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충전소
군인성당의 화이트 크리스마스
M.미카엘라
2000. 12. 28. 23:27
성탄절 이브 저녁은 몹시 바빴다. 점심을 먹고 온천을 다녀왔는데 따뜻한 차안에서부터
이어진 노곤함은 집에 와서도 좀체 가시지 않았다. 한 세 시 반이 지나서부터 침대에서
비몽사몽하며 계속 정신을 못 차렸는데 깨어보니 여섯 시를 막 넘기고 있었다.
방을 몇 차례 들락거리는 소미를 좋은 소리로 달래 거실에 있는 남편에게 보냈던
기억이 있고, 추워서 이불을 끌어다 덮으며 몸을 움츠린 것 같고, 소은이가 깨서 내게
뭐라고 알은 체를 했던 것도 기억이 나지만 이렇게 시간이 많이 흐른 줄은 몰랐다.
마음이 조급했다. 할 일은 많은데 성탄미사 시간 까지는 두어 시간이 채 남지를 않았다.
남편과 나는 온천에서 돌아오며 가볍게 무얼 좀 먹었고 미사 후엔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지만, 두 아이는 그렇게 기다리다간 너무 배고플 것이 뻔했다. 밥도 먹게 해주어야
했고, 남편의 양복과 내 정장 한 벌을 다림질도 해야 했고, 화장도 해야 하고 아이들 옷
입히는 일도 간단치 않았다.
그래도 어찌어찌 번개불에 콩 구워먹듯 모두 해치우고 집을 나섰다. 소미와 소은이는
목도리로 둘둘 말고 눈만 땡글하게 내놓았고, 남편이나 나는 오랜만의 정장차림이
그다지 편하지만 않았다. 남편은 늘 군복이 몸에 배어 있는 몸이고, 나 역시 아이들
기르느라 결혼예복으로 맞췄던 빨간색 투피스를 얼마 만에 입어보는 건지 몰랐다.
그래도 몸에 맞는 게 천만다행이다 하면서 좀 불편한 건 즐겁게 참았다.
우리가 다니는 군인성당은 평소의 두 배가 넘는 병사들로 꽉 찼는데, 어린이들과
병사들이 함께 꾸민 성극을 보느라 조용했다. 소미를 번쩍 들어 나머지를 구경시켰다.
'연극'에 대한 개념이 없는 소미는 "엄마, 왜 저 언니는 밥을 저기서 먹어요?"라고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장치나 소도구도 어설프고 연기도 어줍었지만 얼룩덜룩 군복을
입은 키 큰 군인들과 어린이들의 연극은 성탄절다운 기분을 한껏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저녁 8시 30분부터 시작된 성탄미사는 10시쯤 끝이 났다. 밖의 다른 큰 성당 같으면
이 시간이 되어야 비로소 미사가 시작되지만 군 성당은 병사들의 부대 복귀시간
탓인지 좀 일찍 시작하는 편이다. 작은 봉투에 마련된 위문대에는 마실 것, 과자,
초콜릿들이 가득 들어있다. 어린이들도 일단 기다려야 한다. 평소보다 두 배 정도의
병사가 더 올 것을 예상해서 준비하지만 혹시 병사들에게 나누어 주다가 모자라면 큰
낭패이기 때문이다.
병사들 나이가 이런 날엔 한창 발랄한 애인과 약속해서 온 밤거리를 쏘다니거나
삼삼오오 친구들과 모여 즐거운 밤을 보낼 때다. 그러나 주일날 교회나 성당에서
주는 초코 파이나 빵, 부활절이나 성탄절에 나누어주는 위문대가 그나마 큰 이벤트인
군 생활에 몸에 매여있는 것이 때론 안쓰러워 보인다. 사실 이런 말은 남편이 싫어한다.
요즘 병사들은 작은 것도 감사하게 받을 줄 알고 고마워하며 맛있게 먹고 하질 않는다는
것이다.나름대로 쓸모있는 시기를 보내고 있고 정말 남을 생각할 줄 아는 사람으로
조금이나마 성장하는 시기라고 말한다.
우린 소미 것만 받아도 충분해서 한 봉지만 받으려고 했다. 그런데 한 분이 소은이도
어엿하게 한 사람인데 왜 안 받느냐고, "소은아, 엄마가 널 무시한다, 그치?" 그러시면서
한 봉지를 소은이에게 덜렁 안기셨다. 그 한 봉지를 주체하지 못해 비틀거리면서도
소은이는 너무 기뻐하는 모양이 빠꼼한 두 눈 속에서 역력했고 아니나 다를까 곧이어
얼른 하나 까서 달라고 성화였다.
교육관에서 작은 축하연이 있었다. 신부님과 함께 뜨끈한 육개장을 한 그릇씩 먹고
떡을 나누어 먹었다. 그리고 앞단에 마련된 작은 선물 상자들을 나누는 방법으로
빙고게임이 시작되었다. 이걸 처음 하는 나는 아주 즐거웠다. 숫자를 조금 아는 소미도
제 아빠 무릎 사이에 서서 깔깔대며 재미있는 눈치였다.
빙고를 외친 사람은 선물을 받기 전에 노래를 한 곡씩 불렀다. 흥에 겨운 소미는
슬슬 의자에 올라가 몸을 흔들고 박수를 쳤는데 이때부터 자기도 '루돌프 사슴코'를
부르겠다고 했다. 빙고가 되어야만 할 수 있으니 조금 참자 했는데, 남편도 나도 영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미리 사회자에게 요청해서 요 쪼끄만 아이의 노래 한 곡을
들어볼 수도 있었지만, 혹시 빙고가 된다면 나는 슬쩍 빠지고 소미에게 노래를 시킬
참으로 그렇게 하지 않았다.
소미의 노래는 성당에선 좀 유명하다. 21개월쯤에 맞은 부활절 행사 때 옆 부대
군단장 할아버지를 감동시켰다. 이 별 세 개를 단 장군은 세 살 짜리 아이가 부르는
<꽃밭에서> <퐁당퐁당> <따오기> <섬집 아기> <노을> <이 몸이 새라면> <아리랑>
등을 듣고 나서 "내가 여간해서 애기들한테 돈을 잘 안 주는데 오늘은 좀 줘야겠다.
내가 모르는 노래가 더 많구나" 그랬다. 발음은 정확하지 않아도 제법 알아듣게 끝까지
불렀는데 소은이는 아마 3, 4개월 뒤에 그렇게 하기 어렵지 싶다.
그러나 나는 진작부터 이런 게임이나 내기 같은 것에 무척 약한 사실을 인정했어야
했다. 시간은 열두 시를 넘기고 있었지만 여전히 빙고는커녕 그 가까이도 가지 않았다.
소미는 다른 또래 아이랑 놀다가 이따금씩 와서 '루돌프 사슴코'를 일깨워주었다.
아, 이건 선물은 고사하고 딸내미 노래자리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라도 아빠나 엄마가
빙고를 해야겠는데 이게 쉽지가 않았다. 정말 사회자 말씀대로 빙고판이 불량인지
내가 앉은 자리 주변 사람이 모두 헛손질만 하고 있었다.
한 시가 가까워오고 선물은 이제 하나를 남겨두었다. 사회자는 아쉬운 맘에 뜸을
들였다. 소은이는 계속 노는 짬짬이 간간이 식은 밥을 한 숟갈씩 퍼먹어서 우리를
웃겼는데 결국 박박 밥그릇을 긁는 상황까지 갔다. 소미는 노는 일도 시들해졌는지
제 아빠 품에서 슬슬 잘 자리를 팠다. 낮에 그나마 잔 탓에 그렇게 버틴 것이지 집에서
라면 벌써 서너 시간째 자고 있을 시간이다.
남편이나 나나 마지막 선물에 대한 빙고의 꿈이 완전히 깨지는 것을 감잡고 있을
즈음 소미는 급기야 잠들었다. 모든 게임이 끝나면 덤처럼 자리를 만들어주려고 했던
나는 못내 안타까웠다. 요즘은 좀 컸다고 여간해서 남들 앞에서 시원하게 노래를
부르지 않는 터라, 제 스스로 흔쾌히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청해서 하겠다고 졸랐던
일이 아까웠다.
그리고 눈이 온다는 소식을 창쪽으로 자리잡은 분들을 통해 들었다. 자세히 창을
보니 펑펑 내리고 있었다. 모두들 탄성을 지르고 한마음으로 푸근한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즐겼다. 그러나 게임은 완전히 끝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우리 네 식구는 눈을 헤치고
총총 돌아왔다. 소은이도 눈비비고 소미를 얼른 집으로 데리고 와야 할 것 같아서
마무리하실 분들께 죄송한 마음만 남겼다.
집에 돌아와선 한 차례 난리를 피웠다. 옷을 벗기느라 선잠을 깬 소미가 징징 울면서
이렇게 말했다.
"루돌프 사슴코도 안 불렀는데, 루돌프 사슴코도 안 불렀는데…"
노래도 안 불렀는데 왜 벌써 집에 왔느냔 말이었다. 한참을 눈감고 그 소리만 계속하면서
울었다. 비식비식 웃음이 나왔지만 지긋이 눌러 참고 살살 달랬다. 지금 울지 않고
잘 자고 일어나면 산타할아버지가 밤새 다녀가실 거라고 했더니 "엄마, 노랜 다음에
불르면 되지요 뭐"라고 능청을 떨었다.
소은이는 그러고도 한참 후에 잠들었다. 나는 서둘러 산타할아버지 이름으로 두 개의
카드를 쓰고 선물을 포장하여 현관문에서 신발을 벗고 첫발을 딛는 자리쯤에 두었다.
아침에 일어난 소미는 정말 산타할아버지가 왔다갔다고 너무 좋아했다. 카드의 글씨체가
내 것인걸 알아보면 어쩌나 했더니 그런 건 아직 몰랐다. 산타할아버지 존재를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이 나이, 문득 이 나이가 부러워졌다.
이어진 노곤함은 집에 와서도 좀체 가시지 않았다. 한 세 시 반이 지나서부터 침대에서
비몽사몽하며 계속 정신을 못 차렸는데 깨어보니 여섯 시를 막 넘기고 있었다.
방을 몇 차례 들락거리는 소미를 좋은 소리로 달래 거실에 있는 남편에게 보냈던
기억이 있고, 추워서 이불을 끌어다 덮으며 몸을 움츠린 것 같고, 소은이가 깨서 내게
뭐라고 알은 체를 했던 것도 기억이 나지만 이렇게 시간이 많이 흐른 줄은 몰랐다.
마음이 조급했다. 할 일은 많은데 성탄미사 시간 까지는 두어 시간이 채 남지를 않았다.
남편과 나는 온천에서 돌아오며 가볍게 무얼 좀 먹었고 미사 후엔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지만, 두 아이는 그렇게 기다리다간 너무 배고플 것이 뻔했다. 밥도 먹게 해주어야
했고, 남편의 양복과 내 정장 한 벌을 다림질도 해야 했고, 화장도 해야 하고 아이들 옷
입히는 일도 간단치 않았다.
그래도 어찌어찌 번개불에 콩 구워먹듯 모두 해치우고 집을 나섰다. 소미와 소은이는
목도리로 둘둘 말고 눈만 땡글하게 내놓았고, 남편이나 나는 오랜만의 정장차림이
그다지 편하지만 않았다. 남편은 늘 군복이 몸에 배어 있는 몸이고, 나 역시 아이들
기르느라 결혼예복으로 맞췄던 빨간색 투피스를 얼마 만에 입어보는 건지 몰랐다.
그래도 몸에 맞는 게 천만다행이다 하면서 좀 불편한 건 즐겁게 참았다.
우리가 다니는 군인성당은 평소의 두 배가 넘는 병사들로 꽉 찼는데, 어린이들과
병사들이 함께 꾸민 성극을 보느라 조용했다. 소미를 번쩍 들어 나머지를 구경시켰다.
'연극'에 대한 개념이 없는 소미는 "엄마, 왜 저 언니는 밥을 저기서 먹어요?"라고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장치나 소도구도 어설프고 연기도 어줍었지만 얼룩덜룩 군복을
입은 키 큰 군인들과 어린이들의 연극은 성탄절다운 기분을 한껏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저녁 8시 30분부터 시작된 성탄미사는 10시쯤 끝이 났다. 밖의 다른 큰 성당 같으면
이 시간이 되어야 비로소 미사가 시작되지만 군 성당은 병사들의 부대 복귀시간
탓인지 좀 일찍 시작하는 편이다. 작은 봉투에 마련된 위문대에는 마실 것, 과자,
초콜릿들이 가득 들어있다. 어린이들도 일단 기다려야 한다. 평소보다 두 배 정도의
병사가 더 올 것을 예상해서 준비하지만 혹시 병사들에게 나누어 주다가 모자라면 큰
낭패이기 때문이다.
병사들 나이가 이런 날엔 한창 발랄한 애인과 약속해서 온 밤거리를 쏘다니거나
삼삼오오 친구들과 모여 즐거운 밤을 보낼 때다. 그러나 주일날 교회나 성당에서
주는 초코 파이나 빵, 부활절이나 성탄절에 나누어주는 위문대가 그나마 큰 이벤트인
군 생활에 몸에 매여있는 것이 때론 안쓰러워 보인다. 사실 이런 말은 남편이 싫어한다.
요즘 병사들은 작은 것도 감사하게 받을 줄 알고 고마워하며 맛있게 먹고 하질 않는다는
것이다.나름대로 쓸모있는 시기를 보내고 있고 정말 남을 생각할 줄 아는 사람으로
조금이나마 성장하는 시기라고 말한다.
우린 소미 것만 받아도 충분해서 한 봉지만 받으려고 했다. 그런데 한 분이 소은이도
어엿하게 한 사람인데 왜 안 받느냐고, "소은아, 엄마가 널 무시한다, 그치?" 그러시면서
한 봉지를 소은이에게 덜렁 안기셨다. 그 한 봉지를 주체하지 못해 비틀거리면서도
소은이는 너무 기뻐하는 모양이 빠꼼한 두 눈 속에서 역력했고 아니나 다를까 곧이어
얼른 하나 까서 달라고 성화였다.
교육관에서 작은 축하연이 있었다. 신부님과 함께 뜨끈한 육개장을 한 그릇씩 먹고
떡을 나누어 먹었다. 그리고 앞단에 마련된 작은 선물 상자들을 나누는 방법으로
빙고게임이 시작되었다. 이걸 처음 하는 나는 아주 즐거웠다. 숫자를 조금 아는 소미도
제 아빠 무릎 사이에 서서 깔깔대며 재미있는 눈치였다.
빙고를 외친 사람은 선물을 받기 전에 노래를 한 곡씩 불렀다. 흥에 겨운 소미는
슬슬 의자에 올라가 몸을 흔들고 박수를 쳤는데 이때부터 자기도 '루돌프 사슴코'를
부르겠다고 했다. 빙고가 되어야만 할 수 있으니 조금 참자 했는데, 남편도 나도 영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미리 사회자에게 요청해서 요 쪼끄만 아이의 노래 한 곡을
들어볼 수도 있었지만, 혹시 빙고가 된다면 나는 슬쩍 빠지고 소미에게 노래를 시킬
참으로 그렇게 하지 않았다.
소미의 노래는 성당에선 좀 유명하다. 21개월쯤에 맞은 부활절 행사 때 옆 부대
군단장 할아버지를 감동시켰다. 이 별 세 개를 단 장군은 세 살 짜리 아이가 부르는
<꽃밭에서> <퐁당퐁당> <따오기> <섬집 아기> <노을> <이 몸이 새라면> <아리랑>
등을 듣고 나서 "내가 여간해서 애기들한테 돈을 잘 안 주는데 오늘은 좀 줘야겠다.
내가 모르는 노래가 더 많구나" 그랬다. 발음은 정확하지 않아도 제법 알아듣게 끝까지
불렀는데 소은이는 아마 3, 4개월 뒤에 그렇게 하기 어렵지 싶다.
그러나 나는 진작부터 이런 게임이나 내기 같은 것에 무척 약한 사실을 인정했어야
했다. 시간은 열두 시를 넘기고 있었지만 여전히 빙고는커녕 그 가까이도 가지 않았다.
소미는 다른 또래 아이랑 놀다가 이따금씩 와서 '루돌프 사슴코'를 일깨워주었다.
아, 이건 선물은 고사하고 딸내미 노래자리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라도 아빠나 엄마가
빙고를 해야겠는데 이게 쉽지가 않았다. 정말 사회자 말씀대로 빙고판이 불량인지
내가 앉은 자리 주변 사람이 모두 헛손질만 하고 있었다.
한 시가 가까워오고 선물은 이제 하나를 남겨두었다. 사회자는 아쉬운 맘에 뜸을
들였다. 소은이는 계속 노는 짬짬이 간간이 식은 밥을 한 숟갈씩 퍼먹어서 우리를
웃겼는데 결국 박박 밥그릇을 긁는 상황까지 갔다. 소미는 노는 일도 시들해졌는지
제 아빠 품에서 슬슬 잘 자리를 팠다. 낮에 그나마 잔 탓에 그렇게 버틴 것이지 집에서
라면 벌써 서너 시간째 자고 있을 시간이다.
남편이나 나나 마지막 선물에 대한 빙고의 꿈이 완전히 깨지는 것을 감잡고 있을
즈음 소미는 급기야 잠들었다. 모든 게임이 끝나면 덤처럼 자리를 만들어주려고 했던
나는 못내 안타까웠다. 요즘은 좀 컸다고 여간해서 남들 앞에서 시원하게 노래를
부르지 않는 터라, 제 스스로 흔쾌히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청해서 하겠다고 졸랐던
일이 아까웠다.
그리고 눈이 온다는 소식을 창쪽으로 자리잡은 분들을 통해 들었다. 자세히 창을
보니 펑펑 내리고 있었다. 모두들 탄성을 지르고 한마음으로 푸근한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즐겼다. 그러나 게임은 완전히 끝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우리 네 식구는 눈을 헤치고
총총 돌아왔다. 소은이도 눈비비고 소미를 얼른 집으로 데리고 와야 할 것 같아서
마무리하실 분들께 죄송한 마음만 남겼다.
집에 돌아와선 한 차례 난리를 피웠다. 옷을 벗기느라 선잠을 깬 소미가 징징 울면서
이렇게 말했다.
"루돌프 사슴코도 안 불렀는데, 루돌프 사슴코도 안 불렀는데…"
노래도 안 불렀는데 왜 벌써 집에 왔느냔 말이었다. 한참을 눈감고 그 소리만 계속하면서
울었다. 비식비식 웃음이 나왔지만 지긋이 눌러 참고 살살 달랬다. 지금 울지 않고
잘 자고 일어나면 산타할아버지가 밤새 다녀가실 거라고 했더니 "엄마, 노랜 다음에
불르면 되지요 뭐"라고 능청을 떨었다.
소은이는 그러고도 한참 후에 잠들었다. 나는 서둘러 산타할아버지 이름으로 두 개의
카드를 쓰고 선물을 포장하여 현관문에서 신발을 벗고 첫발을 딛는 자리쯤에 두었다.
아침에 일어난 소미는 정말 산타할아버지가 왔다갔다고 너무 좋아했다. 카드의 글씨체가
내 것인걸 알아보면 어쩌나 했더니 그런 건 아직 몰랐다. 산타할아버지 존재를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이 나이, 문득 이 나이가 부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