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충전소

새 식구의 인사

M.미카엘라 2011. 11. 23. 12:09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솜손네 집에 온 지 이제 열흘 된 생후 4주차 아기고양이 ‘시루’입니다. 제가 이 집에 어떻게 오게 되었냐구요? 사실 전 그걸 기억하지 못해요. 죽음의 문턱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었거든요. 나중에 저를 구해준 솜손네 식구들이 하는 이야기로 어떻게 온 건지 알게 되었을 뿐이예요.

 

지지난 토요일, 그러니까 11월 12일 밤 솜손은 아빠 엄마랑 극장에 영화를 보러 갔어요. 12시가 조금 넘어 돌아오던 그 밤에 솜손네는 집 앞에서 몸을 옹크리고 움직이지 않는, 주먹만한 털공처럼 놓여있는 저를 발견한 거예요. 아빠가 주차하고 차에서 내린 소은이가 집으로 들어가려다 희끄무레한 물체를 보고 ‘엄마, 저게 모야?’하며 저를 가리켰어요. 저는 목덜미를 누구에겐가 물려서 상처가 컸고, 눈가엔 염증이 난 것인지 눈곱이 낀 것인지 잔뜩 뭐가 더럭더럭 붙어서 눈도 못 뜨고 아주 미약하게 발발 떨었대요.

 

소은이는 그냥 차에 치이지나 않게 길가로 놓아주자하고, 아줌마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갈등하며 지켜보는데, 가장 먼저 앞서 집 계단을 오르던 소미가 다다닥 다시 뛰어내려와 저를 보자마자 그냥 덥석 들어 안았어요.

“뭘 어떡해? 살려야지. 병원에 데리고 가서 치료해요. 이대로 두면 죽어요.”

도저히 그냥 돌아설 수가 없었던 아줌마는 그냥 두고 가자는 소은이와 아저씨 눈치를 슬슬 보며 소미와 함께 저를 데리고 온 거예요.

 

소미는 집에 오자마자 잽싸고 능숙하게 뜨거운 물을 담은 작은 음료병을 천에 싸서 제 곁에 놔주었어요. 물그릇과 우유 그릇도 놔주었지만 저는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어요. 일요일 하루 꼬박 밤에도 낮에도 힘없이 울기만 했어요. 엄마는 아직 젖먹이인 날 버리고 어딜 간 거고, 난 어찌 그 차가운 아스팔트 길 한가운데로 걸어 나온 거고, 목덜미 상처는 어떻게 된 거지? 부모형제 다 잃고 통증으로 목이 욱신거리고 눈도 뜰 수 없고… 태어난 지 얼마 됐다고 제 묘생(猫生)이 벌써부터 이리 험난한 걸까요?

 

 

 

하지만 제 묘생에 이윽고 둥근 해가 떴습니다. 저는 월요일 아침 아줌마 품에 안겨 동물병원에 가서 집중치료를 받기 시작했어요. 여자 수의사 선생님은 제 몸무게를 재고 잇속을 보더니 태어난 지 3주쯤 됐대요. 몸무게는 305g. 깃털 같죠? 상처의 고름을 짜내고 약 바르고 싸매고 주사도 한 방 맞았어요. 디게 아팠지만 야옹 소리도 낼 틈 없이 의사선생님은 순식간에 해치우셨죠. 먹는 약을 처방 받고 아줌마는 고양이모래와 분유 한 통, 젖병을 사셨어요.

 

병원에서 돌아오며 아줌마는 아파트 쓰레기 분리수거장에서 큰 종이상자를 주워와 제 보금자리를 만드셨어요. 작은 문도 하나 내고 제 취향에 딱 맞는 분홍색 포근한 이불과 물그릇, 그리고 모래그릇도 넣어주셨어요. 저녁에 학교에서 돌아온 소미는 제 집 여기저기를 꾸며주었죠. 문패도 달아주고 시계도 달아주고 심심할 때 보라고 생선액자도 달아주었어요. 난 이 생선액자가 젤 맘에 들어요. 출출해질 때 보는 일이 쫌 괴롭지만요. ^^

 

 

제 이름은 ‘시루’지만 본명은 ‘복시루’예요. 제 몸이 처음 담긴 종이상자가 떡집 상자였는데, 자꾸 소미가 그걸 보면서 ‘시루야, 시루야’ 그러는 거예요. 처음엔 되는 대로 성의 없이 지은 이름 같아 빈정 상했는데, 자꾸 불러주는 그 이름이 이상하게 점점 기분 좋아지는 거 있죠? 은근 중독성이 있어요. 더구나 그 앞에 붙은 복(福)자 있죠? 그게 특히 아주 맘에 들어요. ‘떡시루’가 아닌 걸 감사하고 있어요. 아줌마는 영화 <완득이>를 보고 오다가 발견했다고 ‘완득이’라고 부르려는데 솜손이 결사 반대해줘서 그것도 넘넘 감사해요. 사실 제가 이런 가족을 만났으니 복 많은 고양이긴 하죠? 그래서 제가 이 집에 들어온 만큼 이 가정도 복 많이 받길 바래요 저는.

 

사실 아빠와 소은이 눈치가 보여 아줌마랑 소미는 치료해서 다 나으면 다시 내보내자 하긴 했는데, 하루가 다르게 이뻐지는 제 모습과 재롱에 식구 모두가 ‘아이구 이걸 어떻게 내보내? 더구나 이 엄동설한에…’하는 분위기예요. ㅎㅎ 그런 말 아세요? “한 마리의 고양이에 빠지게 되면 세상 모든 고양이를 사랑하게 된다”는 말. 나중에 알고 보니 ‘산이’ ‘별이’라던가 하는 고양이 두 마리가 앞서 이 집에 잠시 머물다 간 모양이예요. 솜손네 식구는 이미 그때 고양이의 매력에 푹 빠진 거예요.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넌 거죠. ㅋㅋ

 

    

 

    

 

요즘 ‘고양이 묘(猫)’자를 넣어서 말 만들기에 재미 붙인 아줌마는 제 하루의 사이클을 완전 마스터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배가 고픈지, 응가 눌 시간 즈음인지, 졸린 시간인지 잘 아세요. 역시 엄마 출신은 달라요. 아가들이 제일 좋아하는 최적의 환경을 조성해주시거든요. 저한테 말도 가장 많이 걸어주세요. 솜손이 어려서 옹알이할 때 아줌마가 보여주신 대화실력을 다시 또 발휘하시죠. 저도 ‘냥냥’하며 화답해요. 아줌마는 산이 별이 보내고는 아파트 길고양이들 먹으라고 생선가시, 멸치 같은 거 모아서 밤에 내놓고 그러기도 했는데 거기서 하얀 고양이를 한 마리 만난 적이 있대요. 시루 네 엄마가 아닐까 그러셨어요. 잘 때 제가 보일러(뜨거운 물 담긴 음료병)에 싸인 따뜻한 이불을 엄마 품, 엄마 젖인 줄 알고 쪽쪽 빨면서 자면 그걸 참 안쓰러워하세요. 사람 아기도 젖먹이일 땐 자면서 엄마 젖 빠는 시늉을 한다며, 젖도 안 뗀 어린 게 너무 일찍 엄마를 잃었다고요.

 

소미는 아줌마가 없으면 제 똥도 치워주고 엉덩이도 물로 닦아주고 약 발라주고 분유도 먹여주고 안아주고 뽀뽀해주고 엄청 사랑해줘요. 아줌마 말로는 소미가 제가 온 이후 좀 달라졌다고 신통해하세요. 괜한 짜증도 확 줄었고 동생하고 덜 싸우고 더 밝고 부지런해졌다네요. 짜증이 잦은 사람이라니, 저는 믿을 수가 없어요. 얼마나 상냥하고 따뜻하고 좋은 사람인데.... 아줌마가 “우리 소미 수의사는 어떠니? 잘할 것 같은데”하고 물으니 싫단 소리는 안 하네요. 소미가 제게 하는 걸 보면 반려동물계의 슈바이처가 될 충분한 인재예요. 우리랑 교감하는 능력이 있어요. ^^

 

근데 소은이는 아무것도 안 해요. 원래 자기 아빠처럼 동물을 그렇게 안 좋아한대요. 자기 언니가 언젠가 강아지 기르자고 엄마를 조르니까 강아지가 집에 오면 자긴 집 나갈 거라 했다니 말 다했죠? 가장 먼저 저를 발견해놓고 그냥 길가에 놔두고 가자 하질 않나, 며칠 집에 있는 동안에도 누구 길러줄 사람 빨리 찾자 막 그러는데 어찌나 서운하고 불안했는지 눈물이 다 났어요. 아픈 아가냥 앞에 두고 너무한 거 아니예요? 근데 소은이 맘을 저는 이제 알 것 같아요. 산이 별이 하고 헤어질 때도 엄청 울고 힘들어 했나본데, 저를 두고 보기 너무 맘이 아파서 차라리 외면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혹시 일요일 동안 병원도 못 가보고 자기 집에서 죽으면 어쩌나, 아빠 엄마는 안 기르실 게 뻔한데 다 치료해서 내보낼 땐 그 아픈 가슴을 어쩌나 하는 걱정에 지레 겁을 먹은 것 같아요. 지금도 여전히 저를 돌보는 어떤 일도 안 하지만 저를 아주 이뻐해줘요. 그리구 “엄마, 시루 이쁜 집 하나 사주자” 요런 말은 소미보다 더 잘 해요. 그럼 됐어요 전. 참 역할 분담 확실한 자매예요. 그쵸? ^^

 

아저씨는 지금 지방에 계셔서 일주일 만에 다시 봤지만 생각보다 아주 저를 귀여워하세요. 고양이 이렇게 작은 거 처음 본다면서 아기는 사람이나 동물이나 다 이쁘다나요? 더구나 요렇게 작은 제가 옆에 있는 모래그릇에 척척 응가를 하니 신통방통하신가봐요. 아줌마가 핸드폰으로 사진 찍어 보내드리면 ‘고놈 참! 갈수록 이뻐지네’하고 답장이 온대요. 그러면서 ‘이렇게 다 죽어가는 거 살렸는데 정들어서 길로 다시 내보낼 수 있겠어? 그냥 길러야겠다’ 그러셨대요. 아저씨 진짜 짱이죠? 아저씨 제 복 다 드릴 게요. 야호옹~

 

저는 생각보다 아주 작아요. 그래서 사진만 보던 사람들도 실제 보면 더 난리예요. 이렇게 작은 줄 몰랐다고. 어제는 소미 친구, 오늘은 소은이 친구들 한 떼가 절 보러온 바람에 전 너무 피곤해요. 저는 아직 하루의 3분의 2를 잠자야 하는 아가냥이거든요. 하지만 따끈한 보일러를 부지런히 유지 가동시켜주시는 아줌마 덕분에 따뜻한 자리에서 한숨 잘 자고 나면 피곤이 싹 가실 거예요.

 

    

 

제가 길냥이 출신이라고 색안경 끼고 보진 마세요. 깡패나 건달 같은 문제묘의 피가 따로 있는 건 아니예요. 세상에 미운 고양이는 있어도 나쁜 고양이는 없거든요.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를 좀 헤친 길고양이를 도둑놈 취급하는 건 너무 억울해요. 2,3일씩 쫄쫄 굶고 배고파 보셨어요? ‘눈물 젖은 음식쓰레기를 안 먹어본 고양이는 묘생을 논하지 말라’는 고양이세계의 속담도 있는 걸요. 우리가 얼마나 자존심 있는 동물인데요. 배고프지 않으면 쓰레기봉지 절대 안 뜯어요.

 

아줌마는 제 용모가 흔한 길고양이 같지 않대요. 고등어무늬옷을 입은 코숏 종류도 아닌데다가 하얀 털이 점점 이뻐지니, 제 아빠나 엄마 중 한쪽이 그래도 뼈대 있는 집안 아닐까 하시는데, 제가 보기엔 벌써 아줌마 눈에 콩깍지가 낀 것처럼 보여요. ㅋㅋ 뭐 아무렴 어때요? 식구들은 눈곱 끼고 다 죽어가는 제가 이렇게까지 미묘(美猫)인지 몰랐다며 고양이잡지 표지모델해도 되겠다고 호들갑이라, 샴이니 러시안블루니 하는 귀족고양이가 전혀 부럽지 않아요. 이 미모 제대로 한번 피어보지도 못하고 죽을 뻔했다가 살아난 걸요. 2막 묘생 열심히 살아볼라구요 지금부터. 소은이 표현대로 저는 행운묘예요. ㅎㅎ

 

앞으로 간간히 <시루통신>을 통해 솜손이네 일상을 전해드릴게요. 솜손이의 성장과 더불어 저의 성장도 앞으로도 쭈욱 지켜봐주세요. 이제까지 긴 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야옹합니다. 또 만나요! 꾸~벅!  ***

 

 

     

 

     

 

음, 사실 저는 대한민국 1% 아가냥이예요.

벌써 기사 딸린 럭셔리카 한 대 뽑았는데 거실이 아주 넓어 주차도 가능해요.

거기다 저는 착해서 피곤한 운전기사를 가끔 안고 코~ 재워줘요.

참, 그리구 이 피아노도 제 꺼예요.

아직 너무 작아 피아노 다리만 잡고 놀지만

더 크면 곧 올라가서 소미한테 레슨 받을 거예요.

여러분께 베토벤을 들려드릴 날도 머지 않았어요.

저 수면양말 속에 든 보일러는 아줌마가 분홍이불 빨 때 잠시 마련해준 제 자리인데

단번에 캐주얼한 인테리어가 되었죠?   

 

 

그럼 여러분 다음에 또 만나요!

그때까지 몸 건강히 야옹하세요!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