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 마르게 하는 녀석들!
‘암튼 요즘 아이들은…’으로 시작하는 요즘 어린이들의 경향이나 문제점은, 남자들의 군대 이야기나 여자들의 출산 이야기만큼 계층 연령 구분 없이 화제가 되는 이야기꺼리다. 컴퓨터중독,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는 이기심, 예의 없음, 언어폭력, 따돌림, 물질만능…. 사실 어른들한테도 해당되는 문제인데 어른들은 아이들만의 문제인양, 부모 된 사람들은 은근히 내 아이는 쏙 빼고 다른 집 아이들이 문제인양 그렇게 서로 침 튀어가며 할 말들이 많다.
그런데 엊그제 소은이네 반에서 일어난 이야기는 그런 소란스러움을 단번에 조용하게 만들 수 있는 그런 것이었다. 엄마가 아주 상냥하고 싹싹했던 소은이 같은 반 친구 하늘이를 잘 아는데, 점심을 먹고 난지 얼마 안 된 시간에 하늘이가 어찌 속이 안 좋았던지 갑작스럽게 교실에서 토했다고 한다.
뭐 이런 경우 토한 아이나 옆에서 보던 아이나 엉거주춤 서로 당황하고 더러는 피하는 일이 보통이다. 그런데 갑자기 두 남자아이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휴지를 가져와 하늘이가 토한 것을 다 닦았다는 거 아닌가. 한 녀석은 소은이 입에 자주 이름이 오르내리던 반장이고, 한 녀석은 가끔 개구쟁이 짓을 한다고 들었는데 이 녀석은 휴지가 모자라니까 옆 반에 가서 빌려다가 다 닦아주었다고 한다.
소은이가 두 녀석의 토사물 치우는 과정을 묘사하는데, 어디서 누가 하는 걸 잘 봐둔 건지 아니면 동생이 토한 것이라도 치운 경험이 있는 건지 꽤 야무지게 요령껏 깨끗이 치운 모양이었다. 실로 ‘요즘 아이들’ 같지 않은 두 녀석 이야기를 듣고 내 마음이 얼마나 따뜻해졌는지 모른다. 이런 경우 어른들은 거의 본능처럼 가장 먼저 고개를 드는 생각이란 게 ‘두 녀석이 하늘이를 같이 좋아했나?’하는 것이기 십상이지만, 나는 행여라도 그런 느낌으로 두 아이의 기특한 행동에 쓸데없는 의미로 덧칠하기 싫다.
“와, 정말 놀랍다. 그거 어른이라도 참 쉽지 않은 일인데. 누구라도 하기 싫은 일이니까. 정말 대단하다. 건호는 정말 반장답다. 반장 할만 해. 이런 건 무지무지 칭찬해야 되는데…”
“저도 놀랬어요 엄마. 난 피하지는 않아도 치울 수는 없을 것 같은데.”
“근데 선생님은 뭐라셔? 엄마가 선생님이라면 건호하고 범희한테 ‘좋은 친구상’이나 ‘착한 어린이상’ 같은 거 꼭 줄 것 같은데. 선생님도 칭찬 많이 하셨지?”
“선생님한테 애들이 하늘이가 토해서 건호하고 범희가 다 닦아주었다고 하니까, ‘알았어. 알았어. 저리들 이제 들어가. 어서 들어가’ 그러기만 하셨어요.”
에구 이런~ 겨우 그렇게밖에 안하시다니… 소은이 앞에서 내색은 안했지만 정말 실망이 물밀듯 밀려왔다. 이게 얼마나 하늘이나 건호나 범희나 옆에서 지켜봤던 소은이 같은 아이들에게나 두루 교육적인 효과가 좋은 사건인데 그 좋은 기회를 그냥 흘려버리셨나. 아니, 그렇게 목적을 둔 칭찬이 아니라도 그냥 그냥 얼마나 이쁜 아이들인가. 자동적으로 칭찬이 한참 나올 것 같은데 정말 아쉽다.
‘요즘 아이들’은 ‘요즘 어른들’이 만든다. 아이들의 잘못은 너무나 미미하다 사실. 잘못이라기보다 경험부족에서 오는 시행착오이거나 실수, 아직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는 서투름 때문이다. 그런 때 길잡이가 되어주지 못한 어른들 때문에 아이들은 어느새 ‘문제의 요즘 아이들’이 되는 것 아닐까. 이건 선생님을 겨냥한 말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하는 말이다. 알면서도 잘 못하는 나를 꾸짖는 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