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충전소

놀이의 주도권

M.미카엘라 2001. 6. 30. 01:46
요즘 나는 소미에게 '선생님 놀이'를 당분간 금지시켰다. 동생을 지나치게 군기(?)
잡는 바람에 너무 괴로운 소은이 처지를 생각해서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종의
벌칙처럼 금지령을 내린 지 오늘로 거의 일 주일에 다 되어 가는가 싶다.

소미의 미술학원 선생님은 간간이 매도 드시고 벌도 세우는 모양이다. 사내 아이
두세 명이 뭉쳐서 말로 해도 도무지 듣지 않을 때 약처럼 간혹 그런다는 말을 선생님에게
직접 듣기도 했다. 고 고물고물한 어린 녀석들이 꽤나 말썽 일으키고 뺀질 대고 말
안 듣고 오죽하랴 싶었다. 다만 그 횟수가 잦지 않고 겁주는 수준에만 머물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런데 소미가 숫자 가르쳐줍네, 글자 가르쳐줍네, 글씨 읽는 걸 따라하게 합네 하면서
제 동생을 쥐잡듯하는 것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사실 아직은 저도 한글을 모르면서
간간이 한 글자씩 아는 것을 가르쳐주거나 숫자를 가르치면서 완전히 선생님처럼
굴었다. 어떤 때는 책을 주기도 하는데 알고 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를 지어서 술술
읽었다(?).

하루는 소은이가 숫자를 쓰는데 '1'은 '언니선생님'을 따라서 잘 썼다. 그런데 고놈의
'2'자가 소은이를 난감하게 하고 말았다. 하긴 며칠 있으면 이제야 두 번째 생일을
맞는 아이에겐 여간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다. 그런데 언니선생님은 그 쉬운 걸 왜
못 따라하느냐고 야단치고 겁주고 벌주고 급기야는 매를 들었다. 그 매가 얼마나
무지막지했는지 내가 기절할 뻔했다. 말리지 않았으면 소은이는 거의 각목수준의
긴 나무 블록으로 맞기 일보직전이었던 것. 소은이는 맞지도 않았는데 이미 기가
질려 울고불고 난리였다.

나는 그 자리에서 당분간 선생님 놀이는 하지 말라고 했다. 선생님이 글자를 모른다고
너나 친구들을 그렇게 때릴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엄마도 네가 글을 모른다고
야단한 적 있느냐, 선생님이 고운 말로 해야지 그렇게 무섭게 하면 배우는 사람이
좋겠냐 하면서 달랬다.

이렇게 놀이의 주도권은 으레 소미가 잡고 있다. 소미가 소은이에게 주문하는 여러
가지 사항은 늘 너무 많고 까다롭기까지 하다. 병원놀이도 소은이는 늘 엉덩이에
주사 맞는 환자 노릇만 할려니 결국 나중엔 "안 할 거야" 그러면서 반기를 든다.

'온천 놀이'는 소미가 생각해낸 건데 방바닥에 어른 베개 두 개를 벽과 간격을 두고
나란히 늘어놓으면 그 안쪽은 온천탕이 된다. 그러면서 목욕가방 챙겨서 아기를 데리고
가는 건데, 아기는 잃어버리거나 미끄러진다고 꼭 소은이 손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그게 싫은 소은이가 안 한다고 울고 자기 가방을 따로 챙기면 놀이엔 슬슬 분열이
생긴다.

그래도 가장 사이 좋은 놀이는 '엄마 놀이'다. 여기선 소미가 우는 아기 역할하는
걸 더 좋아하기 때문에 번갈아 엄마와 아기 역할을 하니 싸울 일이 거의 없었다.
응애응애 울면 엄마는 아기에게 인형 젖병을 가져다주고 다른 먹을 걸 갖다주고,
시장 갖다 오겠다고 몇 발짝 걷다가도 아기가 울면 "응 아가, 엄마 왔다. 울지 마"
하면서 되돌아온다.

소은이는 그래도 늘 언니가 자기를 끼워서 놀아주는 게 아주 즐거운 눈치다. 소은이가
낮잠을 오래 자면 빨리 깨워보라고 하고, 남의 집에서 오래 논다 싶으면 빨리 데려오라고
성화를 대는 소미에게도 소은이는 없으면 도무지 허전하고 심심한 존재가 된 게 분명하다.
그런 만큼 소은이에게 좀 부드럽고 상냥하게 대했으면 싶은 게 이즈음 내 큰 바램이다.
두 아이가 조용하고 평화롭게 놀고 있는 모습은 나를 퍽 행복하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소은이도 저 하고 싶은 놀이가 있고 제 주장도 높아지니
둘이 평화로우리란 걸 기대하는 일은 점점 어려우리라 본다.




*엄마 놀이.
아기가 아프다. 곱게 접어 물에 적신 화장지를 이마에 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