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정원

새 문패를 걸며

M.미카엘라 2004. 1. 26. 22:13

부제: ‘오늘도 전쟁 중-군인 아내의 육아일기’ 제목을 접으며

 

가슴이 아프지만 도리가 없다. 새집은 이렇게 긴 문패를 허락하지 않는다. 띄어쓰기 없이 다닥다닥 붙여 써야만 간신히 허락하는데 그게 보기 좋다고 할 수 없어서, 하는 수 없이 만 4년간 달고 있었던 이 문패를 내 손으로 떼어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동안 ‘군인’이라는 특별한 이미지가 눈에 확 들어온 덕분인지 많은 군인의 아내이나 군인의 연인, 그리고 군대에 아들이나 동생, 오빠, 형들을 보낸 많은 분들이 찾아주신 덕분에 어린아이를 기르는 엄마들만 드나들기 쉽겠다고 생각한 방이 한결 풍성해졌던 것이 사실이다. 비록 흔적은 남겨주시지 않았지만 남편과 함께 했던 병사들이 전역하여 찾아주신 경우도 제법 있었다.

 

많은 여성들이 겪는 일이지만 정말 출산이후 한 2년간은 전쟁과 같다. 그러나 그것도 한 아이만 길렀을 때의 말이다. 평균 잡아 두세 살 터울을 둔 아이가 둘 있는 가정이라면 적어도 약 5,6년간의 육아전쟁을 치러야 한다. 철없는 건 당연하고 말귀 알아들으려면 멀었고 세상 무서울 게 없는 요 어린 자식들과 치러내야 하는 일은 녹록치 않다. 빨래와 젖병 닦기 전쟁, 토하고 열나고 부서뜨리고 뭉개고 엎지르고 깨고 넘어지고 하는 일은 날마다 눈만 뜨면 일어나는 일이고 엄마들은 그 속에서 몸을 던져 안고 씻기고 먹이고 달래고 재우며 돌본다.

 

지내놓고 보니 그런 모양새의 육아전쟁이 일단락되는 시기는 대강 기저귀 떼는 시기와 함께 한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젖병을 먼저 떼는 것을 전제로 한다. 기저귀만 떼고 젖병을 떼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은 요즘 엄마들의 전쟁은 계속되며, 젖병과 기저귀를 완전히 떼고 나서야 비로소 엄마들의 어깨는 한결 가벼워진다. 머릿속도 여유가 생기고 마음에도 갈피가 잡혀 이른바 본격적인 ‘교육’을 고민하기에 이른다.

 

정말이다. 마음먹기 나름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나도 이 시점에서 반 강제적으로나마 본래의 제목을 접는 일도 나쁘지 않다 싶다. 기저귀를 뗀 지도 오래고 이제 날마다 정신을 쏙 빼는 전쟁 같은 처지에 놓이는 일도 그다지 없다. 물론 자아가 생겨나면서 고집 부리고 말 안 듣는 시기를 맞아 지금도 2라운드 전쟁 중이긴 하지만, 이제 ‘전쟁’도 어울리지 않고 ‘육아일기’도 이즈음의 딸들에겐 유치하다(?)^^*. 독특한 이름 때문에 찾아오셨다는 분들의 기분 좋은 말씀도 이제는 잊을 참이다. 이제는 제법 성숙한(?) 딸들을 위해 이 방에 새로운 이름을 부치는 일도 의미 있으리라.

 

그동안 <오늘도 전쟁 중 - 군인 아내의 육아일기>로 사랑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린다. 새로운 문패로 바뀌었지만 주인장은 그대로이고 그 사고뭉치 딸들 역시 그대로 잘 살고 있음을 계속 보여드릴 것이다. 새로운 집은 내 마음대로 여러 개의 방(카테고리)도 만들 수 있지만 나는 널찍하게 한 개만 쓰련다. 그냥 예전처럼 편하게 철푸덕하게 앉아 소미소은이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실 분들을 기다리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