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짱이 취미
오디오 유리문에 달린 작은 열쇠가 없어져서 만 이틀을 꼬박 긴 막대기로 장롱 밑까지 훑고 아이들의 장난감 바구니의 작은 손지갑까지 모두 열어보며 찾다가 결국 포기했다. 생각해보니 엊그제 뒷집 꼬맹이가 누나들한테 놀러 와서 빼서 가지고 놀다가 잃어버린 게 아닌가 하고 있다. 소미와 소은이는 늘 거기 붙어있는 열쇠기 때문에 이젠 흥미를 잃기도 했고, 오디오가 엄마의 애장품임을 알기 때문에 잘 만지지 않는다. 에이, 이사 갈 때쯤 어디서 나오겠지, 하면서 느긋해지려는데 리모콘으로 FM을 듣다가도 곧 CD를 바꿀 수가 없어서 생각날 때마다 답답했다.
많은 사람들이 시집올 때 해가지고 온 혼수품목 중에서 살면서 먼지만 쌓이고 무용지물이 되어버리기 쉬운 것이 오디오라고 한다. 내가 결혼할 때만 해도 오디오에 아직 LP플레이어가 많이 있을 무렵이라 CD에 DVD, MP3가 대세인 요즘은 대단한 아날로그 마니아가 아닌 이상 진즉에 처분했을 수 있다. 아이들 어릴 때는 가볍고 이리저리 자리 옮기기 쉬운 카세트가 더 요긴하기도 하다.
그런데 나는 그 당시 많은 갈등 끝에 CD플레이어와 두 개의 카세트 데크가 있는 오디오를 샀다. LP를 많이 가지고 있었던 나로서는 좀 뼈아픈 선택이었지만 LP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들었다는 조언에 따라 앞으로 음악 감상을 CD로 하자 마음먹었다. 당시 소비자가격 90여만 원의 이 오디오는 군무원이었던 시누이의 면세카드로 55만원 정도 주고 샀는데 당시나 지금이나 만만치 않은 가격이다. 어머님과 같이 살 계획이었기 때문에 다른 혼수가 줄어드니 오디오에 욕심을 냈다고 할 수 있다.
결혼한 지 10년이 지나는 동안 나는 냉장고나 세탁기만큼 이 오디오를 자주 애용했다. 음악듣기에 관한 한 깊이는 없고 넓이만 있는 나는 듣는 일이 즐거워 집에서건 차 안에서건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마구잡이로 듣는 잡식성이다. 애프터서비스 한번 받아보지 않고 10년을 한결 같이 이 오디오로 대중가요부터 팝송, 클래식, 뉴에이지, 국악, 동요, 민중가요, 영화음악, 민속음악, 라틴음악, 차이나팝, 가톨릭 성가까지 대종 없이 들어왔다.
지금 생각하면 아이들 어릴 때 육아전쟁으로 정신없는 와중엔 음악도 소음일 수 있는데 내겐 별로 그렇지 않았던 걸 보니 음악이 나를 활발하게 한 생활의 중요한 에너지가 아니었나 싶다. 확실히 음악을 가까이 두고 즐겨 듣고 찾아듣는 사람들의 에너지는 밖으로 파워풀하게 드러나는 면이 강하다는 걸 종종 느낀다. 그림이나 글씨, 미술품 감상 같은 것을 좋아하는 분들이 은근하고 조용하게 내적으로 에너지가 모아지는 경우와는 사뭇 다르다. 주변을 돌아보고 생각한 내 눈의 통계다보니 다 들어맞는 것은 아니지만, 최근 부쩍 사람들의 취미나 애호하는 품목을 보고 그 사람의 정서나 분위기를 가늠하는 것이 즐겁다.
우리 친정아버지와 엄마는 자식들에게 가정교육이 엄격하고 자식 이쁜 거 겉으로 잘 드러내지 않는 차가운 분들이셨지만 반면 두 분 모두 노래를 참 잘하셨고 즐겨하셨다는 공통점이 있다. 아버지는 목소리도 좋으시고 어디서든 술 한 잔 걸치시면 노래하기를 주저하지 않으셨으나 가사에 관한 한 용두사미로 끝까지 부르는 노래가 없으셨다. 반면 엄마는 끝까지 아는 노래가 많으신 건 물론이고 곱고 구성진 목소리가 듣기 좋았다. <황성옛터>를 부르시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또렷이 남아있다. 본 적은 없지만 엄마가 춤도 제법 잘 추셨다는 소리를 작은아버지를 통해 들은 적도 있다.
그리고 우리 세대에 자식들 역시 음악을 좋아한다. 노래를 잘 부르는 큰언니나 수녀언니, 그리고 ‘등대지기’밖에 끝까지 할 줄 아는 노래가 없는 큰오빠나, 역시 잘하는 노래가 별로 없는 작은오빠, 그리고 노래는 못 부르지만 아는 노래가 많고 특히 최신가요를 좔좔 꿰는 작은언니, 그리고 고음이 쥐약인지라 자신에게 맞는 안정된 레파토리 몇 개로 오래오래 울궈먹기 선수인 나까지 부르는 수준은 다 달라도 음악을 즐기는 마음은 엇비슷하다.
그리고 그 아래 세대. 드디어 작은오빠의 둘째 놈, 내 조카가 작곡과에 진학했다. 시골에서 초등 2학년 때부터 피아노를 하더니 좀 커서는 서울로 레슨 받으러 다니고 또 혼자 이렇게 저렇게 몸부림하듯 포기하지 않고 가더니, 모모하다는 예고 출신들도 어렵다는 대학의 음대에 덜커덕 들어가 버렸다. 실기시험 볼 때 점심시간에 다른 수험생들은 대부분 부모들이 차로 데리고 나가 점심 사 먹여 들여보냈는데 이 녀석 햄버거하고 음료수 사먹고도 당당하게 즐겁게 시험을 치렀단다.
이 녀석의 강점은 음악을 즐긴다는 점이다. 시골에서 자란 놈의 소박하고 따뜻한 감성, 음악에 대한 열정과 사랑, 그리고 꽤 쓸만한 인간성을 높이 산 선생님들의 배려와 후원으로, 부정한 방법이 아니라도 이래저래 엄청난 돈이 든다는 음대에 진학을 할 수 있었다. 우리는 그 노력과 인내의 시간을 알면서도 합격 소식을 듣고는 모두 띠용~ 놀라고 기뻐했다. 소미 소은이는 저희들이 부르는 노래마다 반주를 척척 해주는 이 녀석이 거의 신적인 존재다.
우리 친정 분위기가 이러한데다가 시어머님을 비롯한 시댁쪽 어른들도 연세에 관계없이 노래 부르고 듣기를 퍽 즐기신다. 지난 해 환갑을 지내시고도 최근 안치환의 팬이 되신 어머님, 패티김 노래를 너무나 멋있게 잘 부르는 이모님, JK김동욱과 임재범의 열렬한 팬인 그 아래 이모님 등등 그렇다. 시동생도 기타를 잘 치고 남편은 나훈아 노래를 좋아하면서도 가끔 전혀 다른 번지수의 농담으로 ‘성악을 공부할 걸 그랬다’고 말한다.
우리집은 이렇게 양쪽으로 모두 ‘베짱이 취미’를 가졌다. 그러다보니 아이들은 평소 내 음악 취미에 함께 실려 지낸다. 내가 줄곧 깊이는 없지만 이런 저런 음악을 듣는 바람에 소미 소은이는 열린 귀로 어릴 때부터 여러 음악을 들었다. 내가 아이들을 위해서 고르는 동요도 전래동요부터 창작동요, 국악동요, 그리고 요즘은 백창우가 만든 자연과 환경을 노래한 색다른 동요까지 다양하게 들려주는 편이니 부르는 노래도 여느 아이들의 레퍼토리와는 많이 다르다.
엊그제 어머니가 집에 오셨다가 아이들 노래를 녹음해가셨다. 아는 수녀님 드린다고, 이모님 드린다고, 집에서 들으시겠다고 아이들 노래를 잘 녹음하시는 어머님은 웃으면서 소미를 평화방송 어린이합창단에 넣고 직접 데리고 다니시겠다고 하니 우리 부부도 따라서 그냥 웃고 만다. 세상에 노래 잘 부르는 아이들이 하나 둘 아니고 죄송한 말씀이지만 할머니 눈에 콩깍지이시다. 무엇보다 나는 음악이 그냥 즐거운 취미로 아이들의 삶에 즐거움과 활력이면 좋겠다.
그런데 소미에겐 이 다음에 커서 되고 싶은 것이 두 가지 있는데, 참으로 여간해선 조화롭기 힘든 희망사항이다. 하나는 수녀님, 하나는 스타(가수). 이 둘을 매치시키려다 보니 우피 골드버그밖에 생각이 안 난다. 영화 ‘시스터 엑트’. 어린이날엔 아이들에게 ‘리틀엔젤스’공연을 보여주었더니 넋이 나갔다. 소미는 눈도 떼지 않고 거기로 빨려 들어가고 소은이도 끊임없이 별게별게 다 궁금해서 계속 소근대면서도 지루한 줄 몰랐다.
오늘 급기야 오디오 열쇠를 완전히 포기하고 작은 과일칼 끝으로 문 열기를 시도했는데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었을까? 간단하게 열었다. ‘숙명가야금합주단’ 의 연주를 들으며, 텔레비전 위에 두어 달 전 소미가 만든 종이 카세트가 놓여있길래 다시 찬찬히 구경했다. 옆 부분에 ‘CD CASE'라고 쓴 게 있는데 그 안에 뭐가 있는 것 같아 그 좁은 틈에서 가까스로 꺼내보니 정말 색종이로 만든 시디가 잔뜩 나왔다. 거기엔 집안과 차안에서 우리가 듣는 대표적인 음악이 총망라되어 있었다. 나는 귀여운 생각에 웃음이 실실 나왔다.
때마침 소은이가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계단을 오르며 되지도 않는 발음으로 흥얼흥얼 부르는 노래가 또 우습다. 비틀즈의 <노란 잠수함>이다.
“위 어 놀래네 옐로 썸머린~ 위 오 놀래네 옐로 썸머린~”
조오~기 숙명가야금합주단 시디 밑에
F자를 잘못 뒤집어 쓴 시디는
대만의 4인조 그룹 F4의 시디다.
내가 한때 저들의 시디를 석 장이나
한꺼번에 사서 듣는 바람에
소미 소은이는 아주 이상하게
중국어노래도 흥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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