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미카엘라 2015. 4. 20. 01:31

 

목련, 진달래, 개나리, 살구꽃, 앵두꽃 들이 다투어 아파트 단지에 활짝활짝 피어서 좋았다. 그래도 한 구석 아쉬운 마음이 들어 얘들아, 제발 좀 하나씩 천천히 피면 안 되겠니? 차례차례 오래오래 구경하자이렇게 중얼거리며 아래 슈퍼에 장보러 다녔는데 어느새 벚꽃도 엔딩이다. 벌써 라일락이 보라보라 피는 걸 보니 어디선가 장미도 꽃봉오리를 빨긋빨긋 올리고 있는 것 같다.

 

큰 애는 괜찮아요?”

지난 주 성당에서 미사 끝나고 앞뒤 없이 이렇게 묻는 분이 있으셨다. 소미가 고3인 걸 아는 분이 3월 잘 보냈느냐 안부 인사를 하신다.

안 괜찮았었는데 어떻게 아세요?”

웃으며 물으니 담담히 말씀하신다.

애들이 그렇더라구 3월에. 3인 현실이 스트레스 받는지 잘 지냈던 애들끼리 싸우기도 하고, 별 거 아닌 일에 울기도 하고, 잘 하던 공부도 갑자기 놔버리고.”

네 맞아요. 애들이 이 시기에 다들 그러나요? 그렇지 않아도 저희 애만 이리 힘드나 싶어서 답답한 참이었어요.”

우리 애도 그랬어요. 4월 되면 좀 괜찮아지긴 하던데.”

 

먼저 물어봐주시고 시간이 약이라 하시니 한결 마음이 놓인다. 아닌 게 아니라 4월 되니 소미가 한결 제 페이스를 찾는 거 같다. 3월은 내내 눈물에 한숨에 우울함이 찰랑거렸다. 밥도 잘 안 먹고 공부는 당연히 안 하고 안 읽던 책을 열심히 읽으며 철학을 하였다. 좀 마음 편하게 사는 방법은 뭘까?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경쟁 안하고 살면 안 되나? 대학 간다고 뭐가 달라지나? 사실 소미는 철학하기에 유익한 나이인데, 우리 교육은 고교생들이 철학하는 걸 허락하지 않는다. ‘지금 때가 어느 땐데이렇게 윽박지르며 오로지 수능에 필요한 공부만 하길 요구한다.

 

엄마, 나만 힘든 게 아니었나봐요. 주희는 자기네 과에서 공부는 톱인데 수시에 쓸 학교 활동이 너무 없다보니 담임샘이 반 애들한테 주희 반장 뽑아주라는 둥 너무 그러셔서 3월 내내 애들 눈치 보여서 너무 힘들었대. 주희하고 톱을 다투는 OO이는 스트레스로 안면근육 마비 증세가 살짝 왔대고. 오늘 봤는데 마스크하고 있더라고요. 에휴, 다들 힘들었나봐.”

 

하루는 학교에서 돌아와 이러면서 자기 마음을 추스르려고 노력하는 게 보였다. 이 과정에서 가장 많이 대화하며 소미를 이해해준 사람은 남편이다. 친구관계에서 시작된 몸살이지만 결국 슬럼프라고 생각하는 남편은 나보고 가만 내버려두고 기다려보라고 했다. 그리고 소미가 뭐라뭐라하면 나보다 더 잘 들어주었다. 고기 뷔페 데려가서 고기 구워 먹이고 아이스크림 사다 쟁여 놔주고 학교에서 돌아오면 그냥 빨리 푹 자라 한다

 

그런데 일요일인 어젠 나랑 아침 일찍 목욕탕 가서 목욕하고 그 아래서 순대국 한 그릇 싹 비우고 나더니 집에 와선 힙합 춤을 추고 랩을 하면서 온 집안을 시끄럽게 한다. 이제 거의 정상 컨디션을 회복했다. 결국 모처럼 늦잠 자던 소은이가 깼다.

언니 완전 정상으로 돌아왔구만. 아이구 시끄러워라 진짜. 내가 언니 자는데 이랬어봐, 아주 잡아먹을라 했을 거다.”

 

소미는 그러거나 말거나 의자 팔걸이에 오도카니 앉아있는 시루를 바라보며 랩을 계속한다. 나는 속으로 하느님 감사합니다했다. 그래 맘껏 노래 부르고 춤춰라. 울고불고 괴로워하는 것보다 백 번 낫다. 팅팅 부은 눈으로 이불 속에 기어들어가는 속 터지는 상황보다 훨씬 낫다

 

소미 책상에 못 보던 책갈피가 눈에 띈다. 며칠 전 뭘 만드는 것 같았는데 이거였던 듯 싶다. ‘소미의 십계명이다창밖에선 꽃들이 다투어 피며 꽃몸살을 할 때, 소미는 나름 철학을 하며 이걸로 3 몸살을 정리한 모양이다. 그래도 기특하고 고맙다. 생각보다 빨리 회복해주었고 생각보다 긍정적이다. 그동안 숨 막힐 듯 학교 교정을 채운 벚꽃은 감상할 여유는 없었지만, 벚꽃이 더 마음 심란하게 한다는 소미 선배들 말을 생각하면 이러나 저러나 어렵게 시작하는 고3의 봄인 건 맞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