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도서관

구성애의 <니 잘못이 아니야>를 읽고

M.미카엘라 2003. 10. 23. 17:44

"소미, 소은이 너무 이뻐요. 언제까지나 요 모습 그대로면 좋겠어요."
"(*^^*)그러기가 쉽지 않죠."
"근데요, 저… 딸만 둘 기르시면서 불안하지 않으세요?"
"(짐짓 질문의 의도를 알면서도)왜요?"
"요즘 세상이 워낙 험악해서…. 저는 아이를 두면 딸을 낳고 같은데,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기를까 생각하면 임신 자체에 엄두가 안 날 때가 많아요."

 

언젠가 아이가 아직 없는 어린 새댁과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도 그렇다. 이런 소리를 그 새댁한테서만 들은 것도 아니고, 나도 소미, 소은이가 점점 커갈수록 염려되고 신경 쓰이는 부분이 많아서 불안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딸 키우기가 불안하다' 하고 말하는 이면에 '그래도 아들은 좀 괜찮다. 아들이니까'하는 의식이 깔려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어떤 부분에서 불안하고 덜 불안한가를 생각하면 뻔한 부분에서 집중적으로 불안해한다고 할 수 있지만, 난 사흘에 걸쳐 바짝 정독한 한 권의 책 때문에 많은 부분 편견을 덜어낼 수 있었다. 우리 나라의 그야말로 뻔한 성교육을 양지로 끌어내 노골적(구체적)이며 실질적으로 공론화하는데 기여한 구성애 씨의 <니 잘못이 아니야>를 지난 여름에 사두었다가 읽었던 것이다.

이 책은 자녀들에게 성교육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을 담고 있는데 책을 다 읽고 덮었을 때는 이 책이 궁극적으로 지금의 나를 비롯한 어른들을 교육시키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도 이런 식의 생명교육, 참삶의 교육을 받으며 자라지 못한 성인들을 위한 길잡이로서 이 책이 첫 번째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딸은 물론이고, 딸 못지 않게 아들의 성이 보호받고 지켜져야 할 까닭이 생물학적, 의학적 근거로 조목조목, 하지만 쉽게 설명된 부분에선 나도 '아, 몰랐네. 정말 그렇구나!'하면서 무릎을 쳤다. 가해자로서 아들의 입장만 쓴 게 아니라 실은 그 아이도 피해자임을 알게 해준 점을 특별하게 받아들였다.

이 책의 미덕은 구성애 특유의 구체적인 사례와 방법이 나열되어 있는 실용서라는 점이다. 소미가 어쩌다 텔레비전 속에서 남녀가 미묘한 감정을 나누는 장면을 보며 야릇하고 쑥스러운 표정을 짓지만, 금방 거기에 빠져드는 소미를 보며 심란하고 어수선한 내 마음을 어쩔 줄 몰라하며 급히 채널을 돌렸는데 그것에 대한 해답도 찾게 되었다.

사실 구성애의 '전공'은 유아기, 청소년기라고 생각하는데 이 책은 결혼하기 전의 청년기와 부부들의 성까지 두루두루 담았다. 그녀는 성을 '섹스'라는 행위의 범주에서만 바라보는데서 우리 사회의 깊은 병이 생긴 것이라고 역설한다. 보이지 않은 인간 사이의 관계맺음부터 생명의 문제까지 두루 아우르는 성이 아니기 때문에 사단이 난다는 것이다.

나는 무엇보다 구성애의 어머니가 그녀에게 했던 교육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시대에 어린 딸에게 노골적으로 숨김없이 그러나 자연스럽게 딸의 성적 궁금증에 정면대응하는 모습이 너무 놀라웠다. 구성애 자신도 그런 어머니들 둔 덕에 청소년기 때부터 성에 대한 쓸데없는 환상에서 일찍이 깨면서 오늘날 이런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고백했다.

어머니의 꾸미지 않는 순수하고 소탈한 성격이 그런 행동을 낳았다고 생각한다지만, 10살 무렵 성폭행을 당한 딸을 둔 어머니로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는 것을 일찌감치 터득했던 것이 아닐까. "니 잘못이 아니야"는 딸이 성폭행을 당한 사실을 알고 난 어머니가 펑펑 울고 난 후, 어린 구성애를 붙들고 한 첫마디였다. 자신의 일생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이 한마디가 책제목이 된 것이다.

이 책의 독후감을 쓰는 일은 어렵다. 인간의 그 모든 것을 어떤 부분에서는 조금씩이지만 어쨌든 다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음으로써 막연하게 가지고 있었던 딸 기르는 두려움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좀 알겠다는 생각이 드니 자신감이 생긴다고 할 수 있겠다.

아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두고두고 실제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을 만한 책이라는 생각에, 이 책을 누구에게 읽어보라고 빌려줄까 하던 생각을 접었다. 빌려보지 말고 필요한 사람은 한 권씩 사보라고 할 참이다. 집안 꾸미기, 십자수로 소품만들기, 내 아이를 위한 뜨게옷 같은 책에 댈 수 없게 아주 실용적인 교육도서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이 이 책을 꼭 봐야 한다. 어리던, 좀 컸던, 다 컸던 관계없이 아들이나 딸을 둔 이 땅의 모든 부모님, 곧 아기를 가질 계획이거나 태중에 아기를 가진 그 모든 새내기 부부, 유치원이나 학교 선생님, 지금 향기로운 연애에 빠지거나 앞으로 빠질 예정인 그 모든 젊은이들이다. 남편에게 선물하고 아빠에게 선물하고 남친에게 선물하는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 또 아내에게 선물하고 엄마에게 선물하고 여친에게 선물하는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

책읽기를 그다지 즐겨하지 않는 소미아범에겐 일단 이 책의 맨 끝장에 실린 '아버지가 딸에게'라는 부분을 읽힐 생각이다. 자, 이 방에 들어오시는 분 중에 자녀기르기에 대한 불안감이 막연하게라도 있으신 분이 계시다면 이 책을 한번 정독하시길 권한다.***

<목차>

1부 동심 속에 꽃피는 아우성
   1. 나의 어린 시절
   2. 아픔을 딛고

2부 동심 아우성을 위한 7가지 원칙
   1. 밝은 마음, 좋은 느낌 만들어주기
   2. 자연스러운 자세와 태도 갖기
   3. 발달 단계에 맞게 이해하기①
   4. 발달 단계에 맞게 이해하기②
   5. 기꺼이 대답해주기
   6. 성 개념 세워주기
   7. 몸 사랑하기
   8. 최저선 지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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