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울타리

노는 언니

M.미카엘라 2012. 3. 30. 14:26

 

소은이가 중학생이 되고 나서 우리 집은 자매 사이의 지긋지긋한 다툼이 확 줄어드는 변화가 생겼다. 수다코드가 서로 맞는다고 할까? 같은 학교 1학년 3학년이다보니 하루생활권이 같고, 성당의 주일학교도 소은이가 초등부에서 중고등부로 올라감에 따라 주말생활권도 비슷해졌다. 학교 갔다 오면 선생님, 친구, 선후배 이야기로 왁자지껄, 성당 갔다 오면 주일학교 선생님, 성당의 오빠 언니 이야기로 재잘재잘.... 정말 귀가 따가워서 방으로 쫓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 엊그제는….

 

 

“언니! 언니 요즘 왜 그래? 왜 안 하던 짓 해?”

“내가 뭘?”

“이제 우리 반에 좀 고만 와! 언니 땜에 피곤해 죽겠어.”

“내가 뭘 어쨌다구?”

“언니친구들 데리고 우리 반에 좀 고만 오라구. 매일 매일 뭐하는 짓이야?”

 

 

나는 듣느니 처음이라 소은이에게 물었다.

“언니가 매일 너네 반에 간다구? 왜?”

“엄마, 언니 좀 우리 반에 못 오게 해요. 나 정말 피곤해 죽겠어. 엄마도 알죠? 작년에는 언니가 집 밖에서 날 보면 보고도 모른 척 지나간 사람이라는 거.... 근데 언제부터 친했다고 요즘은 맨날 우리 반에 와서 날 찾아. 그것도 자기 친구들 한두 명씩 꼭 데리고 와요. 그리고 인사하래.”

나는 웃기고 어이없어서 깔깔댔다.

“웃을 일이 아니예요. 내 친구들은 3학년 언니들이 오면 다 도망가고 한 명도 남아있지 않아. 내가 왜 다시 얼굴 가까이 마주 할 일도 없는 잘 알지 못하는 언니 친구들에게 다 인사해야 돼?”

 

 

소미가 껴들었다.

“인사 좀 하면 어떠냐? 그러면서 친해질 수도 있는 거지. ‘소미야, 니 동생 몇 학년이야?’ 애들이 물어서 1학년이라고 하면 ‘와~ 소미 동생 보러 가자~’그러면서 애들이 날 이끄는데 그럼 어떡해?”

“그럼 2학년은 왜 데리고 오냐?”

난 다시 깜짝 놀라 물었다.

“2학년? 소미언니가 2학년도 데리고 너네 반을 가?”

“엄마, 내가 보기에 언니는 학교를 헤집고 다니는 것 같애. 모르는 사람이 없어.”

“어머, 그으래? 난 우리 소미가 그렇게 학교생활 하는 줄 정말 몰랐네.”

 

 

소미가 빙글빙글 웃다가 다시 말했다. 

“날 좋아하는 친한 2학년도 있어요뭐… 내 동생 보고 싶다고 교실에 가보자고 하는데 안 된다고 할 이유가 없잖아요.”

“우리 반 애들은 언니 무서워 해. 애들이 언니 돌아가고 나면 ‘와, 너네 언니 치마 짧드라. 너네 언니 좀 노니?’ 이런단 말이야. 내가 정말… 못 살아!”

“내가 뭐 애들하고 싸우기를 하냐, 친구나 후배를 괴롭히는 학교 짱이냐? 헤집고 다니긴 뭘 헤집고 다녀? 누가 들으면 내가 엄청 나대고 설치는 줄 알겠다. 나도 그런 애들은 싫어해. 난 그냥 친한 애들이랑 후배들이 좀 많을 뿐이야. 그래서 학교 가는 것도 즐거운 거고.”

푸핫! ‘너네 언니 좀 노니?’ 여기서 빵 터졌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소미의 행동을 소은이는 ‘오지랖’이라는 거고 소미는 ‘미친 친화력’이라는 말씀이다.

“손손! 언니의 미친 친화력을 너무 나쁘게만 보지 말어람... 저것도 재능이야.”

“무슨 친한 사람이 그렇게 많이 필요해요? 난 정말 이해할 수 없어.”

“엄마 말씀이 맞아~! 야, 빅사!(소미가 소은이를 부르는 말) 너처럼 인간관계 협소하고 편견 많고 고집 센 건 이해하기 쉬운 줄 아냐?”

“ㅎㅎ 근데 솜솜! 진정하고 엄마 말 좀 들어봐. 너의 재능은 없어지지 않아. 그니깐 이제 미친 친화력은 잠시 접어두고 이젠 좀 선택과 집중을 진지하게 해야 하지 않겠냐? 인간관계에만 집중하면 자기 할 일에 소홀하기 쉽거든 그게.”

“알아요. 저도 생각 다 하고 있다구요 뭐.”

 

 

남편이 퇴근했을 때 내가 이 이야기를 꺼내면서 또 한번 두 아이 사이에 공방이 오갔다. 남편은 빙긋이 웃기만 하다가 다음 날 아침 새벽에 출근하며 내게 말했다.

“우리 소미가 학교에서 좀 설치고 다니나보지?”

“그런가? 자긴 아니라고 하는데… 나도 학교 다닐 때 안 그랬는데…”

“지금 보니 소미는 딱 나 닮았어. 내가 학교 다닐 때 그랬거든.”

 

 

맞다. 어릴 때 ‘개떼처럼’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재미있게 놀았다는 이야기는 몇 번 들었다. ㅋㅋ

 

 

 

 

 

모스크바 다음으로 서울이 세계에서 두번째로 추웠던 지난 겨울 어느 날. 소미는 혹한을 뚫고 친구 한 명과 단 둘이 <장비렌탈+리프트권+점심>까지 포함된 저렴한 패키지 상품 알아서 예약하고 새벽같이 셔틀버스 타고 홍천의 스키장을 다녀왔다. 스키는 딱 세 번 타보고 그날은 난생 처음 보드에 도전했는데, 스키와는 완전 딴판인 보드 때문에 말 그대로 개고생을 한 모양. 얼굴이 벌거죽죽... 타고 얼고... 보드 다신 안 타!! 보드가 멋지긴 한데 들고 다니기 너무 힘들어! 다음엔 스키 탈 거얌. 아고 죽겠당!!!....안 간단 소리 안한다. 소은이왈, 언닌 이 추위에 그러고 싶냐?

 

근데 요즘은 또 맨날 호주와 뉴질랜드 타령이다. 자긴 세상에서 물 속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한데, 호주나 뉴질랜드에 살면서 죙일 수영하고 서핑하다가 배고프면 물밖으로 나와 쇠고기를 구워먹고 싶다나? 엄마, 우리 학교 선생님이 그러는데 뉴질랜드나 호주는 다른 고기보다 쇠고기 제일 싸대요. 난 정말 호주나 뉴질랜드 같은 데서 태어났어야 해.

 

맞다. 소미는 노는 언니, 놀고만 싶은 언니다. 에고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