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하기 싫어!
요리에 취미가 없는 내가 초라해지는 요즘이다. 나는 반찬이 너무 하기 싫은데 방송이나 블로그나 SNS나 요리 잘하는 사람, 요리 즐기는 사람들이 천지다. 먹는 방송 전성시대다보니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보면 요리하거나 먹는 방송이 언제나 한둘은 늘 있다. 요리 좋아하는 사람들 중엔 양을 푸짐하게 해서 여기저기 나누는 사람, 식탁을 예쁘게 꾸며 음식을 더 빛나게 하는 사람, 생각지 못한 식재료를 조합하며 막 하는 것 같은데 창조적인 한 끼를 만드는 사람, 조금씩 색깔이 다른데 다들 좋아보인다.
어릴 때 남의 집 잔치에 요리 잘하는 동네 아주머니가 꼭 불려 다니는 것 봤다. 분량 많은 음식도 척척 맛을 내고 그 엄청난 일을 겁내지 않고 썩썩 해내는 그 분들은 가정주부 25년차가 되어 생각해도 참으로 대단하다. 요리하는 걸 좋아하고 자기 식구들 먹는 건 재미있게 잘해도 5인분 이상 넘어가면 또 겁내는 사람도 봤다. 그만큼 접근하긴 쉬워도 또 잘하긴 어렵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언니가 전부터 한 말이 새록새록 자꾸 생각난다. “요리를 못하는 사람은 게으르거나 머리가 나쁘거나 둘 중 하나다.” 처음엔 이 무슨 독설인가 싶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 일리가 있다 싶다. 나는 어디에 해당할까 생각해봤다. 처음엔 게으른 쪽이라 생각했는데 요즘은 머리가 나쁜 쪽도 해당되는 것 같다. 드라마 ‘대장금’의 대사 중에 한상궁이 장금에게 맛을 머릿속에 그려보라 했던 대사가 있던 것 같은데, 확실히 음식을 잘하려면 상상력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이런저런 알고 있는 식재료의 맛을 조합해 새로운 맛을 상상해야 뭐가 되지 않겠나. 생각해보면 이 두 가지는 결국 하나로 모아진다.
모든 일은 관심이다.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쪽에 부지런해진다. 아무리 움직이는 것 싫어하고 몸 무거운 사람도 뭐 먹을 때 제일 행복한 사람은 어디 먹으러가자 하면 몸 가볍게 부지런을 떤다. 관심 있고 좋아하면 몸만 부지런한 게 아니고 머리도 부지런해진다. 이리 생각하고 저리 생각하고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 해보고 그러면서 실력이 는다. 결국 관심이 없으면 몸도 쓰기 싫고 두뇌도 안 쓴다는 의미일 것이다. 결국 관심은 호기심이고 에너지다. 호기심 많고 에너지가 있는 사람이 어디에 관심이 있어도 더 있어서 부지런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음식을 ‘하는 것’과 ‘먹는 것’은 전혀 다른 분야다. 먹는 것은 좋아하고 요리하는 건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요리는 못하거나 안 하는데도 입맛이 발달해서 남이 만든 음식 품평을 잘하는 사람도 있다. 나 역시 음식은 별로 가리지 않고 먹는다. 못 먹어본 건 많아도 일단 내 앞에 차려진 것은 모두 다 맛있게 잘 먹는다. 특히 내 손이 안 간 음식은 늘 감사히 맛있게 먹는다. 하지만 요리엔 취미가 별로 없다.
그래도 ‘요리’는 취미나 기호와 관계없이 관심이 없어도 좀 억지로라도 해야 할 특별한 분야다. 인생살이에 가장 쓸모 있고 어디서나 통하는 범용기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소은이가 어릴 때 요리학원을 보냈던 것도 이 아이가 꼭 요리사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만 보낸 건 아니다. 요리는 배우면 평생 나에게든 가족에게든 다른 사람에게든 가장 쓸모 있는 기술이니까 배우고 싶다 할 때 배우게 하자 했던 것이다. 누군가 아픈데 죽 한 그릇 만들어 찾아가고, 축하할 이웃에게 케이크 하나 만들어 전하고, 어딘가 하룻길 나들이 가는데 도시락 싸서 전해주면 얼마나 그 마음씨와 솜씨가 아름답고 고마운가? 음식 선물엔 확실히 남다른 온기가 있다.
소미가 SNS에 “3개월 된 아기가 내 방에 찾아왔다”길래 누군가 물어보니 중국인 유학생의 아기란다. 석사 공부를 하는 이 아기엄마에게 자기가 이런 음식을 해줬다고 사진을 보내왔다. 세상에~! 요리 무식자 우리 소미가 누굴 초대해서 음식을 해먹이고 있다! 교환학생 가서 보내오는 사진은 대부분 음식사진이다. 처음엔 내가 걱정하는 걸 아니까 ‘나 이렇게 잘해먹고 있으니 걱정 마시라’는 의미로 보내는 것 같았는데 요즘은 스스로 대견해하며 요리에 좀 재미를 느끼는 것 같다. “여기는 춘천!” 이러면서 닭갈비 사진을 보내오고 설날엔 어디서 났는지 떡국을 다 끓여먹는다. 엄청 맛없는 빵에 아보카도 넣어서 맛있는 샌드위치를 만든다. 이제 걱정은커녕 소미가 해주는 음식 맛볼 날을 기다린다. 엄마는 반찬하기 싫어서 맨날 몸부림이고 딸은 “엄마 나 요리왕인가 봄” 이러면서 재미있게 요리를 하고 있으니 최악은 아니다.
냉장실 네 칸 중 반이 비었다. 과일도 떨어지고 채소도 얼마 안 남았지만 헐렁한 냉장고가 이상하게 좋다. 더 큰 양문 냉장고 안 산 게 다행이고 김치냉장고 없는 것도 괜찮다. 냉동실을 뒤지고 서늘한 뒤 베란다를 뒤져서 식재료를 찾는다. 장보기도 최대한 적게 하려고 한다. 반찬하기 싫은 핑계에 소비 지양이 결합되어 뭔가 친환경적이다. 그런데 나는 식이요법이 필요한 남편의 잡곡밥 도시락을 싼다. 팔자에 없는 ‘큰아들’을 위해 오늘도 반찬을 한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