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정원

블로그 위기

M.미카엘라 2009. 11. 24. 13:42

 

"이 방을 드나드시는 여러분의 침묵이 제 블로그 생명을 늘려주십니다.^^ ”

 

 

내가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은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빠르다.

그래서 당황스럽고 고민스럽다.

 

나는 소미 소은이가 한글을 깨친 이후부터

두 아이 앞에서 블로그 화면 띄우는 일을 극히 조심해왔다.

내 블로그는 거의 안 보여주었다는 편이 맞다.

자유롭게 두 아이 이야기를 쓰는 일에 간섭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왜 그런 걸 썼냐, 왜 그 사진 올렸냐, 내 얘기 쓰지 마라...

이런 애들의 간섭으로 내가 눈치를 보기 시작하면 블로그를 닫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은 내가 자기들 이야기로 블로그 하는 것은 알고 있다.

블로그 통해서 만난 분들, 받은 선물을 생각하면 모를 수가 없다.

읽어보고 싶다고는 했지만 너희들이 더 큰 다음에 보여주겠다고 했더니 순순히 수긍했다.

그렇게 평상시에는 블로그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이 지내는 아이들인데

얼마 전 소은이에게 거친 태클이 들어왔다.

내 블로그를 본 조카의 딸들이 소미 소은이에게 블로그 내용을 발설한 게 화근이었다.

 

9월에 쓴 <계약서>라는 글을 본 아이들이 소은이에게

“너 블로그 보니까 엄마랑 그런 계약서도 썼더라” 그러면서 깔깔 웃은 모양인데,

소은이는 그 문제로 ‘왜 그 사진을 나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올렸느냐’며 울고불고 거칠게 항의했다.

나는 너무 갑자기 기습 항의를 받고서, 좀 달랬어야 하는 일인 줄 알면서도 당황스럽기도 하고 화딱지도 나서 쏘아붙였다.

“간섭하지 마. 그건 엄마가 10년 동안 해온 소중한 일이야. 앞으로도 계속 할 일이고. 네가 해라마라 해서 엄마가 이것 못하게 되면 너무 속상할 거야. 그게 뭐 부끄러운 일이라고 그 난리냐?”

 

“하지 마시라는 게 아니라 왜 내 허락도 없이 그런 사진 막 올리냐구요.”

소미가 옆에서 별 일도 아니라는 듯이 거들었다.

“너 엄마한테 왜 그래? 그럼 니가 뭐든 순순하게 허락하고 좋다고 할 사람이냐? 맨날 별 것도 아닌 이유가 많잖아. 이건 이래서 안 된다, 저건 저래서 안 된다..... 맨날 그러면서 못하게 할 거 아냐. 그게 하지 마시라는 말이지 뭐야. 그냥 하던 대로 자유롭게 하시게 해. 그건 엄마 자유고 엄마가 설마 우리 창피주려고 블로그 하시겠냐?”

아, 정말 믿음직한 우리 소미 아니었으면 내가 돌아서서 눈물 날 지경이었다.

 

여기에 힘을 얻어 소은이가 흥분을 가라앉힌 후,

내가 블로그를 하는 이유, 지금 아니라 이 다음에 좀 커서 읽어주었으면 하는 이유, 엄마의 글 쓸 자유를 보장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찬찬히 말했다.

그러나 융통성이 없는 게 소은이다. 무조건 자기한테 허락 맡고 올리라는 거다.

아, 거기서 스톱! 더 이상 말이 오가면 혈압 올라간다.

말꼬리 툭 잘린 것처럼 이야기 거기서 그냥 끝냈다. 그냥 잊기를 바라면서....

 

난 곧 실명으로 쓰던 내 이름을 새로운 닉네임으로 바꿀 것이다.

그리고 예민한 사춘기를 맞아 내 원군이던 소미마저도 태클을 걸어온다면

누구나 드나들고 댓글을 쓸 수 있는 열린 내 방을

‘통하는 블로그’와 소통하는 것으로 제한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만약 비공개 블로그로 돌려야 하는 사태까지 온다면?

 

어른들이야 걱정을 안 하는데 아이들이 문제다.

내 블로그를 아이들과 간간이 함께 보는 엄마들 몇몇에게 전화 걸어

아이들 앞에서 블로그 드나드는 걸 조심해주길 급히 요청하고

(즐겨찾기 해두었다면 지워주라....같은) 흥분한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냥 아이들에게도 이 블로그를 확 공개하는 방법도 생각해보았지만

내 글쓰기는 위축되고 눈치 볼 것이 뻔하다. 그래야 한다면 안 쓴다 차라리.

아무리 좋은 내용이고 자랑하고 칭찬할 내용이라도 소은이는 자기가 싫으면 싫은 아이다.

그런 면에서 타협이 없으니 같은 방을 쓰는 소미가 아주 못 살겠다고 하소연이고,

나 역시 계속 이 성장일기를 써나갈지 의문이다.

 

나는 소은이가 ‘성년의 날’을 맞는 그 때까지를 내 블로그의 최대 수명으로 잡는다.

어쩔지 모르겠다. 이제까지 10년을 써왔으니 ‘다음’만 계속 건재하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닐 듯한데....

 

에잇, 모르겠다. 그냥 하던 대로 쭈~욱 간다.

하는 데까지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