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충전소
낙천적인 위로
M.미카엘라
2001. 4. 11. 17:38
요 근래 우리 가족은 한 달 넘게 볼링장을 자주 들락거렸다. 처음 이 동네 볼링장에
갔던 정확한 날은 알 수 없다. 다른 가족들과 어울려 저녁식사를 한 일요일 저녁,
볼링이나 한 게임하고 들어가면 어떻겠냐는 누군가의 제의에 모두 의견일치를 본
후부터다.
서론이 조금 길어지겠지만 이즈음 우리 가족과 주변의 분위기를 전해야 할 듯 싶다.
보통 네 가족이 모였는데 어른 여덟 명에 아이가 넷이다. 두 부부씩 한 팀을 이루어
치기도 했고 부부대항 게임을 하기도 했다. 어떤 경우라도 모두 크지 않은 점수 차로
이기거나 지니 그 재미가 새록새록 더하다. 박빙의 승부를 내기 위해 한 주에 두 번씩
찾는 경우도 있었다.
이젠 아예 우리가 가면 볼링장에서 커피가 자동으로 나온다. 각자 저녁을 먹고 모이기
때문에 두 게임 정도 치고 볼링장을 나오면 11시가 가까워지기 일쑤였다. 소미는
나나 제 아빠 품에서 잠들어 난로가 있는 널찍한 소파에 뉘이기도 하지만, 요란하게
여기저기 헤집고 다니는 소은이와 선재는 여간해서 안 잔다. 걷지 못하는 아기까지
번갈아 돌보며 볼링에 미친 아빠 엄마들은 밤 깊은 줄 모르는 날이 많았다.
아이들은 모두 볼링장 지형에 완전 적응했다. 두 개의 계단과 널찍한 로비, 그리고
100원짜리 동전 넣어 빼먹는 초코볼까지. 처음에는 볼링을 '보땅, 보땅' 그러던 소은이가
이젠 저녁 먹고 밖에 나가려고 하면 "볼링? 볼링?"하고 정확하게 말하며 좋아한다.
또 아이들 간식도 단단히 챙겨 가니 우유만 달랑 준비해가던 처음과는 많이 달랐다.
그러나 여기서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점이 우리 부부의 볼링 실력이다. 남편과
나에게는 아이를 낳기 전에 볼링 친 이후, 요즘 들어 근 몇 년만에 와보는 볼링장이다.
그전에도 좋은 실력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더 안 되었다. 이제까지 거의 우리 부부가
든 팀이 졌다. 특히 내 점수는 아주 들쭉날쭉이어서 짜증이 날 정도다. 100점도 안
나오는 날이 있는가 하면 어젠 150점을 쳤다.
거기다가 남편이 잘 못 치면 나도 따라서 죽을 쑤는 형국이었으니, 며칠 전 단 두
가족이 간 날은 남편이 처음으로 화를 냈다. 나라도 잘 치면 덜했겠는데 나도 그날
남편 따라 도랑으로 빠뜨리고 난리였다. 잘 안 되는 자신에게도 화가 나고 자기 따라
못하는 것 같은 내게도 짜증이 난 모양이었다. 이젠 볼링을 안 치겠다거니, 재미가
안 난다거니, 표정까지 잔뜩 굳어서 분위기를 얼게 만들었다.
한참 그러던 중 소미가 남편에게 이런 말을 했다.
"아빠, 괜찮아요. 기분 푸세요. 오늘 못 하면 다음에 잘 치면 되잖아요."
남편은 딸의 위로를 다 받는다고, 우리 소미밖에 없다고 헛웃음을 웃으면서도 아주
대견스러워했다. 덕분에 분위기가 조금 노골노골해져서 나중엔 그럭저럭 즐겁게 볼링장을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지난 토요일 오후. 나는 국물이 자작한 열무김치를 담고 있었다. 겨우내 농협
김치 사먹고, 그나마 시어진 것들 뿐이어서 입맛이 상그래질 열무김치가 먹고 싶었다.
그러나 너무 오래 김치를 안 담가서, 또 그 전에도 자주 김치를 담근 솜씨가 아닌지라
싱싱한 열무 두 단이 그대로 못쓰게 될까봐 무척 걱정이 되었다. 더구나 요즘 열무는
잘못 하면 풋내 나서 여간 조심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밀가루풀 묽게 쑤어 식힌 것에 갖은 재료를 넣어 양념을 만들어 놓고, 담그는 일만
남겨두었는데 소미가 와서 이것저것 구경하고 물어봤다.
"엄마 이게 뭐예요?"
"열무야. 김치 담는 거."
"아하! '열 하면 열무장수 열무를 판다고 잘잘잘' 할 때 나오는 열무요?"
"그래. 근데 소미야, 지금 엄마는 걱정이 있어. 김치를 많이 담가보지도 않았고 너무
오랜만에 담그는 거라 맛이 없으면 어쩌지? 맛있어야 할 텐데."
"채구이모가 준 것처럼요? 그럼 나도 잘 먹을 텐데."
"그러게 말야. 헌데 이 김치는 채구 외할머니가 만드신 것보단 조금 매울 것 같애.
그러저나 맛있어야 할 텐데. 당장 맛있는 김치도 없거든."
"엄마, 걱정 마세요. 이번에 맛없으면 다음에 잘 만들면 되죠 뭐"
"그럴까? 자꾸 만들다보면 아주 맛있을 때도 있겠지?"
"그럼요."
소미가 일 주일 안에 낙천적인 위로의 말을 건넨 게 이렇게 두 번이다. 그냥 어른들이
쉽게 하는 말처럼 저도 무심하게 한 말일까? 정말 그렇게 생각한 것일까. 정확하게
물어볼 수는 없는 일이었지만 어린 딸의 위로를 받는 일은 꽤 괜찮았다. 정말로 위로가
되고 따뜻했다.
나야말로 소미의 실수나 잘못된 행동에 "괜찮아. 힘내. 다음에 잘 하면 되지 뭐"하는
말을 자주 건넬 수 있어야 하는데. 나의 그런 말에 소미가 얼마나 용기와 힘을 얻을까
생각하면.
사실 요즘 내가 소미에게 하는 것을 생각하면 부끄럽다. 야단을 치는 횟수가 잦고
짜증도 더러 내는데, 이러한 소미의 낙천적인 위로가 나를 다시 바르게 일깨우는
채찍으로 다가온다.
열무김치? 그건 아직 조금 더 있어야 맛이 들겠는데 제법 내가 생각한 냄새를 슬슬
풍기는 것 같다. 잘 익어서 맛이 있으면 보리밥 한솥 해서 큰그릇에 덜어 담고 고추장
넣고 열무김치 넣고 썩썩 비벼 먹어야겠다. 냄새보다 맛이 영 아니면? 다음에 잘
담그면 되지 뭐.
갔던 정확한 날은 알 수 없다. 다른 가족들과 어울려 저녁식사를 한 일요일 저녁,
볼링이나 한 게임하고 들어가면 어떻겠냐는 누군가의 제의에 모두 의견일치를 본
후부터다.
서론이 조금 길어지겠지만 이즈음 우리 가족과 주변의 분위기를 전해야 할 듯 싶다.
보통 네 가족이 모였는데 어른 여덟 명에 아이가 넷이다. 두 부부씩 한 팀을 이루어
치기도 했고 부부대항 게임을 하기도 했다. 어떤 경우라도 모두 크지 않은 점수 차로
이기거나 지니 그 재미가 새록새록 더하다. 박빙의 승부를 내기 위해 한 주에 두 번씩
찾는 경우도 있었다.
이젠 아예 우리가 가면 볼링장에서 커피가 자동으로 나온다. 각자 저녁을 먹고 모이기
때문에 두 게임 정도 치고 볼링장을 나오면 11시가 가까워지기 일쑤였다. 소미는
나나 제 아빠 품에서 잠들어 난로가 있는 널찍한 소파에 뉘이기도 하지만, 요란하게
여기저기 헤집고 다니는 소은이와 선재는 여간해서 안 잔다. 걷지 못하는 아기까지
번갈아 돌보며 볼링에 미친 아빠 엄마들은 밤 깊은 줄 모르는 날이 많았다.
아이들은 모두 볼링장 지형에 완전 적응했다. 두 개의 계단과 널찍한 로비, 그리고
100원짜리 동전 넣어 빼먹는 초코볼까지. 처음에는 볼링을 '보땅, 보땅' 그러던 소은이가
이젠 저녁 먹고 밖에 나가려고 하면 "볼링? 볼링?"하고 정확하게 말하며 좋아한다.
또 아이들 간식도 단단히 챙겨 가니 우유만 달랑 준비해가던 처음과는 많이 달랐다.
그러나 여기서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점이 우리 부부의 볼링 실력이다. 남편과
나에게는 아이를 낳기 전에 볼링 친 이후, 요즘 들어 근 몇 년만에 와보는 볼링장이다.
그전에도 좋은 실력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더 안 되었다. 이제까지 거의 우리 부부가
든 팀이 졌다. 특히 내 점수는 아주 들쭉날쭉이어서 짜증이 날 정도다. 100점도 안
나오는 날이 있는가 하면 어젠 150점을 쳤다.
거기다가 남편이 잘 못 치면 나도 따라서 죽을 쑤는 형국이었으니, 며칠 전 단 두
가족이 간 날은 남편이 처음으로 화를 냈다. 나라도 잘 치면 덜했겠는데 나도 그날
남편 따라 도랑으로 빠뜨리고 난리였다. 잘 안 되는 자신에게도 화가 나고 자기 따라
못하는 것 같은 내게도 짜증이 난 모양이었다. 이젠 볼링을 안 치겠다거니, 재미가
안 난다거니, 표정까지 잔뜩 굳어서 분위기를 얼게 만들었다.
한참 그러던 중 소미가 남편에게 이런 말을 했다.
"아빠, 괜찮아요. 기분 푸세요. 오늘 못 하면 다음에 잘 치면 되잖아요."
남편은 딸의 위로를 다 받는다고, 우리 소미밖에 없다고 헛웃음을 웃으면서도 아주
대견스러워했다. 덕분에 분위기가 조금 노골노골해져서 나중엔 그럭저럭 즐겁게 볼링장을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지난 토요일 오후. 나는 국물이 자작한 열무김치를 담고 있었다. 겨우내 농협
김치 사먹고, 그나마 시어진 것들 뿐이어서 입맛이 상그래질 열무김치가 먹고 싶었다.
그러나 너무 오래 김치를 안 담가서, 또 그 전에도 자주 김치를 담근 솜씨가 아닌지라
싱싱한 열무 두 단이 그대로 못쓰게 될까봐 무척 걱정이 되었다. 더구나 요즘 열무는
잘못 하면 풋내 나서 여간 조심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밀가루풀 묽게 쑤어 식힌 것에 갖은 재료를 넣어 양념을 만들어 놓고, 담그는 일만
남겨두었는데 소미가 와서 이것저것 구경하고 물어봤다.
"엄마 이게 뭐예요?"
"열무야. 김치 담는 거."
"아하! '열 하면 열무장수 열무를 판다고 잘잘잘' 할 때 나오는 열무요?"
"그래. 근데 소미야, 지금 엄마는 걱정이 있어. 김치를 많이 담가보지도 않았고 너무
오랜만에 담그는 거라 맛이 없으면 어쩌지? 맛있어야 할 텐데."
"채구이모가 준 것처럼요? 그럼 나도 잘 먹을 텐데."
"그러게 말야. 헌데 이 김치는 채구 외할머니가 만드신 것보단 조금 매울 것 같애.
그러저나 맛있어야 할 텐데. 당장 맛있는 김치도 없거든."
"엄마, 걱정 마세요. 이번에 맛없으면 다음에 잘 만들면 되죠 뭐"
"그럴까? 자꾸 만들다보면 아주 맛있을 때도 있겠지?"
"그럼요."
소미가 일 주일 안에 낙천적인 위로의 말을 건넨 게 이렇게 두 번이다. 그냥 어른들이
쉽게 하는 말처럼 저도 무심하게 한 말일까? 정말 그렇게 생각한 것일까. 정확하게
물어볼 수는 없는 일이었지만 어린 딸의 위로를 받는 일은 꽤 괜찮았다. 정말로 위로가
되고 따뜻했다.
나야말로 소미의 실수나 잘못된 행동에 "괜찮아. 힘내. 다음에 잘 하면 되지 뭐"하는
말을 자주 건넬 수 있어야 하는데. 나의 그런 말에 소미가 얼마나 용기와 힘을 얻을까
생각하면.
사실 요즘 내가 소미에게 하는 것을 생각하면 부끄럽다. 야단을 치는 횟수가 잦고
짜증도 더러 내는데, 이러한 소미의 낙천적인 위로가 나를 다시 바르게 일깨우는
채찍으로 다가온다.
열무김치? 그건 아직 조금 더 있어야 맛이 들겠는데 제법 내가 생각한 냄새를 슬슬
풍기는 것 같다. 잘 익어서 맛이 있으면 보리밥 한솥 해서 큰그릇에 덜어 담고 고추장
넣고 열무김치 넣고 썩썩 비벼 먹어야겠다. 냄새보다 맛이 영 아니면? 다음에 잘
담그면 되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