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사랑만 넉넉한 자리
“아앙~ 엄마, 엄마는 왜에 외할머니만 좋고 친할머니는 안 좋다고 해?
빨리 친할머니도 좋다고 해. 빨리.”
올해 여섯 살이 된 소은이는 한참 나를 물고 늘어지더니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주말에 외할머니 댁에 갈 거라고 일렀더니 친할머니 집은 언제 가냐고 물어왔다. 친할머니는 뵌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누워계신 외할머니가 너희를 보고 싶어 하신다고 해도, 계속 그럼 친할머니네는 언제 갈 거냐고 묻는 품이 좀 미워 “그렇게 친할머니 보고 싶으면 소은이는 친할머니 댁에 가. 엄마는 외할머니가 더 좋아” 했더니 이 난리다.
“누가 친할머니 안 좋다고 했어? 외할머니가 친할머니보다 조금 더 좋다고 했지.”
눈물을 주르르 흘리며 악을 쓰는 아이 심정을 모르는 바 아니면서 나는 끝내 짐짓 모른 체했다. 그런데 그때
옆에서 잠자코 듣고만 있던 소미가 한마디 했다.
나는 이렇게 똑 떨어지는 논리로 나를 대변할 정도로 커버린 소미에게 감격했다. 이 논리적인 반격이 단번에 제 동생의 입을 막을 수는 없었지만 효과는 좀 있었다. 미워서라기보다 할머니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남에게도 강요하는 모양이 우습고 귀여워 좀 짓궂게 굴고 싶었던 그날, 할머니들과 함께 살지 않았으면서도 할머니나 할아버지를 좋아하는 아이를 보면 가슴이 따뜻하고 좋다. 건강하셨을 때도 좀 엄하고 말씀이 없는 친정엄마에 견주어, 늘 기쁘고 즐겁게 유치원 선생님이 하듯 아이들에게 잘해주시는 시어머님의 공이 크다 생각하는데, 그래도 여전히 내 마음은 누워계신 ‘너희들의 외할머니’에게 마음이 쓰인다.
아이들이 지금 내 마음을 알아주지 못한다고 해도 서운하지 않다. 후에 알 길이 없다 해도 서운하지 않을 듯싶다. 아무리 부모가 되었다 해도 나 역시 자식에 대한 내리사랑에 눈이 멀어, 부모 심정 헤아려보려는 마음은 턱없이 부족한 딸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친정엄마 생각 끝에 마음 아프고 씁쓸하다가도, 곧 얼마 전 소은이가 할머니 댁에 가서 물었다는 말에 ‘하하하!’ 즐겁게 웃고 마는 나 아닌가. 이 담에 아이들에게 무얼 더 바라겠는가.
“할머니, 왜 아빠들은 친할머니들이 낳으시고 엄마들은 왜 외할머니들이 낳으시는 거예요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