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다락방
내게 사실 오래 묵은 물건들이 그득한 다락방 같은 것이 있을 리 없다. 간혹 운 좋게 붙박이장이 있는 군인아파트를 만나기는 하지만, 본의 아니게 라이프스타일의 컨셉이 ‘유목민’이다 보니까 버리고 줄이고 나누는 일에 충실한 살림 살기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이웃 블로거인 ‘라일락’님이 최근 올려주신 글에서 다락방이야기를 하시는 바람에 갑자기 나도 몇 가지 안 되지만 내 추억의 물건을 들춰내고 싶어졌다. (라일락님, 좋은 글감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뭐든 집안 살림을 정리할 때 버리기 섭섭한 건 일단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놓고 버리며 위안을 삼곤 했지만, 아래 몇 가지는 끝내 버리지 못할 물건들이다. 2,30년을 훌쩍 넘긴 그런 귀한 물건은 별로 없다. 10년을 좀 넘기거나 10년이 조금 못 된 물건이 대부분이다. 내가 계속 가지고 있으면서 전통을 만들어볼까 생각 중이다.
1. 문집 한 권과 성음 클래식 테이프
중학교 때 온갖 잡문을 써서 모아두었던 문집이다. 독후감, 산문, 신문사설을 오려 넣어 내 생각을 적은 논술(그땐 그런 것도 없었는데) 대비용처럼 보이는 글도 있다. 이런 걸 스스로 만들어 가지고 있었던 배경엔 선생님 한 분이 계시다. 가족 이외에 내 삶에 가장 먼저, 가장 오래 영향을 주고 계신 ‘미-----루’선생님.
지금 이 방에도 오시는데 내가 중학교 3년 동안 이분께 국어를 배웠다. 한번도 담임선생님을 하지 않으셨는데도 무척 선생님을 따랐다. 나는 선생님을 교과서 밖에서 찾는 특별한 숙제, 묘사가 살아있었던 영화이야기, 학급문집과 개인문집을 아이들이 갖도록 해주셨던 열정, 학생들의 편지에 아름다운 편지지와 글로 가득 채우셨던 답장, 시골 아이들의 머리를 맑게 깨워주셨던 즐거운 지적 자극 등을 기억하고 있다.
전통 깊은 성음의 클래식 시리즈 중의 하나인 이 테이프는 중학교 졸업할 때 선생님이 내게 건네신 선물이다. 짧은 편지도 있었는데 그건 잃어버리고 이건 이렇게 낡은 모습으로 남아있다. 지금도 소미 소은이와 가끔 듣는다. 헤아려보니 문집과 테이프는 25년 정도 된 것들로 내 물건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나는 지금도 이 물건을 보면 가슴과 머리에 맑고 순수했던 어린시절 한 때에 코드가 꼽히는 느낌이다. 일상의 구석구석까지 따뜻해지기 때문이다.
2. 아버지의 파이프
이건 정확히 몇 년 된 물건인지 모르겠다. 아버지의 유품인데 사실 아버지의 파이프는 두 개다. 모양이 좀 더 잘 빠진 게 하나 더 있는데 삐수니 언니가 먼저 차지해버렸다. 미군부대 노무자였던 우리 아버지는 참 멋 내는 거 좋아하셨다.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실루엣은 ‘라이방’(‘레이 밴’이라는 안경 브랜드를 그땐 선글라스를 지칭하는 보통명사처럼 불렀다)을 쓰고 이 파이프를 물고 계시는 모습이다. 그럴싸한 모자만 하나 쓰시면 맥아더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오래된 흑백사진들만 보면 여자께나 후릴 정도로(^^) 폼 나는 분이었지만, 우리 엄마 아버지 돌아가시고 하신 말씀. “평생 여자와 도박을 모르고 내 고무신 떨어뜨리지 않고 늘 미리 사다준 거, 나 바깥일 시키지 않은 거 고맙게 생각한다.” 아버지가 평생 술과 친구 좋아하셔서 속 많이 썩으셨으면서도 그리 말씀하시더라. 지지난 일요일이 아버지 돌아가신 지 10년 된 날이다. 내가 혼인한 이듬 해 돌아가셨다.
3. 학교 배지
이걸 빼먹을 뻔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때 학교 배지다.(미루 선생님 기억나시죠?) 우리 중학교 학교 이름 참 좋다. 청산중학교. 모두 3반까지 있었던 작은 학교로 남녀공학이었는데 지금도 기수마다 동창회, 동문회 짱짱하게 잘하고 그 정스러움이 말할 수 없다. 나는 그 시골에서 비교적 ‘대처’라고 할 수 있는 의정부여고로 진학을 했는데 학교 상징이 백학이어서 배지는 물론 학교 축제도 ‘백학제’였다. 아마 우리 동문들이 이거 보면 “이야... 이거 얼마 만에 보는 거냐” 이러면서 새삼스러워할지 모르겠다. 원체 큰 물건은 보관할 엄두도 못 내니까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은 이렇게 올망졸망한 것들 뿐이다.
4. 열쇠고리
귀엽고 익살맞은 표정의 동자승이 있는 열쇠고리는 남편이 결혼 전 내게 준 첫 번째 선물이다. 성당에서 청년회 활동하면서 알게 된 이래, 다른 이성친구들과 남다르게 생각한 증거로 자기에겐 의미가 있다는 이 열쇠고리를 내게 주었다. 여기다 아파트 열쇠나 자동차 열쇠나 모 그런 거 한두 개쯤 달아서 줘도 괜찮았을 텐데…ㅎㅎㅎ 난 아직 여기에 군인아파트 열쇠든 우리 집 중고차 열쇠든 한번도 달지 않았다. 그냥 막 써서 긁히고 상처 나게 하고 싶지 않은 기분이다. 이것도 족히 15년은 됐겠다.
5. 웨딩드레스
11년 전 결혼할 때 입었던 웨딩드레스와 액세서리들인데 삐수니 언니가 만든 ‘삐수니표 드레스’ 1호다. 나중에 큰 조카 웨딩드레스, 꼬맹이 조카들 드레스를 만들어 주면서 그 솜씨와 실력이 일취월장하여서, 맨날 1호의 주인인 나는 실험대상이라 손해라고 투덜거렸지만 그건 그냥 하는 소리다. 나는 이 드레스를 너무나 좋아하고 아낀다. 늘 1호를 아낌없이 내게 주는 언니에 대한 고마움은 사실 말로 다 할 수 없다. 등에 지퍼가 아닌 32개의 싸개 단추가 촘촘하게 달려서 입기에는 시간이 걸리지만 이 부분이 제일 맘에 든다. 그때 언니가 함께 만들어준 동그란 부케도 너무나 예뻤다.
외국영화 보면 엄마가 청혼을 받은 딸을 축하하며 다락방에 데려가서 자신이 결혼할 때 입었던 드레스를 꺼내 입혀보는 장면을 간혹 보았는데, 내가 한번 그래 볼까 한다. 아직 솜손은 이 드레스의 존재를 모른다. 밖으로 놀러 나간 사이에 살짝 사진만 찍어놓고 다시 넣어두었다. 또 한 가지 특별한 점은 나와 남편이 혼인했던 성당은 시아버님과 시어머님이 지금으로부터 40여 전에 혼인하신 성당이기도 하다.
6. 신혼여행 기념품
남편과 나는 결혼할 때 예단과 예물을 거의 다 줄이고 신혼여행을 호주로 다녀왔다. 일체 결혼 준비에 간섭과 참견이 없고 예단에 대한 부담을 주지 않으셨던 어른들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지만, 한편으론 남편이 결혼 후 다시 군인의 길을 갈 계획을 세웠기 때문에 (군인이 되면 해외여행이 어려울 터이니) 한번 밖으로 크게 뛰어보자 의기투합했던 것이다. 5박 6일. 지금 생각해도 후회 없는 결정이었다. 호주에서 사는 동물들의 그림이 그려진 주방용장갑과 냄비받침은 어디 관광지를 방문했을 때 그곳에서 여행사 직원을 통해 전해 받은 기념품이고(오랫동안 너무 잘 써서 빨아도 이렇게 누렇다), 필름 통에 담긴 것은 30여 킬로라나 하는 곱디고운 긴 백사장을 자랑하는 골드코스트 해안의 모래다. 서핑을 즐기는 젊은 사람들의 역동적인 모습이 아직도 생각난다. 그리고 작은 성냥은 우리가 이틀을 묵었던 복층으로 된 아주 예쁜 호텔의 성냥이다. 뭐 대단한 건 아니지만 이러한 기념품은 사진과 달리 또 다른 추억의 자락을 붙잡게 한다.
7. 신생아 발목 띠와 탯줄 흔적
이건 우리 소미와 소은이가 내게서 태어나 병원에 있는 동안 발목에 감고 있던 띠다. 내 이름과 성별, 몸무게 등이 쓰여 있는데, 이것과 똑같은 것이 내 손목에도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배꼽이 떨어지면서 탯줄 끊은 자리를 집어놓은 작은 집게에는 나와 내 아이들을 이어주었던 최상급 흔적이다. 배내저고리도 한 벌씩 보관하고 있지만 사실 이것들이 조금 더 소중하다.
나는 이것을 꺼내서 볼 땐 쑤욱 커버린 아이들을 번갈아 보게 되는데 그럴 때면 기분이 묘해지다가 이내 가슴이 촉촉해진다. 터울 적은 두 아이를 짬짬이 일하며 기르면서도 남편의 도움을 거의 받지 못했기 때문에 (남편은 소은이 낳고 나서 퇴근 후 학교를 다녔다) 울기도 좀 울었다. 요것들 언제 크나 하면서 한숨도 많이 내쉬었다. 나는 사실 자식 기를 때 한결같이 애틋한 사랑과 뚝뚝 흐르는 애정으로 천상의 시간을 보낸 것 같이 말하는 사람들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내 속으로 낳은 자식에 대한 인간적인 책임과 쉼 없는 일상의 고단함이 누적되어, 아이들이 그렇게 가슴 시리게 예쁘고 애틋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나는 아이들에게 지금도 때때로 미안하다.
그런데 지내놓고 지금 이런 것들을 꺼내보니 그 시절 길기만 한 하루해와 육아노동의 고된 기억이 언제인지 모르게 가위로 싹둑 잘려나간 것 느낌이다. 굳이 그 시간을 찾아서 깁거나 붙일 필요는 없겠다. 아니, 붙일 수도 없을 것이다. 본래 부모란 사람들은 자식이 그렇게 자기들을 행복하게 해준 시간만 잘 기억하는 이상한 동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