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충전소
그날 목욕탕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M.미카엘라
2000. 5. 1. 13:33
토요일에 소은이가 처음으로 공중목욕탕을 경험했다.
소미가 밖에서 흙놀이를 하고 돌아왔기 때문에 집에 신발을 벗고 들어오지
못하게 해놓고 서둘러 목욕 준비를 했다. 남편이 일찍 퇴근하면 소은이를
맡겨두고 가려고 했는데 좀 늦는다고 전화가 왔다. 날씨도 아주 따뜻하고
더구나 소은이는 마른기침을 해댄 지 한 이틀이 넘은 탓에, 수증기
가득한 목욕탕은 목에 좀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소은이는 이제 제법
앉아서도 잘 논다. 나는 제대로 목욕이 안 될 것을 각오하고 어렵사리
딸들과 함께 집을 나섰다.
아파트 단지 안에는 '회관'이라고 해서 목욕탕, 삼겹살집, 방이 몇 개 있는
숙박시설, 휴게실이라고 부르는 생맥주방이 한 데 모여있는 부대에서 운영하는
편의시설이 있다. 목욕탕은 요일과 시간을 잘 기억해두었다가 이용해야
되는데 1000원만 주면 된다. 샤워 꼭지가 서서하는 것을 합해 여덟 개,
작은 온탕과 냉탕, 그리고 다섯 명 정도가 둘러앉으면 꽉 차는 사우나도
있다. 10개 동에서 사는 사람들이 함께 쓰는 곳으로는 비좁을 때가
많지만 거기서 더 커봐야 낭비일 수 있다. 나처럼 어린 방울이 딸린
사람에겐 이만만 해도 감지덕지다.
소미는 목욕탕 가는 일이 즐거운지 노래까지 흥얼흥얼거리며 소은이 업은
포대기 자락을 잡고 졸래졸래 따라왔다. 소꿉놀이용 조그만 플라스틱 장바구니에
물놀이에 쓸 이런저런 장난감까지 담아서 들었다.
"보라색 꽃은 뭐라 그랬지? 엄마?"
"제비꽃."
"야! 참 많다. 저기 봐. 저기, 저기, 저기도 있다 엄마. 대게 많다아."
소은이는 대번에 낯선 장소에 대해서 팽팽한 긴장을 하기 시작하더니, 옷을
다 벗겨도 좋아하는 기색이 없었다. 집에서는 옷을 다 벗기면 목욕하는 줄
알고 팔다리를 흔들며 좋아했는데.
목욕탕에는 중학생쯤 보이는 여자아이 셋하고 아는 분이 남매를 데리고 오신
게 사람의 모두였다. 한가해서 다행인데도 소은이는 탕 안에 들어가기
전부터 좀 놀라는 것 같더니만 다 끝날 때까지 한번도 웃질 않았다. 탕 전체에
울리는 물소리, 목소리가 위협적으로 느껴졌는지 자꾸 겁먹은 표정으로
두리번거렸다.
세수 대야에 앉히니 좀 좁은 듯 꽉 찼다. 나를 보고 계속 안아달라는 듯 영
싫은 기색으로 주변을 돌아보는데, 물 속에서도 가슴쪽으로 꽉 끌어안지
않으면 울려고 했다. 치약튜브며, 작은 샴푸병 같이 평소 가지고 놀지 않았던
걸 쥐어주며 간신히 펑펑 울 기세를 잠재웠다. 소미부터 머리 감기고
씻겨놓고 나도 마음이 바쁠 대로 바쁜 걸 진정하며 얼추 한번 씻었다.
아기들의 젖살 오른 통통한 몸은 얼마나 이쁜가. 옆에서 아는 분이 예쁘다고
쓰다듬어 주시는데 그냥 울어 버렸다. 그래도 정신 쏙 빠지게 울진 않는 게
고마워 "여기서 적응 기간을 가져야 사람 많은 큰 온천에서 잘 지내는
거야" 하며 달랬다. 소미는 백일 이전에 오색온천을 간 이후 애초에 뭘
모를 때부터 다녀서 그런지 운 적이 없었다.
소미가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 하는 그 특유의 표정을 지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도 작게 오무리며 급하다는 표정인데 늘 장난기가 가득했다.
얄궂게도 여긴 옷을 다 입고 나가야 화장실이 있고 우린 배수구 바로
옆자리에 앉았다.
"응? 그냥 고 옆에서 해도 돼. 괜찮아."
그리고 머리를 감고 났는데 소미가 다했다고 했다. 돌아보곤 으익 깜짝 놀랐다.
소미가 똥을 싸놓았던 것이다.
"아유! 똥이었니? 그럼 미리 말을 했어야지. 어떡하믄 좋아?"
순간 어찌해야하나 당황하며 종종대는데 소미 말이 더 걸작이다.
"오줌만 눌라 그랬는데요, 얘가 막 나왔어요 엄마."
"그래? 괜찮아. 엄마가 치우면 돼."
휴지도 비닐봉지도 없는데 쓰레기통에 비누 포장지 두 개가 들어있다. 나는
그것으로 '우리 딸의 뜻과 관계없이 나온 놈'을 해치웠다. 다행히 놈은 동글동글
단단했다(너무 표현이 섬세했나?).
그 난리를 치르고 목욕탕에서 돌아왔다. 그래도 몸이 가볍고 개운했다.
소은이는 돌아와선 곧 깊은 잠이 들었다. 아직 잘 시간은 아닌데 새롭고
낯선 경험으로 쉬 지친 모양이었다.
어른이 되면 뭐 낯선 것도 새로운 경험도 점점 적어진다. 놀랄 것도 신기할
것도 재미난 것도 적어지고 심드렁한 기분으로 사는 날이 더 많다. 그래서
어른이 된 사람이 작은 일에 잘 감동하고 기뻐하고 새로운 경험에 놀라워하며
그 느낌을 크게 말하면, 우린 대부분 '참 철없다'라고 말하길 좋아한다.
사실 애들이나 그래야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고정관념이 거기에도 뿌리를
단단히 박고 있다.
일부러 '철없게' 굴 필요는 없지만 마음속의 놀라움이나 기쁨, 슬픔, 즐거움
따위를 좀 아이처럼 꾸미지 않고 수수하게 표현하는 것도 사람 사는 냄새를
더 고소하게 만드는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 생각도 너무 철이 없나?
소미가 밖에서 흙놀이를 하고 돌아왔기 때문에 집에 신발을 벗고 들어오지
못하게 해놓고 서둘러 목욕 준비를 했다. 남편이 일찍 퇴근하면 소은이를
맡겨두고 가려고 했는데 좀 늦는다고 전화가 왔다. 날씨도 아주 따뜻하고
더구나 소은이는 마른기침을 해댄 지 한 이틀이 넘은 탓에, 수증기
가득한 목욕탕은 목에 좀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소은이는 이제 제법
앉아서도 잘 논다. 나는 제대로 목욕이 안 될 것을 각오하고 어렵사리
딸들과 함께 집을 나섰다.
아파트 단지 안에는 '회관'이라고 해서 목욕탕, 삼겹살집, 방이 몇 개 있는
숙박시설, 휴게실이라고 부르는 생맥주방이 한 데 모여있는 부대에서 운영하는
편의시설이 있다. 목욕탕은 요일과 시간을 잘 기억해두었다가 이용해야
되는데 1000원만 주면 된다. 샤워 꼭지가 서서하는 것을 합해 여덟 개,
작은 온탕과 냉탕, 그리고 다섯 명 정도가 둘러앉으면 꽉 차는 사우나도
있다. 10개 동에서 사는 사람들이 함께 쓰는 곳으로는 비좁을 때가
많지만 거기서 더 커봐야 낭비일 수 있다. 나처럼 어린 방울이 딸린
사람에겐 이만만 해도 감지덕지다.
소미는 목욕탕 가는 일이 즐거운지 노래까지 흥얼흥얼거리며 소은이 업은
포대기 자락을 잡고 졸래졸래 따라왔다. 소꿉놀이용 조그만 플라스틱 장바구니에
물놀이에 쓸 이런저런 장난감까지 담아서 들었다.
"보라색 꽃은 뭐라 그랬지? 엄마?"
"제비꽃."
"야! 참 많다. 저기 봐. 저기, 저기, 저기도 있다 엄마. 대게 많다아."
소은이는 대번에 낯선 장소에 대해서 팽팽한 긴장을 하기 시작하더니, 옷을
다 벗겨도 좋아하는 기색이 없었다. 집에서는 옷을 다 벗기면 목욕하는 줄
알고 팔다리를 흔들며 좋아했는데.
목욕탕에는 중학생쯤 보이는 여자아이 셋하고 아는 분이 남매를 데리고 오신
게 사람의 모두였다. 한가해서 다행인데도 소은이는 탕 안에 들어가기
전부터 좀 놀라는 것 같더니만 다 끝날 때까지 한번도 웃질 않았다. 탕 전체에
울리는 물소리, 목소리가 위협적으로 느껴졌는지 자꾸 겁먹은 표정으로
두리번거렸다.
세수 대야에 앉히니 좀 좁은 듯 꽉 찼다. 나를 보고 계속 안아달라는 듯 영
싫은 기색으로 주변을 돌아보는데, 물 속에서도 가슴쪽으로 꽉 끌어안지
않으면 울려고 했다. 치약튜브며, 작은 샴푸병 같이 평소 가지고 놀지 않았던
걸 쥐어주며 간신히 펑펑 울 기세를 잠재웠다. 소미부터 머리 감기고
씻겨놓고 나도 마음이 바쁠 대로 바쁜 걸 진정하며 얼추 한번 씻었다.
아기들의 젖살 오른 통통한 몸은 얼마나 이쁜가. 옆에서 아는 분이 예쁘다고
쓰다듬어 주시는데 그냥 울어 버렸다. 그래도 정신 쏙 빠지게 울진 않는 게
고마워 "여기서 적응 기간을 가져야 사람 많은 큰 온천에서 잘 지내는
거야" 하며 달랬다. 소미는 백일 이전에 오색온천을 간 이후 애초에 뭘
모를 때부터 다녀서 그런지 운 적이 없었다.
소미가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 하는 그 특유의 표정을 지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도 작게 오무리며 급하다는 표정인데 늘 장난기가 가득했다.
얄궂게도 여긴 옷을 다 입고 나가야 화장실이 있고 우린 배수구 바로
옆자리에 앉았다.
"응? 그냥 고 옆에서 해도 돼. 괜찮아."
그리고 머리를 감고 났는데 소미가 다했다고 했다. 돌아보곤 으익 깜짝 놀랐다.
소미가 똥을 싸놓았던 것이다.
"아유! 똥이었니? 그럼 미리 말을 했어야지. 어떡하믄 좋아?"
순간 어찌해야하나 당황하며 종종대는데 소미 말이 더 걸작이다.
"오줌만 눌라 그랬는데요, 얘가 막 나왔어요 엄마."
"그래? 괜찮아. 엄마가 치우면 돼."
휴지도 비닐봉지도 없는데 쓰레기통에 비누 포장지 두 개가 들어있다. 나는
그것으로 '우리 딸의 뜻과 관계없이 나온 놈'을 해치웠다. 다행히 놈은 동글동글
단단했다(너무 표현이 섬세했나?).
그 난리를 치르고 목욕탕에서 돌아왔다. 그래도 몸이 가볍고 개운했다.
소은이는 돌아와선 곧 깊은 잠이 들었다. 아직 잘 시간은 아닌데 새롭고
낯선 경험으로 쉬 지친 모양이었다.
어른이 되면 뭐 낯선 것도 새로운 경험도 점점 적어진다. 놀랄 것도 신기할
것도 재미난 것도 적어지고 심드렁한 기분으로 사는 날이 더 많다. 그래서
어른이 된 사람이 작은 일에 잘 감동하고 기뻐하고 새로운 경험에 놀라워하며
그 느낌을 크게 말하면, 우린 대부분 '참 철없다'라고 말하길 좋아한다.
사실 애들이나 그래야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고정관념이 거기에도 뿌리를
단단히 박고 있다.
일부러 '철없게' 굴 필요는 없지만 마음속의 놀라움이나 기쁨, 슬픔, 즐거움
따위를 좀 아이처럼 꾸미지 않고 수수하게 표현하는 것도 사람 사는 냄새를
더 고소하게 만드는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 생각도 너무 철이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