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정원

편지 - 긴 변명, 그리고 새해인사

M.미카엘라 2002. 12. 28. 22:14
*** 아래 편지는 독자님들께 전체 메일로 보내드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정보공개를 하지 않으셔서
메일이 가지 않았을 님들께도 보여드리고 싶고
요즘 너무 정신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제 형편을 변명하며 새해인사도 드릴 겸
이렇게 육아일기를 대신하여 올립니다.
여러 님들께서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여기 철원은 나흘 사이에 두 차례
아주 많은 눈이 내렸습니다.
동네에서 외지로 나가는 길이 크게 세 갈래인데
그 중 두 군데는 꼬불꼬불 재를 넘어야 하니
엄두도 못 낼 일이고
한 군데는 좀 멀리 돌아가는 길이 되어
오늘같이 꽁꽁 얼어붙은 날은
부담이 되는 건 마찬가지랍니다.

그래도 지금 이 형편을 즐겨보려고 합니다.

 

이렇게 뒷산 소나무 가지가 찢어질 듯
두툼하게 눈을 이고 있는 모습은
참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을씨년스럽고 스산한 시골 마을을
단숨에 포근하고 이국적인 모습으로 바꾸어놓았습니다.
크리스마스 카드 속에나 있을 법한 모습입니다.

그동안 제가 너무 게으름이 심했었지요?
육아일기 업데이트가 한없이 늦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성탄인사도 제대로 못 드렸습니다.

11월, 12월 한 달 반 정도를 1인 선거운동으로 다 보내면서
제 모습이 너무 낯설다는 반응이 터져나오는 것은 보통이고
제 의지는 아니었지만 몇몇 가까운 사람들과
갈등하는 상황까지도 갔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이런 경험이 누구의 강요에 따른 것도 아니고
제 스스로, 혼자서, 마음에서 우러나 한 '짓'이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사회 전반으로 건설적인 관심이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하니 더 잘 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저이지만 육아일기 다 팽개치고
소미, 소은이에게 빵이나 던져주면서
사회활동에 뛰어드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호호!)

이번 경험을 통해서
사람들이 각자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자기 역할을 충실히 일관되게 하는 일이
얼마나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것인가를
조금은 알게 되었거든요.
정치도 정치인이 제 할 도리, 제 역할을 못하고
직무유기한 데서 국민들의 혐오가 싹튼 것이니까요.

그런데 저는 선거후유증이 생각보다 심각합니다.
써야 할 원고(집에서 아르바이트로 하는)는 잔뜩 밀려서 독촉 받는 형편이고
며칠 후엔 곧 다시 살림을 꾸려 이사를 가야 하는데
아무리 포장이사를 한다 해도
이것저것 자잘하게 해야 할 일들이 넘칩니다.

아이들 유치원에서 하는 재롱잔치와 성탄절 행사가 끝나면서
아이들의 방학이 이어지고,
헤어지며 아쉬운 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작은 선물도 준비해야 하고
떠날 때가 되니 여기 저기 여러 이웃들이
밥이나 한 끼 먹자고 하시니
그 또한 감사하게 생각하며 꼭 해야 할 일입니다.

어디로 가는지 궁금하시다구요?
성남으로 갑니다.
전화번호도 서울 번호를 쓰는 서울 인접지역이지요.

'소미네 출세했다' 하고 계신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원통 - 장호원(이천) - 철원 - 서울로 이어지는 여정이니
참으로 출세라면 출세했지요.

그러나 걱정도 만만치 않습니다.
기초생활비도 많이 들고
교육비도 여기와는 또 다르게 비쌀 테니까요.
아무리 절약하려 한다 해도
기본적으로 좋은 물건 사고 즐기고 할 환경이 없는 이곳과는
소비패턴이 아주 다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이들 건사하는 문제에 더 신경이 쓰일 듯합니다.

참 정신이 없습니다.
이사 전에 육아일기 한 편 올리고 싶은데
제대로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꼭 노력하겠습니다.

1년만에 다시 새로운 동네에 둥지를 트는 소미네 식구에게
변함없이 관심 가져 주시길 바라며
성탄 인사, 새해 인사 이 자리에서 한꺼번에 드리겠습니다.

독자님의 가정에 건강한 기운이 가득하길 비오며
새해에는 작은 소망들이 연이어 꾸준히 이루어져
다른 어떤 해보다 행복한 날들이 좀더 많으시길 바랍니다.

새해에 저는 다시 전열을 가다듬어 힘차게
아이들 자라는 이야기와 제가 사는 이야기를
성실하게 전해드리겠습니다.

한 해 동안 주신 사랑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양재형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