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의 컴백을 환영함
초등학생들이 대중가요에 몰입하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상이 되어가나 보다. 집에서 텔레비전 쇼프로그램이나 최신가요 나오는 FM을 거의 보고 듣지 않는데도 아이들은 어디서 잘도 주워듣고 온다. 어느 한 군데 어른 때 안 묻히고 기르겠다는 생각은 애초에 하지도 않았고 가능하지도 않지만, “난 너무 예뻐~ 난 너무 매력 있어~” 이러면서 온갖 교태를 부리며 원더걸스의 ‘So Hot'을 부르는 아이들을 보는 일이 그렇게 즐겁지만은 않다.
아무리 그래도 중학생이나 되었을 때 그렇게 해주면 좋겠는데, 이미 학교에 MP3 가지고 와서 친구들과 같이 음악 듣는 아이들이 있고 학급 장기자랑, 학년 수련회, 각종 캠프 같은데서 인기 있게 두루 쓰이는 음악들 또한 최신가요니 그건 꿈이다. 무작정 그런 것 듣고 부른다고 나무라고 차단하고 감시하는 것도 ‘엄마는 안 통하는 사람!’으로 도장 찍어 일찌감치 마음 문을 걸어 잠글지도 모르니 그래도 안 되겠고. 사춘기 자녀와 소통의 방식 중 가장 부작용 적고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는 것이 결국 10대의 또래문화다.
그런데 최근 원더걸스, 소녀시대, 빅뱅, 에픽하이 이런 가수들 노래를 흥얼거리던 소미가 요즘은 완전히 서태지에 푹 빠졌다. 이건 내가 서태지의 새 앨범을 즐겨 듣게 되면서, 이름만 알고 있던 그의 음악을 처음 접하게 된 소미의 급격한 변화다. 무려 10여 년 전의 서태지 음악이 새삼 듣고 싶었던 나는 1992년 <난 알아요>, 1993년 <하여가>, 1994년 <발해를 꿈꾸며>, 1996년 <시대유감> 등의 앨범에서 뽑은 곡들을 다운받아서 이번 신곡과 함께 들었는데, 소미가 “이게 그 유명한 서태지 음악이예요?” 하더니만 한두 번 듣고는 급속히 빠져들었다. 옛날 노래까지 인터넷 뒤져서 가사 뽑아들고 신들린 듯 따라 부르고 아주 난리다. 며칠 전엔 내게 진지한 얼굴로 그런 말을 다 한다.
“엄마, 서태지 노래 들으니까 빅뱅 노래가 나쁜 건 아닌데 이상하게 허전하고 싱거워요. 뭔진 잘 모르겠는데 서태지 음악이 그냥 꽉 찬 느낌이 들어.”
아이구 머리야~! 서태지가 벌써 36세란다. ‘서태지와 아이들’ 1집 이후 약 15년이 지났다. 서른여섯이면 ‘아저씨’란 소리 들어도 억울해 해서는 안 될 나이다. 그런데 이 아저씨 음악이 12살짜리 아이 마음에 쏙 든다니 서태지가 정말 음악으로는 좀체 나이를 먹지 않는 난 인물이구나 싶다. 10년을 훨씬 넘긴 음악이 요즘 아이에게 먹히다니….
그런데 실제 그의 음악을 길게 들어보면 나이를 먹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세상을 보는 시각이 자기 주변에서 시작해서 어떻게 넓어져가고 있는지 조금은 보이기 때문이다. 15년이 넘는 동안 계속해서, 새로운 음악을 절묘하게 한 발 앞선 타이밍으로 계속 만들어내면서 때마다 히트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히 재능 이상의 열정, 감수성, 시대정신 등이 두루 녹아 내면화되어 있어야 가능할 것 같다.
소미는 얼마 전에 밤늦게 했던 <서태지 컴백 스페셜- 북공고 1학년 1반 25번>이라는 특집 프로그램을 꼭 녹화해달라고 부탁하더니 서태지 인터뷰를 아주 진지하게 본다. 최근 ‘서태지는 장사 잘 한다’는 한 여자 탤런트의 말이 논란이 된 것으로 아는데 인터뷰를 보면 그 나이에 그렇게 장삿속이 있는 사람으론 보이지 않는다. 어린 나이에 은퇴를 선언했다가 다시 컴백한 배경도 거기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서태지를 보면 이유 있는 통쾌한 기분이 든다. 15년 전 기성세대는 한때 반짝했다 사라질 아이돌 스타로 여겼을 서태지였지만, 고등학교 중퇴의 학력으로도 아직까지도 화려하게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 적지 않은 영향력을 가지며 건재함으로써 내게는 학력지상주의 우리 사회에 통렬한 펀치를 날린 상징적인 인물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음악 외적인 이유 때문으로도 그의 노래를 듣고 보는 일이 즐겁다. 어서 또 다른 제2, 제3의 서태지가 사회 여러 분야에서 출현하길 기대한다.
요즘 소미는 동요, 만화영화주제곡, 성가까지 모두 락 버전으로 불러 배꼽을 잡게 만든다. 서태지로 소통하는 우리 모녀.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아이도 같이 즐기니 좋다. 요즘 ‘난 너무 예뻐~’ 이것만 들어서 지겨웠는데 머지않아 딸 손잡고 서태지 콘서트 가는 일이 생길 것 같다. 억지로 자식에게 ‘맞춰서 가주는’ 콘서트가 아니라 함께 즐기는. 아직 동요를 불러야 할 자리, 성가를 불러야 할 자리, 원더걸스 노래 부를 자리를 잘 알고 행동하니 예쁘지만, 겨울방학 때쯤엔 수녀이모네 수도원의 노인요양원에 가서 할아버지, 할머니 앞에서 락 버전 트로트를 불러드리지 않을까 심히 걱정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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