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충전소
헌신짝처럼 내던진 자존심
M.미카엘라
2000. 11. 12. 01:14
요 며칠 사이에 있었던 에피소드 두 가지로 시작한다. 아니, 세 가지가 되려나?
"소은아, 엄마 한 입만."
청소를 하려고 오디오에 <가톨릭 군인성가> 테잎을 넣고 부엌 쪽으로 가다가 생쥐처럼
조금 갉아먹고 손에 든 소은이의 굵직한 어린이 간식용 소시지를 한 입 뚝 잘라먹었다.
쬐끄만 제 의자에 앉아서 남은 한 손으로 손바닥만한 그림책을 펼쳐보려고 애쓰고
있던 중, 졸지에 제 소시지를 한 입 빼앗긴 소은이는 기분이 확 상한 표정이었다.
곧이어 들고 있던 소시지를 홱 내팽겨쳤다. 책도 내던지고는 의자 등받이 뒤로 몸을
넘기며 눈을 감고 발을 동동거리며 울었다. 그래도 분이 안 풀리는지 몸을 뻣뻣이 하며
떼를 쓰니 엉덩이가 의자에 붙어있지 않고 몸이 주루루 방바닥으로 미끄러졌다.
"미안, 미안. 인제 안 먹을게. 소은아 진정해. 미안"하면서 얼렁뚱땅 달래보려는데
듣지 않았다. 먹은 걸 도로 뱉아서 다시 붙여놓을 수도 없는데 소은이는 계속 울었다.
결국 새 소시지를 까서 주는 걸로 입을 막았다.
저녁엔 소은이가 밥을 먹다가 "멜! 멜!"한다. 멜? 메일? mail? 전자우편? 모두 "땡!"
이다. '물'이 "댕동댕!"
물을 가지러 부엌으로 가는데 가만있으면 좋으련만 제가 달라고 하는 걸 가지러
일어나면 꼭 따라온다. 무슨 무거운 거나 든다고 제가 도와주지도 못할 거면서. 물을
준다한들 걸어오다가 이리 칠칠, 저리 칠칠 다 흘릴 것이 뻔했다.
내가 한 컵을 들고 와서 상에 올려놓았다. 그런데 소은이가 제 자리에 와서 채 앉기도
전에 소미가 맵다고 먼저 컵을 들어서 한 모금 먹었다. 그런데 그 컵을 채 내려놓기도
전에 난리가 나고 말았다. 울고 불고 쫓아와서 컵을 들었다가 상에 탁탁 놓고 곧
내던질 기세였는데 간신히 빼앗았다. 다시 컵을 들고 가서 물을 따라서 가지고 올
때까지 집안이 떠나가라 울고 소미는 "소은이 넌 욕심쟁이야" 하면서 악을 썼다.
내 요즘은 어찌할꼬 싶다. 밥을 먹어도 먹여주는 건 여간해서 안 먹는다는 말은
앞서서도 했다. 국은 수저로 떠먹기보다 주로 마신다. 컵의 물도 일단 상에 놓아야
제가 들고 먹지, 먹여주는 건 되게 급했을 때나 한두 번 받아먹는다. 김 한 장을 맨
입에 먹으면 짤까 싶어서 반으로 찢어주면 안 받는다. 슬라이스 치즈의 비닐을 다
벗겨서 주면 운다. 벗기는 부분을 찾아서 조금만 벗겨서 주어야 받는다. 네모난 과자를
주다가 가운데가 부러지면 안 받는다.
요구르트 빨대를 제가 꽂겠다고 "흐응, 흐응"하며 따라오는데 내가 '폭'하고 홀딱
꽂아 주었다가 어찌나 눈물 콧물에 악을 쓰며 우는지 한참 애를 먹었다. 처음엔 어찌
달랠지 모르다가 할 수 없이 그건 내가 먹고 새 것을 꺼내 주었더니 울음을 뚝 그치고
받았다. 저 혼자서 빨대를 꽂아보려고 갖은 애를 쓰다가는 결국 앞니로 구멍을 내서
빨아먹을 것을. 쯧쯧. 정말이지 내가 요즘은 소은이 때문에 뭘 맘대로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엊그제 저녁. 저녁밥을 먹고 삼 부녀가 조그만 컵 아이스크림 하나를 두고
머리를 맞댔다. 제 아빠 혼자 먹어도 코끼리 비스킷일 것인데 셋이 눈 부릅뜨고 손에는
모두 티스푼 하나씩 든 꼴이 절로 웃음이 났다. 두 애들은 모두 콧물이 줄줄 나면서도
소파에 앉아서 아이스크림을 든 아빠 손을 좀 내리라고 채근했다.
그런데 그것이, 냉동실에서 막 나온 컵 아이스크림 떠먹기가 어디 쉬운가 말이다.
소미는 그래도 그간 쌓인 노하우가 있어서 얇게 떠내는 법을 알아 얌얌대고 먹는데,
소은이는 그야말로 애가 타고 입이 마를 지경이었다. 제가 무슨 재주로 그 딱딱한
아이스크림을 퍼먹을까. 다른 건 다 제 손으로 먹어도 세상에서 이처럼 맛있는 이건
못 먹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스크림이 점점 줄어가는 컵을 보고 가끔씩 한 번 그것도 쬐끔 떠서 주는 언니와
아빠의 스푼이 감질나기만 했다. '요 달고 시원한 것이 입에 들어오자마자 그냥 사르륵
녹아버리네. 거 참! 쩝!'하는 그 표정이 참 명작이다. 거기다가 제 아빠는 어쩌나 보자
하면서 떠서 줄 것 같이 하다가 자기 입에 쏙 넣고 넣고 하는데 보는 내가 다 안쓰러웠다.
"그만 약 올려. 애가 탄다 정말. 소미야 네가 좀 줘. 소은이 불쌍하잖어."
바로 그때 소은이가 입을 그냥 아이스크림 종이컵에 갖다대는 것이었다. '내가 안 준다고
못 먹을까봐?'하는 것 같았는데, 으익! 그것도 성에 차지 않는지 급기야는 티스푼을
내던지더니 입을 딱 벌리고 "아-, 아-, 아-" 그러고 말았다. 빨리 먹여달라는 말이다.
그 드높았던(?) 자존심을 헌신짝처럼 내던진 것이다. 고 보잘것없는 아이스크림 한 통에
말이다. 방바닥에 굴러다니는 티스푼이 그 증거물이었다. 남편과 나는 두 애들이 잠든
후에도 그 일을 화제 삼아 한참을 웃었다.
소은아, 세상엔 네 맘처럼 되지 않는 게 많단다. 벌써부터 요 아이스크림 하나도
네 맘대로 되어주지 않는구나. 하지만 금방 안 되는 일이라도 조금 시간이 지나면
되는 일도 많으니 너무 실망하지 말렴. 이 아이스크림은 언니만큼만 크면 다 먹을
수 있어. 아니, 내년 여름이면 충분히 네 손으로 먹을 수 있는 걸.

"소은아, 엄마 한 입만."
청소를 하려고 오디오에 <가톨릭 군인성가> 테잎을 넣고 부엌 쪽으로 가다가 생쥐처럼
조금 갉아먹고 손에 든 소은이의 굵직한 어린이 간식용 소시지를 한 입 뚝 잘라먹었다.
쬐끄만 제 의자에 앉아서 남은 한 손으로 손바닥만한 그림책을 펼쳐보려고 애쓰고
있던 중, 졸지에 제 소시지를 한 입 빼앗긴 소은이는 기분이 확 상한 표정이었다.
곧이어 들고 있던 소시지를 홱 내팽겨쳤다. 책도 내던지고는 의자 등받이 뒤로 몸을
넘기며 눈을 감고 발을 동동거리며 울었다. 그래도 분이 안 풀리는지 몸을 뻣뻣이 하며
떼를 쓰니 엉덩이가 의자에 붙어있지 않고 몸이 주루루 방바닥으로 미끄러졌다.
"미안, 미안. 인제 안 먹을게. 소은아 진정해. 미안"하면서 얼렁뚱땅 달래보려는데
듣지 않았다. 먹은 걸 도로 뱉아서 다시 붙여놓을 수도 없는데 소은이는 계속 울었다.
결국 새 소시지를 까서 주는 걸로 입을 막았다.
저녁엔 소은이가 밥을 먹다가 "멜! 멜!"한다. 멜? 메일? mail? 전자우편? 모두 "땡!"
이다. '물'이 "댕동댕!"
물을 가지러 부엌으로 가는데 가만있으면 좋으련만 제가 달라고 하는 걸 가지러
일어나면 꼭 따라온다. 무슨 무거운 거나 든다고 제가 도와주지도 못할 거면서. 물을
준다한들 걸어오다가 이리 칠칠, 저리 칠칠 다 흘릴 것이 뻔했다.
내가 한 컵을 들고 와서 상에 올려놓았다. 그런데 소은이가 제 자리에 와서 채 앉기도
전에 소미가 맵다고 먼저 컵을 들어서 한 모금 먹었다. 그런데 그 컵을 채 내려놓기도
전에 난리가 나고 말았다. 울고 불고 쫓아와서 컵을 들었다가 상에 탁탁 놓고 곧
내던질 기세였는데 간신히 빼앗았다. 다시 컵을 들고 가서 물을 따라서 가지고 올
때까지 집안이 떠나가라 울고 소미는 "소은이 넌 욕심쟁이야" 하면서 악을 썼다.
내 요즘은 어찌할꼬 싶다. 밥을 먹어도 먹여주는 건 여간해서 안 먹는다는 말은
앞서서도 했다. 국은 수저로 떠먹기보다 주로 마신다. 컵의 물도 일단 상에 놓아야
제가 들고 먹지, 먹여주는 건 되게 급했을 때나 한두 번 받아먹는다. 김 한 장을 맨
입에 먹으면 짤까 싶어서 반으로 찢어주면 안 받는다. 슬라이스 치즈의 비닐을 다
벗겨서 주면 운다. 벗기는 부분을 찾아서 조금만 벗겨서 주어야 받는다. 네모난 과자를
주다가 가운데가 부러지면 안 받는다.
요구르트 빨대를 제가 꽂겠다고 "흐응, 흐응"하며 따라오는데 내가 '폭'하고 홀딱
꽂아 주었다가 어찌나 눈물 콧물에 악을 쓰며 우는지 한참 애를 먹었다. 처음엔 어찌
달랠지 모르다가 할 수 없이 그건 내가 먹고 새 것을 꺼내 주었더니 울음을 뚝 그치고
받았다. 저 혼자서 빨대를 꽂아보려고 갖은 애를 쓰다가는 결국 앞니로 구멍을 내서
빨아먹을 것을. 쯧쯧. 정말이지 내가 요즘은 소은이 때문에 뭘 맘대로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엊그제 저녁. 저녁밥을 먹고 삼 부녀가 조그만 컵 아이스크림 하나를 두고
머리를 맞댔다. 제 아빠 혼자 먹어도 코끼리 비스킷일 것인데 셋이 눈 부릅뜨고 손에는
모두 티스푼 하나씩 든 꼴이 절로 웃음이 났다. 두 애들은 모두 콧물이 줄줄 나면서도
소파에 앉아서 아이스크림을 든 아빠 손을 좀 내리라고 채근했다.
그런데 그것이, 냉동실에서 막 나온 컵 아이스크림 떠먹기가 어디 쉬운가 말이다.
소미는 그래도 그간 쌓인 노하우가 있어서 얇게 떠내는 법을 알아 얌얌대고 먹는데,
소은이는 그야말로 애가 타고 입이 마를 지경이었다. 제가 무슨 재주로 그 딱딱한
아이스크림을 퍼먹을까. 다른 건 다 제 손으로 먹어도 세상에서 이처럼 맛있는 이건
못 먹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스크림이 점점 줄어가는 컵을 보고 가끔씩 한 번 그것도 쬐끔 떠서 주는 언니와
아빠의 스푼이 감질나기만 했다. '요 달고 시원한 것이 입에 들어오자마자 그냥 사르륵
녹아버리네. 거 참! 쩝!'하는 그 표정이 참 명작이다. 거기다가 제 아빠는 어쩌나 보자
하면서 떠서 줄 것 같이 하다가 자기 입에 쏙 넣고 넣고 하는데 보는 내가 다 안쓰러웠다.
"그만 약 올려. 애가 탄다 정말. 소미야 네가 좀 줘. 소은이 불쌍하잖어."
바로 그때 소은이가 입을 그냥 아이스크림 종이컵에 갖다대는 것이었다. '내가 안 준다고
못 먹을까봐?'하는 것 같았는데, 으익! 그것도 성에 차지 않는지 급기야는 티스푼을
내던지더니 입을 딱 벌리고 "아-, 아-, 아-" 그러고 말았다. 빨리 먹여달라는 말이다.
그 드높았던(?) 자존심을 헌신짝처럼 내던진 것이다. 고 보잘것없는 아이스크림 한 통에
말이다. 방바닥에 굴러다니는 티스푼이 그 증거물이었다. 남편과 나는 두 애들이 잠든
후에도 그 일을 화제 삼아 한참을 웃었다.
소은아, 세상엔 네 맘처럼 되지 않는 게 많단다. 벌써부터 요 아이스크림 하나도
네 맘대로 되어주지 않는구나. 하지만 금방 안 되는 일이라도 조금 시간이 지나면
되는 일도 많으니 너무 실망하지 말렴. 이 아이스크림은 언니만큼만 크면 다 먹을
수 있어. 아니, 내년 여름이면 충분히 네 손으로 먹을 수 있는 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