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울타리
누런 갱지 속 줄긋기를 그리며
M.미카엘라
2000. 8. 17. 02:20
조금 더 두고보라고 하셨던 여러분들의 말씀이 마음에 깊이 와 닿고야 말았다. 소미가
미술학원에 다니기 시작한 지 일주일만에 학원에 안 가고 싶다고 한 것이다.
아이의 변덕을 받아줄 마음을 미리 준비했는데도, 그 소리를 처음 듣는 순간
가슴까지 덜컥하고 말았다. 완강하게 울면서 안 가겠다는 것도 아니었고 그저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안 가겠다고 한 것뿐이었는데 말이다.
학원비도 처음이라 이것저것 합해서 거금 14만원을 미리 냈고, 이럴 바에야 아예
시작도 안 했지 싶었고, 이제 벌써 나는 한 아이만 돌봐도 되는 네 시간의 여유와
평화, 그 달콤함을 알아버린 터였다. 그래도 금요일엔 수영장, 월요일엔 8월에
태어난 아이들의 생일파티가 연달아 있어서 그나마 설득에 여유가 있었다.
하고 싶다고 얼른 하게 하고 하기 싫다고 냉큼 그만 두라 하면 앞으로 좋은
습관은 못 들일 것 같아서라도 최선의 설득은 필요했다.
"소미야, 네가 가고 싶어했던 곳이잖아. 자알 다녀야지 유치원도 다니는 거야"하면서
내 형편을 챙기다가 얼마 안 있어서 중요한 질문은 쏙 빼놓았다는 걸 깨달았다.
'왜 안 가고 싶은 건지'를 안 물었다. 소미가 숙기가 없는 탓에 친구들과 잘
어울리질 못해서 재미를 못 느끼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하며 중요한 그 질문을 했다.
"소미야, 왜 안 가고 싶은 건데? 엄만 그걸 알고 싶어."
"왜냐면요, 공부하기 싫어서요."
"응? 공부?"
학습지를 말하는 것 같았다. 선생님이 뭐 막 들어온 어린애에게 어거지로 진도를
정해 힘겹게 가르치는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다만 이제까지 룰루랄라 엄마와
규칙없이 놀던 습관이 든 소미에겐 힘이 드는 노릇인 것만은 분명했다.
"그래? 그러면 엄마가 선생님께 우리 소미 공부는 좀 안하게 해달라고 말씀드릴게.
하고 싶을 때만 조금 할 수 있게 도와주시라고 말씀드릴게. 그러면 되겠지?"
그러면서 또 하루 학원을 보냈다.
학원 가던 첫날 원장을 만나니 자기네 학원에서는 일년 동안 공부할 학습지를 한 가지
골랐다고 했다. 언어영역과 수학영역이 있는 것 같았는데 자세히 보지 않은 게
지금에야 후회된다. 사실 난 그 정보를 미리 알았을 때 그것 때문에 학원을
보내는 문제에 대해 고민했었다.
아직 소미는 아무런 학습지도 안 한다. 그냥 놀린다. 맘껏 놀게 한다. 유아용 학습지
판매사원은 그런 나를 보면서 '이런 맹한 엄마가 다 있나? 지금이 어떤 시대라고
아직 아무것도 안 시키고 있냐'는 얼굴과 말투지만 나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애들이 더 커도 그렇게 여유만만할 수 있는지 보자는 투로 돌아가는 사람도
있었다.
소미의 머리에 대해 어떤 자신감과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전문가의
소견은 어디 갔든지 간에 순전히 내 독단적인 생각으론 이 시기에 그런 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루종일 '오줌이 나올 것 같이'(소미 표현)
깔깔대며 웃고 뛰놀아도 모자랄 나이에 어디 책상 앞에 잡아 앉혀놓고 지식교육을
시키는가 싶은 것이 여러 번 생각해도 싫었다.
아무리 놀면서 배운다, 단순히 지식교육은 아니다, 창의력과 EQ를 길러준다, 이건
공부가 아니다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대부분 초등학교, 중·고등학교의 지식교육을
흠모하는 전초전으로 밖에 보이지 않으니 '그런 무식한 편견을?'하는 분도
있을지는 모르겠다.
누런 갱지를 흑표지로 묶어서 가로 줄긋기, 세로 줄긋기, 물결무늬, 톱니무늬 들을
그리며 초등학생 1학년 첫달을 보냈던 시절이 생각난다. 아니지. 그게 먼저가 아니라
운동장에서 앞으로 나란히, 옆으로 나란히 뭐 이런 것들을 했었다. 그런데
요즘은 턱하니 알림장부터 꺼내게 한단다. 다 한글은 깨쳤을 것으로 알고 집에
가서 해 가지고 올 숙제나 준비물을 알림장에 쓰게 한다는 것이다.
며칠 전 통화를 한 어떤 아이 엄마 말을 듣자니 유치원 여름방학 숙제로 학습지
네 권, 그림일기, 견학사진들이 붙은 가족신문 들을 받았단다. 나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너무 흥분한 나머지 거침없이 "어휴, 다 미쳤어, 다 뭐에 홀렸어"했다.
유치원 방학숙제가 있다는 소리도 처음이고 엄마가 해야 하는 그 모든 숙제가
어처구니없었다.
내가 왜 다 늙은이같이 소미의 학습지 이야기에서 삼천포로 빠져 시대착오적, 세대
차이적 독설을 하나 싶지만, 평소 이 부분에 대해서 안타까운 마음을 많이 갖고
있었다. 인식교육, 지식교육만 앞서나간다고 사실 크게 좋아진 게 뭔가. 그렇게
한글을 일찍 깨우쳐도 우리의 중·고등학생 평균 독서수준은 초등학교 5,6학년
수준에 머물러있는 것이 현실 아닌가. 우리 교육은 왜 늘 정작 중요한 것을
다 놓치고 고래심줄같이 뻣뻣한 속대궁만 핥고 있는지 모르겠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내가 아니라도 우리 교육을 걱정하는 분이라면 모두 한마디씩 했을
부분이라 더 말해봐야 공허한 울림일 뿐이다.
어제 아침 소미는 또 학원을 안 가겠다고 했다. 그 까닭은 '우유가 먹기 싫어서'였다.
에구, 이 엄마의 침튀기는 설전을 부끄럽게 만드는 왕변덕이었다. 그리고 공부는
하지 말랬더니 또 쪼끔 하겠다나?
그런데 학원에서 돌아와서 하는 말은 더 어이없었다.
"엄마, 나 미술학원 많이 다닐 거예요. 오늘 공부도 했어요. 엄마, 소미 증말 이쁘죠?"
"그래, 엄마는 소미가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미술학원 다니면 정말 행복하겠다. 정말."
갑자기 엄마와 떨어져 있는 시간이 생긴 것이 싫은 게 분명했다. 지금은 그 적응
기간이라고 결론지었다. 어느 아이나 처음 얼마간은 고생을 하듯.
앞으로 또다시 두고 보아야겠다.
미술학원에 다니기 시작한 지 일주일만에 학원에 안 가고 싶다고 한 것이다.
아이의 변덕을 받아줄 마음을 미리 준비했는데도, 그 소리를 처음 듣는 순간
가슴까지 덜컥하고 말았다. 완강하게 울면서 안 가겠다는 것도 아니었고 그저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안 가겠다고 한 것뿐이었는데 말이다.
학원비도 처음이라 이것저것 합해서 거금 14만원을 미리 냈고, 이럴 바에야 아예
시작도 안 했지 싶었고, 이제 벌써 나는 한 아이만 돌봐도 되는 네 시간의 여유와
평화, 그 달콤함을 알아버린 터였다. 그래도 금요일엔 수영장, 월요일엔 8월에
태어난 아이들의 생일파티가 연달아 있어서 그나마 설득에 여유가 있었다.
하고 싶다고 얼른 하게 하고 하기 싫다고 냉큼 그만 두라 하면 앞으로 좋은
습관은 못 들일 것 같아서라도 최선의 설득은 필요했다.
"소미야, 네가 가고 싶어했던 곳이잖아. 자알 다녀야지 유치원도 다니는 거야"하면서
내 형편을 챙기다가 얼마 안 있어서 중요한 질문은 쏙 빼놓았다는 걸 깨달았다.
'왜 안 가고 싶은 건지'를 안 물었다. 소미가 숙기가 없는 탓에 친구들과 잘
어울리질 못해서 재미를 못 느끼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하며 중요한 그 질문을 했다.
"소미야, 왜 안 가고 싶은 건데? 엄만 그걸 알고 싶어."
"왜냐면요, 공부하기 싫어서요."
"응? 공부?"
학습지를 말하는 것 같았다. 선생님이 뭐 막 들어온 어린애에게 어거지로 진도를
정해 힘겹게 가르치는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다만 이제까지 룰루랄라 엄마와
규칙없이 놀던 습관이 든 소미에겐 힘이 드는 노릇인 것만은 분명했다.
"그래? 그러면 엄마가 선생님께 우리 소미 공부는 좀 안하게 해달라고 말씀드릴게.
하고 싶을 때만 조금 할 수 있게 도와주시라고 말씀드릴게. 그러면 되겠지?"
그러면서 또 하루 학원을 보냈다.
학원 가던 첫날 원장을 만나니 자기네 학원에서는 일년 동안 공부할 학습지를 한 가지
골랐다고 했다. 언어영역과 수학영역이 있는 것 같았는데 자세히 보지 않은 게
지금에야 후회된다. 사실 난 그 정보를 미리 알았을 때 그것 때문에 학원을
보내는 문제에 대해 고민했었다.
아직 소미는 아무런 학습지도 안 한다. 그냥 놀린다. 맘껏 놀게 한다. 유아용 학습지
판매사원은 그런 나를 보면서 '이런 맹한 엄마가 다 있나? 지금이 어떤 시대라고
아직 아무것도 안 시키고 있냐'는 얼굴과 말투지만 나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애들이 더 커도 그렇게 여유만만할 수 있는지 보자는 투로 돌아가는 사람도
있었다.
소미의 머리에 대해 어떤 자신감과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전문가의
소견은 어디 갔든지 간에 순전히 내 독단적인 생각으론 이 시기에 그런 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루종일 '오줌이 나올 것 같이'(소미 표현)
깔깔대며 웃고 뛰놀아도 모자랄 나이에 어디 책상 앞에 잡아 앉혀놓고 지식교육을
시키는가 싶은 것이 여러 번 생각해도 싫었다.
아무리 놀면서 배운다, 단순히 지식교육은 아니다, 창의력과 EQ를 길러준다, 이건
공부가 아니다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대부분 초등학교, 중·고등학교의 지식교육을
흠모하는 전초전으로 밖에 보이지 않으니 '그런 무식한 편견을?'하는 분도
있을지는 모르겠다.
누런 갱지를 흑표지로 묶어서 가로 줄긋기, 세로 줄긋기, 물결무늬, 톱니무늬 들을
그리며 초등학생 1학년 첫달을 보냈던 시절이 생각난다. 아니지. 그게 먼저가 아니라
운동장에서 앞으로 나란히, 옆으로 나란히 뭐 이런 것들을 했었다. 그런데
요즘은 턱하니 알림장부터 꺼내게 한단다. 다 한글은 깨쳤을 것으로 알고 집에
가서 해 가지고 올 숙제나 준비물을 알림장에 쓰게 한다는 것이다.
며칠 전 통화를 한 어떤 아이 엄마 말을 듣자니 유치원 여름방학 숙제로 학습지
네 권, 그림일기, 견학사진들이 붙은 가족신문 들을 받았단다. 나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너무 흥분한 나머지 거침없이 "어휴, 다 미쳤어, 다 뭐에 홀렸어"했다.
유치원 방학숙제가 있다는 소리도 처음이고 엄마가 해야 하는 그 모든 숙제가
어처구니없었다.
내가 왜 다 늙은이같이 소미의 학습지 이야기에서 삼천포로 빠져 시대착오적, 세대
차이적 독설을 하나 싶지만, 평소 이 부분에 대해서 안타까운 마음을 많이 갖고
있었다. 인식교육, 지식교육만 앞서나간다고 사실 크게 좋아진 게 뭔가. 그렇게
한글을 일찍 깨우쳐도 우리의 중·고등학생 평균 독서수준은 초등학교 5,6학년
수준에 머물러있는 것이 현실 아닌가. 우리 교육은 왜 늘 정작 중요한 것을
다 놓치고 고래심줄같이 뻣뻣한 속대궁만 핥고 있는지 모르겠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내가 아니라도 우리 교육을 걱정하는 분이라면 모두 한마디씩 했을
부분이라 더 말해봐야 공허한 울림일 뿐이다.
어제 아침 소미는 또 학원을 안 가겠다고 했다. 그 까닭은 '우유가 먹기 싫어서'였다.
에구, 이 엄마의 침튀기는 설전을 부끄럽게 만드는 왕변덕이었다. 그리고 공부는
하지 말랬더니 또 쪼끔 하겠다나?
그런데 학원에서 돌아와서 하는 말은 더 어이없었다.
"엄마, 나 미술학원 많이 다닐 거예요. 오늘 공부도 했어요. 엄마, 소미 증말 이쁘죠?"
"그래, 엄마는 소미가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미술학원 다니면 정말 행복하겠다. 정말."
갑자기 엄마와 떨어져 있는 시간이 생긴 것이 싫은 게 분명했다. 지금은 그 적응
기간이라고 결론지었다. 어느 아이나 처음 얼마간은 고생을 하듯.
앞으로 또다시 두고 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