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빼자
아, 나도 그랬을까. 기억을 더듬어본다. 요즘 혼자 있을 땐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보는 시간이 많은데 기억은 가물가물하다. 당시의 내 마음까지 자세히 읽는 건 무리다. 다만 분명하게 생각나는 것 하나는, 청소년기의 나는 학교생활이 튀지도 않고 평범했지만 내적으로는 다른 아이들과 비슷해지는 걸 싫어했다는 점이다. 80년대 초중반이 지금 같지는 않아도 그 나름대로 학생들 사이에 유행이라는 게 있었지만 난 애들이 많이 하는 건 별로 따라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구 지겨워. 왜 나까지 똑같이 따라해야 돼? 생각도 없고 개성도 없게’ 말하자면 이런 생각이었던 건데, 이런 내 모습이 똑똑하게 생각나는 일은 요즘 대략 좋지 않게 작용한다.
청소년기의 특징 중 하나가 ‘동조현상’이란다. 왜 그렇게 남들과 같아지려고 하냐,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 사람마다 모두 다른 개성 아니냐, 그걸 잘 드러내는 게 더 이쁘다.... 내가 이렇게 말할 때면 소미는 1학년 기술가정 시간에 배운 거라며 저 청소년기의 특징을 읊어댄다. ‘노스페이스’라는 브랜드로 시작한 검정색 등산용 바람막이 점퍼의 열풍, 이마를 수북하게 덮어 눈썹 아래에서 뱅스타일로 자른 똑같은 헤어스타일들, 검정 남색 회색 흰색 카키색 베이지색 정도가 아니면 거부하는 무채색의 사복차림…. 우리 소미도 거기서 벗어나는 거 없다.
남과 같은 게 싫었던 나와 정 반대의 모습을 보이는 소미에게 나는 처음엔 실망했다. 솔직히 말하면 같은 또래 아이들보다 조금 다른 스타일로 길렀다고 생각했던 내겐 적잖이 충격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괜찮다. 그냥 대부분 받아주고 봐준다. 내 생각만 하고 싸워봐야 다 부질없다는 것을 알았다. 아이를 이겨봐야 상처뿐인 승리다. 소미는 내가 아니니까… 이 시기는 곧 지나간다… 하며 쉽게 정리해버렸다.
멈추지 않는 소미의 변화는 다른 데서 더 분쟁을 일으킨다. 좋게 말하면 오롯이 자기에게 집중하는 모습이고, 좀 삐딱하게 보면 충만하던 배려심이 쓰나미에 휩쓸려간 것처럼 사라진 자리에 딱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심만 남았다. 말은 빠르고 거칠고 감정은 하루에서 몇 번씩 롤러코스터를 탄다. 이유는 없다.
거기다 게으름과 귀차니즘이 턱까지 차올랐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집밖엘 나가기 싫어하고 꼼지락거리기 싫어서 소은이를 자주 부려먹는다. 몸은 무겁고 잠은 하염없이 온다. 호르몬의 변화 때문에 잠이 많아지는 시기라 하는데, 지난 중간고사 끝난 그 주말에 15시간 동안 자는 걸 깨워서 간신히 주일학교에 보냈다. 안 깨웠으면 그 다음 날까지 잘 기세였다.
소은이만 데리고 2박 3일 여행을 가기 전에, 하룻밤은 집에서 친구와 단 둘이 지내게 된 소미에게 한 가지를 여러 차례 부탁했다. 이런저런 반찬 만들어놓았으니 잘 챙겨먹고 날도 덥고 그러니 냄새 안 나게 설거지만 말끔하게 해놓아 달라고 간곡히 부탁하고 아이도 알았다고 했다. 하지만 보기 좋게 믿음이 빗나갔다. 수북이 개수대에 그릇이 쌓인 걸 보고 결국 난 폭발했다.
그렇게 부탁했는데 왜 안 했는지 이유를 듣고 싶다 했더니 ‘그냥’이라고만 했다. 처음엔 내가 그렇게까지 화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며 뭘 그렇게 잘못한 건지 모르겠다고 했다. 엄마 말을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듣고 대강 약속한 거냐, 엄마를 화나게 하려고 작정했냐 하니 ‘엄마를 열 받게 하려고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다’라는 말까지만 할 뿐 더 이상 설명하지 못했다. 잠깐의 침묵 후 내가 ‘엄마와 약속’을 ‘귀찮은 마음’이 이긴 거냐? 물으니 ‘그 말이 정답’이란 얼굴로 고개만 크게 끄덕인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밥공기와 접시로 수북한 개수대 옆에 라면 끊인 냄비와 고기 구워먹고 검게 눌어붙은 프라이팬이 줄 서있는데, 그냥 그게 너무 하기 싫었다는데 어쩌랴...
1학년 1학기 때까지만 해도 설거지 한번 해 달라 하면 흔쾌히 해주던 아이다. 자기 스스로도 좀 달라진 걸 느끼는데 왜 그런지는 자기도 모른다. 바른 소리와 논리적인 설득은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 사리분별이 없고 뭘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다. 아이들의 욕구는 다른 데 있고 엄마의 의도가 거기서 충돌한다. 심지어 나는 그냥 한 소린데 그 말에 어떤 바른생활 목적이 숨어있다고 지레 생각한다. 따분하고 듣기 싫은 거다.
이제 뭘 억지로 강요하거나 훈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졌다. 스스로 느끼게 해주는 일이 과제이고 도움을 필요로 할 때나 나서면 될 것 같다. 지켜봐주고 기다려주는 시간이 길어져야 할 거 같다. 실제로 느낀다. 내가 적당히 힘을 빼면 소미와 소통이 의외로 잘 되는 것을. 내 기준을 버리고 경청과 수용, 적극적 리액션, 그리고 소미가 생각한 것보다 더 너그럽게, 더 파격을 감행할 때 아이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반응한다.
‘아이한테 휘둘리지 말아라’ ‘안 되면 매를 들어라’ ‘호되게 야단을 쳐라’ ‘지금 알아듣게 꾸짖지 않으면 저게 굳어질 것이다’ 하는 조언이 주위에서 빗발치지만 그런 말은 때로 나를 더 힘들게 한다. 그건 이미 내가 해본 일이지만 별로 좋지 않다. 들인 힘 대비 효과가 적고 서로 상처만 되고 피로감만 밀려온다. ‘그냥 내버려 둬. 이제까지 잘 길러왔는데 엄마 아빠 사는 거 보면 소미나 소은이나 크게 엇나갈 일이 없는 애들이야’ ‘귀엽잖아. 지들이 다 큰 줄 알고 저러는 거. 그냥 너그럽게 봐줘’ ‘들어봐도 소미 뭐 문제 하나도 없구만 뭘 걱정해? 사춘기에 그럼 그 정도도 안 해?’ ‘너무 바른생활 아이들로 기르지 마. 소미가 어떻게 더 잘하냐? 그 정도면 충분해’ 이렇게 말해주는 사람한테 기대고 싶어진다 요즘은. 힘을 빼고 싶다. 그러다보면 이 시기도 지나가겠지.
2010. 2 201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