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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학교

다시 정선!

M.미카엘라 2012. 6. 25. 12:26

 

 

 

참, 생각하면 우리나라 가장들 가엾다. 쌔빠지게 일을 하고 돈을 벌어도 가족들과 즐겁게 보낼 시간이 없는 가장들이 많다. 직업 군인들은 주말과 휴일에도 출동대기 상태라고 봐야 한다. 다른 부대는 어떤지 모르지만, 남편은 비상연락을 받으면 아무리 늦어도 1시간 이내에는 부대에 들어가야 하니, 주말에 집에 오는 것도 편치 않은 날이 많다. 정식 허락을 받은 휴가가 있긴 하지만 토요휴무제 이후엔 토요일과 일요일을 껴서 휴가를 받으니 애들 어릴 때처럼 한가로운 평일휴가는 거의 없는 셈이다. 평일 휴가 많아도 이젠 솜손이 모두 중학생이라 학교 빼먹고 여행을 가기란 쉽지 않다. 사실 애들이 더 학교 빼먹는 걸 질색한다.

 

그래도 틈만 나면 그렇게 싸돌아다니던 우리 가족이 이즈음에서 한번 길을 떠나주어야 하지 않겠냐는 마음들이 5월 말부터 이심전심 모였다. 아빠랑 그동안 너무 서운했다 싶었는지 애들은 아무런 토도 안 달고 여행계획을 세우는데 즐겁게 의견을 냈다. 2010년 여름 고흥여행 이후 2년 만이다. 1박 여행을 계획했다가 늦게 떠나는 여행이면 시간으로나 비용으로나 낭비가 있다 싶어서 급수정, 일요일 새벽 5시에 출발해서 늦게 돌아오는 당일여행을 하기로 했다. 애들은 월요일 등교준비를 완벽하게 해놓고 잠들었다. 나는 잠시 눈을 부치고 새벽 3시 반에 일어나 샌드위치를 만들고 과일을 깎아 담고 커피를 내리고 얼음물을 챙겼다. 새벽에 떠나는 가족여행은 참 오랜만이다.

 

여행은 그냥 집을 떠나는 것 자체가 즐겁다. 길에서 보는 식구들의 얼굴은 달라 보인다. 집에서 맨날 싸우고 짜증내던 자매 사이에, 신경전이 오가던 모녀 사이에 바람에 지나가고 꽃향기가 지나가고 풍경이 지나간다. 그냥 다 용서가 되고 너그러워지니 싸울 일이 없고 짜증낼 일이 없었다. 나도 이번 여행엔 내가 운전을 더 많이 해서 남편을 좀 편히 해주겠다 마음먹었는데, 남편도 모처럼 여행이 즐거운지 졸립지 않다며 신나게 운전했다. (나는 감사하지 모...ㅎㅎ)

 

‘더울 땐 시원한 동굴이 최고야!’ ‘다 큰 애들은 즐거운 체험코스가 하나 있어줘야 해.’ 이 두 가지 여행줄기를 세우고 삼척의 대금굴을 가고 정선에서 레일바이크 타는 큰 목표를 세우고 나머지는 발길 닿는 대로 다니기로 했다. 정선은 몇 해 전에도 다녀간 곳이었으나 레일바이크만 못 탔는데 애들이 그걸 그렇게 타고 싶어한다. 사실은 남편과 나도 기대를 했다.

 

바다가 탁 트이게 보이는 동해휴게소에서 자는 애들을 깨워서 함께 샌드위치로 아침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서울과 다른 바람을 온몸으로 느꼈다. 잠에서 깨자 눈앞에 펼쳐진 바다풍경에 애들은 잠이 급히 달아난 모양으로 대금굴까지는 이런저런 이야기꽃으로 차 안이 시끄러웠다. 이런 여행엔 이런 음악이 어울린다는 둥 서로 듣고 싶은 음악 고르느라 옥신각신, 결국 자기 취향껏 한명씩 돌아가면서 선곡해서 들었다.

 

동굴마니아인 소미에게 대금굴은 기대에 못 미쳤다. 모노레일을 타고 간다고 신나했지만 동굴 어느 지점까지 가서 나머지는 안내원을 따라서 구경하고 나오는 게 성에 안찬 모양이다. 소미에게 아직 화암동굴을 능가할 동굴은 없어 보인다. 사실 화암동굴은 동굴 자체보다 폐광과 연결된 부분이 스릴 넘치는데, 발밑 아래 아득하게 깊게 파내려간 데를 철재계단으로 오르락내리락하는 게 다리 떨리고 무서운데 그게 스릴 넘치고 재미있다.

 

 

 

 

 

 

그래도 하루에 750여 명만 사전예약으로만 제한 관광을 할 수 있는 신비의 동굴답게 깊은 호수, 폭포 등이 무섭고

도 신기했다. (사진촬영은 엄격히 금지되었다) 근데 제일 웃겼던 건, 좁은 위쪽에서 아래로 내려갈수록 넓게 늘어진 천 모양의 석회암석을 본 소미가 소은이보고 ‘야, 빅사! 저거 누가 지금 좌~악 토하고 있는 거 같지 않냐? 저 위가 꼭 입 같애. 우웨~~~엑!’ 이러면서 둘이 낄낄대기 무섭게, 곧 확인된 그 석회암의 명칭은 토사물은 커녕 '웨딩드레스’였다는 것. 우리는 한참 동안 쭈그리고 앉아서 배를 잡고 웃었다.

 

삼척에서 좀 이름났다 하는 집에서 막국수와 수육 한 접시를 맛있게 먹고 정선까지는 내가 운전을 했다. 남편은 기분 좋게 배부른 상태로 눈을 붙이고 나는 운전대를 잡고 백복령을 넘어 구절양장의 험한 길을 따라 정선으로 향했다. 더 편한 길도 있겠지만 여행길은 천천히 가는 이런 길이 더 좋다. 몇 년 전에 왔던 '메주와 첼리스트'가 있는 가목리 접어드는 길을 지나 정선의 구절리역에 다다랐다.

 

레일바이크는 코스가 길어서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말만한 딸들과 함께 가니 7.5km를 우리 부부는 경로우대! 편안하게 앞자리에 앉아서 바이크 페달을 밟는 딸들에게 훈제 오징어 다리만 공급해주면 됐다. 초록풍경이 쉴 새 없이 지나가는 통에 시원한 바람이 우리 옷에 초록빛으로 물이라도 들일 것 같았다. 애들은 소리를 지르고, 휘파람을 불고, 노래를 부르고, 힘들어하는 앞 바이크 아주머니들께 응원도 하고, 들판에서 만난 가축들에게도 인사하느라 신났다. 뜨겁지 않게 구름 낀 날씨도 도와주니 실수로 흩뿌리는 비는 감사하게 맞았다. 아이들은 그간의

스트레스를 정선에다 다 푸는 것 같았다.

 

 

 

 

아이들은 정선 너무 좋다고 함께 입을 모았다. 스트레스 좀 풀렸냐 하니 풀렸다 한다. 소미는 아직 개장을 2주 정도 앞둔 병방치 전망대 스카이워크와 짚와이어 체험하러 정선은 또 와야 한다고 했다. 내 보기에 소미는 평생 수차례는 더 올 태세다. 정선의 관광객 유치는 ‘다시 오고 싶은 열혈 관광객 1인’만 보아도 꽤 성공한 것 같다.ㅋㅋ 모두 흡족한 가운데 우리 앞으로 이렇게 하루여행이라도 1년에 적어도 두 차례는 함께 길을 떠나주자 약속했다. 집에 돌아오니 밤 11시다. 월요일이 그렇게 무겁지 않을 적당한 귀가 시간이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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