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충전소

홍역을 치르다

M.미카엘라 2000. 7. 29. 22:46
병원에서 무려 열 이틀만에 집에 돌아왔다. 평생 한번은 한다는, 아니 죽어서도 한다는
홍역을 두 딸이 일찌감치 치러낸 것이다. 처음엔 단순히 감기인줄만 알았는데
열이 오르락내리락했던 며칠간이 잠복기였던 듯하다. 처음 발진이 보였던 제헌절
날에도 나는 그것이 홍역 발진이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했다. 기침이 심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친정엄마가 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홍역은 거의 기침을 끼고
온다고 하셨다.

폐렴을 합병증으로 안고 소은이가 18일에 먼저 입원을 했다. 돌 이후부터 15개월
사이에 있는 예방접종을 채 하기도 전에 홍역에 걸린 소은이는 열과 발진이 대단했다.
소미보다 먼저 시작했는데 아직도 온몸에 거뭇거뭇 자국이 남아있다. 그
먹보가 아무것도 먹으려들지 않았는데 다행히 젖은 먹어서 몸이 크게 축나진
않았다.

반대로 소미는 너무 살이 빠져서 어제 퇴원 후 청반바지를 입혀보곤 깜짝 놀랐다.
엉덩이가 적당히 맞아서 예뻤는데 너무 헐렁해져서 골반에도 겨우 걸쳐질 정도였다.
우유는커녕 아무것도 못 먹은 날이 족히 사흘은 되었다.

소미는 소은이 입원 중엔 친정엄마와 집에 있으면서 나와 소은이를 보러 병원에
날마다 왔었다. 소은이 입원하던 날부터 기침과 열이 있었던 걸로 미루어볼 때
소미도 그때 이미 홍역에 감염되어 잠복기를 지내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소은이가
입원한 의료원에 외래진료를 받다가 22일 토요일엔 열이 40도, 41도를 왔다
갔다하며 좀체 내릴 기미가 없었다. 걱정이 크던 중 회진 중인 소은이 주치의
에게 보이니, 폐렴으로 번지려고 하는데 다음날이 휴일이니 입원치료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오후부터 귀 뒤쪽 부위에서 좁쌀 같은 발진이 보였고, 이튿날 얼굴과 몸에
퍼진 것을 볼 수 있었다. 귀 뒷쪽부터 생겨나 얼굴에서 몸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것이 홍역발진의 특징인 것도 그때 알았다. 친정엄마 말씀으로는 몸 아래에서
위쪽으로 올라가는 특이한 경우도 있는데 이럴 경우 아주 되게 고생을 한단다.

소미는 예방접종을 한 터라 발진은 좀 수월했다. 분홍색으로 솟다가 금방 수그러
들었는데, 그 열이나 기침으로 볼 땐 접종 안 한 소은이보다 뭐 크게 수월할 것도
없었다. 의사는 변종이 계속 생겨나 홍역백신이 백퍼센트 예방을 못한다고 했다.
잠을 도통 못 자고 솟아오르는 발진과 고열에 부대끼는 것을 보며, 왜 어려운
일이나 힘든 일을 해냈거나 그러한 시기를 보내고 났을 때 '홍역을 치렀다'고
표현하는 까닭도 알 것 같았다.

다른 환자들에게 전염될 수 있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없이 1인실을 쓰던 소은이는
병원의 배려로 침상을 하나 더 밀어 넣어 언니를 곁에 두고 회복할 수 있었다.
월요일에 소은이는 퇴원했으나 친정엄마를 비롯해 우리는 모두 병원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연세가 많으신 엄마가 혼자서 소미를 돌보기엔 힘에 부치시기도
했고 소미가 나를 꼼짝 못하게 했다. 소은이는 나한테 방울처럼 붙어있으니
넷이서 그 좁은 1인실에서 일주일을 부대꼈다. 병원 전체에 입원환자가 많지
않아서 침상을 그대로 쓸 수 있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조금 나아져서 전염에 대한 염려가 사라질 무렵엔 휠체어에 링거병 꽂고 병원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아이들의 답답함을 달래주었다. 나이 드신 분들은 "에그,
홍역하는구먼!" 하며 금방 알아보셨다. "어릴 때 할수록 좋아. 더 수월해. 나이
들믄 살가죽이 두꺼워져서 꽃이 피기 힘들기 땜에 더 보대끼거던. 애기엄마,
홍역은 나갈 때 더 조심해야 하니까 얄푸드레한 거라도 바지 하나 입히슈. 아가
고생이 많구나." 이런 말씀을 듣는 것이 참 좋았다. 마음이 푸근해지는 것이
진심어린 병문안을 받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열만 내리면 기분이 확 달라진다. 부석부석 붓고 울긋불긋 발진으로 얼굴
모습까지 달라 보이는데도 다 나은 것처럼 씩씩해졌다. 되게 아프면 아무것도
입에 안대지만 열만 내리면 먹을 것도 제법 찾는다. 엄살 이런 것은 없이 아프면
크게 울고 열이 내려서 살만하면 엉덩이를 들까불면서 춤까지 추는 것이
소은이, 소미고 어린 아이들이다.

칠순을 넘기신 친정엄마를 통해서 나는 옛날에 홍역을 앓던 아이들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렇게 고열에 시달리면서도 "쉬- 쉬-" 열에 들뜬 소리를 내면서 돌아다니고
놀고 그랬다고 한다. 먹을 게 없으니까 돌아다니다가 지난 밤 기제사를 지낸
집 문밖에 내놓은 물밥을 손으로 퍼먹기도 했다는 이야길 들으니 가슴까지
찡했다. 그러면서 요즘 아이들이 얼마나 복 받았는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아이 병실만 해도 연신 먹고 싶은 것을 물어서 음식을 사 나르는
남편 탓에 먹을 것이 넘치는데.

아픈 후 아이들은 더 잘 먹는다. 빨리 회복되는 아이들을 보니 내가 긴장이 풀려
몸이 다 노곤하다. 그렇지만 정신을 챙겨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았다. 다른 일로
또 일상의 끈을 팽팽히 조여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