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 돌격 앞으로!
참 하루가 힘들었다. 접촉사고로 열흘 남짓한 입원 탓에 집에 돌아오니 고 사이 생활 리듬을 잃어버린 게 분명했다.
집은 어질러져 있지도 않았고, 빨랫감도 그리 많지 않았는데 마음은 어수선할 대로 어수선해서 도무지 무엇부터 해야할지 황망할 뿐, 그저
안절부절못하고 밥도 먹히지 않았다. 병원에 갔던 첫날 지갑을 통째로 잃어버린 게 치명적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아, 사람이 고작 요만큼 집을
비웠다고 이 지경이면 날마다 불규칙하게 집을 드나드는 사람이나, 밤낮이 바뀐 직업을 가진 사람, 한 달 이상씩 해외로 나다녀야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어찌 살꼬 싶다.
나는 병원이 지겹지 않았다. 오히려 좀 안락하고 편안하기까지 했다. 아픈 어깨와 목은 둘째치고 한 3일 동안 두통과 메스꺼운 증세로 퍽 괴롭더니 급기야 크게 한번 토하고 그 증세를 가라앉힐 수 있었다. 그래도 밥도 턱 밑에 대령해주지, 잠도 좀 맘 푹 놓고 잘 수 있지, 아이들도 입원해서(어디에고 맡길 형편이 안 되었다) 내가 옆에 끼고 잘 수 있었으니 불안감도 없었다. 병실은 침대가 세 개. 두 개는 붙여서 두 아이가 편히 잘 수 있게 해주고 하나는 내가 썼다. 남편이 와서 자도 불편함이 없었다. 남편은 이 참에 좀 쉬는 거라 생각하고 이번 주까지 병원에 있으라고 했다. 그러나 난 나와버렸다. 몸이 웬만해서이기도 했고 해야 할 많은 일들이 내 엉덩이에 가시방석처럼 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특별한 증상 없이 아프지도 않은데 나 때문에 감옥살이 아닌 감옥살이하는 것 같아서 나와버렸다. 유치원에서 생일파티 하는데 거기 못 가서 서운해하고, 집에서 가지고 온 장난감도 빤해서 싫증이 났고, 지들끼리 슬리퍼만 신고 그 좁고 가파른 계단을 날마다 몇 차례씩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노는 게 불안하고, 침대와 의자에서 한 두 번씩 떨어져 '쿵, 쿵'하는 게 안쓰러웠다. 소은이는 병실 침대에서 두 번, 의자 끄트머리에서 세 번씩이나 떨어져 벽의 방음이 부실한 옆 병실까지 소문이 다 날 정도로 요란했다. 볼에 멍이 들기도 했다. 이러다간 교통사고에선 멀쩡했던 환자가 병원에서 아주 다치는 사고가 날 것만 같았다. 그런데 결국 퇴원을 한 시간 남겨두고는 마무리 사고로 훈장을 크게 달고 말았다. 난 보지도 못했는데 물리치료실에서 올라오다가 계단에서 이마를 부딪쳤다고 들었다. 거짓말 안 하고 왕밤 만한 혹이 이마 한 가운데에 툭 나왔는데, 그렇지 않아도 이마와 뒤통수 짱구가 그 나온 이마에 또 한 덩어리를 붙이고 섰으니 정말 가관이 아니었다. 아이를 겨우 달래서 퇴원 전에 끝으로 물리치료를 했다. 찢어지거나 상처는 없이 약간의 멍에 그렇게 큰 혹을 보니 정말 더 진작에 나갔어야 하는 건데 싶은 게 속이 상했다. 소은이가 울음을 그치고 눈가만 축축히 젖은 걸 본 사람들이 너나없이 "그렇게 침대에서 떨어지더니 결국 일을 쳤구나" "그래, 별이 몇 개 보이던?" "에구, 저런 옆에서 보니까 정말 이마가 많이도 나왔구나" 하면서 웃는데 그것도 속이 상했다. 집에 돌아오니 생활의 리듬이 깨진 터라 다 저녁에 아무 것도 하기 싫었다. 밥만 겨우 해먹고는 누워버렸다. 아무리 괜찮다고는 해도 사고가 나기 전처럼 머리나 목, 어깨가 말짱한 건 아니기 때문에 통증은 없었지만 계속 돌을 달아놓은 것처럼 묵지근했다. 괜히 이번 주까지 있을 걸 그랬나 싶은 후회가 슬그머니 밀려왔다. 가해자측 보험회사 사람이 다녀갔을 때 2주 진단이면 지금 통원치료해도 된다, 내가 경험으로 아는데 그 정도는 생활로 복귀해도 문제될 게 없다, 엄살하지 말라, 난 다 안다라는 식의 말에(다른 말로 골라서 부드럽게 말했지만 지금 생각하니 실은 그런 뜻이 전부였다) 이 정도면 나는 엄살에 속하는 건가? 정말? 벌써 나갔어도 되는 건가? 정말 그런 건가? 하며 잠시 헷갈리는 통에 분별력을 잃고 속은 것만 같아서 분하기도 했다. 그리고 자기는 서울에서 왔으니 며칠 후 또 다시 오지 않게 참작 좀 해달라 사정을 했다. 참 맘이 약해서 거기서 그만 꼴딱! 그리고 아이들 생각까지. 그 사람 말대로 퇴원해서 크게 문제될 건 없었지만, 주부들 경우는 이럴 때 누구든 일단 집에 돌아오면 쌓인 집안 일을 그냥 두고 편하게 요양할 처지가 아니라는 것을 생각해서, 충분히 치료하고 요양하고 돌아오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뒤늦게 오늘에야 많이 했다. 그래서 성급히 보험사와 합의하지 말고(합의하면 그 즉시 퇴원해야 한다) 2주 진단이면 2주 동안, 3주 진단이면 3주 동안 입원하면서 치료하는 게 좋을 듯 싶다. 나이 들면 남자들보다 여기저기 아픈 데가 많아지는 여자들인데 이런 사고로 삐끗한 경우라도 제대로 치료해야겠다. 2주가 괜한 2주가 아니구나 싶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메일을 열어보니 친구 하나가 위로한다고 보낸 메일이 이렇다. 많은 위로와 격려의 메일을 받았는데 그 중 제일 튀는
독특한 위로였다. 오늘 점심을 채 들기도 전에 아파트에서 싱크대 교체작업을 한다 해서 저녁까지 집안을 한바탕 들쑤셨다. 수납장이며 개수대 아래, 가스렌지대 아래 있는 부엌 살림을 모두 꺼냈다. 퇴원 안 했으면 이 일을 누가 했을까 싶으니, 등에선 진땀이 팍팍 나는데 '그래, 잘 퇴원했다'하고 억지로 속으로 위로했다. 사실 지난 4월 아파트 싱크대 교체작업 때는 남편휴가 때문에 누락되었다가 이번 관사 교체작업에 추가로 겨우 낀 형편이라, 또 문을 제때 열어주지 않으면 눈총을 적잖게 받을 터였다. 소미는 오늘 오랜만에 유치원에 갔었는데 야외로 나가 단체사진을 찍었다고 했다. 그리고 이번 주 주간계획표를 내미는데, 금요일엔 소운동회를 하느라 가까운 공원에서 하루를 보낸다고 들떠서 난리다. 에휴, 그래 퇴원 잘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