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킹에 꽂히다
그간 좀 시들해졌나 싶었던 소은이의 요리 열정이 요즘 다시 뜨거워졌다. 잠시 패션 디자이너에 대한 꿈을 꾸더니 그래도 자긴 역시 요리가 좋다며 다시 쉐프의 꿈을 키운다. 요즘은 베이킹에 꽂혔다. 하루에도 몇 번씩 요리책을 들여다보며 “엄마, 우리 집에 이거 있어요?”라며 물으며 틈틈이 재료 체크하고, 홈베이킹을 하려면 다른 건 몰라도 핸드믹서는 있어야 할 것 같다는 둥 궁리가 늘어난다.
일요일엔 필요하다는 박력분 밀가루와 밀대를 사다주면서 주문하지도 않았던 저울까지 사다주었더니 너무 좋아한다. 사실 여러 재료들의 100g 200g 이 정도 양을 나도 잘 모른다. 더구나 과자나 빵은 사다만 먹을 줄만 알았지 언제 만들어봤어야지. 내가 부엌을 떠나있어도 소은이 혼자 레시피 대로 정확하게 해서 실패를 줄이려면 계량도구들이 꼭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쿠키나 빵의 재료는 소량만으로도 원하는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정확한 계량을 위해서 전자저울이 더 필요하다는데 일단 바늘저울을 안겼다.
중요한 건 우리 집에 오븐이 없다. 그런데 오븐 없이 밥통과 프라이팬으로만 온갖 빵과 과자, 케이크를 만드는 방법이 담긴 책을 예전에 하나 사주었는데, 그땐 관심이 적더니 최근 그 책에 폭 빠져서 급기야 엊그제 첫 쿠키를 만들었다. 빵 좋아하는 할머니를 위해 오븐이 없는 손녀가 만들어낸 수많은 빵과 과자들은 투박해 보이고 세련미를 떨어지지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면서 완성한 레시피는 기존의 화려한 제과제빵책보다 훨씬 쉽고 실용적이라 소은이에게 안성맞춤이다. (*사진을 클릭하면 대빵 큰 사진)
소은이의 첫 번째 도전 베이킹은 ‘김 쿠키’. 재료를 계량하고 실온에 미리 꺼내두는 걸 깜빡했던 버터를 렌지에 돌려 살짝 부드럽게 만든 후 섞어 반죽을 하고 밀대로 밀어서 모양을 만든다. 팬에서 약불로 은근하게 구운 김 쿠기 맛이 제법이다. 소미는 맛있게 먹으면서도 장난스럽고 짓궂게 “이렇게 쉬운 거 말고 다음엔 복숭아 타르트 이런 거 해줘!” 한다. 우물에 가서 숭늉을 찾아도 유분수지 이제 첫 쿠키를 만든 동생에게 너무 과한 주문이다.
반죽을 하고 쿠키 모양을 만들어가면서 “엄마, 뭐가 좀 되는 거 같지 않아요? 아! 행복하다”고 말하는 아이를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 나도 덩달아 행복해진다. 저울을 사다주니 엄마가 자기 때문에 돈 많이 쓴다고 걱정하며 그냥 주걱으로 이겨가며 하면 되니 핸드믹서는 필요 없다고 말하는 아이. 빵이나 쿠키, 케이크를 잘 만들고 싶은 이유가 ‘사람들에게 내가 만든 걸 선물할 수 있어서’라고 하는데, 마음씀씀이가 이렇게 예쁘니 난 또 곧 깜찍한 핸드믹서를 하나 사주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