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배 새끼도 오랭이조랭이
이 말은 친정엄마가 잘 하신다. '오랭이조랭이'가 정확하게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
겠지만 한 배에서 난 자식들이라도 하나하나 모두 다르게 이런 놈이 있고 저런
놈이 있다는 뜻으로 보인다. 엄마는 모두 8남매를 낳으셨고 둘째(아들)를 세
살에, 여섯째(딸)를 중학교 3학년까지 길러서 병으로 잃으셨다.
이야기가 좀 다른 곳으로 잠시 흐르지만, 나는 셋째 언니가 죽던 날은 기억한다.
나는 국민학교 1학년이었는데 언니는 방에 누워서
식구들을 하나 둘 모두 보길
청했다. 그런데 나는 언니의 마지막 청을 들어주지 않았다. 죽음의 그림자를
느꼈는지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한사코 방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애꿎은 앵두나무 갈라진 가지 사이에 올라서서 나무만 흔들흔들하며 잠자코
있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왜 그랬는지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요즘은 자식이 많다 하면 셋 정도고 아니면 하나, 둘이 보통인데 나는 고작 성별도
같은 자식 둘을 기르면서 이즈음 엄마의 이 말씀이
자주 생각난다. 서로 닮아도
너무 많이 닮았다는 이야기를 곧잘 듣는 소미와 소은이지만 요즘 점점 면면이
아주 다른 기질을 가지고
있는 걸 자주 느낀다.
이것은 보통 여러분들이 말씀하시는 첫 아이와 둘째 아이가 가지는 서열상에서 오는
전형적인 차이일 수도 있고, 아니면 성격이 서서히
나타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떤 것이 먼저에 속하고 어떤 것이 나중에 속하는지는 그 역시 잘 모르겠지만
기질이나 성격이 다른 두
아이를 보는 일은 즐겁다.
소은이는 넉살이 늘었다. 낯가림이 많이 줄었고 처음 보는 어떤 사람에겐 슬금슬금
장난칠 궁리까지 한다. 소미에게 제법 철썩 맞아도 잘
울지 않다가, 말귀를 거의
알아듣게 되니 소미가 "너 미워! 너 욕심쟁이야" 그러면 뒤뚱뒤뚱 걸어가 갑자기
소미 얼굴을 철썩
때리기도 한다. 대체로 순한 편인데도 뭐가 맘에 안 맞아
심술이 나면 더 가관이다.
소꿉놀이가 잔뜩 든 놀이용 쇼핑카트를 확 넘어뜨려서는 잡히는 것을 휙휙 내던진다.
그러다가 얼굴에 심술기를 덕지덕지 붙이고 씩씩대며
벌렁 누워서는 허리를 떼고
정수리가 벽에 부딪칠 때까지 발꿈치로 방바닥을 밀며 떼쓰듯 움직인다. 남편이
이 모습을 처음 보곤 무척
놀라워했다.
그러다가도 먹을 것만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달려들어 그 먹을거리가 바닥이
나던지 아예 상을 치울 때까지 먹어대니 얼마나 웃긴지
모른다. 소미는 입이 짧아
많이 안 먹어서 탈, 소은이는 너무 먹는 거 아닌가 싶게 배가 빵빵하도록 연신
먹어서 탈이니 참으로
고르지도 않다.
오늘도 좀 늦은 아침으로 닭다리 살 잘게 찢어서 밥 한 그릇 다 먹으며 국국물을
그리도 마셔대더니 짜먹는 요구르트 한 개, 과자
그릇에 덜어준 과자까지 한 개도
안 남기고 다 먹었다. 그러더니 조금 있다가 응가한다고 화장실 문을 두드려서
변기에 앉혀놓으니
시원하게 볼일을 보았다.
이런 경우 이건 완전히 '밀어내기'나 마찬가지다. 똥꼬 밖으로 나오기 직전의 놈들이
위에서 들어오는 음식물 때문에 밀려나는. 그
정도로 먹을 걸 입에 달고 살려고
한다. 몸살이 났을 때도 누워서만 있다가도 배고프면 "밥! 밥!" 거리고 먹을
때는 발딱
일어나서 먹고, 다 먹은 후엔 엉금엉금 기어가서 다시 풀썩 엎드려버렸다.
조금 전 화장실에서 나와서 아주 조금 놀다가 곧 잠들었다.
뭐든 묻어보면 싫은지 좋은지가 분명해서 "응"하면서 고개를 앞으로 까닥까닥, 옆으로
살래살래 해서 내가 아주 편하다. 사과는 깎아서
잘라주면 난리가 난다. 통째로
주던지 최소한 반으로 뚝 잘라서 줘야만 받는다. 과자를 보통 그릇에 먹일 만큼
덜어서 주지만,
소미와 나누어 줄 때는 그릇에 던 것을 소은이에게 주고 봉지
것을 소미에게 주는데 죽어라 봉지 것을 먹겠다고 울고불고 한다. 한 그릇에만
덜어서 주면서 "같이 먹어라"하면 그릇을 꼭 제 가랑이 사이에 두고만 먹으려고
해서 소미의 화를 돋군다.
그리고 도대체 먹여주는 밥은 먹질 않는다. 밥상 치우는 일보다 소은이 옷이며 발바닥,
방바닥에 묻은 밥풀들을 치우는 일이 배로 일이
많지만, 수저를 들어서 먹여주려면
밥상머리를 손으로 탁탁 치면서 숟가락을 제 앞에 놓으라고 하며 징징대니
그 꼴도 못 본다. 그
무수한 소은이 밥, 국, 간식이 뒤범벅된 뒷설거지를 하다보니
요즘은 숟가락질을 제법 잘 한다. 다섯 번에 세 번 정도는 먹을 만하게
입으로
정확하게 조준한다.
이 모든 행동은 소미가 15개월 무렵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말귀를 그렇게
다 알아듣지도 못했고 누굴 때리기는커녕 자기 장난감도
빼앗기기 일쑤였다. 먹여주는
대로 먹고 잘 남기고 지금도 가끔 "엄마가 먹여주세요" 하길 잘 한다. 화난다고
물건을 집어던지는 일도
없었고 욕심을 부리는 걸 별로 못 봤다. 이제 동생이
생기고 나서 좀 사나워지긴 했지만 제 아빠는 '잘 보면 아직도 물'이라고 했다.
그런데 얼마 전에 남편이 자꾸 장난감 정리하라고 잔소리를 하니 뭘 가위로 오리고
있다가 "아빠 가위로 숭덩숭덩 자를 거야"하는
엽기적인 말을 해서 제 아빠를 충격 속에
몰아넣은 일이 있었다. 내가 매를 들어 종아리 약간 아랫부분을 아프게 때렸다.
울지도
않았다. 얼굴이 허옇게 되어서 잘못했다고 했다. 여느 때 같으면 조금만
뭐라 해도 찡찡 우는 소리를 했을 터인데 끽소리도 안 했다.
"아빠를 가위로 숭덩숭덩 자르면 어떻게 되겠어? 엉?"
"피나요."
"피만 나는 게 아냐. 아빠를 못 보는 거야. 아빠가
소미에게 뽀뽀도 못해주고 안아
주지도 못해. 얼마나 끔찍하고 무서운 일 인줄 알아?"
"……."
"소미 그리고 요즘 자주
소은이한테 '너, 죽어볼래?'하는 말을 하더라. 얼마나 나쁜
말인 줄 알아? 나쁜 말인 줄 알면서 하는 건 더 나쁜 일이야."
나도
남편도 크게 마음에 나쁜 감정을 두고 한 말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으나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야단하는 어른이 없어서도 안되겠다
싶었다.
미운털이 좀 성기게 박힌다 했더니 요즘은 진짜 미운 때가 다가오는지 더욱 촘촘
해지는구나 싶다. 때마다 반대의사에 비틀기, 심술이
늘었다. 전엔 좀 칭찬해주고
추켜세우고 하면 금방 부드럽고 나긋해지더니 이젠 어림도 없었다. 그래도 가끔씩
선생님이 슬퍼 보여요,
기분이 좋아 보여요, 엄마 화나는 일 있어요? 엄마
속상해요? 엄마 눈물이 날 것 같이 좋아요? 라는 말로 다른 사람의 감정 살핀
바를 표현하니 진짜 얄밉다가도 그냥 풀린다.
한 배 새끼도 오랭이조랭이. 그래서 열이면 열, 다섯이면 다섯, 둘이면 둘 색색 가지
맛이 달라 자식 기르기가 더 즐거운가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