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충전소

불후(?)의 동화 한 편

M.미카엘라 2001. 8. 20. 01:02
옛날 옛날부터 지금까지 살고 있는 도깨비가 하나 있어.
그 도깨비 이름은 '잠도깨비'야. 밤이 되면 이런 아파트나 집들 사이를 기웃거리는데
특히 불이 환하게 켜진 집을 골라 창 밖에서 이렇게(무서운 얼굴로) 들여다본댄다
글쎄.

왜 그러는 줄 알아? 늦은 시간까지 잠 안 자고 깨어있는 아이들을 데려가기
위해서야. 어린이들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쑥쑥 크는 법이거든? 그런데
요즘은 늦게 자는 아이들이 너무 많아서 혼내주어야겠다 생각한 거야. 잠도깨비는
무섭긴 하지만 그래도 어린이들을 잘 자라게 하려고 그러는 거니까 나쁜 도깨비는
아니야.

그러던 어느 날, 잠도깨비가 불 켜진 한 집을 들여다보고 있었대. 아 참, 이
도깨비는 우리 눈에는 안 보여. 도깨비가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 요술방망이를
두드리면 그 땐 볼 수 있지만.

그런데 이 집에서 한 아이가 잠 잘 생각도 않고 계속 블록만 가지고 놀고
있더래. 근데 그 애 엄마가 마침 "똘똘아, 이제 자야지. 너 계속 잘 생각도
않고 놀기만 하면 잠도깨비가 잡아간다. 얼른 치카치카 하고 오너라" 그랬어.
똘똘이란 아이는 그래도 꿈쩍 않고 블록만 만지작거리며 이런 말을 하더랜다.
"잠도깨비? 그런 게 어딨어요? 엄마. 있어도 난 하나도 안 무서워요. 더 놀다
잘 거예요."

에그머니! 그 이야기를 진짜 잠도깨비가 모두 듣고 말았으니 어쩜 좋아. 도깨비가
이 소리를 들으면 화나지 않겠니? 정말로 잠도깨비는 화가 나고 말았어.
'뭐라고? 내가 하나도 안 무섭다고? 그으래? 엄마 말씀대로 곧 잠들면 내 용서해
주려고 했는데 정말 안 되겠구나. 도깨비나라로 데리고 가야겠다.'
이러더니만 그대로 도깨비방망이를 두드려서 슈슈슝∼하고 똘똘이를 데리고
사라졌대. 진짜 무섭고 놀랍지? 후휴!

도깨비나라에 간 똘똘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 앤 커다랗고 환한 방에서
진짜 잠도깨비를 볼 수 있었어. 머리 한 가운데 뿔이 하나 있고 커다란 눈이
이이렇게 치켜 올라간 험악한 얼굴이었어. 목소리는 또 얼마나 쩌렁쩌렁 크고
무섭다고.
"너 내가 하나도 안 무섭다고 했지? 난 가짜가 아니고 진짜 잠도깨비다. 왜
엄마 말씀대로 일찍 안 자는 거냐? 일찍 자야 쑥쑥 크고 건강한 건데. 그렇게
잠을 안 자겠다면 내 정말로 안 재워주지. 넌 며칠 혼 좀 나야겠다."

이러면서 똘똘이를 며칠 동안 못 자게 괴롭혔대. 잠이 막 오는데 누가 못 자게
하면 얼마나 괴롭겠니? 아마 너무 힘들어서 못 견딜 거야. 똘똘이는 참다 참다
못 견디고 결국 엉엉 울면서 용서해달라고 했대.
"잠도깨비님, 한 번만 용서해주세요. 엄마도 너무 보고 싶고 아빠도 너무 보고
싶고 동생도 너무 보고 싶어요. 그리고 너무 졸려워요. 제발 잠자게
해주세요. 다음부터 정말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날게요 네?"

그래서 잠도깨비는 어떻게 했을까? 아까 잠도깨비는 나쁜 도깨비가 아니라고
했던 말 기억나? 그래. 도깨비는 마음씨가 고와서 금방 용서를 했대. 하지만
다음에 또 그러면 그땐 아주 진짜로 혼내주겠다고 했지.

그날 밤, 똘똘이는 무사히 집에 돌아올 수 있었어. 집에 돌아온 똘똘이는
그 다음부터는 아홉 시만 되면 치카치카 딱 하고 아빠, 엄마께 인사하고 곧
잠이 들었다지 아마. 그래서 지금은 키도 무척 많이 크고 건강하대. 그리고
일찍 일어나니까 전에처럼 미술학원에 늦는 일도 없어서 똘똘이를 지각대장이라고
놀리는 친구들은 이제 하나도 없게 되었대. 이제 끝이야.

이 이야기는 좀 어설프지만 내가 두 딸들에게 좀 일찍 잠드는
습관을 들이려고 급히 지은 동화라고 할 수 있다. 좀 무섬증을 유발해서 꼼짝 않고
누워 있다가 잠들게 하는 방법이 그리 좋은 것 같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습관이 들
때까지만 써먹을 생각이다.

소미는 소은이보다 조금 일찍 잠드는 편이지만 그래도 10시를 넘길 때가
많다. 소은이는 하루종일 똘똘한 장신으로 잘 놀다가 낮잠 시간으론
좀 늦은 5시를 넘긴 시간에 두 시간씩이나 자고 나니 밤잠은 11시를 훌쩍
넘기거나 아주 12시를 넘기는 때도 적지 않다. 그러고는 아침에 해님이
엉덩이를 두드릴 때까지(소미는 9시, 소은이는 11시까지 자기도 한다)
자는 게 이즈음 보통 우리 세 모녀의 생활이다.

그러던 중 남편이 교육을 들어가고 도무지 이래가지고는 안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내년에 소미가 이르게 데리러 오는 유치원 버스를 잡아탈 수가
없을 것 같았고, 오전을 쓸모 없이 잠으로 낭비하는 것이 문득 아까웠다.
또 아이들은 밤 10시에서 2시까지 잠들어 있어야 성장 호르몬이
퐁퐁 샘솟는다나 하는 소리도 들은 터라 내 결심은 굳어졌다.

먼저 소은이의 늦은 낮잠을 잡았다. 일찍 일어나게 해서 낮잠을 일찍 재우면
밤에도 일찍 잠들까 했지만 그것도 허사였다. 일단 20분을 자든 두 시간을
자든 낮잠을 한 번 자기만 하면 늦게 자는 게 익숙해져있었다.
그래서 아예 낮잠 없이 일찍 재우기로 했다. 하긴 근래에 소은이가
낮잠 없이 일찍 잠드는 때가 간혹 있기도 해서 그편이 오히려 수월했다.

5시를 넘겨라. 졸릴 무렵에는 아예 밖으로 데리고 나가 놀렸다. 그러면 아주
졸린 시간을 넘기는데 그러면 이른 저녁을 먹이고 재웠다. 소은이는
8시에서 9시면 잠드는데 성공했다. 이젠 낮잠 없이도 그리 힘들어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두 아이의 오랜 습관이 꿈틀댈 때 나는 이 이야기를 생각해냈다.
생각 밖으로 효과를 톡톡히 보고 두 아이는 일찍 잠들었다. 특히 소미가
아주 겁을 먹었는데 그래도 밤마다 잠도깨비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랐다.
8시 30분쯤부터 큰바늘이 숫자 12에 가면 잠도깨비가 올 것이라고
해두었더니 아직 밖에 훤한 6시 30분에도 "엄마, 잠도깨비 올 시간
다 됐어. 빨리 빨리!" 이래서 나를 미안하게 했다. 토요일엔 학원을 가지
않으니 금요일과 토요일엔 좀 늦게 도깨비가 온다고 해두었다.

그럼 딸들의 기상시간이 좀 빨라질 것이라고 생각한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둘 다 여전히 9시다. 12시간 놀고 12시간 자는 두 아이. 아, 정말 잠꾸러기
딸들이다. 미인이라 잠꾸러기인가? 잠꾸러기라서 미인인가? 크크!

암튼 두 딸이 모두 잠든 호젓한 밤, 나의 호강은 너울너울 춤춘다. 먼저 한
40분 조깅하고 샤워하고 가끔 녹차팩도 하고 신문이나 잡지 꼼꼼히 읽고
남편과 수다도 떨고 편지도 쓴다. 아이들 잠 습관이란 게 수시로 바뀌는
것이긴 하지만 이쯤 컸으니 이제 이걸 기준으로 잠드는 시간을 완전히
굳혀야겠다.

잠과의 전쟁, 이제 비로소 종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