가
안다가 그러다가 나 식사도 못하고 힘들다고 어머님이 울거나 말거나 업고 저리
식당 밖으로 나가실 정도였다. 그렇게 울다가도 사진을 찍을 때나 생일축하
음악이 크게 나오면 웃기도 잘하고 흥에 겨워 몸까지 흔들어대니 사람들이 모두
웃었다.
돌잡이를 할 땐 모두들 무얼 잡을까 눈길이 집중된 가운데, 왜 나만 보고들 있는
거지? 하는 빛으로 한참 상보만 잡아당기려고 하더니, 이윽고 잡은 것이 실타래였다.
소미 아빤 연필 잡고도 사진 한 컷, 공책 잡고도 한 컷, 지폐 한 장 들고도 한
컷을 찍게 했다. 건강하게 오래 살기도 해야겠지만 공부도 잘하고 돈도 많이
벌었으면 하는 욕심을 은연중에 내보였다.
친구들의 고만고만한 아이들 손님을 보는 일도 즐거웠는데 그들 중에 섞인 우리
소은이는 확실히 작았다. 꼭 한 달 뒤에 태어난 내 친구의 딸은 무려 3kg 정도의
몸무게가 더 나갔다. 작게 낳아서 그런가. 내가 뭘 덜 차게 먹였나. 한복이
돌복이라고 나온 것인데 소매고 치마길이고 모두 팍 줄여 입혔다.
남편은 작아도 건강하면 되지 뭐 했다. 하긴 그렇다. 뱃속에서부터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아기들이 얼마나 많으며, 잘 자라주다가 덜컥 어떤 가슴아픈 병을 가진
아이들은 얼마나 많은가를 생각하면. 소은이가 건강하길 바란다. 그리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잘 찾아서 즐거운 인생을 꾸리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은 닭고기를 잘게 찢어서 넣은 미역국을 끓이고, 우리 아파트의 가까운 분들
에게 무지개떡과 꿀떡을 조금해서 한 접시씩 나누었다. 사실 소은이가 태어나서
자라는 모습을 가까이 본 이분들에게 식사 대접을 해야 했다. 행여 떡도 부담이
될까 조심스레 돌리며 소은이가 건강하고 예쁘게 잘 자라주길 빌어주십사고
말씀드렸다.
7월에 낳는 기록을 세웠다. 병원이 있었던 의정부에서 출산 후 첫밤을 보냈는데,
그날은 미국의 독립기념일이라 미군부대 안에서 쏘아올리는 폭죽을 입원실 창밖으로
바라보며 톰 크루즈가 나왔던 영화 <7월 4일생>을 떠올렸던 기억이 난다. 언니는
소은이 탄생을 축하하는 폭죽인가보다 하며 웃었다.
미미한 진통 시작 후 불과 3시간 반만에 2.7kg을 낳았지만, 출산 직전까지 도와주던
나이 지긋한 조산사가 너무 고생을 많이 한 산모라고 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렇게
작은 애기를 '퐁 빠뜨려도 될 것' 같은데 도무지 아이를 하나도 낳아보지 않은
사람처럼 골반이 작더라는 것이다.
소은이를 낳고 나는 처음 거울을 보곤 깜짝 놀랐다. 눈의 흰자위나 얼굴 전체가
온통 핏줄이 터져 뻘겋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기를 낳은 어떤 사람에게
서도 그런 모습을 못 보아서 걱정이 됐지만 한 일주일이 지나니 없어졌다.
남편은 둘째 딸을 얻은 소감으로 소미 때보다 오히려 더 감동적이고 가슴이 뭉클
하다며, 내 손을 잡고 "이제 출산 고생은 끝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두 가지 모두
아주 고맙게 들었다. 우리 소은이는 그런 분위기 속에서 태어났다. 너무 잠투정이
심해 내가 울기도 하면서 키웠는데 벌써 첫 생일을 맞았다. 참 감회가 새롭다.
첫애와 달리 보통 둘째 아이는 생략하는 것이 많다. 그래도 돌잔치를 생략하는 것은
좀 서운해서 지난 토요일 저녁에 의정부 한 뷔페 식당에서 조촐하게 시댁 어른들과
친정 어른들, 그리고 남편과 나의 가까운 친구 몇을 초대해 저녁을 먹었다.
처음엔 친구들도 그만 둘까 하다가 남편의 직업 탓에 이때가 아니면 친구들
보기 힘드니 초대하자고 결정했다.
소은이는 아무도 못 말리는 '낯가림의 여왕'임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출산이후 처음
으로 예쁜 옷을 차려입고 미장원에서 머리까지 올린 이 어미의 처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도대체 아빠한테 가서도 울기만 하니 손님 초대를 제법 많이 했던 소미
때보다 배로 더 힘들었다.
누가 저를 안으려고 겨드랑이에 손을 넣기만 해도 질색팔색을 하며 울었다. 업다가
안다가 그러다가 나 식사도 못하고 힘들다고 어머님이 울거나 말거나 업고 저리
식당 밖으로 나가실 정도였다. 그렇게 울다가도 사진을 찍을 때나 생일축하
음악이 크게 나오면 웃기도 잘하고 흥에 겨워 몸까지 흔들어대니 사람들이 모두
웃었다.
돌잡이를 할 땐 모두들 무얼 잡을까 눈길이 집중된 가운데, 왜 나만 보고들 있는
거지? 하는 빛으로 한참 상보만 잡아당기려고 하더니, 이윽고 잡은 것이 실타래였다.
소미 아빤 연필 잡고도 사진 한 컷, 공책 잡고도 한 컷, 지폐 한 장 들고도 한
컷을 찍게 했다. 건강하게 오래 살기도 해야겠지만 공부도 잘하고 돈도 많이
벌었으면 하는 욕심을 은연중에 내보였다.
친구들의 고만고만한 아이들 손님을 보는 일도 즐거웠는데 그들 중에 섞인 우리
소은이는 확실히 작았다. 꼭 한 달 뒤에 태어난 내 친구의 딸은 무려 3kg 정도의
몸무게가 더 나갔다. 작게 낳아서 그런가. 내가 뭘 덜 차게 먹였나. 한복이
돌복이라고 나온 것인데 소매고 치마길이고 모두 팍 줄여 입혔다.
남편은 작아도 건강하면 되지 뭐 했다. 하긴 그렇다. 뱃속에서부터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아기들이 얼마나 많으며, 잘 자라주다가 덜컥 어떤 가슴아픈 병을 가진
아이들은 얼마나 많은가를 생각하면. 소은이가 건강하길 바란다. 그리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잘 찾아서 즐거운 인생을 꾸리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은 닭고기를 잘게 찢어서 넣은 미역국을 끓이고, 우리 아파트의 가까운 분들
에게 무지개떡과 꿀떡을 조금해서 한 접시씩 나누었다. 사실 소은이가 태어나서
자라는 모습을 가까이 본 이분들에게 식사 대접을 해야 했다. 행여 떡도 부담이
될까 조심스레 돌리며 소은이가 건강하고 예쁘게 잘 자라주길 빌어주십사고
말씀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