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살아!
1. 그
언젠가 친정의 이웃동네에서 노부부가 하루 차이로 돌아가신 일이 있다. 할아버지가 먼저, 할머니가 그 다음날. 내가 기억하기로는 하루 늦게 가신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신 걸 모르셨다고 들었다. 참 이러기 쉽지 않다. 자식들은 충격과 슬픔이었겠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함께 해로한 그 긴 세월만큼 한쪽이 안 계신 상실감이 남은 어르신의 노구(老軀)에 깊은 내상을 입힐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갑작스럽게 아내를 잃은 할아버지의 홀로서기가 담긴 수필집을 읽었는데 의외로 충격을 받았다. 83세의 노인. 평생 아내의 수발을 받고 살아왔는데 아내가 갑작스럽게 폐암선고를 받고 10개월 만에 세상을 뜬다. 이 노인에게 자식은 아들 하나에 딸이 넷. 그런데 모두 아버지와 함께 살 수 없는 딱한 사정이 있다. 그때 총대를 멘 미혼의 셋째 딸. 아버지를 홀로 서게 하기 위한 엄격한 훈육에 돌입한다. 이 수필집은 그 치열한 기록이다. 아버지의 일기, 아버지와 딸이 주고받은 편지가 상당한 분량을 차지한다.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구절이 이 책의 분위기를 선명하게 말해준다.
“이 책은 아버지와 나의 길고 고통스러웠던 투쟁기록의 공저라고도 할 수 있다. 그것은 아버지와 딸이라는 관계를 넘어선 벌거벗은 인간끼리의 냉엄한 부딪힘이기도 했다.” - 사하시 게이죠 <아버지의 부엌> 중에서
깨알 같은 기록은 어떤 것이든 위대하다. 평범한 사람의 삶 속에서 보편적인 진리를 발견하게 된다. 늙었다고 남에게 대접 받으려고만 하지 않고 어떻게든 살아있는 동안은 주변에 폐를 끼치지 않고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아버지의 고군분투가 가슴 저리다. 노인이 섬세하게 지켜나가는 규칙적인 하루 생활이 새삼스럽게 아름답다. 아버지에게 온갖 잔소리를 하며 엄격하게 구는 딸이 돌아서서 아버지를 생각하는 마음이 따뜻하다.
노부부 중 어느 쪽이 먼저 세상을 떠나는 것이 나을까 하는 말들을 종종 한다. 여자의 평균 수명이 길기도 하지만 할머니가 오래 사시는 게 낫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이유는 저 83세 노인이 맞은 상황이 아직도 많은 사람에겐 현실이기 때문이리라. 이젠 아무리 남자라도 최소한 남의 도움 없이 자기 밥은 자기가 끓여먹고 기본적인 청결과 위생을 유지할 가사 기술과 부지런함은 기본이란 생각이 드는데, 남편만 해도 요즘 40대 남자치곤 드물게 집안일을 전혀 안 한다. 특히 부엌 근처엔 얼씬도 안 한다. 큰 불만 없이 살았지만 이제 내가 너무 다 해줬나 싶은 게 슬슬 걱정은 된다. 늙어서 걱정보다 머지않아 남편은 곧 나와 아이들을 떨어져 홀로 군 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래저리 멀찍이 보고 지금부터 남편을 조금씩 훈육해야 하는 걸까? 그래도 그가 나보다 더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 닥치면 다 하려나?
2. 그녀
방송에서 오디션 프로그램 열풍이 거세다. 3월부터 솜손과 나는 우연하게,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라는 패션디자이너 선발 프로그램을 보기 시작했다. 조금 늦은 시간에 했지만 토요일이었기 때문에 부담 없이 함께 볼 수 있었다. 매주 참가자들이 만들 옷의 주제가 주어지고 거기서 한명씩 탈락하다가, 최종 세 명이 남았을 때 이들에게 일정 시간을 주고 12벌의 옷을 만들게 해 많은 관객을 초청해서 패션쇼를 한다. 거기서 자기 브랜드 런칭하는 비용을 상금으로 받으며 서울패션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할 자격이 주어지는 우승자 한 명이 가려진다.
‘시즌 3’의 우승은 런던과 파리에서 공부한 쟁쟁한 해외 유학파를 제치고 내가 점쳤던 순수 국내파 참가자 ‘신주연’이 거머쥐었다. 심사위원도 집에서 TV 보는 무식쟁이 우리들도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이 세 명의 실력과 감각은 빼어났다. 어려운 가정환경, 불화하는 가족관계에서 많은 상처를 입은 것으로 보이는 신주연의 옷은 독창적이고 강렬했다. ‘티벳’을 주제로 부드럽고 평화로운 에스닉 모드를 선보였던 권순수의 옷은 한번쯤 입어보고 싶을 정도로 곱고 사랑스러웠다.
나는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내내 언니 생각을 했다. 살아오면서 늘 현주언니의 옷에 대한 감각과 재능을 누구보다도 아까워하는 나. 나와 다른 언니들에게는 없는 부분이다. 우리 육남매 중 집중적으로 지지와 후원을 받아도 좋을 재능이었다. 지금 우리 소은이가 요리에 꽂힌 것처럼, 언닌 어릴 때부터 유난히 실, 옷감 이런 것에 속된 말로 ‘환장했다.’
언니의 첫 작품은 여덟 살 때에 털실로 짠 내 수영복이다. 털실은 수영복 소재로 가당치도 않지만 세 살 아기 동생에게 퍼준 사랑의 시작이자 어린이로선 꽤 수준 높은 첫 도전이었다. 선명하게 기억나는 게 있다. 언니가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턴가 노트 서너 권 분량에 담은 수많은 옷 디자인 그림. 다른 사람이 보기엔 종이인형 옷 그리는 수준이었겠지만, 종류와 용도에 따라 다양한 옷을 나름대로 다 분류해놓은 걸 생각하면 그때 이미 인형을 모델로 디자인을 한 것이다. 언니가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 그 노트들을 다 버렸다는 걸 알고 무진장 서운했던 것도 생각난다.
옛날 사진을 보면 정말 특이하고 이쁜 옷도 많이 만들어 입었다. 나는 학교 다닐 때 가을부터 다음 해 봄까지 언니가 짜준 다채로운 손뜨개 옷을 입었다. 관심 있는 여선생님들은 매번 이것도 언니가 짠 거냐 하시면서 감탄했다.
‘감각’ 혹은 ‘감(感)’이라는 것은 노력하고 계발해서 쉽게 얻을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세상은 뭐든 노력하면 다 이룰 수 있는 것처럼 사람을 현혹하지만, 노력만으로 따라잡을 수 없는 부분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미적 감각’ 같다. 그것만으로 그 분야의 프로나 장인이 되는 건 아니지만 분명히 대단히 유리한 출발이 될 것이다. 언니에겐 그 타고난 미적 감각이 있다. 그런데 그게 더 크게 구체적으로 직업적으로 계발되지 못했다.
언니는 자기가 노력 안 한 거라고 눙치지만 나는 지금도 다르게 생각한다. 고등학교 때 몸이 심각하게 아파서 몇 개월 동안 휴학을 하고 요양을 하면서 공부에 대한 집중력과 전의를 잃었던 거라 본다. 안 그래보여도 지금도 언닌 우리 형제 중에서는 가장 몸이 약하다. 어른이 된 후 언니는 좋아서이기도 하지만 건강해지려고 등산과 여행을 하며 노력을 기울이는데 미적 감각과 아울러 약체는 좀 타고난 것 같다. 디자이너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니까 가장 쇠약했던 언니의 그때가 지금 생각해도 두고두고 아쉽다.
현재 언니는 패션과는 무관한 직업을 가지고 살고는 있지만, 생활 속에서 그 미적 감각을 아낌없이 발휘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따뜻함과 행복을 느끼게 해준다. 그 최대의 수혜자가 바로 나다. 나는 언니가 없었으면 아마 적잖이 ‘촌발 날리는’ 옷차림을 하고 살고 있을 것이다. 옷 살 때 많은 걸 언니가 골라주는데 마음에 든다. 내 친구도 옷 사러갈 때 언니에게 같이 가달라고 청한다. 언니의 미적 감각을 믿는 사람들은 아예 필요한 비용만 주고는 “현주씨 감각을 믿으니까 마음대로 해줘!”하고 그냥 확 맡겨버린다. 결과는 대만족이다. 나만 느끼는 언니의 타고난 감각이 아님을 확인한다.
그래서 나는 종종 농담처럼 말한다.
“언니, 나보다 오래 살아야 한다. 오래 살아서 내 옷은 언니가 계속 골라줘야 해.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한 세련하는 언니의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 촌발 날리며 살면 되겠냐? 그니까 나보다 오래 살아. 알았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