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뼘 성장드라마
씹을 수는 없는 껌 이야기 본문
난 요즘 내가 아이들에게 처음부터 좀 잘못한 게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특히 이제 여섯 살이 된 소미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하는데 이걸 어떻게 해야 좀 나아질 것인지 고민스럽다.
우리 애들은 유난히 누군가에게 업히고 안기고 매달리는 것, 나쁘게 말하면 사람에게 치대기를 좋아한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부모가 어릴 때 잘 안 안아주고 잘 안 업어줘서 그런가 하겠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너무 안아주고 너무 업어주고 너무 매달리고 치대게 내버려두었다는 생각이 후회로 밀려든다. 남이라도 이뻐해주고 몸으로 잘 놀아주는 틈을 보이면 계속 귀찮게 하니 내가 미안해서 그만 하라고 호통칠 때가 많다. 소미가 고만 때 그랬던 것처럼 소은이는 요즘 한창 걷기 싫어할 때라 어느 정도 이해가 되면서도, 엉덩이가 제법 푸짐해지고 허벅지 살이 단단하고 오통통 너구리니 제법 무게가 실해서 힘든 게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나마 걷는 것 빼고는 그 모든 걸 너무 자주독립으로 해결하려하니 오히려 분쟁이 잦지만 그래도 그건 흐뭇하다. 특히 소미는 그 정도가 아주 심한데 그것 때문에 요즘 내 목소리가 자주 커지고 거칠어지기 일쑤다. 이제 소미는 안기고 업히고 온갖 몸놀이를 좋아하다 보니 자기가 할 수 있는 기본적인 일마저 자주 아빠나 엄마에게 해달라는 빛이 짙어졌다. 지난주와 이번 주초에 걸쳐 한 닷새간 집을 비웠는데, 밖에 나가서 보니 우리집 아이들이 유난히 그런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외출을 하면 소미는 남편의 껌이고 소은이는 내 껌이다. 아이가 둘이 되면서 우리는 그냥 그렇게 서로의 껌들을 불평불만 없이 달고 다녔다. 지난 토요일에 조카까지 데리고 롯데월드에 갔을 때 연신 남편은 소미를 위해 모든 걸 다해주고 나는 럭비공 같은 소은이를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만 4개월 가까이 집에서만 복작거린 아이들에게 한꺼번에 보상이라도 하듯 우리는 애들을 이리저리 안고도 힘든 줄 몰랐다. 소미 또래 아이들이 아빠에게 그렇게 안겨있는 걸 그날 나는 거의 못 봤다. 남편은 평소 씩씩함의 대명사인 군인의 이미지에 걸맞게 아이들의 자주독립심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자주 입에 올리면서도, 실제로는 그냥 마냥 해달라는 대로 다해주는 편이다. 나와 어떤 협약이 있는 문제에 대해선 안 그렇지만, 늘 어딜 안고 가고, 안아서 뭔가를 보여주고, 안고 이야기하는 일을 보통의 일처럼 해왔다. 그런데 요즘에 와서 소미가 너무 치대는 게 버거울 때가 많은 모양이다. 아무리 소은이와 몸무게 차이가 별반 안 날 정도로 소미가 가늘고 약한 체격을 가졌지만 그래도 나이가 여섯 살이고 뼈의 길이가 길어도 더 길다. 이리저리 안고 돌아 치기엔 너무 커버린 것이다. 그런데 지난 일요일, 초등학교 때 친구들과 약속이 있었던 남편과 함께 우리 세 여자는 한 음식점에 갔다. 한적한 변두리 음식점 앞에 주차를 하고 20여 미터 남짓한 식당으로 들어가려는데, 역시나 소미가 안고 가라고 투정을 시작했다. 나는 처음엔 좋은 소리로 달래고 남편에게 들어주지 말 것을 눈짓했다. 결국 소미는 찡찡대며 억지로 따라 들어와 아저씨, 아줌마들에게 인사도 안 하고 한참 골이 나 있었다. 그리고는 어찌어찌 풀려 제법 잘 놀았다. 음식점은 친구의 형이 하는 곳이라 여유가 있었다. 아이들은 조금 위쪽에 있는 어떤 어린이집 놀이터에서 아주 잘 놀았다. 시골 초등학교이고 학년당 한 반밖에 없던 학교라 참석한 동창생이 모두들 남자에 몇 되지도 않았지만 화기애애하고 정감 있었다. 나는 이 남자들 대부분이 내 중학동창이기도 해서 오히려 남자들과 어울리는 편이 편했지만 뒤쪽 공터에서 남자들끼리 족구를 시작하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거의 처음 만난 여자들과 어울렸다. 족구가 끝나고 친구의 형수님이 주시는 싱싱한 딸기를 먹고 아쉽지만 일단은 거기서 간단히 헤어지기로 했다. 마음이나 집의 방향이 같은 친구끼리는 삼삼오오 다시 뭉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런데 식당 문을 들어설 때와 달리 꽤 하루를 잘 놀았다 싶어서 한참 이뻐보였던 소미가 또 기분을 슬슬 틀기 시작했다. 제 아빠보고 식당 문 앞에서 차 있는 데까지 안아서 데리고 가달라는 것이었다. "가까우니까 거기까지만"이라는 토를 달았지만 소미는 때마다 먼 거리든 가까운 거리든 그런 식이니, 너무 화가 나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내가 강력히 해주지 말 것을 주장했다. 그날 제일 어린아이가 채 두 돌이 안 된 J의 딸이었는데, 하루종일 보아도 아빠나 엄마에게 안겨있는 걸 못 봤다. 그리고 소미와 동갑내기인 D의 큰딸 역시 마찬가지. 결국 소미를 못 본 척하고 차 있는 데로 오니까 악을 쓰고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행여 저를 두고 갈까 겁이 났는지 냉큼 내처 따라왔다. 동창들이 놀라며 무슨 일이냐 했지만 못 본척하고 얼른들 가라고 손을 저었다. 이 참에 아주 결심을 한 터였다. '함부로' 해달라는 대로 다 받아주지 않기로. 애정이 너무 넘친 것이 탈이었던 것이니 좀 수위조절이 필요하단 생각이 절실했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집에 갈 때까지 엄마 부르지도 말라고 하고선, "네가 할 수 있는 것도 다 아빠나 엄마가 해주길 바라는 네가 심한 건지, 아니면 이렇게 하는 엄마가 심한 건지 오랫동안 잘 생각해보고 대답해"라고 했다. 그런데 그 후 소미는 금방 잠들었다. 난 요즘 어디까지 사랑으로 보살펴야 하고 어디까지 독립심의 무게중심을 잡아줘야 하는지 잘 판단이 안 선다. 지금 이 문제는 단단히 고치겠다 하고 있지만 이것도 잘 하는 건지 모르겠다. 이거 애정결핍인데 내가 뭘 모르고 호되게 다루는 건 아닌가 싶고. 하지만 덩치 큰 애가 사람 몸을 쉬 지치게 하니 그걸 기준으로 삼을 수밖에. 한바탕 울다가 다시 한바탕 달게 잠을 자고 난 소미는 한참 딴전을 피며 재잘대다가 갑자기 용서를 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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