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학교

쌈닭의 나들이

M.미카엘라 2001. 7. 19. 20:11
남편은 7월 14일자로 이 부대에서 할 일을 모두 마쳤다. 만 3년이 넘는 시간을
한 부대에서 보낸 남편의 마음을 속속들이 헤아리는 일이 쉽진 않았지만 여러
가지 심경이 교차되고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말수가 적어졌고 조금 우울한
것 같기도 하고 서운한 것 같기도 하고 착잡한 것 같기도 하고 시원한 것도
같았다.

거기다가 다음 주 월요일에 입교하는 5개월간의 교육성적은 자신의 군생활에
아주 중요한 평가로 오래 따라다닐 것이기 때문에 아주 큰 부담을 안고 있다.
또 가족과 떨어져서 주말에나 만나야 한다는 것이 가장 힘든 부분이기도 했는지
갑자기 태도를 바꿔 그냥 이사해서 같이 살자고 하여 나를 난감하게 만들기도
했다. 5개월 후엔 다시 이삿짐을 싸야하는 일은 남편이 없어서 힘든 부분도
극복하자고 할 결심이 설 만큼 나로선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군복을 벗는 그날까지 몇 번이나 이사를 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데, 그 한 번의
이사를 줄이는 일은 아직 어린 딸들을 돌보아야 하는 내 힘을 크게 더는 일이다.
아무리 포장이사를 한다지만 아직도 이사는 살림하는 여자에겐 아주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 그 이사바람을 잠재우고 공부에만 전념할 마음을 굳힌 남편에겐 입교일까지
일주일이라는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그래서 우리 네 식구는 그냥 순수하게
사람을 만나러 가는 일로 강원도 인제군 원통으로 향했다. 큰비가 내릴 것이라는
기상청 예보가 은근히 걱정되었지만 아직 내리고 있지도 않은 비 때문에 계획을
바꿀 남편과 내가 아니었다. 뭐 야영을 한다거나 해수욕을 할 계획은 조금도
없었고 미시령만 넘으면 닿을 속초마저도 갈 계획은 없었다.

소미를 낳아 어설프게 초보엄마 생활을 시작했던 곳. 내 육아도우미의 전부였던
이웃들이 베풀어준 따뜻한 정이 오래 잊히지 않을 곳이다. 작년 10월초에도
이곳을 다녀간 일을 올린 칼럼(제57호 짧고 푸근했던 가을여행)도 있다. 아직
1년도 채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아주 오랜만에 온 것 같다. 자주 오고 싶은
마음이 강했던 탓인지 몰랐다.

많이 달라져 있었다. 먼저 가는 길. 이천 우리 집에서 홍천까지 한 시간만에
닿을 수 있는 반듯한 고속도로형 국도가 생겼다. 우린 너무나 생경해서 이거
이렇게 가는 것이 맞는가 싶었다. 너무 빠른 시간에 홍천에 닿으니 좋으면서도
얼떨떨했다.

그리고 우리가 살던 관사에 한 지붕을 이루어 이웃하던 네 자매 집이 이사를
갔다. 아주 가까운 곳에 민간 아파트가 지어졌는데 거기 몇 세대가 군 관사로
쓰이는 모양이었다. 보통 사람들에겐 23평이 좀 좁다 싶을지 몰라도 군인가족에겐
호화주택에 속한다. 보통 군인아파트는 13평에서 15평이 가장 많으니까.

우린 우리가 살던 집 바로 앞집 태수네서 하룻밤을 잤다. 태수는 소미와 1년
가까이 함께 자란 여섯 살 사내아이고, 소은이보다 한 달 늦게 태어난 여동생
나연이가 있다. 오늘의 육아일기는 여기서부터가 본론이다. 참 '서론 한 번
무지 길다'하시는 분 계실지 모르겠지만.

태수는 새카매지기만 새카매졌지 그리 눈에 띄게 크진 않았다. 그런데 군것질
없이 밥을 잘 먹고 야외활동을 많이 하는 덕분인지 안아보니 단단하고 아주 실했다.
건강하고 짱짱하게 잘 크고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동생 나연이를 본 나는 아주 기절하는 줄 알았다. 소은이와 아주 차이가
나게 키도 덩치도 쑥 컸지 뭔가. 키가 소미보다 한 5센티 정도 작을까말까
했다. 내가 사 가지고 간 하늘색 원피스가 겨우 팬티를 가릴 지경이었으니
이건 비온 뒤 호박이 쑥쑥 자라는 걸 보는 기분이었다. 작년에 돌 지난 뒤
보았을 때도 얘가 좀 크겠다 싶은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로 클 줄은 상상도
못했다. 결국 원피스는 퇴짜 맞고 소은이 입히는 것으로 낙착을 보았다.

그런데 이 남매와 소은이의 혈전이 가관도 아니었다. 나연이가 만만찮은 성격이
라고 태수모친은 말했지만 소은이는 더 만만찮았다. 태수가 집요하게 장난하고
귀찮게 하고 약올리는데 땀을 뻘뻘 흘리면서 "꼬지븐다, 발로 찬다, 이케 꼬지븐다"
하면서 악착같이 따라다녔다. 그 숨찬 와중에도 제 얼굴과 팔뚝까지 힘껏 꼬집는
시늉까지 하는데는 태수엄마까지도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소은이는 내가 화장실간 사이에 태수엄마에게 "혹시 껌 있어요? 이모?"했다던가.
만 두 살 짜리 입에서 조심스레 '혹시'라는 단어가 나온 데 대해 폭소하면서
태수엄마는 소은이를 보며 내내 웃음을 거둘 줄 몰랐다.

자기보다 세 살이나 많은 오빠에게까지 그 난리인데 나연이에겐 어떠했겠는가.
두 여자아이 사이에선 주로 한 가지 장난감을 가지고 서로 갖겠다고 다투는
상황이 자주 일어났는데 소은이는 한 손으로 장난감을 꽉 잡고 다른 손으로
나연이의 얼굴을 공격했다. 그 하얀 얼굴에 상처 남을까봐 나는 전전긍긍 말렸는데
처음에 기선제압을 당한 나연이는 자주 엄마 품에서 울어서 미안했다. 그렇게
조심시켰는데 결국 나연이 콧등에 검정깨 같은 상처를 내고 말았다.

내가 보니 나연이는 힘도 있고 오빠 탓에 거칠게도 놀아봤지만(?) 아직 아기
티가 완연하고 거기다 기본적으로 순한 아이에 속했다. 이제 8월이 되어야
두 돌을 맞는 아이다. 그에 견주어 소은이는 웬만한 독자들은 모두 알다시피
꽤 약은 데다가 보통이 아닌 성질머리를 갖지 않았는가.

남편은 그런 소은이를 늘 속으로 화이팅하는 편이다. 작은 딸내미를 보면
힘이 절로 나는 것 같이 보일 때가 있다. 나연이에게 그러지 말라고 말리면서도
내심 흐뭇한 미소를 속으로 흘리고 있다는 걸 내가 왜 모르겠는가. 발차기를
가르친 사람이 누구라고는 내 따로 말하지 않겠다.

나는 자랑도 화이팅도 할 수 없다. 그렇다고 속상한 감정과 염려만 꽉 찬
것도 아니다. 신기할 뿐이다. 소은이의 행동이 마냥 신기할 뿐이다. 소미와는
천지 차이인 그 행동 하나 하나가. 다만 분명한 건 싫은 내색하지 않고 소은이를
예뻐해 주고 목욕시켜준 태수엄마가 정말 고맙다는 점이다.

태수네, 네 자매 집을 들러서 의정부 할머니께로 돌아온 후 소은이는 시누이의
아들, 즉 제 사촌 되는 도훈이에게도 전에 없이 덤볐다. 도훈이는 소은이보다
3개월 빨리 태어난 아인데 키가 크고 몸무게가 15kg(소미보다 1kg 더 나간다),
신발 사이즈가 160mm도 이젠 꽉 맞는다. 소은이는 거기 대니 한참 동생 같다.
아, 정말 다른 집 애들은 왜 이리도 큰 걸까.

도훈이는 악착을 떨며 소리 지르고 때리고 꼬집으며 장난감 뺏으려고 덤비는
소은이에게 질렸던지, 한번은 소은이가 방심한 틈을 타서 툭 때려놓고 방으로
냉큼 들어가 문을 탁 닫아버렸다. 소은이가 잊을 만 하니 나오는데 어머니랑
한참 웃었다. 힘으로는 그만한 아기 장수가 드무니까 주로 어른들은 도훈이를
말리는 편. 그러나 정말 화가 나면 나동그라지게 떠밀거나 거칠게 때리는 무서운
구석이 있어서 나는 소은이를 자주 진정시키며 위험수위를 조절해야 했다.

소은이는 어제 우리 집으로 돌아오면서 뒤에 따라오는 차를 보고 이랬다.
"차가 따라온다… 야, 따라오지마. 너는 절로 가"
무슨 막가파나 칠공주파의 두목도 아닌 것이 두 눈을 착 내리깔고 손가락까지
까닥대며 말하는데, 이거 혹 어떤 독자님이 '얼굴 안 보인다고 거짓말도 잘
지어낸다'하지 않을까 염려가 될 정도다. 그 당시 나는 내가 어찌 저런 딸을
나았나 싶은 게 그냥 실소하고 말았다.

<혹시 우리 소은이를 어디서 볼 기회가 있으신 분들께 알려드립니다. 꼭
해야 하는 거 아니면 너무 오래 빤히 쳐다보지 마시길. 그 '드런' 성질이 "왜
꼬나 봐요?" 하면서 시비 걸지 모르거든요. 에휴!>

소은이는 집에 와서 정말 아주 오랜만에 만난 친구 선재와도 얼굴 마주치자마자
치열하게 한 판, 두 판, 세 판도 넘게 싸우고 지금은 잔다. 참 별나게 거친
꼬마 손님을 치른 태수네는 지금 뭘 할까 궁금하다. 다 자고 있을 테지. 나연이는
소은이가 자길 괴롭히는 악몽이나 꾸는 건 아닐까.

내일은 새로 산 나연이의 체크 원피스를 우편으로 부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