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몸만 보내드립니다
정조대왕의 모습을 담았던 드라마 <이산>
영조는 <논어>를 공부하고 있던 어린 세손 ‘이산’에게 묻는다.
“정치란 무엇이냐.”
“정치란 뿌리를 바르게 하여 나무를 잘 자라게 하는 것입니다.”
“뿌리가 바른 정치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백성을 다스리는 임금이 덕을 갖춘 성군이 되어야 합니다.”
“성군은 무엇이냐.”
“백성들의 마음을 살피는 것이 성군이옵니다.”
“백성의 마음은 무엇이냐.”
“그것은 가난 없이 배불리 먹는 것이옵니다.”
“허면 그것을 위해 임금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무엇이냐.”
“과도한 세금을 줄이고 제도를 정비하는 것이옵니다.”
“틀렸다.”
“백성을 수탈하는 수령을 감시하고 형벌을 가볍게….
“틀렸다.”
“허면 과도한 국역징발을 줄여 생업에 전념하도록….
“다 틀렸다. 임금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 뭔지도 모르면서 세손의 자격을 떠들었단 말이냐.… 알아오너라. 사흘의 말미를 주겠다.”
세손 이산은 책이란 책은 다 뒤지며 그 답을 찾아내려고 했으나 찾지 못해 동궁전에서 쫓겨나는 위기에 처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동궁이 되면 쓸 수 있는 용돈 명목의 내탕금 3천 냥을 금방 다 써버린데 대해 할아버지의 호된 추궁을 듣게 된다. 세손 이산은 말한다.
“상점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어린 여리꾼들이 어렵사리 써서 올린 언문의 상소문을 보았습니다. 상인들이 어린 여리꾼이 필요 없게 되자 돈을 받고 청나라에 판다는 것이었는데, 이 아이들이 모두 부모를 잃은 불쌍한 아이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날이 마침 청나라에서 배가 들어온다기에 급한 마음에… 그 아이들을 구하는데 내탕금을 모두 써버렸습니다.”
영조는 이런 중대한 상소를 무시한 관료를 파직하고 여리꾼을 팔아넘기려한 상인들을 모두 잡아들이라는 명을 내리고, 돌아서서 세손에게 이렇게 말한다.
“오늘 네가 한 일이 바로 정치다. 잘했다.”
그리고 영조는 세손의 훈육을 담당하는 채제공과 한밤에 이런 대화를 나눈다.
“왜 세손 저하의 답을 듣지 않으셨습니까?”
“너는 이미 그 답을 알고 있는 것 같구나.”
“백성을 다스리는 임금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저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갖는 것이옵니다.”
“그렇다. 백성을 아끼는 마음, 그 마음으로 저들에게 좋은 것을 주려고 애쓰는 마음, 그것이 정치다. 세손은 제가 이미 그 답을 알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게지.”
동궁의 내탕금처럼 쓰인 ‘특별교부금’ 이야기가 뒤늦게 지지자들 사이에서 화제다.
국가 예산의 일부 중 '특별교부금'이라는 명목이 있다. 지방자치제에 가는 공적자금으로 용도는 원래 재해, 재난 등 특별상황에 쓰라고 법으로 정해져 있다. 연간 1조원이 넘는 어마어마한 액수지만 100% 대통령재량으로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돈이기 때문에 어떻게 사용하였는지 검찰이나 감사원도 조사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 이 돈은 명목상 용도는 그렇게 되어 있지만 내부에선 사실상 대통령의 통치자금으로 여겨왔단다. 다른 대통령도 그렇게 무리 없이 써왔는가 보다. 본래 용도를 벗어나 사사로이 안 썼으리라 기대할 수 없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5년간 6조 원 가량 되는 그 돈을 모두 국민들에게 썼다고 한다. 사사로이 취한 돈은 한 푼도 없다(있었다면 ‘대통령 하고 나서도 빚이 있었을까만). 아울러 권력층의 쌈짓돈이 되어서 원칙 없이 정치적 선심사업에 쓰는 이 ‘특별교부금’을 없애라고 지시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 슬픔의 정체는 무엇인가”
오늘 아침 신문의 큰 제목이다.
나도 생각했다. 이 슬픔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를 비판적으로 지지했거나, 지지를 철회했거나, 애초부터 지지하지 않았거나, 아주 무관심했던 사람들의 슬픈 고백, 후회어린 사과, 애끓는 그리움 들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나름대로 각기 조금씩 다른 이유가 있을 테지만 나는 이렇게 정리해본다.
“정책의 성패여부를 떠나, 크고 작은 인간적인 잘못을 떠나, 그는 그래도 누구보다 국민을 아끼고 사랑하고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고개 돌리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고 손을 내밀었던 눈물 나는 통치자라는 것을 사람들이 새롭게 알게 되었거나 좀 더 분명히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슬픔의 정체는 그런 그를 잃은 상실감이다.
이제 어느 정치인이 우리를 위해 울어줄까.
이제 어느 정치인이 우리를 위해 자신의 이익을 버리고 싸워줄까.
이제 어느 정치인이 특권층이 아닌 우리들의 권리와 목소리를 존중해줄까.
그는 자신의 부재를 통해 국민에게 확실하게 존재감을 드러냈다.
나는 내일 광화문에 간다.
노제를 보고 그를 보내며 울고 싶은 만큼 울겠다.
애끓는 이 심정을 다 토해내고 돌아오겠다.
어쩌면 눈물 한 방울 안 나고 담담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나는 그의 유해만 자연으로 보낸다.
그의 마음과 정신만큼은 오래오래 질기게 붙잡으며
깨어서 참여하고 실천하며 그렇게 그렇게 잘 살아갈 것이다.
이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그를 사랑하는 마지막 방식이다.
염치 없지만, 한번만 더 와 주세요.
한번만 더 우리의 대통령으로 와 주세요.
이 아이들이 당신을 먼저 알아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