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루통신 제2호> 그녀들의 방학생활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솜손이네 귀요미 아기고양이 ‘복시루’예요. 오랜만에 인사드려요. 히히! 너무 놀라지 마세요. 제가 쫌 컸어요. 한 인물, 아니지...한 묘물 났지요? 벌써 솜손이네 집에 온 지 두 달이 넘었고 저도 세상에 태어난 지 3개월쯤 되었네요. 그동안 모두 야옹하셨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제 이름에 복(福)자가 들어가는 관계로 제가 드리는 복은 무한대입니다. 많이많이 퍼드릴게요. 모두 가져가세요.
음, 소미와 소은이는 새해가 되면서부터 바빴답니다. 새로운 경험들로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지요. 먼저 소미는 새해를 제주 올레길에서 보내고 왔대요. 학교에서 해마다 방학에 국토순례단을 모집하는데 올해는 교장선생님이 새로 오시고 처음으로 제주 트레킹코스를 잡았대요. 선후배 친구들 42명이 다섯 명의 선생님들과 4박 5일 동안 먹고 걷고 먹고 걷고 모두 90km 정도 걸었대나봐요. 와우~!
운동은커녕 맨날 집에서는 귀차니즘에 쩔어서 아줌마한테 잔소리 적잖이 듣는 애가 한 치 망설임 없이 자발적으로 냉큼 가겠다고 말하는 거 보고 저도 깜놀했잖아요? 엄마로부터 ‘포기하기 없기’ ‘후회하기 없기’ 등 이상한 확인과 다짐이 받고 그렇게 제주로 간 소미는 4일을 꽤 잘 걸었나봐요. 근데 돌아오는 날 오전 세 시간까지 걷고는 몸이 완전 무리가 왔는지 아침도 제대로 안 먹었는데 비행기에서도 토하고 난리가 났나봐요.
집에 와서 소미는 19시간을 잤어요. 이야~옹! 저 또 한번 완전 놀랬잖아요? 최고의 잠퉁이 고양이들도 이렇게 길게 자는 법은 없다구요. 밥도 안 먹고 화장실도 안 가고, 그 긴 머리를 풀어헤치고 자는데 전 소미가 잠자는 숲속의 미녀 놀이 하는 줄 알았다니깐요. 도무지 제가 가서 장난을 걸 수가 없을 정도로 인사불성이 되었어요. 제가 아주 장난을 안 친 건 아니구요, 뭐 쫌… 자는 소미 몸 위로 몇 번 뛰어다니고, 긴 머리 막 흩트리며 놀고 좀 그러긴 했는데 미동도 안 해요. 딴 때 같으면 ‘시루 왔쪄? 우리 시루 일루 와!’ 이러면서 손을 뻗을 애였는데 완전 떡실신녀가 따로 없는 거 있죠?
참 사람은 알 수 없는 이상한 동물이예요. 왜 사람들은 집 떠나서 여행이나 등산, 산책 이런 걸 하나요? 도대체 그 정신세계가 이해가 안 가요. 우리 고양이들은 자기 영역을 떠나는 그런 여행 같은 거 절대 안 하거든요. 어디 며칠 간다고 솜손이가 ‘엄마, 시루도 데려갈까?’ 하면 저는 무진장 싫어요. 사람이 없어도 며칠은 너끈히 집에서 혼자 잘 지낸다구요. 사람에게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는 독립적인 삶. 이게 고양이 삶의 철칙이거든요. 제가 조실부모 했지만 이런 거쯤은 다 안다구요.
근데 소미가 아줌마한테 핸드폰에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그런 소리 하는 걸 들었어요.
“난 제주가 세계7대자연경관에 뽑혔을 때 뭐 그렇게까지? 하며 시큰둥했거든요. 근데 관광지를 벗어나 길을 걸어보니 우와~ 정말 그럴 만하더라구요. 진짜 제주 아름다워요. 특히 8코스...거기가 제일 예뻤어요.”
그리고 소은이한텐 이런 말도 했어요.
“야, 빅사!(소미가 부르는 소은이 별명인데, 별 뜻은 없는 거 같아요.) 테디베어 박물관 이런 건 아무것도 아냐. 그거 보고 제주 좋다고 하면 촌스러운 거야. 너도 우리 학교 들어오면 나처럼 국토순례단 신청해서 꼭 걸어봐. 힘은 들지만 진짜 좋아.”
아줌마는 ‘의외다’ ‘값 뺐다’고 킥킥거리고, 현주이모는 여행 가서 풍경도 볼 줄 알고 ‘다 컸다’고 하더라구요.
근데 소미는 지금 또 집에 없어요. 어디갔냐구요? 아궁… 저도 새해가 되곤 소미 얼굴 보기가 힘들어요. 제주도 갔다 와서 며칠 쉬고 제천 노인요양원에 봉사활동 갔거든요. 가을에도 간 적이 있는 ‘성 보나벤뚜라센터’인가 하는 데라는데 거기 다시 친구랑 다시 4박 5일 갔대요. 자기도 모르게 흐르는 구슬땀을 다시 흘려보겠다나요?
아줌마는 소미가 2학기 때 마음은 콩밭에 가있고 공부도 건성건성 소홀히 하며 딩가딩가대더니만, 방학식 날 뚝 떨어진 성적표를 가져와서 속이 적잖이 타는 모양인데 그래도 그냥 밖으로 열심히 돌리십니다. 공부하란다고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이제 좀 아신 걸까요? 공부 안 할 바엔 땀이라도 흘려라 뭐 그런 건가요? 아니지… 생각해보면 모두 소미 자기가 자청해서 하는 일이니 아줌마가 돌리신 거라 할 수도 없죠. 하지만 아줌마가 허락 안 하시고 “가긴 어딜 가? 집에서 공부나 햇!” 이러면 소미는 또 못가는 거니 아줌마가 돌리신 게 맞는 것 같기도 해요. 아이구 복잡해라냐~옹!
* 소은이의 퀼트 첫작품(동전지갑)
근데 진짜 신난 사람은 따로 있어요. 소은이예요. 소은이는 자기 언니가 제주도에 간 첫날부터 ‘퀼트’를 배우러 다닙니다. 아시죠 퀼트? 여러 가지 색 천을 조각 내서 다시 잇는 그런 바느질. 쩝! 여자 사람들은 왜 그런 짓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암튼 소은이가 많이 배우고 싶던 거라네요.
집과 시내에서 좀 떨어져 비교적 외진 동네에 있는 제법 큰 퀼트샵에 다니는 소은이는 그 가게만 들어서면 아주 먼 곳을 여행하고 있는 것처럼 재미있고 행복하대요. 여러 가지 소품, 가방, 인형, 베개, 쿠션, 이불 등 완성된 아름다운 작품들이 눈을 호사시키는 건 물론이구요, 수 백 가지 무늬에 다채로운 색깔을 가진 셀 수 없이 많은 천이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대요. 그리고 한쪽엔 퀼트작품을 완성시킬 온갖 부자재로 가득 차 있어서 소은이가 만들려고 맘만 먹으면 뭐든 만들 수 있는 요술가게 같은 곳인가봐요.
이 가게는 나이 지긋한 큰 선생님과 그 분 따님인 작은 선생님이 함께 운영하시는데, 특히 큰선생님이 소은이를 아주 이뻐하시나봐요. 따님인 작은선생님에게 소은이와 동갑내기 아들이 있으니 완전 손녀뻘이죠? 만화 <호호아줌마> 주인공 같은 인자한 이 할머니선생님은 “소은아, 사춘기 되어서 엄마랑 싸우거나 다른 일로 속상한 일 있으면 여기 퀼트샵에 와서 놀아. 알았지?”하셨대요.
* 소은이의 두번째 작품(꼬꼬의 꿈-요거 소은이가 품에 안을 정도로 큰 놈이예요. )
작은선생님은 어른들도 설명을 잘 못 알아듣고서 천을 잘못 재단하거나 잘못 꿰매기도 하는 일이 많은데, 이제 겨우 두 작품밖에 안 해서 아직 바늘땀은 거칠어도 소은이는 말귀를 빨리 알아듣고 손이 빠르다고 칭찬하셨대요. 한번만 설명을 해도 무슨 말인지 재깍재깍 잘 알아듣는다고 애제자가 될 것 같다고 하시니 소은이가 싱글벙글이예요.
그리구 소은이가 퀼트가게에서 돌아와도 싱글벙글할 만한 일이 또 하나 있었어요. 여러분은 소은이가 ‘빨강머리 앤’ 마니아인 거 아세요? 앤과 관련된 물건을 모으는 건 물론이고, 방학이 시작되면서는 이미 만화영화로 그 내용을 잘 알고 있는 <빨강머리 앤>을 세 권짜리 완역본 책으로 꼼꼼히 읽기 시작했어요. 제가 같이 놀자고 책 위에 올라가서 애원의 눈길로 쳐다봐도 ‘좀 비켜봐 시루’이러면서 절 밀어내서 왕창 서운한 적이 한두 번 아니예요.
그런 소은이가 퀼트샵에서 만화 빨강머리 앤 속 장면이 그려진 천을 보았다면 어땠을 거 같으세요? 완전 이성을 잃었죠 뭐. 이 천은 작년엔가 이 만화를 만든 일본에서 빨강머리 앤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제작한 거라는데 국내서도 희귀한 모양이예요. 한정판이라 다른 천보다 3배쯤 비싼 모양인데 가게엔 모두 네 가지 버전이 있었어요. 소은이는 다 사달라고 엄마를 조르기 시작했죠. 방학 동안 설거지 10번 이상 하고, 엄마가 시키는 일을 토 달지 않고 다 돕겠다고 약속하고 사정하고 애원하여 이 천들을 손에 넣었답니다.
아줌마는 평소 엄마 돈도 많이 아껴주고, 자기 돈도 아껴 쓰는 소은인지라 대승적으로 허락하셨다나봐요. 어른들께 받은 자기 용돈의 꽤 큰돈을 보태겠다고 했는데도 아줌마는 평소와 달리 통 크게 “엄마 선물이야. 그건 넣어 둬” 그랬다니 소은이는 이래저래 완전 감동의 쓰나미였나봐요. 이건 자기가 퀼트에 익숙해져서 바느질 땀이 고와지면 그때 자기가 가질 물건에만 조금씩 잘라 쓰겠다나요? 완전 소중한 보물 1호가 되었어요. ‘이게 몬데?’하면서 제가 쫌 만지려고 했더니 ‘시루! 안됏!’이러면서 화들짝 놀라며 쫓아내는 거예요. 쳇! 먹는 것도 아니구 그게 뭐라고 그 난리인지 원....
암튼 소은이는 빵도 굽고 퀼트도 하고 아줌마보다도 더 아줌마스러운 방학을 보내고 있어요. ㅋㅋ 저는 퀼트 하는 소은이보다 쿠키나 빵 굽는 소은이가 더 좋은데 한번은 동그란 빵반죽 하나 물고 달아났다가 대빵 혼났어요. 그래도 소은이는 그거 다시 빼앗아다가 안 버리고 그대로 빵 모양 잡아서 굽던데요. ㅎㅎ 그때 저는 생각했죠.
‘아, 나는 진정한 이 집의 가족이 된 거구나. 이야아~옹!’
여러분!
이 정도면 솜손이가 방학 제법 잘 보내고 있죠?
그럼 다음 시루통신 때까지 안녕히 계세요. 또 즐거운 소식 가지고 찾아 뵐게요.
설 명절 잘 보내시구요, 온 가족 평안히 야옹하시기 바랍니다.
새배 드릴게요. (꾸~벅!)
냐아~옹!
*소은이가 코너에 몰아놓고 저 막 괴롭혀요. 학교에서 일진인가봐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