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뼘 성장드라마
누가 아들을 더 원하는가 본문
지난 토요일에는 친구 결혼식에 다녀왔다. 남자친구의 결혼식이다. 정확히 말하면
남편과 내게 모두 친구가 되는 남자친구다. 의정부 언니네 집에서 5분만 걸으면
있는 성당에서 혼배미사를 했다. 혼배미사는 일요일에는 하지 않는데 이래저래
남편은 갈 수가 없는 형편이어서 내가 소미를 언니집에 두고 소은이만 데리고
갔다.
성당에서 어울렸던 친구들 중에서 혼인의 막차를 찬 이 친구는 얼굴에 살도 조금
붙고 표정까지 달덩이처럼 환해서 신랑으로서 면모가 뚜렷했다. 신부는 전에도 서너
번 만난 적이 있고 소은이 돌 때도 와주어서 그리 낯설지 않았다. 화장을 안
해도 속눈썹이 짙고 눈이 커서 서늘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나이 어린 신부 잘도
골라 장가든다며 친구들은 부러움이 섞인 농담을 했다.
날씨가 꽤 무더웠는데도 이 친구의 혼인잔치에는 내가 아는 친구들은 거의 빠지지
않고 다 온 것 같았다. 중학교를 나와 같이 다녔던 남자친구 두 명이 새신랑과
같은 고등학교에 다닌 인연으로 왔는데 참으로 반가웠다. 이런 잔치는 이렇게
뜻밖에 반가운 사람들을 많이 만나니 더욱 잔치다워지는 것 같았다.
남편의 친구 중엔 이렇게 몇이 내 친구이기도 한지만 아내들도 동갑내기인 경우가
많아 늘 만나도 즐겁고 분위기가 좋다. 이렇게 내가 남편 없이 모임엘 간다해도
그다지 불편할 것이 없을 정도다. 거기에 엄마 아빠를 따라온 고만고만한 아들,
딸들이 꼬물대는 모습 또한 할 이야기를 하나로 묶어준다. 온통 아이들 이야기
뿐이었다. 나이 드신 어른들이 보시면 "떼끼 놈"하시겠지만 이즈음 아이들은
우리들에게 세월을 느끼게 해준다.
외동이 아들만 있는 집, 아들만 둘 있는 집, 딸만 둘 있는 집, 남매를 둔 집이 모두모두
다 왔으니 우리가 서있는 곳의 왁자지껄함이란 설명을 안 해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 백일이 조금 지난 젖먹이부터 6,7살까지 나이에서도 고른
분포를 보였다. 소은이는 신발을 신겨놓으니 자주 넘어지면서도 손도 안 잡고
그 사람들을 사이로 가려고 막무가내였다.
점심을 먹고 성당 앞뜰에서 남자들은 허니문카를 꾸미고 아내들은 아이들을 돌보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중 남매 쌍둥이를 낳은 집이 시선집중이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딸은 소은이 돌 때 데리고 와서 모두 보았는데, 아들은 대부분 그날이 첫
대면이었던 것이다. 이란성 쌍둥이인데다가 성별까지 다르니 아주 똑같진
않았다. 소은이보다 약 한 달 정도 먼저 태어났는데 아들은 아주 덩치가 크고
건강해 보였다.
피부가 하얗고 여리여리한 딸이 아주 엄마와 많이 닮았길래 내가 "와, 다혜는 완전히
엄마하고 똑같네요. 처음보는 사람이라도 척 누구 딸인지 알아볼 거예요"하고
말했는데 아이 엄마의 대답은 의외였다.
"다혜가 저랑 닮았다구요? 얘는 눈코입이 쪼금쪼금하잖아요. 오히려 우리 아들이
저하고 많이 닮지 않았어요?"
다들 무슨 소리냐고 딸이 엄마를 더 닮았다고 하는 가운데 내가 "다혜는 아직 아기니까
눈코입이 작은 거죠. 영옥씨는 아들이 더 엄말 닮았다는 소리가 듣고 싶으신가봐"
했다. 별로 부인하는 빛은 아니었다.
지난 번 만났을 때 나는 쌍둥이 아빠 되시는 분에게 "다혜가 불쌍해요. 우리 집사람은
우리 아들 우리 아들하지 다혜는 완전 찬밥이에요"하는 소리를 들었던 터라
조금 짖궂은 마음이 발동해 꼬집고 싶었다. 엄마가 그렇다고 정말 딸을 불쌍하게
기른다고 믿지는 않는다.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있을 순 없기
때문이다. 다만 자식이 여럿이라도 유난히 결이 잘 맞는 자식이 있다는 말은
믿지만.
우리들-딸만 낳은 우리 나라의 많은 여자들-은 남편이 아들을 원해서 셋째 아이를
생각한다고도 하지만, 사실 속내를 들여다보면 자기 자신이 오히려 아들을 간절히
원하고 있는 것이 사실일 때가 많다. 그것을 드러내놓고 말할 수 있는 여자는 많지
않지만.
용기 있는 한 이웃을 통해 그것을 알았다. 그녀도 딸만 둘인데 처음엔 남편이 후에
아들을 원해서 하나 더 낳을지도 모르겠다고 하더니, 가만히 자기 속을 들여다본
바 오히려 자기가 더 아들 생각에 간절해있다고 토로했었다. 사실 그것이 우리
나라 여자들의 진실일 경우가 많다는 생각을 한다.
사실 우리 세대 중에 아들, 며느리에게 지극 정성으로 봉양 받다가 제사밥 얻어먹을
생각으로 아들 아들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모르긴 몰라도 최고의 덕목인
그 '든든한 맛' 때문일 것이고, 아들 기르는 텁텁한 재미를 나도 남들처럼 누리고
싶다는 소박한 생각일 경우가 더 많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그 소박한 생각,
아름다워 보일 수 있는 그 생각들이 바로 지금 태중의 딸들을 위협하는 무기로
돌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너무 안타깝다.
나는 어디 가서 '아들이 좋다, 딸이 좋다'하는 식의 논쟁에 별로 끼고 싶지 않다.
아들이 좋은 점, 딸이 좋은 점, 아들 기르는 재미, 딸 기르는 재미가 각각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서 딸만 가진 내가, 딸 기르는 재미 밖에 모르는 내가
아는 것만 이야기하다 보면 '딸밖에 없으니까 그것 밖에 모른다' '아들이 없으니까
딸이 훨씬 좋다고 한다'고 자칫 비춰질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어쨌든 아들을 아들답게 기르는 문제보다 딸을 딸답게 기르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이 제대로 된 한 인간으로 기르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의식있는 청년시절을 보냈다고
자부하는 386세대, 그리고 N세대와 더욱 가까운 젊은 세대들이 어린 자식들을
기르는 이때, 정말 세련되게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고 느낀다. 나도 내 안을
깊이 들여다보고 다시금 정신을 수선해야함은 말할 여지도 없고.
남편과 내게 모두 친구가 되는 남자친구다. 의정부 언니네 집에서 5분만 걸으면
있는 성당에서 혼배미사를 했다. 혼배미사는 일요일에는 하지 않는데 이래저래
남편은 갈 수가 없는 형편이어서 내가 소미를 언니집에 두고 소은이만 데리고
갔다.
성당에서 어울렸던 친구들 중에서 혼인의 막차를 찬 이 친구는 얼굴에 살도 조금
붙고 표정까지 달덩이처럼 환해서 신랑으로서 면모가 뚜렷했다. 신부는 전에도 서너
번 만난 적이 있고 소은이 돌 때도 와주어서 그리 낯설지 않았다. 화장을 안
해도 속눈썹이 짙고 눈이 커서 서늘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나이 어린 신부 잘도
골라 장가든다며 친구들은 부러움이 섞인 농담을 했다.
날씨가 꽤 무더웠는데도 이 친구의 혼인잔치에는 내가 아는 친구들은 거의 빠지지
않고 다 온 것 같았다. 중학교를 나와 같이 다녔던 남자친구 두 명이 새신랑과
같은 고등학교에 다닌 인연으로 왔는데 참으로 반가웠다. 이런 잔치는 이렇게
뜻밖에 반가운 사람들을 많이 만나니 더욱 잔치다워지는 것 같았다.
남편의 친구 중엔 이렇게 몇이 내 친구이기도 한지만 아내들도 동갑내기인 경우가
많아 늘 만나도 즐겁고 분위기가 좋다. 이렇게 내가 남편 없이 모임엘 간다해도
그다지 불편할 것이 없을 정도다. 거기에 엄마 아빠를 따라온 고만고만한 아들,
딸들이 꼬물대는 모습 또한 할 이야기를 하나로 묶어준다. 온통 아이들 이야기
뿐이었다. 나이 드신 어른들이 보시면 "떼끼 놈"하시겠지만 이즈음 아이들은
우리들에게 세월을 느끼게 해준다.
외동이 아들만 있는 집, 아들만 둘 있는 집, 딸만 둘 있는 집, 남매를 둔 집이 모두모두
다 왔으니 우리가 서있는 곳의 왁자지껄함이란 설명을 안 해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 백일이 조금 지난 젖먹이부터 6,7살까지 나이에서도 고른
분포를 보였다. 소은이는 신발을 신겨놓으니 자주 넘어지면서도 손도 안 잡고
그 사람들을 사이로 가려고 막무가내였다.
점심을 먹고 성당 앞뜰에서 남자들은 허니문카를 꾸미고 아내들은 아이들을 돌보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중 남매 쌍둥이를 낳은 집이 시선집중이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딸은 소은이 돌 때 데리고 와서 모두 보았는데, 아들은 대부분 그날이 첫
대면이었던 것이다. 이란성 쌍둥이인데다가 성별까지 다르니 아주 똑같진
않았다. 소은이보다 약 한 달 정도 먼저 태어났는데 아들은 아주 덩치가 크고
건강해 보였다.
피부가 하얗고 여리여리한 딸이 아주 엄마와 많이 닮았길래 내가 "와, 다혜는 완전히
엄마하고 똑같네요. 처음보는 사람이라도 척 누구 딸인지 알아볼 거예요"하고
말했는데 아이 엄마의 대답은 의외였다.
"다혜가 저랑 닮았다구요? 얘는 눈코입이 쪼금쪼금하잖아요. 오히려 우리 아들이
저하고 많이 닮지 않았어요?"
다들 무슨 소리냐고 딸이 엄마를 더 닮았다고 하는 가운데 내가 "다혜는 아직 아기니까
눈코입이 작은 거죠. 영옥씨는 아들이 더 엄말 닮았다는 소리가 듣고 싶으신가봐"
했다. 별로 부인하는 빛은 아니었다.
지난 번 만났을 때 나는 쌍둥이 아빠 되시는 분에게 "다혜가 불쌍해요. 우리 집사람은
우리 아들 우리 아들하지 다혜는 완전 찬밥이에요"하는 소리를 들었던 터라
조금 짖궂은 마음이 발동해 꼬집고 싶었다. 엄마가 그렇다고 정말 딸을 불쌍하게
기른다고 믿지는 않는다.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있을 순 없기
때문이다. 다만 자식이 여럿이라도 유난히 결이 잘 맞는 자식이 있다는 말은
믿지만.
우리들-딸만 낳은 우리 나라의 많은 여자들-은 남편이 아들을 원해서 셋째 아이를
생각한다고도 하지만, 사실 속내를 들여다보면 자기 자신이 오히려 아들을 간절히
원하고 있는 것이 사실일 때가 많다. 그것을 드러내놓고 말할 수 있는 여자는 많지
않지만.
용기 있는 한 이웃을 통해 그것을 알았다. 그녀도 딸만 둘인데 처음엔 남편이 후에
아들을 원해서 하나 더 낳을지도 모르겠다고 하더니, 가만히 자기 속을 들여다본
바 오히려 자기가 더 아들 생각에 간절해있다고 토로했었다. 사실 그것이 우리
나라 여자들의 진실일 경우가 많다는 생각을 한다.
사실 우리 세대 중에 아들, 며느리에게 지극 정성으로 봉양 받다가 제사밥 얻어먹을
생각으로 아들 아들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모르긴 몰라도 최고의 덕목인
그 '든든한 맛' 때문일 것이고, 아들 기르는 텁텁한 재미를 나도 남들처럼 누리고
싶다는 소박한 생각일 경우가 더 많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그 소박한 생각,
아름다워 보일 수 있는 그 생각들이 바로 지금 태중의 딸들을 위협하는 무기로
돌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너무 안타깝다.
나는 어디 가서 '아들이 좋다, 딸이 좋다'하는 식의 논쟁에 별로 끼고 싶지 않다.
아들이 좋은 점, 딸이 좋은 점, 아들 기르는 재미, 딸 기르는 재미가 각각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서 딸만 가진 내가, 딸 기르는 재미 밖에 모르는 내가
아는 것만 이야기하다 보면 '딸밖에 없으니까 그것 밖에 모른다' '아들이 없으니까
딸이 훨씬 좋다고 한다'고 자칫 비춰질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어쨌든 아들을 아들답게 기르는 문제보다 딸을 딸답게 기르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이 제대로 된 한 인간으로 기르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의식있는 청년시절을 보냈다고
자부하는 386세대, 그리고 N세대와 더욱 가까운 젊은 세대들이 어린 자식들을
기르는 이때, 정말 세련되게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고 느낀다. 나도 내 안을
깊이 들여다보고 다시금 정신을 수선해야함은 말할 여지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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