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정원

반성문, 그리고 엄마노릇

M.미카엘라 2002. 3. 23. 00:02
(1) ********************
"아이구, 딸들이 참 이쁘게도 생겼네. 세상에 참. 둘이 손까지 꼭 잡고 사이좋으니 더 이쁘네."

이제 집 가까운 데는 살살 아이들 태우고도 혼자 운전한다. 날씨도 아직 쌀쌀한데 아침 일찍 일어나 유치원 다니는 일이 힘들었던지 소미가 며칠 전 가볍게 몸살을 앓았다. 늘 남편 얼굴만 쳐다보거나 남의 집 차만 바라고 아이들 병원 가는 일에 발을 동동 굴렀던 내가 처음으로 두 아이를 모두 태우고 운전해서 가까운 읍내의 병원에 갔다. 참 소심하고 겁 많은 인간 양재형 용됐다 싶어 감동이 밀려왔다고 말하면 지나친 호들갑일까. 아무튼 이 좋은 걸 왜 일찍 못 했나 싶은 게 그 오후 봄 햇살이 참으로 따사롭게 느껴졌다.

그리고 약국.
얼굴이 유난히 뽀얗고 잡티 없이 고운 '할머니 약사'가 우리 세 모녀를 맞았다. 그리고 거의 탄성조로 이처럼 말하며 딸들의 볼을 한번씩 만져주었다. 이 할머니가 약 짓는 거 맞나 싶어서 슬쩍 약사면허를 보니 아주 누렇게 바랜 종이에 할머니 젊은 시절이 분명한 명함 사진이 제대로 박혀 있었다. 예순은 넘겼을 약사 할머니는 시골동네에 살지만 인텔리 냄새가 물씬 묻어 나왔다.

아이들에게 맛좋은 비타민 제제 한 알씩을 주고는 한참 안쪽에서 약을 짓는 기미더니 이윽고 약봉지를 내밀며 한다는 말이 이랬다.
"아들은 없수? 하긴 이렇게 둘도 좋긴 한데."
"예. 전 지금도 좋아요. 아들 욕심 없어요."
"그래도 아들 하나 더 낳아야지. 남들 가진 거 나도 가져봐야 하잖우?"
속으로 '참, 남들 가졌다고 따라서 가질 게 따로 있지'하면서도, 자식에 관한 한 내남 할 것 없이 참견하고 훈수 두기 좋아하는 노인들 특유의 호기심일 터라 별로 기분 나쁠 것도 예민할 것도 없었다.

"애기 엄마 교회 다니우?"
"아니요."
"그럼 성당에 다니나보군."
"네."
"그래서 안 되겠다."
"네? 무슨 말씀인지……"
"아, 다른 게 아니라…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아들 언제 볼 수 있는지 아주 잘 맞추는 이가 있는데 애기 엄마 한 번 안 볼래나 했지. 아주 잘 맞추는데. 근데 성당 다닌다니까 그런 거 안 보겠네 뭐"

아하, 그제야 이 약사 할머니의 저의가 환히 보였다. 그렇다고, 괜찮다고, 감사하다고 말한 후, 아이들에게 큰 소리로 인사하게 해서 앞세워 데리고 문을 나섰다. 감사? 무얼 감사하는 거지? 남 가진 거 나도 갖게끔 도와주려고 해서? 말해놓고 나서 생각하니 웃겼다.

(2) ********************
난 솔직하게 고백하건대 아이들에게 역정과 짜증을 잘 내는 편이다. 두 아이가 한참 뺀질거리고 그악스럽게 싸우고 쇠고집을 부리는 탓도 있지만, 내가 내 일로 힘겹거나 어려울 때 불편한 심기를 완벽하게 숨기지 못하는 과정에서 그런 일이 잦다. 결혼 이후 불규칙하지만 집에서 좀 하는 일이 있는데, 그 일의 마감이 가까워오거나 좀 힘겹다고 느낄 때 신경이 예민해진다.

거기에 타고난 급한 성격까지 힘을 보태주니(?) 뒤돌아보면 창피해서 어디라도 숨고 싶을 때가 많다. 해놓고 후회하는 건 때마다의 일이고 다른 엄마들도 비슷한 고민을 많이 하고 살겠거니 위로를 삼지만 그것도 잠깐이다.

저녁 식사시간이었다. 오랜만에 네 식구가 모여서 밥을 먹는데 소미가 계속 찡찡 짜증 섞인 목소리로 김치 좀 작게 찢어달라, 저 반찬 좀 가까이 놔달라 요구했다.
"아니, 그럼 좋은 말투로 할 일을 왜 이렇게 짜증이야. '엄마, 김치 좀 작게 해주세요'하면 되잖아!"
내가 이러면서 나무라는데 뒤이어 남편도 한마디 거들었다.
"그래, 우리 소미 오늘 이상하다. 잘 안 그러는데. 그런 거 누구한테 배웠어?"

남편은 아이들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좀 남다른 행동을 하면 '그런 거 누구한테 배웠어?'하는 말을 아주 습관처럼 잘 하는데 그날도 예의 그 말을 빠뜨리지 않았다. 나는 그 말을 좀 싫어한다. 왜냐, 남편이 때마다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닐지라도 대부분 나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인 것처럼 가슴에 팍팍 꽂혀 들리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찔린다는 말이다.

그런데 밥상을 물리려고 할 즈음 무슨 일 때문인가(아마 밥 먹는 태도 때문에 그런 것인 듯) 내가 소미와 소은이 모두에게 역정과 짜증이 섞인 말투로 야단을 했었다. 그랬더니 컴퓨터 앞에 앉아 있던 남편이 대뜸 이렇게 말했다.
"음, 이제 보니 엄마가 그러는구나. 엄마가 그러니까 소미가 그러는 거 같다."

난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거의 내 잘못이라고 여겨질 때 잘 나오는 남편의 그 '탓 증후군'은 늘 나를 화나게 하지만, 그래도 난 도둑이 제 발 저리는 형편이라 화도 못 내고(그날은 얼굴이 뜨거워졌지 화는 안 났다) 잠자코 상만 치웠다.

그런데 그 시간 이후 잠자리에 들 때까지 영 기분이 사나웠다. 칼럼에서 '엄마도 사람이다'라고 큰소리 땅땅 친 지가 엊그제 같은데, 그 호기는 간 데 없고 그냥 내 엄마노릇이 자격미달에 버거운 생각만 들었다. 본래 곱고 보드라운 심성을 가질 수 있는 애들이 나 때문에 성질 다 버리는 거 아닌가 싶은 게 자괴감마저 들었다.

이런 생각은 내가 아들이든 딸이든 자식을 더 낳아 기르기에 턱없이 부족한 성격을 가졌다는 것으로 확대 비관하게 되었다. 요즘 셋째 아이는 '부의 상징'이라는 우스개 말이 있지만 내가 아무리 천석꾼 아니라 만석꾼이라도 아이는 더 낳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두 아이도 제대로 잘 길러낼 수 있을지 요즘 겁이 나기도 한다.

후후, 이런 내 생각이 우습다는 것 나도 잘 안다. 오버하고 있다는 것도 잘 안다. 그러나 아들을 가져야하지 않겠느냐는 약사 할머니의 말과 그날 저녁식사 중에 있었던 일이 겹치며 나를 며칠 간 아주 슬럼프에 빠지게 했다.

(3) ********************
이 글을 쓰는 중에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두 아이는 서로 전화를 받겠다고 난린데 먼저 전화를 받으려고 액션을 취한 소은이에게 수화기를 넘겨줬더니 소미의 패악이 가관이었다. 벌렁 누워서 온몸을 비비틀고 엄마는 나보고 받으라더니 약속도 안 지킨다며 소리를 지르고 이윽고 벌떡 일어나 소은이에게 비닐 소파를 집어던지고 발로 차고……. 나는 그만 마음부터 지쳐 고함칠 생각도 없어지고 그냥 언니에게 하소연만 절로 나왔다.

그러면서 나 지금 육아일기에서 반성문 쓰고 있다 했더니 "그런 거 왜 써? 정말 내 아이라도 확 구겨서 쓰레기통에 집어넣고 싶을 정도로 화날 때가 있는데… 그럴 땐 그냥 소리도 지르지 말고 두 아이 각각 다른 방에 집어넣고 엄마가 말할 때까지 엄마라고 부르지도 말고 그 방에서 나오지도 말라고 해" 그랬다. '그래, 넌 좀 반성해야 돼. 내가 봐도 너 애들한테 좀 많이 그래' 이럴 줄 알았는데 의외의 대답을 들으니 눈물나게 고맙고 힘이 났다.

전화 끊고 두 아이 모두 불러 방에 앉혀놓고 그럼 앞으로 전화벨이 울렸을 때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의견을 물었다.
"엄마, 제 생각에는요 그냥 엄마가 받으시는 게 좋겠어요."
"그래? 그럼 소은이 너는?"
"그게 좋아요."
"그래? 그럼 이제부터 이 무선전화든 군전화든 모두 엄마가 받을 거야. 그리고 누가 소미나 소은이 바꿔달라고 할 때는 바꿔줄게. 알았지? 다른 무슨 할 말 있니?"
"아니요."
"없어요."
그게 다다. 그렇게 우리의 협상은 싱겁게 간단히 끝났다.

우리 집은 이렇게 날마다 전쟁이다. 국지전은 빈번하게 일어나고 간간이 일어나는 전면전은 내가 회초리를 들면서 끝이 난다. 선전포고도 없는 무식한 싸움이 하루에도 몇 번씩 일어나는 이 전쟁터에서 휴전과 종전을 주선해야 하는 중재자는 너무 괴롭다. 아, 엄마노릇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