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기적인 그녀들의 말, 말, 말!(20)
<배드민턴을 치다가>
“엄마! 이 나뭇잎 부딪치며 흔들리는 소리 너무 좋지 않아요?”
“그래! 바람 부니까 시원해서 좋고 저 나뭇잎들 부딪치는 소리도 참 듣기 좋네. 집에 들어가기 싫다.”
“오늘은 하늘도 너무 이뻐서 한참 구경했는데.... 엄마, 이제 나 늙나봐. 자연은 좋지 도시생활은 싫지 단 것도 싫지 너무 매운 것도 싫지...나 진짜 늙나봐.”
(이건 지난 해 가을, 5학년 소은이의 말이다.)
<이 소리는?>
젖소목장을 하는 작은 오빠는 우사 가까이 오디오를 두고, 우사와 마당 쪽으로 공원용 스피커(요게 생각보다 비싸단다)몇 개를 연결해서 설치했다. 그래서 젖소도 일하는 사람도 늘 FM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어느 날 소은이가 외삼촌 집에 갔다가 나무에 달린 스피커에서 클래식 음악이 잔잔히 흘러나오는 걸 들으며 이런다.
“아, 여기 마을회관은 수준 높다. 클래식 음악도 다 틀어주고.”
<유머>
“예들아, 요즘 떠도는 재밌는 유머 하나 들려줄까?”
“뭔데요?”
“요즘은 아이가 엄마한테 ‘엄마 나는 어떻게 태어났어요?’하고 물으면 엄마가 이렇게 대답한대. ‘인터넷에서 다운로드 했다~’히히...”
“으하하~ 진짜 웃기다. 첨 듣는 얘기예요.”
두 아이가 깔깔대다가 소은이가 이렇게 물었다.
“엄마! 그럼 난 유료로 다운받고 언니는 불법다운로드 하지 않았어요? 언니 상태가 좀 그런 거 같애… 히히”
<깐 쪽파? 깐족파?>
장을 보러갔는데 싱싱한 쪽파를 껍질 까서 다듬어 봉지에 담아놓은 게 아주 싸다. 장바구니에 넣었더니 소미가 다시 그걸 집어 들어 상품이름을 보며 “깐 쪽파? 어, 이거 완전 소은이네!” 한다.
“소은이? 왜?”
“맨날 저한테 얄밉게 깐족깐족대잖아요. 그러니까 깐족파지.”
막가파도 칠성파도 아닌 깐족파? ㅎㅎ
<아는 체>
소미가 음악회를 보러가다가 학교 친구들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엄마, 우리 반 남자애들 때문에 미치겠어요.”
“왜?”
“무식해도 너무 무식해서요.”
같은 반 두 남자 친구들이 나눈 대화 내용을 옮겨보면 이렇다.
“요즘은 모차르트가 대세야.”
“아니야 요즘은 베토벤이 대세야. 모차르트 죽은 지가 언젠데.”
“그래? 근데 하이든도 좋지 않아?”
뭐 여기까진 짐짓 웃자고 농담하는 것처럼 들린다.
바로 그때 앞자리에 앉았던 친구 하나가 돌아보며 이렇게 아는 체를 했단다.
“하이든? 아, 나도 알아. 그 지킬 박사와 하이든 말이지?”
<통 큰 팬>
팝그룹 ‘이글스’의 내한공연 티켓이 팝뮤지션 내한공연 역사상 가장 비싼 가격이어서 화제가 되었었다. 30만원 대였다니 아무리 팬이라도 그냥 포기다. 이글스 팬인 언니와 나는 너무하다며 아쉬워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이 왈.
“난 우리나라에 ‘아바(ABBA)’ 오면 100만원이라도 갈 거야.”
참, 13살짜리가 ‘동방신기’나 ‘저스틴 비버’도 아닌 아바 공연에 백만 원이나 쓰겠단다. 대단한 팬 나셨다 그죠? 근데 아바는 아주 옛날에 이미 해체했으니 우리 소은이 돈 굳었다.
<실물경제>
“엄마 나 오늘 친구들이랑 놀다가 좋은 데를 발견했어요.”
“어딘데?”
“불량식품 가게!”
“뭐어? 이 담에 요리사 된다는 사람이 불량식품에 현혹돼서 되겠어?”
“에이 엄마, 그런 것도 좀 먹어줘야 돼요. 그래야 병에 잘 안 걸려.”
“푸하핫! 그렇게 말하면 누가 진짠 줄 알겠다.”
“얼마나 맛있는 게 많은데.... 나는 그 ‘차카니’ 그게 제일 맛있더라.”
“꼬깔콘 맛 비슷하게 나면서 엄지손가락보다 좀 큰 속 텅 빈 공갈과자?”
“아, 엄마도 아시네! 근데 그게 요즘 값이 올랐어요. 100원이나 올랐어.”
“우와! 백프로나 오른 거야? 살인적인 상승률이네.”
“근데 짜증나는 게 과자 크기는 그대로라는 거예요.”
“에이~ 끊어라 차카니. 너무 비싸! 가격이 안 착하네!”
소은이는 내 말에 대답은 안 하고 이렇게만 중얼거린다.
“물가가 너무 올라서 큰일이야, 큰 일.”
<비주얼이 뭐길래>
“소은아, 언니는 또 소녀시대가 싫어졌댄다.”
“아무튼 좋댔다가 싫댔다가 변덕도…”
“뭐 그럴 수도 있지 뭐.”
“근데 언니가 싫어하는 사람이 소녀시대가 아니라 소녀시대 몇몇 멤버들일 걸요.”
“누구?”
“내가 볼 때 언니는 걸그룹 멤버 중에서 주로 비주얼 담당을 싫어하는 것 같애요. 무대에서 주로 앞자리 센터에 서는 멤버 있죠? 보통 제일 예쁘고 인기 많은 그런 멤버를 싫어해요.”
“질투한다고? 에이 설마.”
“진짜예요. ‘소녀시대’는 윤아, 수영, 티파니 싫어하구요, ‘에프엑스’는 크리스탈, 설리 싫어해요. ‘미스에이’는 수지를 싫어하구요. 다 이쁘고 인기 많은 비주얼 담당들이예요.”
“그럼 그 중 덜 이쁜 애들만 좋아한단 말이야?”
“아니요. 언니는 좀 중성적이고 보이시한 멤버를 좋아해요. 랩도 할 줄 알고. 에프엑스의 엠버 같은…. 하긴 덜 이쁜 건 사실이죠 뭐.”
“그게 언니 취향인가보지 뭐.”
“아니예요. 그럼 좋아하는 사람만 좋다고 하면 되지, 왜 그렇게 이쁜 사람들 헐뜯지 못해서 안달이겠어요? 왜 그렇게 미워하냐고 그러면 말도 안 되게 ‘싸가지가 없대드라, 노래도 못하고 개성도 없으면서 이쁜 척만 한다’ 그래요. 자기가 겪어봤어요? 싸가지 없는 걸 알게? 그리고 그렇게 개성 찾는 사람이 친구 사이 유행하는 거 은근 다 따라하려고 해요? 개성있게 굴어야지.”
초딩 소은이의 관찰력과 논리가 송곳이다. 그런데 그 다음 말은 더 압권이다.
“근데 더 웃긴 건, 언니는 보이그룹 멤버 중엔 비주얼 담당만 좋아한다는 거예요.”
<진도>
한국사는 본래 5학년 때 배워야 했다. 그런데 지난 해 7차 교육과정 개편부터 역사가 4학년으로 내려가는 바람에 소은이 같은 99년생만 국사를 못 배우고 붕 떴다. 그래서 6학년에 올라와 사회시간에 5학년이 배우던 국사책을 보조교재로 한번 훑는 모양이다.
“엄마, 갑을병정, 자축인묘 이런 거 배웠어요. 임진왜란 기묘사화 이런 거 일어난 해 쉽게 계산하라고.”
“엄마 좀 가르쳐주라. 나도 알다가도 헷갈리던데….”
“다른 반은 이런 거 안 배운다는데 우리 선생님은 교과서 내용 가르치시다가 이야기가 너무 샛길로 잘 빠지셔……서 난 너무 좋아. 시간 잘 가고 공부 얼마 안 하고. 히히!”
“그게 좋은 게 아니여~. 나중에 진도 늦어져서 선생님이 허겁지겁 가르치시고 너네도 한꺼번에 너무 많이 소화해야 하니 어렵고 더 힘들어.”
“하긴, 우리 반이 사회 진도가 아주 느리긴 해요. 우린 아직 명성황후도 안 돌아가셨는데 옆 반은 금모으기 운동하고 난리 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