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뼘 성장드라마
어린이날에 피 본 이야기 본문
요즘 남편의 몸매(?) 가꾸기는 내가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지속적이고 강도 높다.
좀 작다 싶은 키에 80kg을 넘어설 기미를 보이자 어느 순간부터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은 것 같았다. 약 두 달 좀 넘는 시간 동안 운동과 음식절제로 5kg을 빼는 기염을
토했다.
내가 어제는 까닭을 물었다. 내가 밤참 좀 적게 먹으라고 하고 자기 몸 좀 돌보라고
그렇게 잔소리 해댈 때는 꿈쩍도 않더니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20대 청년 같은 기특한
생각을 했느냐고. 그랬더니 뜨문뜨문 하는 말들이 이랬다.
"나는 내가 한다고 하면 해."
"어느 날 온천 가서 보니 나이가 어리나 젊으나 늙으나 배 안나온 사람이 드물더라.
나 역시 저 사람들 눈에도 그렇게 비치겠지 하니 심각하더군."
"군인의 체력은 전투력이야."
"7월에 교육 들어가면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날 텐데 이렇게 퍼진 모습으로는
아니다 싶어서. 그게 제일 큰 이유야. 좀 진작할 걸 싶다."
구보와 테니스, 그리고 운동기구를 통한 부분적인 근육운동을 부대에서 하고 돌아와서는
잠들기 전에도 한 20분씩 더 한다. 팔에 생긴 근육을 만져보라는 둥 하면서 남편은 변해
가는 자신의 몸을 흐뭇하게 거울로 보았다. 그런 각고의 노력을 보이는 가운데 나에게도
같이 하자고 종용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다가 급기야 어린이날 그와 관련된 사건이 나고 말았다. 그건 사고였다.
남편은 '덤벨'이라는 운동기구를 사고 싶어했다. 우리가 보통 '아령'이라고 하는 것인데
양손에 들고 팔 힘을 기르는 것이다. 10kg짜리 두 개를 사면서 내 것도 샀다. 여성용은
모양도 더 예쁘고 작고 가벼웠다. 팔에 알통이 생기지 않고 군살만 빼는데는 1kg
안팎에 좋다고 해서 1.5kg들이 두 개가 한 세트로 되어 있는 것을 샀다. 나도 이 몸에서
크게 빠지는 걸 기대하지 않아도 더 찌워서는 안 되겠다 싶은 위기감이 생긴 터였다.
애들 밖에서 놀려준다고 가까운 유원지 가는 길에 덤벨을 사서 싣고는 우회도로로
막히지 않고 일찍 도착했다. 한 음식점 주차장 앞. 소은이는 차 안에서 자고 우리는
어머님과 도연이네(소미의 사촌) 식구가 탄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날씨도 좋고 남편은
차에서 덤벨을 꺼내 들고는 "어디 한번 해볼까나?" 그러면서 시범을 해보았다. 나도
나를 위한 운동기구는 처음인지라 남편이 자기 것을 다시 차에 실을 무렵 내 것을
꺼냈다. "그럼 나도 한번?"하며 즐겁게 팔을 구부렸다 폈다 하기를 여러 차례 했다.
그러다가 그 일이 터지고 말았다. 내가 고개를 들어 주변 풍경을 돌아보며 움직이는
순간, 덤벨은 내 팔꿈치 아래로 갑자기 다가온 소미의 이마를 내리치고 만 것이다.
진흙 달팽이인형이 등장했던 좀 지난 어느 음료광고에서처럼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서' 피할 사이도 없었다.
소미는 오른쪽 눈썹 쪽이 1cm 조금 더 되게 찢어져 턱으로 피를 줄줄 흘리며 울었다.
살점이 떨어져 나간 건 아니었고 예리한 칼로 좀 깊게 베인 것 같은 상처였다. 나는
너무 놀라고 미안하고 가슴 아프고 속상해서 어쩔 줄 몰랐다. 아이들에게 유난한
아빠로 이미 여기저기 소문이 파다한 남편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 병원을 가자고 나섰다.
무슨 살을 빼겠다고 안 하던 짓을 호들갑스럽게 하다가 그것도 어린이날 아이를
이 꼴로 만들었나 싶은 게 한심했다. 남편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 차만 몰았다. 소미만
기를 때 이런 사고가 났더라면 대판 내게 "애를 어떻게 보았길래"하면서 책임추궁을
하고 나섰겠지만 그러질 않았다. 혹자는 둘째 아이까지 기르다보니 '아이 기르다보면
별일이 다 있다'하고 좀 느긋해진 탓이라 말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남편은 이 사고를 가볍게 보지 않았고 내게도 뭐라고 한 마디
하고 싶었던 것을 꾹 참는 눈치였다. 그건 남편을 잘 알기 때문에 표정으로도 알 수
있다. 내가 책임추궁에 대한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는 걸 알고 있기도 했고, 평소에
여러 번 이미 난 사고에 대해 잘잘못을 따지는 일은 하지 말자고 말하기도 했던 터라
자제하는 것 같았다. 그건 소용없는 일이고 그 누구보다도 돌보고 있던 에미의 심정은
더 아픈 노릇이라고도 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남편이 딸들이기 때문에 흉터에 대한
걱정이 더 깊은 것이라고 이해했다.
일단 찢어진 부분이 그 자리에 감쪽같이 붙길 바라는 마음으로 살이 밀리지 않게
조심해서 꼭 누르고 차를 탔다. 대강 휴지로 피 닦은 자리를 다시 턱이며 목 쪽으로
물휴지로 닦고 나니 눈밑도 약한 보라색으로 조금 멍들어있었다. 이만하니 다행이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른 데는 다치지 않았나 그때서야 머리며 어깨를 둘러보았다.
우리는 살을 꿰매지는 않아도 되겠다고 나름대로 판단했다. 오히려 그렇게 하면
정말 흉터가 생길지 모르겠다 싶었다. 맞는 판단이었는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으나
벌어진 것도 아니고 살점이 떨어져나간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대로 고 자리에 지그시
상처를 눌러 지혈했다.
유원지를 빠져 나와 가장 가까운 약국으로 갔다. 약을 바르고 밴드를 붙이고 다시
어머님과 다른 식구들이 걱정하며 기다리고 있을 그 사고 현장으로 돌아왔다. 밴드
사이로 오후 내내 조금씩 피가 배어 나와 두어 차례 갈아주었다. 기분 좋게 노는데도
한참 안쓰러운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그 다음날, 중학 동창생의 결혼식에서 소미의 훈장을 보고 한 친구가 하는 농담이
어이없었다.
"너 육아일기에 쓸거리 떨어져서 괜히 사고 친 거 아냐?"
무지막지한 녀석. 아이구! 너도 장가 가봐라. 그런 말이 나오나. 난 아주 십년감수했단다.
남편은 오늘도 출근해서 또 물었다.
"소미 상처 어때?"
이건 흉터가 남을 것 같냐는 말과 다름없었다. 요 며칠 계속 지치지 않는 그 질문을
계속 받았지만 나는 사고 친 죄인이라 짜증도 못 내고 상처에 대한 상황보고를 달게
하고 있다. 보는 사람마다 깜짝 놀라며 묻는데 정말 쥐구멍에라도 들어갔다가 다
나으면 나오고 싶은 심정이다.
좀 작다 싶은 키에 80kg을 넘어설 기미를 보이자 어느 순간부터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은 것 같았다. 약 두 달 좀 넘는 시간 동안 운동과 음식절제로 5kg을 빼는 기염을
토했다.
내가 어제는 까닭을 물었다. 내가 밤참 좀 적게 먹으라고 하고 자기 몸 좀 돌보라고
그렇게 잔소리 해댈 때는 꿈쩍도 않더니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20대 청년 같은 기특한
생각을 했느냐고. 그랬더니 뜨문뜨문 하는 말들이 이랬다.
"나는 내가 한다고 하면 해."
"어느 날 온천 가서 보니 나이가 어리나 젊으나 늙으나 배 안나온 사람이 드물더라.
나 역시 저 사람들 눈에도 그렇게 비치겠지 하니 심각하더군."
"군인의 체력은 전투력이야."
"7월에 교육 들어가면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날 텐데 이렇게 퍼진 모습으로는
아니다 싶어서. 그게 제일 큰 이유야. 좀 진작할 걸 싶다."
구보와 테니스, 그리고 운동기구를 통한 부분적인 근육운동을 부대에서 하고 돌아와서는
잠들기 전에도 한 20분씩 더 한다. 팔에 생긴 근육을 만져보라는 둥 하면서 남편은 변해
가는 자신의 몸을 흐뭇하게 거울로 보았다. 그런 각고의 노력을 보이는 가운데 나에게도
같이 하자고 종용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다가 급기야 어린이날 그와 관련된 사건이 나고 말았다. 그건 사고였다.
남편은 '덤벨'이라는 운동기구를 사고 싶어했다. 우리가 보통 '아령'이라고 하는 것인데
양손에 들고 팔 힘을 기르는 것이다. 10kg짜리 두 개를 사면서 내 것도 샀다. 여성용은
모양도 더 예쁘고 작고 가벼웠다. 팔에 알통이 생기지 않고 군살만 빼는데는 1kg
안팎에 좋다고 해서 1.5kg들이 두 개가 한 세트로 되어 있는 것을 샀다. 나도 이 몸에서
크게 빠지는 걸 기대하지 않아도 더 찌워서는 안 되겠다 싶은 위기감이 생긴 터였다.
애들 밖에서 놀려준다고 가까운 유원지 가는 길에 덤벨을 사서 싣고는 우회도로로
막히지 않고 일찍 도착했다. 한 음식점 주차장 앞. 소은이는 차 안에서 자고 우리는
어머님과 도연이네(소미의 사촌) 식구가 탄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날씨도 좋고 남편은
차에서 덤벨을 꺼내 들고는 "어디 한번 해볼까나?" 그러면서 시범을 해보았다. 나도
나를 위한 운동기구는 처음인지라 남편이 자기 것을 다시 차에 실을 무렵 내 것을
꺼냈다. "그럼 나도 한번?"하며 즐겁게 팔을 구부렸다 폈다 하기를 여러 차례 했다.
그러다가 그 일이 터지고 말았다. 내가 고개를 들어 주변 풍경을 돌아보며 움직이는
순간, 덤벨은 내 팔꿈치 아래로 갑자기 다가온 소미의 이마를 내리치고 만 것이다.
진흙 달팽이인형이 등장했던 좀 지난 어느 음료광고에서처럼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서' 피할 사이도 없었다.
소미는 오른쪽 눈썹 쪽이 1cm 조금 더 되게 찢어져 턱으로 피를 줄줄 흘리며 울었다.
살점이 떨어져 나간 건 아니었고 예리한 칼로 좀 깊게 베인 것 같은 상처였다. 나는
너무 놀라고 미안하고 가슴 아프고 속상해서 어쩔 줄 몰랐다. 아이들에게 유난한
아빠로 이미 여기저기 소문이 파다한 남편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 병원을 가자고 나섰다.
무슨 살을 빼겠다고 안 하던 짓을 호들갑스럽게 하다가 그것도 어린이날 아이를
이 꼴로 만들었나 싶은 게 한심했다. 남편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 차만 몰았다. 소미만
기를 때 이런 사고가 났더라면 대판 내게 "애를 어떻게 보았길래"하면서 책임추궁을
하고 나섰겠지만 그러질 않았다. 혹자는 둘째 아이까지 기르다보니 '아이 기르다보면
별일이 다 있다'하고 좀 느긋해진 탓이라 말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남편은 이 사고를 가볍게 보지 않았고 내게도 뭐라고 한 마디
하고 싶었던 것을 꾹 참는 눈치였다. 그건 남편을 잘 알기 때문에 표정으로도 알 수
있다. 내가 책임추궁에 대한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는 걸 알고 있기도 했고, 평소에
여러 번 이미 난 사고에 대해 잘잘못을 따지는 일은 하지 말자고 말하기도 했던 터라
자제하는 것 같았다. 그건 소용없는 일이고 그 누구보다도 돌보고 있던 에미의 심정은
더 아픈 노릇이라고도 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남편이 딸들이기 때문에 흉터에 대한
걱정이 더 깊은 것이라고 이해했다.
일단 찢어진 부분이 그 자리에 감쪽같이 붙길 바라는 마음으로 살이 밀리지 않게
조심해서 꼭 누르고 차를 탔다. 대강 휴지로 피 닦은 자리를 다시 턱이며 목 쪽으로
물휴지로 닦고 나니 눈밑도 약한 보라색으로 조금 멍들어있었다. 이만하니 다행이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른 데는 다치지 않았나 그때서야 머리며 어깨를 둘러보았다.
우리는 살을 꿰매지는 않아도 되겠다고 나름대로 판단했다. 오히려 그렇게 하면
정말 흉터가 생길지 모르겠다 싶었다. 맞는 판단이었는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으나
벌어진 것도 아니고 살점이 떨어져나간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대로 고 자리에 지그시
상처를 눌러 지혈했다.
유원지를 빠져 나와 가장 가까운 약국으로 갔다. 약을 바르고 밴드를 붙이고 다시
어머님과 다른 식구들이 걱정하며 기다리고 있을 그 사고 현장으로 돌아왔다. 밴드
사이로 오후 내내 조금씩 피가 배어 나와 두어 차례 갈아주었다. 기분 좋게 노는데도
한참 안쓰러운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그 다음날, 중학 동창생의 결혼식에서 소미의 훈장을 보고 한 친구가 하는 농담이
어이없었다.
"너 육아일기에 쓸거리 떨어져서 괜히 사고 친 거 아냐?"
무지막지한 녀석. 아이구! 너도 장가 가봐라. 그런 말이 나오나. 난 아주 십년감수했단다.
남편은 오늘도 출근해서 또 물었다.
"소미 상처 어때?"
이건 흉터가 남을 것 같냐는 말과 다름없었다. 요 며칠 계속 지치지 않는 그 질문을
계속 받았지만 나는 사고 친 죄인이라 짜증도 못 내고 상처에 대한 상황보고를 달게
하고 있다. 보는 사람마다 깜짝 놀라며 묻는데 정말 쥐구멍에라도 들어갔다가 다
나으면 나오고 싶은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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