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졌다!
아이들이 무슨 일을 조르면 잠시 ‘파바팟~’ 섬광처럼 이렇게 저렇게 많은 생각이 스치면서 ‘머리를 굴리는’ 게 보통의 부모 모습이다. 이걸 해주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해주면 언제 해주어야 할지, 안 해준다면 어떻게 피곤한 말씨름과 여러 부작용을 최대한 줄이며 포기하게 해야 할지 또 고민하게 된다.
나 역시 아이들이 보기엔 너무도 쉽게 단칼에 ‘안 된다’ 하는 것 같지만, 잠시잠깐 수많은 생각을 거치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안 되는 거면 끝까지 안 되는 것으로 가고 해줄 거면 그냥 처음부터 편안하게 허락하자는 생각을 하는데, 양당간에 어떤 식으로든 선택을 하기까지 짧은 시간이지만 숱한 갈등을 하게 된다. 이걸 아이들이 볼 수 없을 뿐이다.
소은이는 근 몇 개월 동안 한 가지에 물건에 마음을 빼앗겼다. 일명 ‘에디슨 젓가락’이다. 젓가락에 손가락을 끼워 넣을 수 있는 고무링을 달아 바른 젓가락질을 연습할 수 있도록 고안된 유아용 젓가락이다. 소아과에 가도 있고 약국에 가도 있고 좀 규모가 되는 마트에 가도 있고, 또 아이 있는 집에 가면 하나쯤 볼 수 있는 흔한 물건이다.
소은이는 오래 전부터 이걸 하나 사달라고 졸라왔다. 내 친구네 집에 가서 밥 먹을 때도 하나밖에 없는 그 젓가락을 주인과 다투기도 하고, 소아과에서 이름 부를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에도 눈앞에 보이는 그것을 보고 ‘하나 사주지’하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처방전을 들고 약국에 가면 왜 또 그건 아이 눈높이에서 떡 하니 달랑거리며 애간장을 태우는지.
그런데 내가 그렇게 소원을 하는데도 안 사준 까닭은 간단하다. 소은이는 젓가락질을 아주 잘하기 때문이다. 다섯 살 때부터 반찬 집어먹는 일에 불편함이 없었다. 물론 제대로 바르게 하는 일엔 서툴지만 이제는 오히려 포크를 답답해할 정도로 젓가락을 편하게 생각한다. 이런 아이에게 5천원이나 하는 젓가락을 사줄 일이 없다. 젓가락 쓰기가 자유로운 아이들에겐 오히려 위쪽이 붙어있는 그 젓가락이 금방 불편해질 것이 분명했다.
내 마음은 ‘아무리 졸라도 어림없다’였다. 이미 예전에 굳히기에 들어간 마음인데 다시 조른다고 사줄 소냐? 싸든 비싸든 소용 되어야 사는 것이고 손에 넣는다 해도 곧 잘 쓰지 않을 게 뻔한 물건을 사줄 마음이 생기지 않는 건 당연했다. 나는 요지부동 자세를 몇 개월 동안 잃지 않았다. 어디를 가도 눈에 쉽게 띄는 그 젓가락에 애타는 구애의 눈길을 보내는 소은이를 모른 척했던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소은이도 만만찮았다. 안 된다 하면 곧 포기가 빠른 소미와 가장 크게 구별되는 점이 바로 이 ‘끈질김’이다. 할 수 있는 한, 될 때까지 끊임없이 물고 늘어지며 어떤 일이든 명쾌하고도 흡족한 해답을 보기 전까지 절대 그 일을 잊지 않고 대화의 언저리에 포진시킨다. 다른 말 하다가도 한 마디씩 그 문제를 끼워 넣어 상기시키는데 어떤 땐 진이 다 빠진다.
딸이 그렇게 갖고 싶다는데도 안 사주시는 엄마라니…, 그거 하나만 가지면 절대루 다른 건 안 조를 건데 그런다는 둥, 내가 젓가락질을 하긴 해도 바르게 하려면 그게 필요한데도 엄만 그걸 모른다는 둥…… 중얼중얼, 꿍얼꿍얼, 궁시렁궁시렁 논리도 다양하다.
그런데 한동안 좀 덜한다 싶었다. 그러다가 2주 전에 다시 시작되었다. 지독한 환절기 감기를 앓으며 유치원을 거의 한 주 쉬었는데 그 끝에 또 중이염이 오는 바람에 단골소아과를 이틀마다 들락거렸다. 소아과와 약국에 전시된 그 젓가락은 우리 두 모녀를 서로 다른 처지에서 괴롭혔고 병원 대기실에서 간호사가 웃을 정도로 치열한 설전이 오가기도 했다.
“엄마가 한 번 안 된다면 안 되는 거 몰라?”
“그래도 너무 갖고 싶단 말이예요.”
“필요하면 얼마든지 사주지. 근데 손손이 저게 왜 필요하냐구? 그렇게 젓가락질도 잘 하면서. 젓가락질 못하는 친구들 흉봤으면서 그거 미안하지도 않아?”
“그래도 젓가락질 잘 하려면 저게 필요하단 말이예요.”
“그만큼 잘하면 됐지. 아직 어린 애니까 그 정도면 괜찮은 거야. 손이 커지고 손놀림이 더 섬세해지면 조금씩 나아진다구.”
“그래도 지금부터 고치면 좋잖아요.”
“손손, 이제 고만 하자 응? 좋게 말할 때 그만해라잉~ 다시 이 얘기 꺼내지 마. 여기서 끄읕! 사줄 거면 벌써 사줬지. 엄마랑은 이 얘기 이제 끝이다. 알았어?”
그렇게 내가 강제적으로 일단락 시켰다. 그런데… 지난 금요일 날 소아과 앞에 주차를 하고 내리는데 소은이 왈.
“아빠한테도 안 되더라.”
“뭐가?”
“그저께는 저녁에 아빠랑 병원 왔잖아요. 근데 에디슨 젓가락 아빠한테 사 달라 했는데도 안 되더라.”
“흐, 그거 봐. 아빠도 엄마랑 생각이 똑같을 걸. 필요하지 않은 물건이니까. 아빠는 엄마보다 뭘 잘 사주는 분인데도 그러잖아. 그러니까 손손이 포기해.”
“……”
그런데 길을 건너려고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다시 소은 왈.
“어떻게 포기해요? 꿈에서도 막 보이는데. 엄마랑 밥을 먹는데 내가 그 젓가락으로 맛있게 밥을 먹고 있는 거예요 글쎄. 근데 어떻게 포기할 수 있어요오? 엄마가 사 주시는 게 마음 편할 걸요.”
아, 거기서 내가 할 말을 잃었다. 순간 마음이 확 약해졌다. 사람이 어떤 일을 간절하게 원하면 온 우주가 힘을 합해 도와준다는데, 이건 엄마가 손쉽게 들어줄 수 있는 일 아닌가. 아이의 간절한 맘을 너무 나 몰라라 하는 것 아닌가, 이 정도의 끈기와 꿋꿋함에 이제쯤 화답한다 해서 아이 버릇 나빠질까,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래서 일단은 그냥 아무소리 없이 병원과 약국을 오가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언니와 전화 통화를 했다.
내 언니도 자식에 대한 일관성이라면 꿋꿋한 편인데 뭐라 하는지 듣고 싶었다. 언니 역시 가만히 내 이야기만 듣고 있다가 꿈 이야기 부분에서는 완전히 무장해제되는 것 같았다. 조카사랑이 끔찍하지만 늘 소은이의 고집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하라 일렀던 터다. 그런데 "그렇게 원하는데 사줘라. 아니 이모가 사준다고 그래" 하였다.
그런데 소은이는 처음엔 누가 사줘도 상관없단 식이었지만 결국 엄마가 사달라고 했다. 으~ 이건 완벽한 승리에 쐬기를 박는 모종의 계산된(?) 제스추어나 다름없다. 급기야 소은이는 어제 이틀 치 약만 더 먹으면 되겠다는 의사선생님 말씀을 듣고 처방전을 들고 뛰어간 약국에서 토끼얼굴이 달린 그 문제의 젓가락을 손에 넣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차안에서 또 한번 웃기는 일을 벌였다. 창문을 반쯤 열어놓고 밖으로 그 젓가락을 흔들며 이렇게 소리치는 게 아닌가?
“여러분, 광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소은이가 샀어요! 이 젓가락을 샀어요! 1년 만에 샀어요!”
신호대기로 옆에 서있던 차의 운전자가 그걸 보고 낄낄 웃었다. 하긴 작년 가을인가 내 친구네 집에 갔을 때부터니 햇수로 1년을 졸라댄 셈이다. 그러니 오죽하랴. 아파트로 들어서는 오르막길에서 소은이는 다시 한번 감격의 멘트를 날렸다.
“엄마, 난 도대체 믿겨지지가 않아요. 이게 내 젓가락이라니.... 엄마, 한번만 화~악 꼬집어줘 보세요. 꿈이나 생시나.”
난 탱탱한 볼을 화~악 꼬집어줬다.
“아야야! 아, 생시네. 진짜야.”
크~내가 졌다. 아주 완벽하게.
완벽한 승리를 거둔 의기양양한 손손.
"여러분, 광고 말씀드립니다. 소은이가 샀어요!
이 젓가락을 샀어요! 1년 만에 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