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충전소

그의 가방과 그녀의 가방

M.미카엘라 2003. 1. 10. 00:15
그의 가방 ******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는 시처럼 나 역시 가야 할 때에 제대로 맞춰서 이 곳을 뜨고 싶었다. 벌써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간다, 며칠 후면 간다, 곧 떠날 것이다'라고 말을 해두었는데, 막상 여러 가지 형편 탓에 이사갈 날짜를 잡지 못하고 차일피일 미루는 심정이 어수선하고 짜증스럽기만 하다. 그렇게 말을 할 때는 정말 곧 그렇게 갈 수 있을 줄 알았다.

남편은 1월 2일 부로 이곳 제3보병사단 백골부대 근무를 마쳤다. 그리고 9일인 오늘, 먼저 성남으로 가서 새 부대로 첫 출근을 했다. 이사 언제 가느냐고 묻는 이웃들에게 같은 대답을 하는데는 이제 좀 민망하기까지 하다.

어제 밤 우리 식구의 식사시간은 조금 침울했다. 집안의 가장이 무슨 전쟁터로 가는 것도 아니고, 이런 일 한 두 번 경험한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전출지를 먼저 찾아드는 남편과의 전날 저녁엔 늘 처음 겪는 듯한 낯선 비장함이 있다. 아이들이야 그런 분위기를 아직 잘 모르지만 적어도 남편과 나는 눈에 띄게 말이 적어진 채 서로 할 일만 하는 게 이 분위기의 특징이다. 쓸쓸함, 긴장, 어수선함, 서글픔 이런 것들이 조금씩 이리저리 섞여서 묘하게도 말을 아끼게 만든다고 할까. 일 년 전, 이천에서 이 철원으로 먼저 떠나는 남편과 그때도 그랬다.

남편은 우리 세 모녀가 이삿짐을 가지고 갈 때까지 혼자 머물 BOQ(독신자숙소)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챙겼다. 세면 도구, 책, 자잘한 생활용품, 속옷, 사복, 양말, 신발, 군복, 가벼운 이불까지. 예의 그 커다란 가방은 차고도 넘쳤다. 본래 여러 개의 테니스 라켓을 넣을 수 있는 좀 큰 가방이었으나, 어디서 생겼는지 난 잘 알지도 못하는 그 가방이 이런 길거나 짧은 이별에 내내 사용되었다.

일년 내내 이 부대에서 입었던 얼룩무늬 전투복은 당분간 입을 일이 없으니 모두 빨아두라고 했다. 새 부대에선 짙은 청록색의 근무복을 입는다. 너무나 추운 곳에서 낮이고 밤이고 새벽이고 없이 순찰이네 뭐네 하면서 다녔던 터라, 전투복 상하, 내의와 목도리, 야상점퍼 속에 입는 솜을 둔 패딩 덧점퍼와 조끼까지, 벗어놓으니 빨랫감이 한 짐이었다. 구겨진 채 아무렇게나 쌓여있는 옷 무더기가 그 어느 해보다 힘겹게, 그러나 열심히 보낸 남편의 한 해 생활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조형물처럼 보였다.

남편의 꽉 찬 가방은 현관에서 가까운 쪽에 놓였다. 그리고 그 옆에 이불보따리. 이것이 유목민 생활 같은 우리 가족의 선발대 살림살이다.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나 남편이 군복을 벗을 즈음, 이 가방은 군생활의 애환을 고스란히 담은 특별한 물건이 되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난 아직 군인가족으로서 더 단련되어야 하나보다. 이사를 열 번 이상, 스무 번 가까이한 가족들이 수두룩한 환경 속에서, 좀 있으면 다시 합쳐질 생활을 두고 이렇게 감상이 길어지니 말이다. 난 멀었다.

그녀의 가방 *****

여기는 창을 열면 그대로 하얀 겨울이다. 얼마 전 몇 차례 많이 내렸던 눈은 군데군데 길만 조금 녹았을 뿐, 다른 곳은 그대로 하얀 채 바로 어제 내린 눈 같다. 며칠 전엔 영하 24도를 기록하는 한파를 피해 며칠 다른 지방에 갔었지만, 조금 풀렸다는 날씨가 이 정도다.

나야 늘 집안에만 있는 사람이니 춥다고 엄살 부릴 자격도 없지만, 여기서 사니 또 그 춥다하는 날씨가 그저 그런 보통의 겨울 날씨처럼 그다지 힘겹게 느껴지지 않는다. 추워도 생각보다 아이들은 거의 아프지 않았고 겨울을 뺀 나머지 계절은 또 더없이 살기 좋은 동네이기도 했다.

일년 전 이 곳으로 이사와서 겨우내 이웃도 모르고 친구도 없이 내복만 입고 하루를 보냈던 소미와 소은이의 모습을 글로 남겼던 일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그런데 요즘 다시 이사간다고 유치원도 접고 집안에 들어앉은 두 아이의 생활이 다시 일년 전과 같다.

내복만 입고 뛰놀던 아이들이 갑자기 소란스러웠다. 소은이가 악을 쓰고 울면서 소미를 따라 다녔다. 사건의 진상은 금새 알 수 있었다. 소미가 소은이의 가방을 빼앗아 들고 다니며 약올리느라 장난스럽게 돌려주지 않는 것이었다. 요즘 소은이의 행동거지로 봐서 이 사건은 거의 목숨을 건(?) 사투와 다름없었다. 최근 소은이의 최대 화두는 '가방'이기 때문이다.

욕심 많은 아이들의 공통점은 '물건 챙기기의 명수'라는 점이다. 자기가 마음에 드는 물건은 확실히 챙겨서 그걸 기막히게 잘 관리(?)한다. '관리'라는 건 좀체 잘 안 잃어버리거나 함부로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이니까 뭘 사줘도 곧 잘 잃어버리겠지'하는 말은 안 통한다. 적어도 소은이에게서 나는 그것을 날마다 확인한다.

소은이의 첫 번째 가방은 국방색(카키색? 쑥색?) 가방이다. 누가 "느이 아빠가 갖다 주시던?"하는 소리를 들을 만큼 군복색깔하고 똑같은 이 가방은 사선으로 어깨에 맬 수 있는 초등학생용 보조가방이다. 소미의 한글선생님이 어린이날에 주신 건데 소은이는 이 가방에 오만가지 물건을 챙겨 넣고 외출할 때는 물론, 집에서 내복만 입고 놀 때도 그 위에 메고 놀았고, 심지어는 잘 때도 이 가방을 메고 잤다.

내가 그 안의 물건을 언제가 슬쩍 본 적이 있었는데 참으로 만물상을 차리고도 남았다. 일회용 밴드 한 상자, 손안에 쏙 들어가는 작은 장난감들, 패스트푸드점에서 주는 1회용 케챱, 겨자소스 봉지 한 무더기, 손수건, 묵주, 입술보호제(요즘 광적으로 이걸 좋아한다), 화장품 샘플, 약병, 휴대용 재떨이, 칫솔 등등. 한 번만 보자고 해도 누가 달라고 할까봐 극구 보여주지 않는 고집 때문에 몰래 구경한 물품들이다.

그 국방색 가방은 좀 컸고 끈도 길어서 거의 끌고 다니는 느낌 때문에 좀 안 메고 다닐 수 없냐고 며칠 동안 사정했는데, 그 다음에 바꾼 가방이 더 가관이었다. 비닐봉지. 이건 며칠 전 남편이 쉴 때 가족 모두가 함께 며칠 어딜 다녀오려던 여행 첫날부터 챙긴 물건이었다. 그 비닐봉지엔 커다랗게 '과식 소화불량엔 속청, 종근당'이라고 인쇄되어 있었다. 이모가 사준 이쁜 분홍색 더플코트를 입고 제법 큰 그 비닐 봉지를 손에 놓지 않는 소은이를 보면 누구라도 웃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중간에 제과점에서 빵을 사고 생긴 예쁜 그림의 작은 봉지를 내밀며 이걸로 좀 바꾸라고 했지만, 끝내 자기는 이게 좋다면 바꾸지 않았다.

"소은아, 엄마가 서울에서 가방 하나 이쁜 걸로 사줄게!"
"아니예요. 돈 들잖아요. 안 사주셔도 돼요."
이게 소은이의 답이었다. 그래도 나는 결국 적당한 크기의 분홍색 캐릭터 가방 하나를 사서 안겼다. 저렇게 잘 들고 다닌다면 안 아깝겠다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안 사줘도 된다고 하더니 씩 웃으면서 "마음에 들어요"했다. 지금도 내 옆에서 노란 내복 위에 그 가방을 착 어깨에 둘러메고 놀고 있다.

잘 때도 메고 자는 건 물론이다. 잠든 후 슬쩍 어깨에서 빼놓은 적이 있었는데 살풋 잠에서 깬 한밤중에 가방 내놓으라고 울고불고 난리를 피웠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밤새 물건들은 안녕한지 확인하느라 지퍼를 열어서 샅샅이 살폈다.

아, 그런데 문제는 소은이가 앞의 국방색 가방과 비닐봉지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하도 욕심 사납게 챙긴 물건이 많아서 분홍색 새 가방에 다 들어가는 일은 애초에 어려웠지만, 나는 소은이가 그 많은 물건 중 선별해서 분홍색 가방을 채우고 나머지는 그냥 장난감 바구니에 섞어두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모두 버리지 않고 다 나누어서 따로 보관할 줄이야.

이 국방색 가방과 비닐봉지는 지금 벽에 붙은 못에 잘 걸어서 모셔두었다. 때때로 생각나면 이 세 가방을 한꺼번에 메고 들고 다니며 헉헉거리며 노는데 참 할 말이 없다. 여행하면서 숱하게 차에 탔다가 내렸다가, 잠들었다가 깨기를 반복하면서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은 물건들이다. 저 애가 커서 뭐가 되려고 저러나 하는 생각, 평소엔 잘 들지 않던 이런 생각도 꼭 저럴 때는 어김없이 다시 하게 된다.

이제 소은이는 다섯 살이 되었다. 그런데 이게 요즘 그녀의 최대 자랑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