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푸근했던 속초여행
따라 소미는 감기에 걸려 전날 하루종일 40도 열에 들뜬 몸을 간신히 식혀 동해로
가는 여행길에 몸을 실었다.
참 이기적이고 한심하다 싶은 생각이 마음속에서 꿈틀대며 나를 불편하게 했지만
모른 척 무시해버렸다. 이제 곧 겨울바람이 불어올 텐데
그렇게 되면 여행은 고사하고
이 두 아이를 데리고 외출하는 일도 여의치 않겠단 생각에 나도 좀 살자,
나도 바람 좀 쐬고 에너지 좀
빵빵하게 채워 넣자 하는 마음으로 길떠남을 감행한
것이다.
남편도 여름 내내 휴가도 없이 보내고 오랜만에 받은 며칠 외박기간을 그냥 보내기
아쉬워했다. 티코에 우리 식구 모두 타고 길을 떠날
때까지도 남편은 전화로
끊임없이 부대에 뭔가를 지시하고 지시받는 눈치였다. 그 통에 짜증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그래도 이런
시간이 주어진 걸 감지덕지하며 "우리 빨리
여기를 벗어나야겠다. 나 이러다가 못 갈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하면서
그래도
유쾌한 척, 부드럽게 재촉했다. 불쾌한 마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봐야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것도 아닐 텐데, 남편의 짜증만 괜시리 불러내어
서로
기분 상할까봐 꾹꾹 참았다.
아이들은 그래도 열만 내리면 얼굴은 핼쓱해도 명랑하고 즐겁다. 아침에 밥도 먹고
힘이 나는지 소미는 제법 재잘대다가 이내 카시트에서
잠들었다. 오대산을 넘는
진고개 길은 맑았고 바람도 적고 따뜻해서 우리 딸들 감기에 대한 걱정이 줄었다.
10월초, 산은 아직 완연한 가을산으로서 제 빛을 다 내진 못했지만 드문드문 보이는
단풍은 축제의 전야제처럼 마음을 들뜨게 하기
충분했다. 그리고 충청도와 경기도
경계에 사는 내가 보기엔 강원도의 가을은 발목까지 푹 빠지게 깊어있었다.
고구마를 불 속에 넣었을
때 겉껍질 정도가 슬쩍 익어가면서 나는 설익은 구수함이
풍경 곳곳에 있었다. 창문을 턱 열어놓고 마음껏 바람을 내 폐속에
모아두고
싶단 생각을 했지만 좀 더워도 그렇게 하기엔 기침하는 딸들 때문에 쉽지
않았다.
진고개 정상에서 주문진을 향해 구불구불 내달리는데 소은이가 조금 토했다. 기침을
간간이 하면서 우리를 긴장시키는 가운데 멀미를 한
모양이었다. 얼른 간이 휴게소에서
내리니 얼굴이 허옇게 보였는데 맑은 산 공기에 금방 생기를 찾았다.
원통에서 돌 이전 시기를
보냈던 소미는 장거리에는 이골이 났고 멀미라곤 한
적이 없는데, 소은이는 이번이 태어나서 가장 먼 거리인 탓인지 힘이 든 것
같았다.
주의를 기울였지만 무엇보다 차 안 공기가 너무 더웠다.
바다를 마주하고 주문진항에서 비릿한 냄새를 정겹게 맡으니 내 고향이 이쯤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남편과 나는 회덮밥을 맛있게 한 그릇
비우고 목을 축이라고 나온
미역국에 소미, 소은이도 배불리 밥을 먹었다. 수족관에서 어슬렁이며 노니는
큰 물고기를 보며 두 애들은
신기하고 재밌어서 어쩔 줄 몰랐다. 남편은 여행지에서
만든 딸답게 소미가 집 밖에 나오니 한층 생기가 나는 것 같다며 좋아했다.
우린
소미를 남해에서 만들었다(?).
오징어가 곳곳에 널려있고 바다바람도 찬 기운 없이 부드러웠다. 소미에게 찬바람에
대한 염려가 지나쳐 마스크를 해주었는데 벗어 던지게
했다. 이런 공기가 훨씬
더 좋겠다 싶었다. 바다가 바로 아래서 파도치고 소미와 소은이를 시멘트로 발라
둑처럼 만든 넓은 난간에
남편과 내가 하나씩 붙들고서 앉혔다. 다리를 건들거리며
두 아이는 강한 햇빛 탓에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소리 지르고 좋아했다.
어디
아이들뿐인가. 그동안 좀이 쑤셨던 우리 부부도 히히낙낙 좋아서 입이
귀밑에 걸릴 지경이었다.
해안 길을 따라서 양양으로 달렸다. 곳곳에 양양송이축제를 알리는 현수막과 포스터가
붙어있고 아직 자연산 송이 실물구경도 못해봤단 내
말에 남편은 불쌍하다며
어디서 구해다 주겠다나? 그 독특한 향이 끝내준다고 말하는데 어쩐지 약올리는
소리처럼 들렸다. 일본사람들이
송이를 보면 환장한다는데 양양송이축제엔
일본인이 그리도 많고, 송이따기 행사는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참가할 수 없을
정도로 인기가
높단다.
한계령을 넘었다. 깊은 골짜기마다 서늘한 가을이 차곡차곡 차오르고 우리는 운좋게
그 짙고 옅은 오묘한 산빛깔을 온전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날씨가 너무 좋았다.
하늘이 이번 여행을 도우신다 생각했다. 두 아이는 잠들어 아쉽게 구경시키지
못했다. 남편과 나는
커피를 한 잔하면서 둘 다 오랜만에 여유를 누렸다. 평화가
우리 어깨에 무게를 느끼지 못하게 살포시 내려앉은 걸 느꼈다.
여기 살 때가 그리워져 바다를 핑계삼아 이리로 시적시적 기어온 우리를 기다리는
분에게 전화를 했다. 한계령인데 곧 도착하게 될 것
같다니 반갑게 어서 오라신다.
난 지 두 달된 소미를 꼭 싸서 안고 우리가 어머님 곁에서 정식으로 살림을
나서 새 보금자리를 꾸민
곳이 인제군 북면 원통리. 딱 1년을 살고 지금 장호원으로
남편 따라 이사를 왔지만 우린 원통을 고향처럼 생각한다. 사람들이 그렇게
친정처럼 편했다. 만 2년만에 왔다.
설악산이 멀리 보이고 햇볕에 소미 기저귀 빨아서 하얗게 널어놓던 마당, 그 아담한
관사엔 다른 사람이 살고 있지만 여전히 그때 살던
이웃들은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음식에 관한 한 솜씨 좋고 손 빠르고 큰음식 척척해내셔서 이사온 지
한 달밖에 안된 소미에게
백일잔치상을 도맡아 준비해주셨던 네 자매 어머니,
나와 격의 없이 지냈던 태수네는 그 모습 그대로 살면서 어제 만난 사람들처럼
우리를 맞았다.
오징어회에 그 귀한 송이를 차려내 오시고 양껏 먹게 해주셨으니 참 감격스러웠다.
남편은 이제 송이 구해오지 않아도 되겠다며 양양을
지나오면서 나누었던 대화를
꺼냈다. 생것으로 죽죽 찢어 그 향, 그 영양 그대로 먹었다. 연한 고기를 씹는
맛인데 그 향은 어떤
푸성귀와도 비슷하지 않은 특별한 향이었다.
태수네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다시 미시령을 넘었다. 그리도 햇볕이 좋고 코스모스
꽃길이 너무 아름다웠는데 정작 미시령 정상은 구름
가득해서 속초가 한눈에
내려다보이지 않은 점이 아쉬웠다. 다시 주문진으로 달려가 물기 가시게 마른
가자미며 오징어, 코다리를
사들고 다시 바다바람 맞으며 돌아왔다. 대관령을 넘을
즈음 날은 어두워지고 우리의 1박 2일 짧은 여행은 막을 내렸다. 좀 아쉬운
것은
생선을 좀 많이 사와서 이웃과 나눌 걸 하는 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