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충전소

냄새의 여왕

M.미카엘라 2002. 7. 12. 21:16
참 여러 가지 고민과 갈등 끝에 이 글을 쓴다. 지금이야 별 문제될 것 없지만 이 담에
소은이가 커서 이 글을 읽게 된다면 그 시달림을 어찌 당할까 벌써부터 두렵기 때문이다.
아무리 어릴 적이라도 그렇게 딸의 프라이버시를 배려 안 했느냐, 전 세계 네트워크인 인터넷에
올리다니 난 이제 시집 다 갔다, 엄마가 나 끝까지 책임져라 이러면서 들고 나온다면…….
그래도 난 쓰고 싶다. 왜? 소은이의 체취(?)를 남겨야 하니까. 육아일기 아닌가? 흐흐.

남편과 내가 서로 의미 있게 눈을 마주보며 부르는 소은이의 별명이 있다. '냄새의 여왕'.
냄새를 잘 맡아서가 아니라 소미와 달리 여러 가지 '냄새로 어필'하기 때문이다.

먼저 입 냄새.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입 냄새가 많이 난다. 물론 누구나 입술 딱 붙이고 자면 입 냄새는
나는 법. 이가 나기 전 아기들은 입 냄새라는 게 없지만 이가 나고 어른들이 먹는 음식을
하나하나 다 먹기 시작하면서 응가 냄새와 입 냄새의 역사는 시작된다. 그런데 소은이는 음식을
가리지 않고 골고루 먹는 소미보다 입 냄새가 훨씬 많이 난다. 참고로 두 아이 모두 이는
아주 가지런히 났고 충치도 하나 없다. 내가 자주 어금니까지 샅샅이 점검하는데 아직까지
치아건강은 별 탈이 없어 보인다. 내가 지난밤에 이를 안 닦였나 싶어서 곰곰이 돌아보면
닦였는데도 그렇다. 같은 시간에 소미에게도 "화∼" 해보라고 시키는데, 그 아침에도 소미는
냄새가 별로 안 난다.

알고 보니 문제는 늘 혀였다. 혀 닦는 일에 익숙하지 못한 아이들이라 헛구역질에 눈물까지
글썽이며 괴로워하는데 안 닦을 수가 없다. 혀를 닦아내면 냄새가 말끔히 사라지는데 어찌
안 닦겠는가. 자고 난 아침에도 훨씬 좋다. 소미는 이제 알아서 잘 닦는데 소은이는 이 닦을
때마다 생난리를 하니 어떤 때는 칫솔을 혀끝만 대보고 마는 때도 간혹 있다.

"성당 가야 되는데 소은아 이 좀 닦자."
"왜에? 히니 입에서 냄새 난다고 이모들이 '에구, 히니 냄새 나서 안아주기도 싫다' 그래?"
참, 말은 잘 하면서 막상 욕실에 데리고 들어가려면 어디 못 갈 데라도 가는 사람 마냥
꽁무니를 뺀다.

그리고 두 번째는 쉬 냄새다. 아, 이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어떤 형태(냄새를 형태로 나타낼
수 없지만)로든 자세히 묘사하진 않겠다. 이건 정말 프라이버시 문제니까. 나나 남편 같은
어른이 볼일을 보고 난 후보다 몇 배는 훨씬 강렬(?)하다는 것만 일러두겠다.

암튼 간혹 볼일을 보고 변기의 물을 내리지 않는 실수는 하는데 다른 사람 소변은 변기의
물 색깔을 보고 물을 안 내렸구나 알아차리지만, 소은이 쉬는 욕실 문이 아주 빼꼼하게 열려
있어도 그 옆을 지나면서 알 수 있다. 문을 열자마자 변기가 자리한 욕실구조상 그렇기도
하지만, 물을 다 내리고 나도 계속 냄새가 진동을 할 때는 변기나 바닥 어딘가에 묻어있을
소은이 쉬를 의심해야 한다. 분명 변기물로 씻어낼 수 없는 곳에 한 두 방울만 묻어있어도
온통 쉬 냄새가 진동을 하는데 정말 괴롭다. 그 냄새의 진원지인 한두 방울을 찾아내지 못하면
그냥 그날은 전체 욕실 청소로 돌입한다. 어딘지 모르니 이리 저리 조금씩 물 뿌리면서 찾다가
전체를 다 할 밖에.

그런데 여기서 우리 소은이를 그냥 '창피'의 구렁텅이에 빠뜨리고 모른 척할 수 없다. 나는
소은이의 쉬 냄새가 진한(?) 까닭이 쉬 습관에서 온다고 믿는 편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소은이는 하루에 많아야 다섯 차례, 보통 서너 차례 정도만 쉬를 한다. 웬만한 어른보다도 더 횟수가
적다. 전날 아무리 수박을 먹고 우유를 먹고 자도 밤에 요를 적시는 경우는 없다. 소미는 수박을
먹은 저녁이면 그날 밤 내가 한 차례 화장실에 데리고 간다. 안 그러면 실수를 하기 쉽다.
그런데 소은이는 수박과 우유를 먹고도 다음날 아홉 시쯤 일어나서는 정작 쉬는 한 시간 쯤
후인 10시쯤 한다. 그리고 그 다음 쉬는 오후 3시나 4시쯤 한다. 난 너무 놀라워 생체리듬,
혹은 신진대사 뭐 이런 것의 특별함에 감탄을 하고 만다.

결론으로 이런 특별함은 쉬를 고농축으로 가게 만들었을 것이고 오래 몸 속에 두고 보니
냄새가 좀 과해진 것이 아닌가 미루어 짐작한다. 한 때는 너무 염려가 되어 한 종합병원 홈
페이지에서 소아과에 상담의 글을 올린 적이 있었다. 병원 파업으로 답장은 올라오지 않았
는데 지금은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색깔이 나쁜 것도 아니고 여전히 잘 먹고 별 이상이 없기
때문이다. 밤에 요도 안 적시지, 하루 중 장시간 외출해도 집을 나서기 전 한번만 볼일을 보면
돌아올 때까지 쉬 마렵단 말 안 하지 하니, 그게 이뻐서 그냥 그 지독한 냄새는 달게(?) 참기로
했다.

그런데 어제 저녁. 일곱 시쯤 놀이터에서 돌아온 소미와 소은이를 물 받아놓은 욕조로 몰아
넣는데, 소은이의 하늘색 원피스를 훌렁 걷어올리는 순간 수상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쉬를
저렸나 싶었은데 그게 아니었다. 큰놈이었다. 얼마나 열심히 놀았는지 저도 모르게 쬐끔 나온
응가를 채 느끼지도 못했는가 보았다. 그 엉덩이를 해가지고 그네 타고, 쿵쿵 엉덩방아 재미
있게 찧으며 시소 타고, 주루룩 미끄럼 마찰까지…… (으∼)

다행히 '냄새의 여왕님' 납시신 곳이 사방팔방 훤한 야전이었던 터라 그 고약한 냄새는 그냥
치마 속에서 이리저리 분산되고 말았던 모양이었다. 그 누구도, 자기자신도 눈치채지 못했으니
말이다. 하마터면 '냄새의 여왕'이라는 우아한 '애칭'이 고약한 '똥싸개'로 온 동네에 삽시간에
퍼질 뻔한 위기였다.

소은이는 어제 오늘 계속 밤에 잠을 설친다. 낮에 워낙 격렬하게 놀다보니 밤잠이 평화롭지
못하다. 징징대다가 뭐라고 싸워대는 잠꼬대를 하다가, 배가 아프다, 다리가 아프다고 하다가는
다시 모로 누우며 큰 베개에 다리와 팔 하나를 척 걸치고 얌냠 쩝쩝대며 잔다. 밖에 나가면
소미는 어느 정도 놀다 들어와도 소은이는 저 혼자도 커다란 애들과 한참을 잘도 놀고 늦게나
어기적거리며 들어오니 안 피곤할 수가 없을 것이다.

사춘기를 지나 대학에라도 진학한 여대생이 되었을 때 소은이는 이 글을 보고 "어머? 내가
언제? 내가 엄마 땜에 못 살아!"할까. 그 때는 이미 서너 가지의 향수는 기본으로 구비해놓고
오늘은 플로랄 계열, 내일은 싱그러운 우디 계열 이러면서 멋을 내겠지. 남자친구랑 함께 쓸
커플향수 사려고 돈을 모으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것보다도, 내 욕심으론 그때쯤이면 특별히 뿌리지 않아도 언제나 자기만의 독특한
향기를 갖길 바래보는데……그러기엔 너무 젊고 자유로워 아직 어떤 한 가지 향기가 머물기
어려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