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서트에 간 그녀
지난 토요일 저녁, <김범수 콘서트>를 다녀왔다. 언제 이렇게 올랐는지 이제 기만원씩이나 하는 티켓을 한 달 전부터 예매해놓고(곧 매진되었다) 정말이지 그 날짜 다가오는 재미에 한 달이 즐거웠다.
죽은 김광석을 비롯해서 박학기, 들국화, 시인과 촌장, 동물원, 해바라기, 한영애, 노찾사, 나나 무스꾸리까지 콘서트를 두루두루 쫓아다니던 미혼시절 이후, 가수들의 라이브 공연은 두어 달 전 남편의 부대에서 녹화를 했던 '국군방송 위문열차'에서 본 게 전부였다. 마지막 출연자였던 그룹 '플라워'의 입대한 멤버 고유진이 영국그룹 'Queen'의 노래를 서너 곡이나 연달아 기막히게 쫘악 뽑아대는데 반해, 잠든 소은이를 안고 무대 앞에서 신나게 즐겼다가 다음날 칫솔을 들어 이 닦는 일도 괴로울 정도로 몸살이 났었다.
노래 잘하는 가수의 라이브를 듣는 일은 언제나 내게 흥분을 가져다준다. 엔돌핀 뭐 그런 게 이런 때 솟지 않을까 싶게 아주 온몸의 세포가 살아나는 기분이다. 스물 다섯이라는 나이에 녹록치 않은 가창력과 그 나이보다는 훨씬 무르익은 감성으로 노래하는 김범수의 라이브는 보는 사람을 충분히 압도했다. 나는 예전과는 달리 보컬의 음색이 강렬하고 시원한 그룹이나 솔로가수가 좋다.
김범수는 본래 스타일인 발라드를 비롯해서 댄스, 록(이게 참 기가 막혔다), 랩, 올드 팝, 뮤지컬 음악, 아카펠라, 라틴음악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넘나들며 열창했는데, 정말 가만히 앉아서 관람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 싶었다. '몸치'인 나는 앉은자리에서 일어나 형광봉을 흔들며 되는대로 몸을 움직여주는 게 전부였으나, 나는 '까짓 것! 여기까지 와서 점잔 뺄 일 있냐'하면서 열심히 소리지르고 같이 따라하고 할 거 다했다. 20대가 주 관객층인 20대 가수의 콘서트장에서, 우리가 중,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가서 즐겨 듣던 징기스칸, 헬로 미스터 몽키 이런 노래를 들으리라고 생각이나 했는가 말이다.
앵콜까지 3시간 가까운 공연을 보고 나오니 10시가 넘었다. 흥분은 채 가시지 안았지만 시원한 공기가 피부에 닿고 나니 그제야 시누이 집에 맡겨둔 소미, 소은이가 생각났다. 속으로 흐흐, 웃으면서도 오랜만에 묵은 피로나 쓸데없는 잡념까지 흐르는 물에 한꺼번에 다 씻은 양 시원해져서 마냥 상쾌했다.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고 나온 기분하곤 또 달랐다.
시누이 집에 가니 소미가 "엄마 잘 다녀오셨어요?"하고 인사를 했다.
참 내! 이제 다시는 남편과 콘서트에 같이 안 간다. 아니, 나 혼자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엔 꼭 나 혼자 가겠다. 공연 내내 '노래는 잘한다' 하면서도 그냥 감정을 맡겨 즐길 줄 모르는 남편이 좀 밉살스러웠다. 처음부터 내가 혼자만 가기 뭣해서 두 장을 예매하고(혼자 간다고 한 장만 예매했거나 다른 사람이랑 간다고 두 장 예매했으면 삐졌을 거다), 열심히 차 타고 운전하면서 김범수 3집을 들으며 준비를 해주었건만,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일 노래가 아닌 듯 영 시큰둥해했었다.
더구나 전날 밤새 당직을 서고 왔으니 피곤도 하긴 했을 거다. 극장도 아니고 그 엄청난 사운드가 콘서트 장을 울리는 가운데 간간이 꾸벅꾸벅 조는 사람은 소미아범 밖에 없었다. 늘 이런 상황에서도 잠이 오냐 하면 '군인정신으로 잔다'는 사람이다. 그러다가 깨서는 훈수나 두고 비평이랍시고 관전평을 했다. 이거 테이프 틀어놓은 거 아냐? 진짜 부르는 거야? 잘하긴 잘한다, 근데 약간 흑인창법이다, 여기가 2천 석 규모면 정말 떼돈 벌겠네, 김범수가 이 정도면 김건모는 더 재미있겠다, 걔는 입담이 또 좋잖아(김범수 콘서트에서 웬 김건모 얘기는…) 등등.
나는 남편과 교제할 때, 평소에는 관심이 없었다가 나를 만나면서 관심 있고 흥미로워진 일 하나를 꼽으라고 했더니 '가수들의 라이브 콘서트'라고 한 적이 있다. 그러나 남편의 취향은 나와 맞는 면보다 맞지 않는 면이 더 많았다. 남편은 일단 좀 소프트한 음악을 좋아한다. 통기타 소리가 경쾌한 포크나 컨트리송, 편안한 올드팝, 발라드, 그리고 잘해봐야 록발라드다. 아니면 나훈아, 설운도 노래 같은 트롯이나 기분을 띄워주는 몇몇 댄스그룹 음악을 좋아한다.
기만원이든 기십만원이든 즐길 수 있는 사람만 돈이 안 아깝다. 그런 면에서 나는 하나도 안 아까웠지만 남편의 몫에 대해서도 타박하지 않을 생각이다. 티켓 결제금액의 반은 어디서 생긴 문화상품권으로 해결했으니 그게 그의 몫이다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은 좋든 싫든 그래도 내 문화생활에 기꺼이 참여해주려고 노력하니 고맙다. 나의 이 호사도 따져보면 그를 따라와 이곳에서 살게 된 덕분이 아닌가.
결혼할 무렵이었던가 그가 내게 했던 말이 생각난다. '너와 함께 있는 게 좋아서 네 문화생활에 적극 참여하긴 하겠지만, 네가 고른 그 모든 것을 너처럼 한껏 즐기고 이해할 거라고 너무 기대하지 말아달라'는 말. 그게 오늘 생각났다. 그러나 하지만 역시… 콘서트는 함께 즐길 사람과 가는 게 더 좋겠다.
아직도 어깨와 팔이 아프다. 형광봉을 어찌나 흔들어댔던지 이틀이 지났는데도 완전히 풀리지 않는다. 이제 내 대신 애들이 저녁이면 그 형광봉을 흔들며 재미있게 논다. 놀이공원 갔다가 사달라고 조르는 것을 뿌리치고 왔었는데, 갑자기 생긴 횡재에 어쩔 줄 모르게 좋아했다. 소미는 어제 노래만 부르는 콘서트보다 연극이나 뮤지컬이 좋다고 했다. 그러나 좀더 커서 학업도 나몰라라하고 가수 팬클럽 회장이나 안 하면 다행이지 싶다. 내가 그것을 밀착 관리하려면 나 역시 같이 즐기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리라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