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충전소

꽃 봉우리 터진 첫 반항기

M.미카엘라 2001. 4. 21. 03:49
금요일 오후 5시쯤 소미의 미술학원을 찾아갔다. 월요일, 화요일 이틀간 미술학원을
보내지 못할 사정을 말하러 간 것이었지만, 사실 그건 전화로 할 수 있는 이야기였고
핑계에 지나지 않았다. 미술학원은 바로 집 옆 코 닿을 곳에 있다. 두 가지 정도의
문제를 더 가지고 퇴근 전 한바탕 청소를 하고 있는 선생님을 만났다.

먼저 요 며칠 소미가 학원에서 돌아오면 비디오를 보았다는 말을 자주 하는 것이
마음에 남은 문제를 말했다. 겨우내 집에서 비디오를 많이 보려는 아이와 되도록
적게 보여주려는 나 사이의 실랑이가 심심지 않았는데, 학원에서까지 웬 비디오인가
싶어서였다.

이건 우리 집만의 문제는 아닌 듯하지만 난 비디오 보는 것을 유별나게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면 좀 걱정스럽고 마음이 착잡하다. 뭐든지 비디오나 텔레비전, 컴퓨터
같은 모니터 안에서 자연이나 생활, 그 밖의 모든 인간 활동을 체험을 한다는 것이
박제된 공부 같은 느낌이 자주 든다. 보면서 무얼 배우고 느낀다 하더라도 완전히
제것이 되기 힘든 그 어떤 장애가 있다. 또 아이는 너무 빠져들다 못해 멍해져서
엄마가 불러도 못 듣는 경우도 잦다.

소미의 경우만 해도 학원에서 돌아오면 특별히 누가 놀러 오거나 재미있는 놀이에
빠지지 못하면 십중팔구 비디오를 보겠다고 나선다. 소은이 역시 소미 그맘 때엔
생각도 못하게 비디오를 좋아한다. 소미가 학원에서 돌아와 비디오를 보기 시작하면
텔레비전 시청은 한 시간도 채 못되어서 4시쯤 시작하는 교육방송 어린이 프로그램으로
이어진다. 이런 문제를 피하기 위해 요즘은 집에 오면 간단히 무얼 먹인 후 집밖
놀이터로 내몬다. 그게 훨씬 낫다.

그런데 선생님은 일찍 온 아이들이 조금 지각하는 아이들을 기다리는 잠깐 동안,
혹은 점심을 유난히 빨리 먹은 아이들이 다른 친구들이 다 먹기를 기다리는 동안만
잠깐씩 틀어준다고 했다. 그것도 가끔. 또 아이들에게는 비디오를 틀어주는 까닭을
설명하고 "모든 준비가 되면 비디오를 끝까지 못 봤어도 끌 것이다"라고 말한다고
했다. 선생님도 텔레비전을 안 좋아하지만 필요할 때 조금씩만 쓴다고 하는데 그
정도를 뭐라고 할 순 없었다.

그리고 다음으론 요즘 소미의 생활태도 중 적잖이 당황하게 되는 부분을 이야기했다.
- 인사를 참 잘해서 칭찬도 자주 들었는데 근래에는 도통 어른을 봐도 인사를 잘
안 한다. 인사하라고 좋은 소리로 채근해도 빤히 보기만 하거나 내 다리 뒤에 숨을
뿐이다.
- 거칠고 삐딱하게 말하는 것도 모자라 좋은 말로 달래고 타이르고 격려해도 그걸
좋게 받아들이지 않고 자주 어긋나게 반대 소리한다.
- 많이 먹진 않아도 골고루 먹었는데 요즘 자주 음식에서 이것저것 골라낸다.
- 어리광이 늘었지만 반대로 자주 엄마에게 대들고 큰소리한다.
- 소미가 부르는 노래를 듣고 싶다고 하면 제 마음대로 지은 노래를 뺀질거리면서
쉬지 않고 부른다. 그만 하라고 해도 여간해서 그치지 않는다.
이처럼 자잘한 예도 들어가며 총체적으로 뭔가 덜그럭덜그럭 소리를 내는 소미의
요즘 모습을 말했다.

선생님도 느낀다고 했다. 지난해에는 그런 모습이 전혀 없어서 뭐라고 말할 일이
없었는데, 올 들어서는 굉장히 활동적이다 못해 다소 거칠다고 했다. 오히려 남자아이들과
결이 맞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예뻐서 안아주고 싶은데도 잘 안기지 않고 도망가
버리거나 뭘 어떻게 하자고 해도 잘 듣지 않을 때가 많다고도 했다.

그러나 선생님은 통과의례라며 크게 마음쓰지 말라고 했다. 작년에 유달리 이런
모습을 보였던 어떤 아이도 올해부터는 눈에 띄게 안정되고 제 본래 모습을 찾더라는
이야기부터, 너무 윽박지르거나 그때마다 찔끔찔끔 야단을 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고 했다. 크게 잘못한 것이나, 몇 차례에 걸쳐서 같은 모습으로 못되게
굴 때 한 번씩 따끔하게 혼을 내주는 것 말고는 평소엔 좀 너그럽고 여유있게 대처하라는
조언을 주었다.

말습관이 좀 나빠졌어도 이 시기에는 남을 모방해서 하는 말이기 쉽지 그것이 실제
제 속에서 맘먹고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몇 번이고 그런 말은 좋지
않은 말이니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고 부드럽게 타이르며 지나가는 정도가 좋다고
했다. 이 시기의 아이를 너무 엄격하게 어른의 시선으로 꼭 붙들어 두려고 하면 성격이
생각과는 다르게 튕겨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선생님을 찾아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혼자 이렇게 하는 게 좋을까 저렇게
하는 게 좋을까 전전긍긍했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소미의 이런 요즘
모습이 언제까지나 이어지지 않고 여유있게 대처하며 가만 두면 저절로 나아진다는
말에 용기를 얻었다. '이유없는 반항' 내지 '제1반항기'라고 하면 적당할지 모르겠다.
아니 보통 말로 '미운 네 살'이 바로 지금인가 싶다. 만으로야 아직 네 살이니까.

저녁엔 남편에게도 이런 선생님의 조언을 전하며 우리가 소미에게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너그럽게, 부드럽게, 여유있게> 이 '3게'가 결론이었다. 남편은
끝으로 이런 말을 했다.
"어이구, 하긴 우리 소미가 못된 짓을 해야 또 얼마나 하겠냐. 고 쬐그만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